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인식구조와 현실인식
Ⅱ. 인식구조와 타자인식
1. 타자인식의 형성
2. 우리집단의식
Ⅲ. 인식구조와 통일
1. 통일여건에 대한 인식구조
2. 통일에 관한 기본 인식구조
Ⅳ. 인식구조와 동역학
Ⅴ. 인식구조와 언론사
Ⅵ. 인식구조와 원불교사상
1. 일의 본질적 의미
1) 일은 어떤 형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2) 일은 정성을 의미한다
3) 일은 말 그대로 하나를 뜻한다
4) 일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2. 일이이 인식의 관점
3.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두
참고문헌
Ⅱ. 인식구조와 타자인식
1. 타자인식의 형성
2. 우리집단의식
Ⅲ. 인식구조와 통일
1. 통일여건에 대한 인식구조
2. 통일에 관한 기본 인식구조
Ⅳ. 인식구조와 동역학
Ⅴ. 인식구조와 언론사
Ⅵ. 인식구조와 원불교사상
1. 일의 본질적 의미
1) 일은 어떤 형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2) 일은 정성을 의미한다
3) 일은 말 그대로 하나를 뜻한다
4) 일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2. 일이이 인식의 관점
3.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두
참고문헌
본문내용
였다.
正蒙의 사상을 주석한 朱子의 논리는 一인 본체만으로는 조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兩(二)이 있어야 만물의 조화가 일어난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朱子는 一而二의 도식과 二而一의 도식으로 不雜不離의 理·氣 關係를 언급하고 있다. 理와 氣의 관계는 별개로 독립해 있지 않다. 이들 양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하나면서 둘인 一而二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유의 생성은 이 一而二의 작용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한 일이다. 쇼펜하우어도 말하기를 사랑하는 두(二) 남녀가 참다운 하나(一)의 존재로 결합하고 융화되어 생존하려는 동경을 느끼며, 이 두(二) 개체가 결국 하나(一)로 융화 합체 귀일되어 생존해 나간다고 하였다. 一의 원리적이고 본질적인 측면과 二의 현상적이고 방법적인 측면이 조화될 때 우주의 진리는 작용하는 것이며, 一圓相의 진리는 생명주재와 더불어 만유포월을 자유 자재한다. 따라서 일원상 진리를 포함한 원불교 사상의 전반적 인식은 一而二의 인식 구조로 결론지을 수 있다.
3.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둘로 보느냐 아니면 통합된 하나로 보느냐, 물질로 보느냐 관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一元論과 二元論이 대두된다. 이를 좀더 좁혀서 설명하면 정신과 물질의 문제가 이와 관련되는 것이다. 이에 유물론의 철학적 세계관이 탄생한 것은 기원적 6세기였다. 고대 그리이스의 식민지인 이오니아 반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밀레토스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에서 구했으나, 후기 플라톤은 이데아 이론의 관념론을 추구하였다. 더불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적 유물론과 플라톤의 이데아적 관념론이 대립의 역사를 자아내게 되기도 하였다.
위의 古代思潮를 이어받은 東·西 양 진영의 철학은 대체로 서양의 경우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인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고래로 동양의 인식론은 직관적이고 통합적이며 비분석적인 성향을 지녀왔다. 주지하듯이 서양의 物·心 이원론적 양분법의 인식을 주장한 대표적 학자로는 데카르트를 들고 있다. 마음과 물질을 둘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로 보느냐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야기되어 왔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사유는 서구인 자신을 유기체적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합리적 사유의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이 정신과 육체에 대한 이분법적 분리는 기본적 인식의 틀로 작용하여 서구문화 전체를 통해 나타났다.
서구문화를 통 털어 한마디로 이분법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동양적 사유에 비해 매우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하여 서구문화는 지금까지 나와 대상의 엄격한 분리, 나와 자연물과의 엄격한 간격을 두므로 인하여 보다 대상·자연물을 냉철하게 판단해 볼 수 있는 과학적 발전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물론 서구인 중에는 이러한 이원론을 부정하고 일원론으로 지향한 경우도 있다. 이원론적 존재 부정으로 철학자 메를로 뽕띠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생태학적 자연과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과 자연, 레비-스트로스의 야생과 마음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신과 물질의 엄격한 구분을 지양하여 하나의 다른 양 측면으로 보았다.
