목차
Ⅰ. 개요
Ⅱ.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Ⅲ.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가
1. 출생
2. 의병활동
3. 문인으로서의 삶
1) 1601년(선조 34)
2) 1611년(광해군 3)
3) 1612년
4) 1630년(인조 8)
5) 말년
4. 작품
Ⅳ.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해설
Ⅴ.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분석
1. 서사 -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2. 본사 1 - 충성심으로 백전 고투했던 왜란의 회상
3. 본사 2 -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를 지음
4. 본사 3 - 농사를 지으려 하니 농우가 없어, 농우를 빌리러 감
5. 본사 4 -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
6. 본사 5 - 집에 돌아와 야박한 세태를 한탄하며 춘경을 포기함
7. 결사 1 - 자연을 벗 삼으면서 절로 늙기를 소망함
8. 결사 2
참고문헌
Ⅱ.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Ⅲ.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가
1. 출생
2. 의병활동
3. 문인으로서의 삶
1) 1601년(선조 34)
2) 1611년(광해군 3)
3) 1612년
4) 1630년(인조 8)
5) 말년
4. 작품
Ⅳ.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해설
Ⅴ.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분석
1. 서사 -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2. 본사 1 - 충성심으로 백전 고투했던 왜란의 회상
3. 본사 2 -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를 지음
4. 본사 3 - 농사를 지으려 하니 농우가 없어, 농우를 빌리러 감
5. 본사 4 -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
6. 본사 5 - 집에 돌아와 야박한 세태를 한탄하며 춘경을 포기함
7. 결사 1 - 자연을 벗 삼으면서 절로 늙기를 소망함
8. 결사 2
참고문헌
본문내용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가,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해설,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분석
Ⅰ. 개요
Ⅱ.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Ⅲ.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가
1. 출생
2. 의병활동
3. 문인으로서의 삶
1) 1601년(선조 34)
2) 1611년(광해군 3)
3) 1612년
4) 1630년(인조 8)
5) 말년
4. 작품
Ⅳ.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해설
Ⅴ.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분석
1. 서사 -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2. 본사 1 - 충성심으로 백전 고투했던 왜란의 회상
3. 본사 2 -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를 지음
4. 본사 3 - 농사를 지으려 하니 농우가 없어, 농우를 빌리러 감
5. 본사 4 -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
6. 본사 5 - 집에 돌아와 야박한 세태를 한탄하며 춘경을 포기함
7. 결사 1 - 자연을 벗 삼으면서 절로 늙기를 소망함
8. 결사 2
참고문헌
Ⅰ. 개요
궁핍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서술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 가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누항사>라는 작품 등은 분명 크게 주목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점을 조명하고 있는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그 나름의 의의와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인로의 신분적 처지를 몰락한 양반 또는 한미한 향반으로 규정짓고 작가의 이러한 신분적 처지에 바탕을 두고 고안한 유가 의식 또는 경전 의식이라는 기존 연구의 단일 잣대로써 박인로의 작품을 바라볼 때 석연치 않은 몇 가지 점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여헌 장현광, 한음 이덕형, 한강 정구와 같은 당대의 거유들이 궁벽한 영천 땅에서 ‘몰락한 양반 또는 한미한 향반’으로 살고 있는 박인로와의 교유를 용납한 이유를 단순히 박인로가 그의 신분적 처지를 극복하려고 보인 남다른 ‘양반 의식’이나 ‘유가 의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박인로는 주로 거유들에게 영향을 받는 입장이었겠지만, 박인로의 문집이나 관련 자료에는 이러한 단순한 영향 관계 또는 상하 관계 이상의 면모가 보이고 있어 다른 각도에서 더욱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볼 때,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궁핍한 현실에 대한 갈등과 토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누항사>는 한음 이덕형의 물음에 대하여 박인로가 술회하여 지은 작품인데, 빈곤의 참상에 대한 노골적 토로가 당대 명문거족인 한음과 비록 한미하기는 하지만 강한 양반 의식을 보이고 있다는 박인로 두 사람에게 용납할 수 있는 정도를 사실상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양반은 굶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궁핍함을 말하지 않는다.(홀아이한 구불설빈)”는 금기를 깨면서까지 자신의 빈궁함을 비참한 일화와 함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양반이지만 양반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작가 박인로의 시대에 대한 한탄이며, 당위와 실제의 엇갈림에서 나온 고민이라고 하는 기존 연구의 견해가 과연 타당한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박인로는 9편의 가사 작품과 67수의 시조를 남긴 다작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듯 그로 하여금 많은 수의 작품을 짓게 한 궁극적인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38세에 처음 지은 가사 <태평사>를 비롯하여 76세 말년에 지은 가사 <노계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시조와 가사 등의 국문시가 작품을 지어낸 동인을 단순히 그의 신분적 처지에서 말미암은 남다른 유가 의식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박인로의 작품들은 ‘대작’이나 ‘명작’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작’과 ‘명작’이 의미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Ⅱ.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어리고 迂闊산 이우 더니업다
-->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은 나 보다 더한 이가 없다.
