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패션브랜드 빈폴(Bean pole)
1. segmentation
1) Bean pole
2) Bean pole Sports
3) Bean pole Ladies
4) Bean pole Golf
5) Bean pole Homme
2. Targeting
1) Bean pole Sports
2) Bean pole Ladies
3) Bean pole Golf
4) Bean pole Homme
Ⅱ. 패션브랜드 리바이스(Levi's)
1. 리바이스 브랜드 소개
2. 리바이스 인터내셔널
3. 리바이스 코리아
4. 리바이스 브랜드의 이미지와 비젼
5. 브랜드 디자이너의 특징
6. 기업연혁
Ⅲ. 패션브랜드 나이키(Nike)
Ⅳ. 패션브랜드 샤넬(Chanel)
Ⅴ. 패션브랜드 루이비통(루이뷔통, Louis Vuitton)
Ⅵ. 패션브랜드 아디다스(Adidas)
1. Introduction - describe brief contents of advertisement
2. Strong point of advertisement
1) Targeting 이 잘 되어있다
2) 스타를 내세우고 있다
3) 경쟁사 광고와의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Ⅶ. 패션브랜드 베네통(Benetton)
1. 다양한 색채, 충격광고로 성장한 세계적인 기업
2. 베네통 업체가 있기까지
3. 베네통 경영방식, 하버드나 스탠포드 대학의 경영학 과목에서 교재로 채택
Ⅷ. 패션브랜드 구찌(Gucci)
1. 화려함, 부, 그리고 섹스어필
2. 50~60년대 구찌, 절정의 인기
3. 구찌가의 전쟁
4. 데 졸레-톰 포드, 환상 콤비
5. 구찌제국의 르네상스
참고문헌
1. segmentation
1) Bean pole
2) Bean pole Sports
3) Bean pole Ladies
4) Bean pole Golf
5) Bean pole Homme
2. Targeting
1) Bean pole Sports
2) Bean pole Ladies
3) Bean pole Golf
4) Bean pole Homme
Ⅱ. 패션브랜드 리바이스(Levi's)
1. 리바이스 브랜드 소개
2. 리바이스 인터내셔널
3. 리바이스 코리아
4. 리바이스 브랜드의 이미지와 비젼
5. 브랜드 디자이너의 특징
6. 기업연혁
Ⅲ. 패션브랜드 나이키(Nike)
Ⅳ. 패션브랜드 샤넬(Chanel)
Ⅴ. 패션브랜드 루이비통(루이뷔통, Louis Vuitton)
Ⅵ. 패션브랜드 아디다스(Adidas)
1. Introduction - describe brief contents of advertisement
2. Strong point of advertisement
1) Targeting 이 잘 되어있다
2) 스타를 내세우고 있다
3) 경쟁사 광고와의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Ⅶ. 패션브랜드 베네통(Benetton)
1. 다양한 색채, 충격광고로 성장한 세계적인 기업
2. 베네통 업체가 있기까지
3. 베네통 경영방식, 하버드나 스탠포드 대학의 경영학 과목에서 교재로 채택
Ⅷ. 패션브랜드 구찌(Gucci)
1. 화려함, 부, 그리고 섹스어필
2. 50~60년대 구찌, 절정의 인기
3. 구찌가의 전쟁
4. 데 졸레-톰 포드, 환상 콤비
5. 구찌제국의 르네상스
참고문헌
본문내용
올랐다.
10월 인베스트콥은 48.2%의 주식을 처분했고 구찌는 뉴욕과 암스테르담 증시에서 공모를 통해 성공적으로 상장됐다. 인베스트콥이 이듬해 5월 나머지 지분 51.8%를 매각하면서 구찌는 명실 공히 주식공모 회사로 변신했다. 이것은 세계 유수 패션회사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구찌는 데 졸레 체제로 출범한 뒤로도 가죽 세공 장인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이어 나갔다. 구찌는 그들에게 양보다 질을 추구하도록 했다. 데 졸레 회장은 틈만 나면 세계 최고 품질의 구찌백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장인정신을 칭송해 왔다. 디자이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의 데 졸레 회장은 특히 기업합병(M&A) 전문가로, 구찌 그룹의 이름으로 그동안 인수한 브랜드로는 이브 생 로랑을 비롯해 부셰론보테가 베네타알렉산더 맥퀸발렌시아 등 10여개에 달한다.
