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발 레
1. 발레의 정의
2. 발레의 구성요소
1) 무용수
2) 안무가
3) 발레 음악
4) 무대미술
5) 의상
3. 발레의 발전사
1) 궁정발레
2) 낭만주의 발레
3) 고전주의 발레
4) 신고전주의 발레
5) 모던발레 : 발레 륏스와 볼쇼이 발레
6) 포스트 모더니즘
4. 발레의상의 시대적 변천과정과 특성
1) 궁정발레
2) 오페라 발레
3) 낭만 발레
4) 고전 발레
5) 모던 발레
5. 시대별 주요작품
1) 낭만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2) 고전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3) 신고전주의 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4) 모던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6. 발레사에 업적을 남긴 주요인물
1) 낭만발레 시대의 인물들
2) 고전발레 시대의 인물들
3) 신고전주의 시대 인물 : 조지 발란신(1904-1983)
4) 모던발레 시대의 인물들
7. 발레 용어
*발레의 기본 자세들
<참고 문헌>
1. 발레의 정의
2. 발레의 구성요소
1) 무용수
2) 안무가
3) 발레 음악
4) 무대미술
5) 의상
3. 발레의 발전사
1) 궁정발레
2) 낭만주의 발레
3) 고전주의 발레
4) 신고전주의 발레
5) 모던발레 : 발레 륏스와 볼쇼이 발레
6) 포스트 모더니즘
4. 발레의상의 시대적 변천과정과 특성
1) 궁정발레
2) 오페라 발레
3) 낭만 발레
4) 고전 발레
5) 모던 발레
5. 시대별 주요작품
1) 낭만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2) 고전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3) 신고전주의 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4) 모던발레 시대의 대표 작품
6. 발레사에 업적을 남긴 주요인물
1) 낭만발레 시대의 인물들
2) 고전발레 시대의 인물들
3) 신고전주의 시대 인물 : 조지 발란신(1904-1983)
4) 모던발레 시대의 인물들
7. 발레 용어
*발레의 기본 자세들
<참고 문헌>
본문내용
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커튼은 배경막으로 불리면서 대부분의 발레 무대 뒤에 걸려있었다. 예를 들어 성이나 숲, 호수, 마을의 장면은 커튼에 그림을 그려 표현했다. 디자이너들은 또 사실적인 무대장치를 무대에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장치들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해 무용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을 제한했다.
오늘날 벽 쪽의 사실적인 무대는 전통적인 발레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무대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새로운 발레를 위해 발레의 분위기나 무대를 간단한 것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조각이나 화려한 색깔을 가진 직물을 주름잡아 소품으로 이용했다. 이 경우 그들은 무대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발레의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다.
점점 더 무대 디자이너들은 현대적인 조명 기술을 이용해 발레 장면이나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색깔이나 밝기를 다양하게 해서 점차적으로 혹은 갑자기 터져나오는 듯한 효과들을 만들었다. 다른 조명 기술은 무대 뒷면에 영화나 슬라이드를 보여주는 것인데 심지어는 춤추고 있는 무용수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로버트 조프리의 발레 아스타르테는 이 기술을 사용한 작품으로 독보적인 표본라고 할 수 있다. 아스타르테에서 관객들은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만큼 무용수들의 춤추는 것을 무대 벽의 영화로 클로우즈 업해서 볼 수 있다.
5) 의상
초창기 발레에서 무용수들은 무겁고 장식이 많은 의상을 입었다. 발레 치마는 무대에 끌릴 정도로 길었지만 무용수들은 지금보다 기술이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피가 큰 의상 때문에 곤란을 입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기술이 늘면서 그들은 스텝을 감추고 율동에 방해가 되는 의상을 원하지 않기 시작했다.
1700년대부터 발레 의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위대한 무용수인 마리 까마르고는 그녀의 의상을 발목 위까지 올려서 짧게 했고 무용화에서 굽을 없애버렸다. 발레 테크닉이 볼만한 것으로 발전하면서 치마는 점점 더 짧아졌다. 1800년대에 등장한 마리 탈리오니는 발레 의상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줬다. 오늘날 기본적인 무릎 길이 발레 스커트 의상은 이때부터 확립됐다.
가장 좋은 발레 의상은 가볍고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몸의 선을 보여주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절대 방해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내용을 주제로 한 발레에서도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발레 무용수들은 천을 풀로 겹겹이 붙여 만든 특별한 신발인 토우슈즈를 신는다. 이 겹겹이 쌓은 것은 발끝에 힘을 줘 무용수들을 지탱시킨다.