이에 점차 이원론적 비판의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특히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거듭 이원론을 부정하여 물질없는 정신은 존재할 수 없고 정신없는 물질은 존재하지만 접근할 수 없다
고 하였다. 그의 이원론 비판배경은 이원론으로 말미암아 중요하고도 신비한 수많은 현상이 과학의 연구대상인 물질계에서 배제되어 둘 다 과학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동양은 나와 자연물을 구분하지 않고 통일체적으로 보았으며, 未分의 상태를 수양의 한 목표로 설정하여 왔다. 다시 말하면 일원론적 사유가 동양사상의 핵심으로 자리해온 것이다. 즉 동양의 有幾體 이론은 生機的 一元論으로 서양의 이원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나와 다른 생명체를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는 우주 유기체적 입장에 있다. 여기에는 다른 매개물이 그 간격을 떼어놓을 수 없다.
나와 우주사이에 자유로운 未分의 관계로서 우주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우주적 氣의 한 덩치로 본 것이다. 바로 그러한 대표적 인물로 張橫渠를 거론 할 수가 있다. 그의 西銘 정신은 氣一元論의 총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氣一元論의 정신에서 볼때 民吾同胞, 物吾與也임에 틀림이 없다. 즉 백성은 나의 한 포태인 것이며, 만물 역시 나와 한 덩치로서 매사에 관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一元論이 보다 가치있는 이론으로 주장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만 동양의 사유방식이 이러한 일원론적 사유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天地未分의 混沌상태를 지향한 동양철학(특히 道家哲學)의 영향이 그만큼 동양인의 정서를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周易繫辭 上傳의 一陰一陽之謂道에 대한 주석에 있어 오직 易은 陰陽을 말하였으므로 그 往來流行하여 만고불변하는 것은 또한 天道라 한다. 이에 비록 二의 단서가 있을지라도 결국 一에 이른다.는 언급을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원론으로써 유심론이니 유물론이니 하는 것 등을 극복하려는 체계적인 시도의 한 예로서 스피노자를 들을 수가 있다. 그의 논리는 어느 하나에 치우친 이론을 배격하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예를 들면, 唯心論이니 唯物論이니 하는 것에 대하여 원불교는 어느 입장에 있느냐는 객의 질문에 鼎山宗師는 답하기를 物心一如로 보나니, 우주 만유의 본체는 物과 心이 둘이 아닌 동일체이나 운용하는데 있어서는 心이 體가 되고 物이 用이 되나니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김영하, 분단비용과 통일비용에 관한 인식제고 방안, 통일원, 1997
◈ 심선혜,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삶과 현실인식 연구 : 첨부 작품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2011
◈ 이중원, 동역학의 인식구조와 실재론, 서울시립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98
◈ 이영재, 한국 언론인의 언론사 내적통제 인식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1995
◈ 유성태, 원불교 사상의 인식구조동양의 일이이 구조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1994
◈ 헤센 저, 이강조 역, 인식론, 서광사, 1994
正蒙의 사상을 주석한 朱子의 논리는 一인 본체만으로는 조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兩(二)이 있어야 만물의 조화가 일어난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朱子는 一而二의 도식과 二而一의 도식으로 不雜不離의 理·氣 關係를 언급하고 있다. 理와 氣의 관계는 별개로 독립해 있지 않다. 이들 양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하나면서 둘인 一而二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유의 생성은 이 一而二의 작용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한 일이다. 쇼펜하우어도 말하기를 사랑하는 두(二) 남녀가 참다운 하나(一)의 존재로 결합하고 융화되어 생존하려는 동경을 느끼며, 이 두(二) 개체가 결국 하나(一)로 융화 합체 귀일되어 생존해 나간다고 하였다. 一의 원리적이고 본질적인 측면과 二의 현상적이고 방법적인 측면이 조화될 때 우주의 진리는 작용하는 것이며, 一圓相의 진리는 생명주재와 더불어 만유포월을 자유 자재한다. 따라서 일원상 진리를 포함한 원불교 사상의 전반적 인식은 一而二의 인식 구조로 결론지을 수 있다.
3.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둘로 보느냐 아니면 통합된 하나로 보느냐, 물질로 보느냐 관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一元論과 二元論이 대두된다. 이를 좀더 좁혀서 설명하면 정신과 물질의 문제가 이와 관련되는 것이다. 이에 유물론의 철학적 세계관이 탄생한 것은 기원적 6세기였다. 고대 그리이스의 식민지인 이오니아 반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밀레토스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에서 구했으나, 후기 플라톤은 이데아 이론의 관념론을 추구하였다. 더불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적 유물론과 플라톤의 이데아적 관념론이 대립의 역사를 자아내게 되기도 하였다.
