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유적과 유적정비, 유적과 수양개, 유적과 보길도, 유적과 김제시, 유적과 조선왕궁, 유적정비, 수양개, 보길도]유적과 유적정비, 유적과 수양개, 유적과 보길도, 유적과 김제시, 유적과 조선왕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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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적, 유적과 유적정비, 유적과 수양개, 유적과 보길도, 유적과 김제시, 유적과 조선왕궁, 유적정비, 수양개, 보길도]유적과 유적정비, 유적과 수양개, 유적과 보길도, 유적과 김제시, 유적과 조선왕궁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유적과 유적정비
1. 제1차 문화권유적정비(1988~1997)
2. 제2차 문화권유적정비(1998~2002)

Ⅲ. 유적과 수양개
1. 유적의 위치
2. 자연환경
1) 각 문화층별 유물과 문화적 성격
2) 중기 구석기문화층(V층)
3) 후기 구석기문화층(IV층)
4) 신석기 문화층(IIIㅁ층)
5) 청동기 문화층(IIIㄹ층)

Ⅳ. 유적과 보길도
1. 부용동 지역
2. 낙서재
3. 동천석실
4. 세연정
5. 판석포
6. 녹우당

Ⅴ. 유적과 김제시
1. 국내 최고최대(最古最大)를 자랑하는 벽골제(碧骨堤)
1) 초혜산(草鞋山, 즉 신털미산)
2) 승답(升畓, 즉 되배미)
3) 무네미(水越)
4) 중심거(中心渠)
2. 번영로(繁榮路) 벚꽃길
3. 두악산(斗岳山)과 전망대(展望台)