3. 발레의 발전사
1) 궁정발레
발레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탄생하였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1489년 이탈리아의 토르토나에서 베르곤치오 데 보타라는 부유한 예능애호가(藝能愛好家)가 밀라노공(公) 갈레아초 스포르차와 그의 신부(新婦) 이사벨라를 위한 결혼 축하연에서 상연된 《이아론과 금의 양모(羊毛)》라는 발레였다. 당시의 무언극과 가면극의 춤을 구성한 당스 피귀레라고 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무용수가 모여서 추는 춤, 발리 또는 발레티라는 일종의 사교 댄스, 극적인 성격을 갖춘 무대무용인 브란디, 모리스카라는 즉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대무용 등 4가지 춤이 혼합하여 발레가 되었다고 한다.
피렌체에서 출생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의 앙리 2세의 왕비가 되어 프랑스 궁정에 조국 이탈리아의 궁정발레를 소개하였고, 이것이 전유럽으로 퍼져 나간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 1581년 파리의 앙리 3세의 궁정에서 상연된 《왕비의 발레 코미크》가 기록상으로는 최초의 발레로서 중요시된다. 이 발레의 안무는 이탈리아 출신인 베르조조소인데 큰 성과를 거두자 발레 대본에 관한 책도 최초로 출판하게 되었다. 그가 정의를 내린 바에 따르면, 발레란 여러 악기의 합주 아래 몇 사람이 추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용이라 하였고,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발레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베르조조소가 안무한 《발레 코미크》의 공연 때에 무용 음악 가요 낭송 등의 종합 무대에 일관된 줄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발레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예술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약 400년 전인 17세기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현재의 파리오페라발레의 초기 시절인 \'왕실음악무용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기록에 따르면 직접 무용수로 등장할 만큼 루이 14세의 발레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당시의 프랑스 발레는 가면을 쓰고 춤추었다고 해서 발레를 \'마스크 Masque\'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2) 낭만주의 발레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발레는 현대화되어 오늘날과 유사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는데 예를 들면 발끝으로 서는 뽀앵뜨 기법과 로맨틱 튀튀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외형적인 사실보다 중요한 점은 그 시대의 예술사조인 낭만주의가 유입되었고 이를 뒷받침 할 발레리나의 배출창고인 블라시스 무용아카데미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무가이자 교사였던 카를로 블라시스는 최초의 고전발레 사전을 저술 하였다. 이것은 이전의 고전무용에서 알려진 모든 기본지침을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후에 러시아 황실학교와 전 세계의 발레 교습의 전범이 되게 된다. 최초의 낭만발레는 필리포 탈리오니가 안무하고 그의 딸 마리 탈리오니가 주역을 한 <라 실피드>로 알려져 있다.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발레로는 ‘라 실피드’를 들 수 있다.
라 실피드는 이시기에 가장 뛰어난 발레리나인 마리 탈리오니를 위하여 그녀의 아버지 필리포 탈리오니가 안무한 것으로 스코틀랜드 사람과 사랑에 빠진 숲속의 요정을 묘사한 것이다.
이런 요정 같은 동작은 1841년 쥘 페로가 안무한 <지젤 Giselle>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듯이 발끝으로 부유하는 요정들의 춤은 몇 년 전 마리 탈리오니가 공연해 낭만주의 발레를 열었던 <라 실피드>를 제치고 현재까지 낭만 발레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어스름한 흰 달빛, 음울한 숲속. 그 아래서 창백하고 가녀린 요정들이 나풀거리는 흰 옷을 입고 떠다니듯이 춤추는 모습이 바로 낭만발레이다. 1830년대에 시작된 낭만발레는 예술에서 현실적인 것들을
오늘날 벽 쪽의 사실적인 무대는 전통적인 발레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무대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새로운 발레를 위해 발레의 분위기나 무대를 간단한 것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조각이나 화려한 색깔을 가진 직물을 주름잡아 소품으로 이용했다. 이 경우 그들은 무대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발레의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다.
점점 더 무대 디자이너들은 현대적인 조명 기술을 이용해 발레 장면이나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색깔이나 밝기를 다양하게 해서 점차적으로 혹은 갑자기 터져나오는 듯한 효과들을 만들었다. 다른 조명 기술은 무대 뒷면에 영화나 슬라이드를 보여주는 것인데 심지어는 춤추고 있는 무용수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로버트 조프리의 발레 아스타르테는 이 기술을 사용한 작품으로 독보적인 표본라고 할 수 있다. 아스타르테에서 관객들은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만큼 무용수들의 춤추는 것을 무대 벽의 영화로 클로우즈 업해서 볼 수 있다.
5) 의상
초창기 발레에서 무용수들은 무겁고 장식이 많은 의상을 입었다. 발레 치마는 무대에 끌릴 정도로 길었지만 무용수들은 지금보다 기술이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피가 큰 의상 때문에 곤란을 입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기술이 늘면서 그들은 스텝을 감추고 율동에 방해가 되는 의상을 원하지 않기 시작했다.