돈 멜로 후임인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1962~)는 미국 텍사스주 산타페 출신으로 지난 10년 동안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한 디자이너로 꼽힐 만하다. 그는 데 졸레 회장과 함께 구찌제국 재건의 일등공신이다. 한때 광고모델(배우)로 활약한 그는 뉴욕 파슨즈 디자인스쿨에서 인테리어 건축을 전공하고 한동안 캐시 하드위크와 페리 엘리스에 몸담기도 했다. 1990년 구찌에 합류한 뒤 초고속으로 수석디자이너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또 최근에는 구찌 그룹에 합병된 이브 생 로랑의 수석디자이너도 겸하고 있다. 포드는 평소 자신의 성공이 재능보다 그의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루 수면이 2~3시간뿐이고 그의 침대 곁에는 항상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을 정도로 아이디어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지난해 ‘브리티시 보그’지와의 인터뷰에서 구찌와 이브 생 로랑을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구찌는 소피아 로렌, 이브 생 로랑은 카트린 드뇌브다. 그들은 모두 섹시하다.…그러나 구찌가 이브 생 로랑에 비해 좀더 확실하다. 예컨대 이브 생 로랑 여인은 섹스하기 전에 남자친구를 묶고 뜨거운 왁스를 몸 위에 떨어뜨린다. 그러나 구찌 여인은 곧바로 섹스에 돌입한다.”
구찌는 특히 일반인의 가장 큰 관심사인 섹스라는 주제를 패션에 도입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팝 가수 마돈나는 특히 톰 포드 스타일의 고정 팬으로 꼽힌다.
5. 구찌제국의 르네상스
데 졸레톰 포드 콤비가 구찌 가문의 분쟁과 경영 실패로 낭떠러지 끝에 섰던 구찌 브랜드를 부흥시킨 것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그동안 세계 패션업계의 체질변화를 주도해 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패션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초창기 상황을 데 졸레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이 긴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사람들의 관심은 어떤 패션쇼가 더 낫고, 어떤 것이 명사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다. 우리가 처음 구찌공화국을 이끌게 됐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구찌로서는 또 다른 위기도 있었다. 크리스찬 디오르지방시셀린 등 세계 최고급 브랜드 10여개를 갖고 있고, 모에 샹동헤네시 등 고급 주류회사와 파리의 르봉마르셰백화점을 거느린 세계 최대 패션그룹 루이 뷔통이 구찌를 탐냈던 것이다. 구찌와 루이 뷔통의 피말리는 전쟁이 시작됐다.
루이 뷔통의 베르나르 아노 회장은 무주공산 상태인 구찌 지분을 비공개로 34.4%까지 확보하면서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데 졸레는 우리사주 2,000만주를 발행하면서 물타기를 시도해 이를 막았고 “이탈리아 명품 구찌가 프랑스 아노 손에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루이 뷔통이 우리사주 발행 무효 확인소송을 내자 데 졸레는 프랑스의 유통재벌 피노 프렝탕 르두트(PPR) 그룹에 도움을 청했다. 구찌는 신주 3,700만주를 발행해 PPR로부터 30억달러의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PPR는 이브 생 로랑 등을 거느린 미국의 패션기업 사노피사를 사들여 이를 구찌에 되팔았다. 결국 2년 동안 끌어오던 싸움은 지난해 루이 뷔통이 구찌 지분 858만주를 PPR그룹에 넘기면서 종결됐다.