Ⅵ. 유적과 조선왕궁
1. 경복궁 복원정비
2. 창덕궁 복원정비

본문내용

: 부토층(10YR 4/6)
Ⅲㄴ층 : 고운모래찰흙층(7.5YR 3/4)
Ⅲㄷ층 : 고운모래층(10YR 5/8)
Ⅲㄹ층 : 모래찰흙층(2.5YR 5/4 - 7.5YR 4/8)
Ⅲㅁ층 : 모래찰흙층(10YR 5/6)
Ⅳㄱ층 : 가는모래찰흙층(10YR 5/6)
Ⅳㄴ층 : 가는모래찰흙층(10YR 5/6)
Ⅴ 층 : 자갈층(10YR 5/6)으로 나뉘었다.
4차에 걸쳐서 실시되었던 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로 확인된 유적과 출토유물의 결과를 보면 이 유적은 대개 5개의 문화층이 있었던 층위 유적으로 확인된다. 문화층으로는 제일위에 있던 IIIㄹ층에 발달한 청동기시대층으로서 85년도 발굴에서 찾아졌다. 이층에서 찾아진 대표적인 유물로서 단면에서 박혀 있는 상태로 출토된 민무늬토기밑바닥을 들 수 있고,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여 주는 자료로서는 채집된 유물 중에서 홈자귀(有溝石斧)와 돌대패날을 찾아 확실시 된다.
신석기층은 지층으로 보아 청동기층 바로 아래인 IIIㅁ층에 해당한다. 이 층에서는 1·2차 발굴에서 찾아진 돌도끼와 빗살무늬토기가 보고된 바 있고, 3·4차 발굴에서도 빗살무늬토기와 뗀돌도끼 · 간돌도끼 · 무늬토기 · 굼토기 조각이 더 찾아져 신석기문화를 뚜렷하게 하여 주고 있다. IVㄴ층에서는 가장 많은 수의 유물이 출토되며, 유물을 보면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석기들이 많이 출토된다.
2) 중기 구석기문화층(V층)
이층은 자갈돌 층으로서 석기도 거의 이 감을 골라 썼다. 이 층에서는 5,500g이나 되는 큰 격지를 만드는 던져떼기와 같은 수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망치를 가지고 내려치기로 떼어낸 격지와 몸돌이나, 반쪼갬으로 접합되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또한 부딪쳐 잔손질과 작은 망치로 날을 만드는 수법도 관찰된다.
이 층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찌르개 · 안팎날 찍개 · 주먹대패 · 돌망치 · 덜 된 연모 · 몸돌과 격지 등이 있다.
3) 후기 구석기문화층(IV층)
발굴된 유물의 95%이상을 차지하는 층위이다. 이 층의 연모를 만들기 위한 모룻돌에는 원래 있던 윗면이 판판한 표력과 같은 큰 자갈돌인데 주로 규암과 사암이 쓰였다. 이 때에는 모루 · 망치떼기를 비롯한 직접떼기를 주로 쓴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모룻돌과 함께 있는 망치돌 옆에 많은 격지가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격지들이 서로 접합되는 것이 찾아지기 때문이다. 이 층에서 쓰인 망치와 모룻돌, 몸돌과 격지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곳은 석기제작이 있었던 곳으로 보아 석기제작소로 보아진다. 이와 같은 석기의 집중적 분포지를 확인한 결과 모두 49군데에 이르렀다.
이층에서 출토된 석기의 감[材料]는 대부분 셰일인데, 이 셰일은 표면상의 색깔이 크게 검은색과 회색으로 구분된다. 이들 중에서 회색계통의 셰일유물 가운데는 검은 점이 찍혀 있는 것이 집중적으로 발굴되었는데, 이러한 점돌은 석기의 제작과정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자료이다. 이는 암질의 식별이 쉽고 개수가 제일 많을 뿐만 아니라. 격지와 몸돌들 가운데 짝이 맞는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돌의 수는 지금까지 발굴된 것이 142개이고, 짝이 맞는 것으로 조사된 점돌은 2차 발굴에서 맞추어진 8점에 10점을 더 맞춘 덩어리를 비롯하여, 3점과 2점 등 맞추어진 덩어리는 모두 3덩어리이다. 발굴된 점돌이 서로 맞추어짐으로서 해석하여 볼 수 있는 것은 다음의 3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몸돌과 격지들이 서로 맞추어진다는 것은 유물이 한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집중적으로 모여져 있다는 것은 옆에 있는 모룻돌 · 망치돌과 비교하여 석기의 제작행위를 말하여 준다고 하겠다. 이는 곳 이곳이 석기제작소임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증거일 수 있다.
둘째, 점돌이 부합되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지금까지 3덩어리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접합된 18점으로 이루어진 유물을 가지고 살펴 본 결과 서로 맞는 몸돌 · 격지를 통하여 떼임질의 순서와 과정을 밝혀 낼 수 있다. 18점의 맞는 점돌이 출토된 범위는 약 1.8㎡ 안에 있으며, 떼임질을 순서에 따라 밝혀 본 결과 번호순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자세를 바꾸며 한곳에서 직접떼기를 하여 떼어 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석기제작에 이용된 본래의 돌 무게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석기를 만드는데 이용된 셰일은 이곳으로부터 약 1.5km떨어진 곳에서 가져다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얼마나 큰 돌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것은 지금까지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료로 지금까지 발굴된 점돌 142개의 무게를 더하여 보니 모두 6,889.6g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적어도 이 무게 이상의 돌을 운반하여다 썼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 VI층에서 발굴된 연모는 사냥용과 부엌-조리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사냥용으로는 주먹도끼 · 찍개 · 찌르개 등이 있으며, 부엌-조리용으로는 긁개 · 밀개 · 주먹칼 등을 들 수 있겠다.
4) 신석기 문화층(IIIㅁ층)
이 층은 모래찰흙층에 해당되는데,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에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돌도끼와 무늬토기 · 굼토기조각들이 발굴되었다.
발굴된 돌도끼는 날부분에 전체적으로 떼임질을 하여 만들어 썼고, 간돌도끼는 날부분 전체에 갈기를 베풀어 갈기수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여 진다. 무늬 토기는 ‘그물무늬’로서 입술부분이 찾아졌으며, 굼토기도 찾아져 신석기 문화해석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전체적으로 간도끼와 뗀도끼가 같이 찾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토기의 무늬로 보아도 후기형식으로 인정된다. 즉 신석기 중기나 후기에 걸친 유물로 보여 진다.
신석기층은 북쪽에서는 경작 및 홍수의 영향에 의해 교란되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퇴적층이 두꺼운 남쪽의 모래층에서만 찾아지고 있다.
5) 청동기 문화층(IIIㄹ층)
모래찰흙층으로서 앞선 신석기층과 마찬가지로 경작과 홍수의 영향으로 남쪽의 모래층에서 찾아지는 층위이다.
이층에서 찾아진 석기로는 홈자귀와 대패날 등이 있는데, 홈자귀는 민무늬토기가 출연한 이후 같이 나오는 것들인데, 여기의 것은 홈의 모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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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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