위의 古代思潮를 이어받은 東·西 양 진영의 철학은 대체로 서양의 경우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인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고래로 동양의 인식론은 직관적이고 통합적이며 비분석적인 성향을 지녀왔다. 주지하듯이 서양의 物·心 이원론적 양분법의 인식을 주장한 대표적 학자로는 데카르트를 들고 있다. 마음과 물질을 둘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로 보느냐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야기되어 왔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사유는 서구인 자신을 유기체적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합리적 사유의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이 정신과 육체에 대한 이분법적 분리는 기본적 인식의 틀로 작용하여 서구문화 전체를 통해 나타났다.
서구문화를 통 털어 한마디로 이분법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동양적 사유에 비해 매우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하여 서구문화는 지금까지 나와 대상의 엄격한 분리, 나와 자연물과의 엄격한 간격을 두므로 인하여 보다 대상·자연물을 냉철하게 판단해 볼 수 있는 과학적 발전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물론 서구인 중에는 이러한 이원론을 부정하고 일원론으로 지향한 경우도 있다. 이원론적 존재 부정으로 철학자 메를로 뽕띠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생태학적 자연과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과 자연, 레비-스트로스의 야생과 마음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신과 물질의 엄격한 구분을 지양하여 하나의 다른 양 측면으로 보았다.
이에 점차 이원론적 비판의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특히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거듭 이원론을 부정하여 물질없는 정신은 존재할 수 없고 정신없는 물질은 존재하지만 접근할 수 없다
고 하였다. 그의 이원론 비판배경은 이원론으로 말미암아 중요하고도 신비한 수많은 현상이 과학의 연구대상인 물질계에서 배제되어 둘 다 과학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동양은 나와 자연물을 구분하지 않고 통일체적으로 보았으며, 未分의 상태를 수양의 한 목표로 설정하여 왔다. 다시 말하면 일원론적 사유가 동양사상의 핵심으로 자리해온 것이다. 즉 동양의 有幾體 이론은 生機的 一元論으로 서양의 이원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나와 다른 생명체를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는 우주 유기체적 입장에 있다. 여기에는 다른 매개물이 그 간격을 떼어놓을 수 없다.
나와 우주사이에 자유로운 未分의 관계로서 우주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우주적 氣의 한 덩치로 본 것이다. 바로 그러한 대표적 인물로 張橫渠를 거론 할 수가 있다. 그의 西銘 정신은 氣一元論의 총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氣一元論의 정신에서 볼때 民吾同胞, 物吾與也임에 틀림이 없다. 즉 백성은 나의 한 포태인 것이며, 만물 역시 나와 한 덩치로서 매사에 관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一元論이 보다 가치있는 이론으로 주장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만 동양의 사유방식이 이러한 일원론적 사유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天地未分의 混沌상태를 지향한 동양철학(특히 道家哲學)의 영향이 그만큼 동양인의 정서를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周易繫辭 上傳의 一陰一陽之謂道에 대한 주석에 있어 오직 易은 陰陽을 말하였으므로 그 往來流行하여 만고불변하는 것은 또한 天道라 한다. 이에 비록 二의 단서가 있을지라도 결국 一에 이른다.는 언급을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원론으로써 유심론이니 유물론이니 하는 것 등을 극복하려는 체계적인 시도의 한 예로서 스피노자를 들을 수가 있다. 그의 논리는 어느 하나에 치우친 이론을 배격하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예를 들면, 唯心論이니 唯物論이니 하는 것에 대하여 원불교는 어느 입장에 있느냐는 객의 질문에 鼎山宗師는 답하기를 物心一如로 보나니, 우주 만유의 본체는 物과 心이 둘이 아닌 동일체이나 운용하는데 있어서는 心이 體가 되고 物이 用이 되나니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김영하, 분단비용과 통일비용에 관한 인식제고 방안, 통일원, 1997
◈ 심선혜,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삶과 현실인식 연구 : 첨부 작품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2011
◈ 이중원, 동역학의 인식구조와 실재론, 서울시립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98
◈ 이영재, 한국 언론인의 언론사 내적통제 인식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1995
◈ 유성태, 원불교 사상의 인식구조동양의 일이이 구조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1994
◈ 헤센 저, 이강조 역, 인식론, 서광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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