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 한글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비난이었다. 그런데 문자의 독점이란 현상이 어떻게 확인 가능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당대 출판인쇄 미디어를 통해서였다. 한글운동은 균질화된 활자어를 매개로 한 출판인쇄 미디어의 전면적 획들을 지향했다. 이러한 인식은 언문철자법개정에 있어서나, <한글마춤법통일안> 제정시 형태소 표기 중심의 표의화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현실화된다. 소리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는 문자의 사명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체였다. 이들이 철자법 제정에서 표음문자인 한글의 표의화를 주장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쇄에 있어서 문자의 고정화에 있었다. 총독부의 1930년 개정 언문철자법 공포 이후 이들의 펼친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바로 모든 출판인쇄 매체의 신철자 채용이었으며, 이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마춤법통일안> 제정 이후로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 운동의 주지를 정당화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근거는 바로 자신들의 의사가 대폭적으로 관철된 총독부의 개정 언문철자법에 의거한 초중등학교 교과서의 개찬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언문철자법을 가리키는 신철자법과 <한글마춤법통일안>은 운동의 주체들이나 반대자들에게도 그 외연과 내포가 엇비슷한, 넘나드는 것이 가능한 명명이었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한글운동의 주체들이 문자개혁을 비롯한 언어정책의 가장 강력한 주체를 국가권력으로 상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식민지배하 이중언어의 상황이 배태한 조선어의 방언화는 ‘식민’지배와 ‘식민’권력의 문제였지만, 문자의 통일은 ‘권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권력이란 학교·교회·신문사와 같이 중앙집권적 통제력과 전국적 조직망을 지닌, 그 자체가 일종의 미디어적 기능을 하는 근대적 시스템이었다. 그것의 최고의 형태는 국가였을 터이다. 지리적·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균질적인 교환매체로서의 언어의 유통과 확산은 이것들을 통해서만이 효과적 일 수 있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 이룬 성취는 근대적 언어개혁의 메커니즘을 간파했다는 데, 즉 메커니즘의 도구적 합리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데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한글운동이 부딪힌 벽은 도구적 합리성의 추구가 수행주체의 동일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한 민족어라고 반듯이 한 국가어가 아니다. 한 국가어가 못되는 그 말은 물론 표준어제정에 대하야도 국가적 지지를 받기 극히 곤난할 것이다.”라는 홍기문의 말은 조선어의 지위와 나아가 국민어로 등록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근대언어의 운명을 통감한 것이다.
이 논문은 조선어학회가 한글운동사를 서술하면서 이질적인 시간과 주체를 은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한글운동사 서술이 이를 은폐하여 그 성격을 작위적으로 민족주의내지는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평가를 고수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기존의 지배와 피지배, 지배와 저항의 단순하고 도식적인 평가를 탈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 한글운동을 주도했던 조선어학회의 시각과 지향을 왜곡하지 않고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조선어학회가 전개했던 한글운동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확인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필자는 1930년대 조선어학회가 전개해 나간 한글운동을 ‘어문의 근대화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조선어학회가 언어를 근대의 균질적인 교환매체의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전국적이고 전일적으로 보급·유통하기 위해 근대국민국가, 학교, 교회, 신문사와 같은 근대적 시스템을 요구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교과서, 신문·잡지, 성경과 같은 인쇄미디어를 획득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한글운동을 전개시켜 나갔으며, 학교, 신문사, 교회 등의 근대적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1. 필자는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 언어의 표준화 운동이었으며,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과학·전문성” 담론, “청년/노년, 미래/과거, 개혁/수구”의 대립을 구조화한 논리, 그리고 “표준과 배제”의 위계화 논리와 같은 근대성 담론을 양산하였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은 “단순히 새로운 철자로 책을 인쇄한다는 물리적 차원을 넘어선 문제, 즉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기준의 문자해득능력(literacy) 나아가 글쓰기 능력을 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에크리튀르를 둘러싼 투쟁”을 수행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을 ‘어문의 근대화운동’이라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지배/저항의 단순하고 도식적인 평가에서 벗어는 것은 물론, 어문의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였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문의 근대성이라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평가 역시도 조선어학회가 에크리튀르를 둘러싼 투쟁의 목표가 무엇이었는가를 묻는다면 완전히 중립적인 영역에만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조선어학회가 언어를 근대의 균질적인 교환매체의 하나로 인식했다는 적극적인 증거가 불충분하다. 이 경우 주장을 선언하고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을 주장에 맞춰 해석해 나갔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개정된 철자를 보급하고 유통시키기 위해서 당시의 주류 인쇄매체였던 교과서나 신문, 성경의 철자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움직임만을 포착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서 그친다면, 조선어학회의 의도를 완전히 해석해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이를 교묘하게 “조선어의 방언화가 ‘식민’지배와 ‘식민’권력의 문제였지만, 문자의 통일은 ‘권력’의 문제”라고 분리시켜 판단하고자 하지만, 문자의 통일을 식민권력과 분리된 권력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2. 