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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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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통일(남북통일)의 의미

Ⅲ. 통일(남북통일)의 역사

Ⅳ. 통일(남북통일)의 조건

Ⅴ. 통일(남북통일)의 당위성

Ⅵ. 통일(남북통일)과 우리의 자세

참고문헌

본문내용

상하고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은 남북연합이나 연방제를 시행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남북한이 이런 체제를 합의 아래 이루는 것도 매우 어렵지만,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가 고정되어 남북한 통일의 최종 모습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느 한쪽의 흡인력에 의한 폭발 상황, 이를테면 독일의 경우와 같은 흡수통일로 돌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가능성이다.
이러한 평화공존론이나 실용론의 밑바탕에는 왜 꼭 한 민족이라고 한 국가를 이루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깔려 있다. 실제로 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는 것은 세계사에서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민족에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는 일이다. 1000년 이상 통일국가를 형성해 온 단일 민족의 ‘혈통’ 국가가 외부의 인위적인 힘으로 쪼개졌다는 사실은, 합리성을 기준으로 통일의 바람직함을 따지는 것을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도 수백만에 달하는 이산가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벼이 볼 수 없다.
Ⅵ. 통일(남북통일)과 우리의 자세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의 발전을 이룩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 민족이 모두 염원하는 과제이다. 통일이 민족의 발전과 번영에 도움이 되려면 그 과정이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화해와 협력, 남북 연합의 단계를 거쳐 1 민족 1 국가의 완전한 통일 조국을 이룩하는 접근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남한이 흡수 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 문화의 교류와 남북 경제 협력과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 그리고 국방비의 감축과 같은 군사 문제 등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통일로 가는 단계는 남한과 북한이 연합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단일 민족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이 함께 마련한 통일 헌법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하고 통일 국회와 정부를 구성하여 하나의 완전한 민족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통일을 실현하는 주체는 당연히 민족 성원 전체가 되어야 한다.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주체가 어떤 특수한 계급이나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통일은 민족 성원 전체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질화된 남한과 북한 사회를 화합의 정신으로 통합시키는 실질적인 민족 통일을 이룩하려면, 민족 성원이 모두 참여하고 화합하는 순리적 절차가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한 나라들의 통일 과정을 살펴보고, 우리의 통일 과정을 예상하여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국으로 통일을 성취한 나라는 오스트리아와 베트남, 예멘과 독일 등이다. 이 나라들은 각기 처한 상황이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의 방법이나 통일 후의 정책 노선, 정치 체제와 경제 구조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네 나라의 서로 다른 통일 유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스트리아와 같은 중립화 통일의 유형이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 영구, 프랑스, 소련 등 4 강대국에 의해서 분할되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강대국들과의 끈질긴 협상 끝에 1955년 5월,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오스트리아의 재건을 위한 조약’을 체결하고, 영세 중립국으로서 통일 정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결국 오스트리아는 민족의 단합과 슬기로써 외부의 압력을 뿌리치고 중립화를 내세워 통일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통일 이후에 오스트리아는 자유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복수 정당 제도를 채택하고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르고 있다.
둘째, 베트남과 같은 공산화 무력 통일의 유형이다. 베트남은 분단 이후에 민족 내부의 결속에 실패하여 분열과 대결이 심화되어 가다가, 월맹 공산 정부의 폭력 혁명 노선에 의해서 공산화되었다. 월맹 공산주의자들은 부패와 독재, 비능률 속에 빠져든 월남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반(反)외세 민족주의 감정을 내세워 월남 정부의 정통성을 약화시켰다. 결국, 월맹은 베트남 전체를 공산화하였다. 그러나 통일 후 베트남은 폐쇄적인 독재 체제로 전락하였고, 경제적 침체 상태에 빠져들었다.
셋째, 예멘과 같은 외형적 합의에 의한 불안정한 통일 유형이다. 남북 예멘의 통일은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협상을 통해서 하나로 통합된 사례이다. 인구나 경제 수준에서 우세한 북예멘의 자본주의 체제가 주도권을 장악하면서도 통일 정부의 요직을 사회주의 체제였던 남예멘측에도 안배하였다. 그러나 남북 예멘의 지도층이 서로 기득권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지만, 국민의 참여나 지지가 미약하여 정국이 불안하였다. 더욱이 통일 과정에서 군대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전(內戰) 상태의 무력 충돌을 거쳐서 결국에는 북예멘에 의한 무력 통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넷째, 서독이 주도권을 가지고 국력 면에서 미치지 못하는 동독을 흡수 통합한 유형이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공산 월맹에 의하여 무력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의 경우와는 달리, 동독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서 스스로 서독으로의 흡수 통합을 선택한 것이다. 즉, 독일의 통일은 서독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고 동독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다. 동독인들의 이러한 선택은 공산당의 억압과 탄압,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에 따른 빈곤, 그리고 서독의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 성장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된 독일은 정치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경제적으로 시장 경제 원리를 채택하였고, 외교적으로는 친서방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남식(1995), 민족 통일의 새로운 정책 모색, 부산대학교한국민족문화연구소
▷ 노태구(2003), 민족주의, 세계화, 민족통일 : 평화협정체결과 관련하여, 경기대학교
▷ 민족통일중앙협의회(2008), 민족통일협의회 통일포럼
▷ 송두율(2000), 지구화, 민족통일 그리고 민주주의, 경상대학교
▷ 신영만(1984), 민족통일의 이념적 고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 한문화통일협회(2000), 홍익인간 사상과 민족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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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5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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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60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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