1700년대부터 발레 의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위대한 무용수인 마리 까마르고는 그녀의 의상을 발목 위까지 올려서 짧게 했고 무용화에서 굽을 없애버렸다. 발레 테크닉이 볼만한 것으로 발전하면서 치마는 점점 더 짧아졌다. 1800년대에 등장한 마리 탈리오니는 발레 의상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줬다. 오늘날 기본적인 무릎 길이 발레 스커트 의상은 이때부터 확립됐다.
가장 좋은 발레 의상은 가볍고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몸의 선을 보여주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절대 방해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내용을 주제로 한 발레에서도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발레 무용수들은 천을 풀로 겹겹이 붙여 만든 특별한 신발인 토우슈즈를 신는다. 이 겹겹이 쌓은 것은 발끝에 힘을 줘 무용수들을 지탱시킨다.
3. 발레의 발전사
1) 궁정발레
발레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탄생하였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1489년 이탈리아의 토르토나에서 베르곤치오 데 보타라는 부유한 예능애호가(藝能愛好家)가 밀라노공(公) 갈레아초 스포르차와 그의 신부(新婦) 이사벨라를 위한 결혼 축하연에서 상연된 《이아론과 금의 양모(羊毛)》라는 발레였다. 당시의 무언극과 가면극의 춤을 구성한 당스 피귀레라고 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무용수가 모여서 추는 춤, 발리 또는 발레티라는 일종의 사교 댄스, 극적인 성격을 갖춘 무대무용인 브란디, 모리스카라는 즉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대무용 등 4가지 춤이 혼합하여 발레가 되었다고 한다.
피렌체에서 출생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의 앙리 2세의 왕비가 되어 프랑스 궁정에 조국 이탈리아의 궁정발레를 소개하였고, 이것이 전유럽으로 퍼져 나간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 1581년 파리의 앙리 3세의 궁정에서 상연된 《왕비의 발레 코미크》가 기록상으로는 최초의 발레로서 중요시된다. 이 발레의 안무는 이탈리아 출신인 베르조조소인데 큰 성과를 거두자 발레 대본에 관한 책도 최초로 출판하게 되었다. 그가 정의를 내린 바에 따르면, 발레란 여러 악기의 합주 아래 몇 사람이 추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용이라 하였고,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발레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베르조조소가 안무한 《발레 코미크》의 공연 때에 무용 음악 가요 낭송 등의 종합 무대에 일관된 줄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발레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예술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약 400년 전인 17세기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현재의 파리오페라발레의 초기 시절인 \'왕실음악무용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기록에 따르면 직접 무용수로 등장할 만큼 루이 14세의 발레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당시의 프랑스 발레는 가면을 쓰고 춤추었다고 해서 발레를 \'마스크 Masque\'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2) 낭만주의 발레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발레는 현대화되어 오늘날과 유사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는데 예를 들면 발끝으로 서는 뽀앵뜨 기법과 로맨틱 튀튀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외형적인 사실보다 중요한 점은 그 시대의 예술사조인 낭만주의가 유입되었고 이를 뒷받침 할 발레리나의 배출창고인 블라시스 무용아카데미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무가이자 교사였던 카를로 블라시스는 최초의 고전발레 사전을 저술 하였다. 이것은 이전의 고전무용에서 알려진 모든 기본지침을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후에 러시아 황실학교와 전 세계의 발레 교습의 전범이 되게 된다. 최초의 낭만발레는 필리포 탈리오니가 안무하고 그의 딸 마리 탈리오니가 주역을 한 <라 실피드>로 알려져 있다.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발레로는 ‘라 실피드’를 들 수 있다.
라 실피드는 이시기에 가장 뛰어난 발레리나인 마리 탈리오니를 위하여 그녀의 아버지 필리포 탈리오니가 안무한 것으로 스코틀랜드 사람과 사랑에 빠진 숲속의 요정을 묘사한 것이다.
이런 요정 같은 동작은 1841년 쥘 페로가 안무한 <지젤 Giselle>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듯이 발끝으로 부유하는 요정들의 춤은 몇 년 전 마리 탈리오니가 공연해 낭만주의 발레를 열었던 <라 실피드>를 제치고 현재까지 낭만 발레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어스름한 흰 달빛, 음울한 숲속. 그 아래서 창백하고 가녀린 요정들이 나풀거리는 흰 옷을 입고 떠다니듯이 춤추는 모습이 바로 낭만발레이다. 1830년대에 시작된 낭만발레는 예술에서 현실적인 것들을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