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근대소설의 전개
Ⅲ. 근대소설과 소설가 현상윤
Ⅳ. 근대소설과 소설가 김승옥
Ⅴ. 근대소설과 소설가 이상
Ⅵ. 근대소설과 소설가 장용학
Ⅶ. 근대소설과 소설가 염상섭
참고문헌
Ⅱ. 근대소설의 전개
Ⅲ. 근대소설과 소설가 현상윤
Ⅳ. 근대소설과 소설가 김승옥
Ⅴ. 근대소설과 소설가 이상
Ⅵ. 근대소설과 소설가 장용학
Ⅶ. 근대소설과 소설가 염상섭
참고문헌
본문내용
거리기까지 한다. 나의 이 머뭇거림은 내객에 의해 내가 보여졌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누군가에 의해 보여진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것은 곧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내객의 눈은 나의 나르시시즘적인 동일시를 파괴하는 상상계의 눈이다. ‘내객의 눈에 의해 보여짐으로써 나는 상징계의 시선에 의해 침투된다. 바라봄만 있고 보여짐이 없는 단계가 상상계, 즉 반영 단계라면 이제 스스로가 타자에 의해 보여지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 단계, 즉 상징계에 들어서면 응시는 억압되고 보여짐이라는 의식의 시선이 생긴다.’
이렇게 내객의 눈, 다시 말하면 타자의 눈에 의해 노출되어 타자들의 상징적 질서 안에 진입하게 된 나는 이제 돈을 쓰게 쾌감을 알게 되고 아내에게도 돈을 주고 매춘하고, 경성역 티룸까지 가서 차를 마신다. 이제 나는 돈이라는 시니피앙의 교환 체계에도 참여하게 되고 사회적 공간인 근대적인 도시 공간 속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Ⅵ. 근대소설과 소설가 장용학
1950년대의 문학을 논의하고자 할 때 <전쟁>이 던지는 의미를 검토하는 일은 하나의 당위 명제이다. 반도를 폐허로 무참히 쓸어버렸던 한국전쟁이란 단순히 물리적 의미에서의 폭력에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경험했던 개인들에게 다소간의 의식의 폐허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순간에 적과 동지가 바뀌어 전쟁터에 내몰리게 되는 형국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가치-장용학에게서는 <정의> 즉, <자유>와 <평등> 등으로 나타난다-라 할 수 있는 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제도라 할 수 있는 <가족>을 이루도록 해 주었던 혈연적 가치 혹은 유대-근친상간의 금지-까지도 모두 시험대에 올라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판국에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니 ‘조국수호전쟁’이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각축전을 벌인 세계사적 전쟁’이니 하는 것들은 그 전쟁 통에 내몰렸던 개인들 각자에게는 어쩌면 체험이나 실감의 영역과는 유리된 다만 설명의 한 방식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체험으로서 느끼는 <전쟁>이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에 적절한 논리를 붙이곤 한다. 이러한 논리를 갖다 붙인다는 행위 자체에는 어떠한 심리적 상태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진다. 즉 경험적 사실로부터 사유자가 갖는 심리적 거리 말이다. 이는 칸트나 헤겔 식으로 하자면 ‘무관심성’이라 불려질 수 있을 법한데, 이러한 사유의 대상으로부터 사유자가 유지·확보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란 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일 예를 들자면 반성철학을 들 수 있을 듯)
그렇다면 <전쟁>이란 극한 상황 속에 있었던 한 소설가에게 <전쟁>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는가? 과연 그는 그 상황에서 <전쟁>을 반성할 수 있었을까? 피난민 대열에 휩쓸려 다다른 부산의 산중턱 바라크에서 매일매일을 연명해 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술을 마시고 자살을 택한 시인 정운삼의 행위가 실존의식 류의 <자유>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지던 당시에 <전쟁>이란 <자유>를 억압하고 방해하는 폭력, 그것도 엄청난 물리적 힘으로 모든 것을 끝장 내버리는 폭력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폐허의 끝을 보았던 것이다. 이전에 기대고 섰던 모든 인간적 가치들이 몽땅 싸그리 뭉개져 버린 현실의 폐허더미 위에서 그 포화가 남긴 연기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전쟁의 섬광에 눈이 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뻔한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이기는 하나 손창섭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전쟁, 너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부정의 방식(기실은 가장(假裝)일 수도 있는 태도일 것)이 그 하나라면, 그 극단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는 인류문명사의 정점으로서의 전쟁과 그를 통한 문명의 파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일궈내고자 하는 것. 이 새로움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라기 보다 오히려 잘못된 것을 정정하자는 의미가 강하다. 이 이외에는 일종의 순응을 자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 장용학이 선택한 길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장용학의 선택의 이면에는 그의 문단 내에서의 세대적 의식이 가로 놓여 있다. 김동리, 백철 등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기성에 대해 손창섭·김성한·곽학송 등과 자신을 신진(新進)으로 칭하면서 이들 신진들의 일반적 특색을 “독립성”이라 하고 있는 점, 자신은 “천자(김동리-인용자)의 비위를 맞추는 작품은 절대 내놓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점을 통해 보자면 자신의 소설 내에서의 한자 사용에 대해 옹호하면서 “우리 小說에는 줄거리와 묘사만 있고 사상이 없”다고 말한 그의 의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은 사상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사상이 곧 주제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용어(문학용어)로서는 부족하며 오히려 사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한자가 적합하다는 그의 주장 이면에는 실상 자신의 한글 사용의 미숙함을 감추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문단 지형도 내에서 기성문인에 대한 새로움 즉 ‘전통단절’(<1+1=3>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단절 곧 새로움을 장용학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끝났다는 것은 그 저쪽 세계를 보는 것을 의미했다. 끝난다는 것은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끝난다는 것은 저기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난다는 것은 시작된다는 것의 徵兆였다. 징조로서의 生만이 創造的 生이 아니었던가....