구찌는 그동안의 세계경제 침체와 911 테러 이후에도 일본을 비롯한 독일중국러시아 등 잠재시장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아시아의 위기’가 구찌 등 패션업계에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왔다. 해외여행이 줄어들고 과소비를 자제하면서 세계 각국의 국제공항 면세점들은 매출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경기 침체가 일본 럭셔리(Luxury)시장의 매출에는 아무런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 경제상황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구찌와 같은 선두업체들은 일본에 더 많은 숍을 열 기회를 만나게 됐고, 이에 따라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구찌는 지난해 일본에 22개의 새로운 점포를 신설해 모두 75개로 늘렸다. 유럽에서의 구찌 고객들의 평균연령이 35~55세인 반면 일본에서는 24~35세의 젊은층이 주 고객이다. 일본시장에서의 매출은 4억600만달러를 기록해 전체 매출의 18%를 기록할 정도로 높다.
데 졸레 회장은 구찌그룹코리아의 출범에 맞추어 지난 2월말 한국을 방문했다. 데 졸레 회장은 “지난해 한국시장이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큰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 매출에서도 전년대비 44% 성장률을 기록해 일본과 비슷한 성장을 기록했다. 데 졸레는 그동안 세계 각국의 구찌 매장을 직접 순회하면서 경쟁력이 없는 숍은 과감히 문을 닫는 터미네이터 투어를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 김인국, 빈폴과 폴로의 브랜드 자산 연구, 금오공과대학교, 2006
▷ 김문영, 리바이스 코리아의 OEM사업 사례연구, 고려대학교, 2001
▷ 김지영, 루이비통 디자인 혁신의 원동력에관한 연구, 복식문화학회, 2009
▷ 박숙현 외 1명, 모던 시대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샤넬 스타일 특성 비교, 한국생활과학회, 2004
▷ 장수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지닌 인력 : 나이키스포츠코리아, 한국인사관리협회, 2004
▷ 최미현, 스포츠 스폰서십이 스포츠 의류 브랜드 자산과 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 경희대학교, 2008
10월 인베스트콥은 48.2%의 주식을 처분했고 구찌는 뉴욕과 암스테르담 증시에서 공모를 통해 성공적으로 상장됐다. 인베스트콥이 이듬해 5월 나머지 지분 51.8%를 매각하면서 구찌는 명실 공히 주식공모 회사로 변신했다. 이것은 세계 유수 패션회사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구찌는 데 졸레 체제로 출범한 뒤로도 가죽 세공 장인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이어 나갔다. 구찌는 그들에게 양보다 질을 추구하도록 했다. 데 졸레 회장은 틈만 나면 세계 최고 품질의 구찌백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장인정신을 칭송해 왔다. 디자이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의 데 졸레 회장은 특히 기업합병(M&A) 전문가로, 구찌 그룹의 이름으로 그동안 인수한 브랜드로는 이브 생 로랑을 비롯해 부셰론보테가 베네타알렉산더 맥퀸발렌시아 등 10여개에 달한다.
돈 멜로 후임인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1962~)는 미국 텍사스주 산타페 출신으로 지난 10년 동안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한 디자이너로 꼽힐 만하다. 그는 데 졸레 회장과 함께 구찌제국 재건의 일등공신이다. 한때 광고모델(배우)로 활약한 그는 뉴욕 파슨즈 디자인스쿨에서 인테리어 건축을 전공하고 한동안 캐시 하드위크와 페리 엘리스에 몸담기도 했다. 1990년 구찌에 합류한 뒤 초고속으로 수석디자이너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또 최근에는 구찌 그룹에 합병된 이브 생 로랑의 수석디자이너도 겸하고 있다. 포드는 평소 자신의 성공이 재능보다 그의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루 수면이 2~3시간뿐이고 그의 침대 곁에는 항상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을 정도로 아이디어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지난해 ‘브리티시 보그’지와의 인터뷰에서 구찌와 이브 생 로랑을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구찌는 소피아 로렌, 이브 생 로랑은 카트린 드뇌브다. 그들은 모두 섹시하다.…그러나 구찌가 이브 생 로랑에 비해 좀더 확실하다. 예컨대 이브 생 로랑 여인은 섹스하기 전에 남자친구를 묶고 뜨거운 왁스를 몸 위에 떨어뜨린다. 그러나 구찌 여인은 곧바로 섹스에 돌입한다.”