조선어학회가 총독부의 개정언문철자법(1930.2)을 계기로 식민권력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성공적으로 관철시켰다는 주장의 근거가 미흡하다. 필자가 근고로 삼고 있는 것은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화 관련자들이 총독부의 언문철자법 개정에 다수 참여하였고, 그들이 주장해온 철자법 이론이 거의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의 논리 전개는 1920년대부터 존재해왔던 교원들과 학생들의 조선어에 대한 자각과 의식만을 언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글운동의 주체들이 문자개혁을 비롯한 언어정책의 가장 강력한 주체를 국가권력으로 상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식민지배하 이중언어의 상황이 배태한 조선어의 방언화는 ‘식민’지배와 ‘식민’권력의 문제였지만, 문자의 통일은 ‘권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권력이란 학교·교회·신문사와 같이 중앙집권적 통제력과 전국적 조직망을 지닌, 그 자체가 일종의 미디어적 기능을 하는 근대적 시스템이었다. 그것의 최고의 형태는 국가였을 터이다. 지리적·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균질적인 교환매체로서의 언어의 유통과 확산은 이것들을 통해서만이 효과적 일 수 있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 이룬 성취는 근대적 언어개혁의 메커니즘을 간파했다는 데, 즉 메커니즘의 도구적 합리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데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한글운동이 부딪힌 벽은 도구적 합리성의 추구가 수행주체의 동일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한 민족어라고 반듯이 한 국가어가 아니다. 한 국가어가 못되는 그 말은 물론 표준어제정에 대하야도 국가적 지지를 받기 극히 곤난할 것이다.”라는 홍기문의 말은 조선어의 지위와 나아가 국민어로 등록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근대언어의 운명을 통감한 것이다.
이 논문은 조선어학회가 한글운동사를 서술하면서 이질적인 시간과 주체를 은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한글운동사 서술이 이를 은폐하여 그 성격을 작위적으로 민족주의내지는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평가를 고수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기존의 지배와 피지배, 지배와 저항의 단순하고 도식적인 평가를 탈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 한글운동을 주도했던 조선어학회의 시각과 지향을 왜곡하지 않고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조선어학회가 전개했던 한글운동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확인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필자는 1930년대 조선어학회가 전개해 나간 한글운동을 ‘어문의 근대화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조선어학회가 언어를 근대의 균질적인 교환매체의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전국적이고 전일적으로 보급·유통하기 위해 근대국민국가, 학교, 교회, 신문사와 같은 근대적 시스템을 요구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교과서, 신문·잡지, 성경과 같은 인쇄미디어를 획득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한글운동을 전개시켜 나갔으며, 학교, 신문사, 교회 등의 근대적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1. 필자는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 언어의 표준화 운동이었으며,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과학·전문성” 담론, “청년/노년, 미래/과거, 개혁/수구”의 대립을 구조화한 논리, 그리고 “표준과 배제”의 위계화 논리와 같은 근대성 담론을 양산하였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은 “단순히 새로운 철자로 책을 인쇄한다는 물리적 차원을 넘어선 문제, 즉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기준의 문자해득능력(literacy) 나아가 글쓰기 능력을 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에크리튀르를 둘러싼 투쟁”을 수행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을 ‘어문의 근대화운동’이라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지배/저항의 단순하고 도식적인 평가에서 벗어는 것은 물론, 어문의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였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문의 근대성이라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평가 역시도 조선어학회가 에크리튀르를 둘러싼 투쟁의 목표가 무엇이었는가를 묻는다면 완전히 중립적인 영역에만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조선어학회가 언어를 근대의 균질적인 교환매체의 하나로 인식했다는 적극적인 증거가 불충분하다. 이 경우 주장을 선언하고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을 주장에 맞춰 해석해 나갔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개정된 철자를 보급하고 유통시키기 위해서 당시의 주류 인쇄매체였던 교과서나 신문, 성경의 철자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움직임만을 포착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서 그친다면, 조선어학회의 의도를 완전히 해석해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이를 교묘하게 “조선어의 방언화가 ‘식민’지배와 ‘식민’권력의 문제였지만, 문자의 통일은 ‘권력’의 문제”라고 분리시켜 판단하고자 하지만, 문자의 통일을 식민권력과 분리된 권력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2. 조선어학회가 총독부의 개정언문철자법(1930.2)을 계기로 식민권력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성공적으로 관철시켰다는 주장의 근거가 미흡하다. 필자가 근고로 삼고 있는 것은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화 관련자들이 총독부의 언문철자법 개정에 다수 참여하였고, 그들이 주장해온 철자법 이론이 거의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의 논리 전개는 1920년대부터 존재해왔던 교원들과 학생들의 조선어에 대한 자각과 의식만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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