장용학은 이러한 새로움을 획득하기 위한 첫 보를 그의 초기작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문예16, 53. 6)에서 내딛고 있다. 인민군징병을 피해 도망을 다니던 상주는 가까운 친지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절망하다가 결국은 잡혀가더라도 집에서 잡혀가자는 마음으로 인민군 치하의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 다다미 밑에 숨어 지내게 된다. 집에 와보니 자신의 제자이자 자신이 좋아했던 영애가 자신의 집에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를 그의 삼촌 집으로
이렇게 내객의 눈, 다시 말하면 타자의 눈에 의해 노출되어 타자들의 상징적 질서 안에 진입하게 된 나는 이제 돈을 쓰게 쾌감을 알게 되고 아내에게도 돈을 주고 매춘하고, 경성역 티룸까지 가서 차를 마신다. 이제 나는 돈이라는 시니피앙의 교환 체계에도 참여하게 되고 사회적 공간인 근대적인 도시 공간 속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Ⅵ. 근대소설과 소설가 장용학
1950년대의 문학을 논의하고자 할 때 <전쟁>이 던지는 의미를 검토하는 일은 하나의 당위 명제이다. 반도를 폐허로 무참히 쓸어버렸던 한국전쟁이란 단순히 물리적 의미에서의 폭력에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경험했던 개인들에게 다소간의 의식의 폐허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순간에 적과 동지가 바뀌어 전쟁터에 내몰리게 되는 형국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가치-장용학에게서는 <정의> 즉, <자유>와 <평등> 등으로 나타난다-라 할 수 있는 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제도라 할 수 있는 <가족>을 이루도록 해 주었던 혈연적 가치 혹은 유대-근친상간의 금지-까지도 모두 시험대에 올라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판국에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니 ‘조국수호전쟁’이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각축전을 벌인 세계사적 전쟁’이니 하는 것들은 그 전쟁 통에 내몰렸던 개인들 각자에게는 어쩌면 체험이나 실감의 영역과는 유리된 다만 설명의 한 방식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체험으로서 느끼는 <전쟁>이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에 적절한 논리를 붙이곤 한다. 이러한 논리를 갖다 붙인다는 행위 자체에는 어떠한 심리적 상태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진다. 즉 경험적 사실로부터 사유자가 갖는 심리적 거리 말이다. 이는 칸트나 헤겔 식으로 하자면 ‘무관심성’이라 불려질 수 있을 법한데, 이러한 사유의 대상으로부터 사유자가 유지·확보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란 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일 예를 들자면 반성철학을 들 수 있을 듯)
그렇다면 <전쟁>이란 극한 상황 속에 있었던 한 소설가에게 <전쟁>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는가? 과연 그는 그 상황에서 <전쟁>을 반성할 수 있었을까? 피난민 대열에 휩쓸려 다다른 부산의 산중턱 바라크에서 매일매일을 연명해 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술을 마시고 자살을 택한 시인 정운삼의 행위가 실존의식 류의 <자유>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지던 당시에 <전쟁>이란 <자유>를 억압하고 방해하는 폭력, 그것도 엄청난 물리적 힘으로 모든 것을 끝장 내버리는 폭력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폐허의 끝을 보았던 것이다. 이전에 기대고 섰던 모든 인간적 가치들이 몽땅 싸그리 뭉개져 버린 현실의 폐허더미 위에서 그 포화가 남긴 연기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전쟁의 섬광에 눈이 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뻔한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이기는 하나 손창섭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전쟁, 너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부정의 방식(기실은 가장(假裝)일 수도 있는 태도일 것)이 그 하나라면, 그 극단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는 인류문명사의 정점으로서의 전쟁과 그를 통한 문명의 파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일궈내고자 하는 것. 이 새로움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라기 보다 오히려 잘못된 것을 정정하자는 의미가 강하다. 이 이외에는 일종의 순응을 자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 장용학이 선택한 길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장용학의 선택의 이면에는 그의 문단 내에서의 세대적 의식이 가로 놓여 있다. 김동리, 백철 등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기성에 대해 손창섭·김성한·곽학송 등과 자신을 신진(新進)으로 칭하면서 이들 신진들의 일반적 특색을 “독립성”이라 하고 있는 점, 자신은 “천자(김동리-인용자)의 비위를 맞추는 작품은 절대 내놓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점을 통해 보자면 자신의 소설 내에서의 한자 사용에 대해 옹호하면서 “우리 小說에는 줄거리와 묘사만 있고 사상이 없”다고 말한 그의 의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은 사상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사상이 곧 주제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용어(문학용어)로서는 부족하며 오히려 사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한자가 적합하다는 그의 주장 이면에는 실상 자신의 한글 사용의 미숙함을 감추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문단 지형도 내에서 기성문인에 대한 새로움 즉 ‘전통단절’(<1+1=3>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단절 곧 새로움을 장용학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끝났다는 것은 그 저쪽 세계를 보는 것을 의미했다. 끝난다는 것은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끝난다는 것은 저기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끝난다는 것은 시작된다는 것의 徵兆였다. 징조로서의 生만이 創造的 生이 아니었던가....
장용학은 이러한 새로움을 획득하기 위한 첫 보를 그의 초기작 찢어진 <윤리학의 근본문제>(문예16, 53. 6)에서 내딛고 있다. 인민군징병을 피해 도망을 다니던 상주는 가까운 친지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절망하다가 결국은 잡혀가더라도 집에서 잡혀가자는 마음으로 인민군 치하의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 다다미 밑에 숨어 지내게 된다. 집에 와보니 자신의 제자이자 자신이 좋아했던 영애가 자신의 집에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를 그의 삼촌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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