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약력...........................................................................................................1~4
Ⅱ.평가............................................................................................................4~5
Ⅲ.비판............................................................................................................5~7
Ⅱ.평가............................................................................................................4~5
Ⅲ.비판............................................................................................................5~7
본문내용
그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그의 햇빛정책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고 있다.
김대중은 2006년 9월 12일의 대담에서 햇볕정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의 핵실험에도 큰 동요가 없을 수 있었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햇볕정책의 평가에 대해서는 평가자가 처한 입장과 생각에 따라 해석이 크게 갈라지는 상황이며, 햇볕정책 비판론 자체가 의미없는 모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햇볕정책을 실패작이라고 비난하는 한나라당 스스로도 2007년 7월 현재 햇볕정책을 승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어느 일방이 다른쪽을 벗겨먹겠다는 의미의 용어로 인해 그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으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전정부보다 심한 무력충돌(두차례에 걸친 서해교전)이 벌어지는 등 햇볕정책은 실효성 없는 정치적 포장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E. 남북 정상 회담
남북 정상 회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비판이 존재한다. 먼저 불법적인 금전거래가 비밀리에 이루어진 점을 들어 정치적 거래의 일환이었다는 점과 통일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함으로써 민족자주성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F. 외환위기 대처
김대중 정부가 외환 위기에 대처한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외환위기의 극복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이라는 평가도 있으며, 하버드대의 마틴 펠스틴은 ‘한국의 외환위기는 금융위기의 성격을 띄고 있을 뿐,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온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대기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높은 성장률을 만들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 김대중과 비교할 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 등의 구미 자본에 부정적인 입장을 띠고 있어, 김대중과는 외환위기 대응 정책과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제구조나 규모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육성과 카드에 대한 장려는 당시 경제를 진작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진행을 효과적으로 조정하지 못하여 후일 카드 때문에 개인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다. 카드대란은 카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개인 당사자에게 1차적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이기는 하나, 발급능력이 없는 개인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던 당시의 상황을 조절하지 못한 것은 실책으로 평가된다.
G. 독재정권과의 타협
자신에 대한 조중동 및 군사정권의 악의적인 색깔론 공세로 인해 이를 의식해 독재잔재의 청산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종필과의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한 후보단일화 뒤 경북 구미시 유세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종필씨와 손을 잡고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하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웠고, 대통령 취임 이 후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고락을 함께한 당료들 대신에 구 여권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중권을 기용하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면을 단행해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역사청산에 소홀했다"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김대중은 2006년 9월 12일의 대담에서 햇볕정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의 핵실험에도 큰 동요가 없을 수 있었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햇볕정책의 평가에 대해서는 평가자가 처한 입장과 생각에 따라 해석이 크게 갈라지는 상황이며, 햇볕정책 비판론 자체가 의미없는 모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햇볕정책을 실패작이라고 비난하는 한나라당 스스로도 2007년 7월 현재 햇볕정책을 승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어느 일방이 다른쪽을 벗겨먹겠다는 의미의 용어로 인해 그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으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전정부보다 심한 무력충돌(두차례에 걸친 서해교전)이 벌어지는 등 햇볕정책은 실효성 없는 정치적 포장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E. 남북 정상 회담
남북 정상 회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비판이 존재한다. 먼저 불법적인 금전거래가 비밀리에 이루어진 점을 들어 정치적 거래의 일환이었다는 점과 통일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함으로써 민족자주성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F. 외환위기 대처
김대중 정부가 외환 위기에 대처한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외환위기의 극복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이라는 평가도 있으며, 하버드대의 마틴 펠스틴은 ‘한국의 외환위기는 금융위기의 성격을 띄고 있을 뿐,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온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대기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높은 성장률을 만들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 김대중과 비교할 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 등의 구미 자본에 부정적인 입장을 띠고 있어, 김대중과는 외환위기 대응 정책과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제구조나 규모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육성과 카드에 대한 장려는 당시 경제를 진작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진행을 효과적으로 조정하지 못하여 후일 카드 때문에 개인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다. 카드대란은 카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개인 당사자에게 1차적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이기는 하나, 발급능력이 없는 개인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던 당시의 상황을 조절하지 못한 것은 실책으로 평가된다.
G. 독재정권과의 타협
자신에 대한 조중동 및 군사정권의 악의적인 색깔론 공세로 인해 이를 의식해 독재잔재의 청산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종필과의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한 후보단일화 뒤 경북 구미시 유세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종필씨와 손을 잡고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하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웠고, 대통령 취임 이 후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고락을 함께한 당료들 대신에 구 여권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중권을 기용하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면을 단행해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역사청산에 소홀했다"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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