吉凶 禍福을 하날긔 부쳐두고
--> 길흉화복을 하늘께 맡겨 두고
陋巷 깁푼곳의 草幕을 지어두고
--> 누추한 고장 깊은 곳에 초가집을 지어 놓고
風朝 雨夕에 석은 딥히 셥히 되야
-->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셔홉밥 닷홉粥에 烟氣도 하도할샤
--> 서 홉 밥 닷 홉 죽이지만 연기는 많기도 하구나.
언매만히 바든밥의 懸 雉子들은
--> 조금 뿐인 밥에 초라한 모습을 한 자식들은
쟝긔 버려 졸미덧 나아오니
--> 장기판에서 졸을 밀듯이 나아오니
人情 天理예 아 혼자 먹을 넌가
--> 사람의 도리로서 차마 혼자 먹을 수 있으랴?
설데인 熟冷애 뷘
Ⅰ. 개요
Ⅱ.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Ⅲ.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가
1. 출생
2. 의병활동
3. 문인으로서의 삶
1) 1601년(선조 34)
2) 1611년(광해군 3)
3) 1612년
4) 1630년(인조 8)
5) 말년
4. 작품
Ⅳ.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해설
Ⅴ.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작품분석
1. 서사 -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 일념으로 살려는 심정
2. 본사 1 - 충성심으로 백전 고투했던 왜란의 회상
3. 본사 2 - 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를 지음
4. 본사 3 - 농사를 지으려 하니 농우가 없어, 농우를 빌리러 감
5. 본사 4 - 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옴
6. 본사 5 - 집에 돌아와 야박한 세태를 한탄하며 춘경을 포기함
7. 결사 1 - 자연을 벗 삼으면서 절로 늙기를 소망함
8. 결사 2
참고문헌
Ⅰ. 개요
궁핍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서술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 가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누항사>라는 작품 등은 분명 크게 주목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점을 조명하고 있는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그 나름의 의의와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인로의 신분적 처지를 몰락한 양반 또는 한미한 향반으로 규정짓고 작가의 이러한 신분적 처지에 바탕을 두고 고안한 유가 의식 또는 경전 의식이라는 기존 연구의 단일 잣대로써 박인로의 작품을 바라볼 때 석연치 않은 몇 가지 점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여헌 장현광, 한음 이덕형, 한강 정구와 같은 당대의 거유들이 궁벽한 영천 땅에서 ‘몰락한 양반 또는 한미한 향반’으로 살고 있는 박인로와의 교유를 용납한 이유를 단순히 박인로가 그의 신분적 처지를 극복하려고 보인 남다른 ‘양반 의식’이나 ‘유가 의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박인로는 주로 거유들에게 영향을 받는 입장이었겠지만, 박인로의 문집이나 관련 자료에는 이러한 단순한 영향 관계 또는 상하 관계 이상의 면모가 보이고 있어 다른 각도에서 더욱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볼 때,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궁핍한 현실에 대한 갈등과 토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누항사>는 한음 이덕형의 물음에 대하여 박인로가 술회하여 지은 작품인데, 빈곤의 참상에 대한 노골적 토로가 당대 명문거족인 한음과 비록 한미하기는 하지만 강한 양반 의식을 보이고 있다는 박인로 두 사람에게 용납할 수 있는 정도를 사실상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양반은 굶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궁핍함을 말하지 않는다.(홀아이한 구불설빈)”는 금기를 깨면서까지 자신의 빈궁함을 비참한 일화와 함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양반이지만 양반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작가 박인로의 시대에 대한 한탄이며, 당위와 실제의 엇갈림에서 나온 고민이라고 하는 기존 연구의 견해가 과연 타당한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박인로는 9편의 가사 작품과 67수의 시조를 남긴 다작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듯 그로 하여금 많은 수의 작품을 짓게 한 궁극적인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38세에 처음 지은 가사 <태평사>를 비롯하여 76세 말년에 지은 가사 <노계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시조와 가사 등의 국문시가 작품을 지어낸 동인을 단순히 그의 신분적 처지에서 말미암은 남다른 유가 의식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박인로의 작품들은 ‘대작’이나 ‘명작’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작’과 ‘명작’이 의미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Ⅱ. 누항사(노계 박인로)의 전문
어리고 迂闊산 이우 더니업다
-->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은 나 보다 더한 이가 없다.
吉凶 禍福을 하날긔 부쳐두고
--> 길흉화복을 하늘께 맡겨 두고
陋巷 깁푼곳의 草幕을 지어두고
--> 누추한 고장 깊은 곳에 초가집을 지어 놓고
風朝 雨夕에 석은 딥히 셥히 되야
-->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셔홉밥 닷홉粥에 烟氣도 하도할샤
--> 서 홉 밥 닷 홉 죽이지만 연기는 많기도 하구나.
언매만히 바든밥의 懸 雉子들은
--> 조금 뿐인 밥에 초라한 모습을 한 자식들은
쟝긔 버려 졸미덧 나아오니
--> 장기판에서 졸을 밀듯이 나아오니
人情 天理예 아 혼자 먹을 넌가
--> 사람의 도리로서 차마 혼자 먹을 수 있으랴?
설데인 熟冷애 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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