구찌는 특히 일반인의 가장 큰 관심사인 섹스라는 주제를 패션에 도입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팝 가수 마돈나는 특히 톰 포드 스타일의 고정 팬으로 꼽힌다.
5. 구찌제국의 르네상스
데 졸레톰 포드 콤비가 구찌 가문의 분쟁과 경영 실패로 낭떠러지 끝에 섰던 구찌 브랜드를 부흥시킨 것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그동안 세계 패션업계의 체질변화를 주도해 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패션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초창기 상황을 데 졸레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이 긴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사람들의 관심은 어떤 패션쇼가 더 낫고, 어떤 것이 명사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다. 우리가 처음 구찌공화국을 이끌게 됐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구찌로서는 또 다른 위기도 있었다. 크리스찬 디오르지방시셀린 등 세계 최고급 브랜드 10여개를 갖고 있고, 모에 샹동헤네시 등 고급 주류회사와 파리의 르봉마르셰백화점을 거느린 세계 최대 패션그룹 루이 뷔통이 구찌를 탐냈던 것이다. 구찌와 루이 뷔통의 피말리는 전쟁이 시작됐다.
루이 뷔통의 베르나르 아노 회장은 무주공산 상태인 구찌 지분을 비공개로 34.4%까지 확보하면서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데 졸레는 우리사주 2,000만주를 발행하면서 물타기를 시도해 이를 막았고 “이탈리아 명품 구찌가 프랑스 아노 손에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루이 뷔통이 우리사주 발행 무효 확인소송을 내자 데 졸레는 프랑스의 유통재벌 피노 프렝탕 르두트(PPR) 그룹에 도움을 청했다. 구찌는 신주 3,700만주를 발행해 PPR로부터 30억달러의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PPR는 이브 생 로랑 등을 거느린 미국의 패션기업 사노피사를 사들여 이를 구찌에 되팔았다. 결국 2년 동안 끌어오던 싸움은 지난해 루이 뷔통이 구찌 지분 858만주를 PPR그룹에 넘기면서 종결됐다.
구찌는 그동안의 세계경제 침체와 911 테러 이후에도 일본을 비롯한 독일중국러시아 등 잠재시장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아시아의 위기’가 구찌 등 패션업계에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왔다. 해외여행이 줄어들고 과소비를 자제하면서 세계 각국의 국제공항 면세점들은 매출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경기 침체가 일본 럭셔리(Luxury)시장의 매출에는 아무런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 경제상황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구찌와 같은 선두업체들은 일본에 더 많은 숍을 열 기회를 만나게 됐고, 이에 따라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구찌는 지난해 일본에 22개의 새로운 점포를 신설해 모두 75개로 늘렸다. 유럽에서의 구찌 고객들의 평균연령이 35~55세인 반면 일본에서는 24~35세의 젊은층이 주 고객이다. 일본시장에서의 매출은 4억600만달러를 기록해 전체 매출의 18%를 기록할 정도로 높다.
데 졸레 회장은 구찌그룹코리아의 출범에 맞추어 지난 2월말 한국을 방문했다. 데 졸레 회장은 “지난해 한국시장이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큰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 매출에서도 전년대비 44% 성장률을 기록해 일본과 비슷한 성장을 기록했다. 데 졸레는 그동안 세계 각국의 구찌 매장을 직접 순회하면서 경쟁력이 없는 숍은 과감히 문을 닫는 터미네이터 투어를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 김인국, 빈폴과 폴로의 브랜드 자산 연구, 금오공과대학교, 2006
▷ 김문영, 리바이스 코리아의 OEM사업 사례연구, 고려대학교, 2001
▷ 김지영, 루이비통 디자인 혁신의 원동력에관한 연구, 복식문화학회, 2009
▷ 박숙현 외 1명, 모던 시대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샤넬 스타일 특성 비교, 한국생활과학회, 2004
▷ 장수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지닌 인력 : 나이키스포츠코리아, 한국인사관리협회, 2004
▷ 최미현, 스포츠 스폰서십이 스포츠 의류 브랜드 자산과 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 경희대학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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