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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29년 미국에서 비롯된 경제공황이 독일에까지 파급됨에 따라 실업자는 격증하고, 국고는 거액의 적자로 허덕이게 되어 뮐러 내각은 사회정책비의 삭감과 국민으로부터의 증세로 위기를 넘기려고 하였으나 좌우 양파의 반대로 실패하고, 1930년 3월에 무너지고 말았다.
1930-1932년 제국의회는 6백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치러진 세 번의 제국의회 의원 선거에서 정치적 중도 세력은 극우세력과 연합하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유권자도 증가하여 이제 공화국은 기독교중앙당과 사민당의 지지만을 받을 뿐이었다. 1930년 초 와해된 사민당과 독일국민당은 이미 그 전부터 쇠퇴의 길에 들어서 있었고 에베르트의 뒤를 이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브뤼닝(Heinrich Bruning)은 더 이상 확고한 연정과 의회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를 세울 수 없었다. 브뤼닝 정부는 제국의회의 관용과 제국대통령의 신임에만 의존하였다.
이러한 변형된 지지형태는 제국 헌법 48조항이 남용되면서부터였다. 이는 의회주의 공화국에서 대통령 중심 공화국으로 바뀌는 위험한 변화를 초래, 제국대통령은 \"또 다른 황제\"가 되었다. 1930년 초 의회는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브뤼닝 수상의 결탁을 인용하여 대통령중심 내각을 가능케 했다.
의회에는 지배적인 절대다수당이 존재하지 않았고 내각은 헌법상 매우 강력한 제국대통령의 지지에 의지했다. 그로 인해 중간파나 온건보수파를 지지하여 오던 선거인들이 대거 파시즘적인 나치스당의 지지파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극단적인 반민주주의적인 경향과 혁명적인 선동을 곁들인 반유대인주의를 결합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1930년 이후 힘을 얻게 되어 1932년 가장 강력한 정파로 성장하였다. 1932년 4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파인 힌덴부르크가 재선되기는 하였지만, 히틀러도 힌덴부르크에 육박한 지지표를 얻게 되고, 또한 의회에서도 나치스와 공산당이 합친 수가 과반수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우파가 나치스를 중심으로 단결한 반면, 좌파의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거기다 경제공황이 심각하여져서 국민의 불만은 날로 높아져 갔다. 군부 ·관리층 ·자본가 ·농산층 및 중산층까지도 나치스 지지로 기울어지게 되어 1933년 1월 힌덴부르크 대통령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기에 이르러 나치스 정권이 성립하게 됨에 따라 바이마르 공화국은 14년 만에 붕괴하였다. 이민호, 1996년, 독일사, 대한교과서, 237~255p
11. 바이마르공화국 정당체제의 연속성
1) 5개 유형의 정당체제
입헌군주제에서 의회민주주의로 전환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당들의 기본구조는 주목할 만큼의 연속성을 보였다. 정치적 변혁으로 인해서 일련의 새로운 창당작업이 있었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그 이전의정치흐름들이 본질적인 변화없이 그대로 존속하였다.
키이저제국에서 독일보수당(die deutschkonservative Partei)과 독일제국당(die deusche Reichsprtei)으로 양분되었던 보수주의세력은 1918년 11월 24일에 독일민족국민당(die Deutschnationale Volkspartei)를 창당하였다.
군주제로의 복귀를 정강정책으로 하던 독일민족국민당에는 기독교사회적 (christlichsozial)세력, 독일국수주의적(deutschvolkisch)세력, 반유대주의적(antisemitistisch)세력 등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했다. 한편 단일한 자유주의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협상이 실패한 후인 1918년 12월 5일에는 자유주의우파중에서 슈트레제만(Stresemann)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독일국민당(die Deutsche Volkspartei)을 세웠다. 독일국민당의 정강정책은 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에 대해 유보적이었다.
자유주의 좌파세력은 기존의 자유주의우파세력의 일부와 함께 1918년 11월20일에 독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정치적 카톨릭주의 세력에게는 새로운 창당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의 카톨릭 중앙당이, 잠시 기독교국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존속하였다. 하지만 카톨릭중앙당은 같은 카톨릭세력에 기반을 두면서 연방주의적 성향을 강조하는 바이레른 국민당(die Bayerische Volkspartei)이 1918년에 창당되고 1920년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일사회민주당( die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으로 집중되어 있던 노동운동세력에게도 정치적 카톨릭주의와 마찬가지로 강한 영속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에서는 사민당은 노동운동세력의 유일한 정치적 대표를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분리되었던 독립사민당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다. 1920년에 독립사민당의 좌파가 그 사이에 창건된 독일공산당에 참여하고 독일 사민당의 우파가 사민당으로 재합류한 이후부터 바이마르공화국이 붕괴되기까지 사민당과 공산당이라는 두개의 노동자정당이 양립하는 구조가 지속되었다.
2) 군소정당
이러한 다섯가지의 주된 흐름을 제외하고도 다수의 군소정당(여기에서는 선거특표율이 4%미만인 정당을 의미함)이 있었던 형편은 카이저제국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12년의 라이히하원 선거결과 전체 397석 중에서 28석을 점하고 있던 소수민족정당들은 베르사이유조약에 따라서 영토가 줄어든 관계로 한두석 정도의 의석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치주의자들 역시 1930년 이후의 도적이전까지는 군소정당에 속하였다. 일시적으로 적지 않은 세력을 보여 주었던 정당으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경제당(die Wirtschaftspartei)을 들 수 있다. 경제당은 1928년과 1930년의 선거에서 각각4.5%와 3.9%의 득표율로 23석을 획득했었다. 군소정당의 득표율은 전체적은 보아 우선은 카이저제국에서(1912년 13.6%)보다 감소하였다가(1919년 1.3%) 1920년부터 다시 증가하여 (5.1%)1930년에는 20.8%로 최고치에 이르렀다. 1932년의 선거에서 기존의 군소정당들에게 행해지던 투표의 상당부분이 나찌당으로 흡수
1930-1932년 제국의회는 6백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치러진 세 번의 제국의회 의원 선거에서 정치적 중도 세력은 극우세력과 연합하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유권자도 증가하여 이제 공화국은 기독교중앙당과 사민당의 지지만을 받을 뿐이었다. 1930년 초 와해된 사민당과 독일국민당은 이미 그 전부터 쇠퇴의 길에 들어서 있었고 에베르트의 뒤를 이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브뤼닝(Heinrich Bruning)은 더 이상 확고한 연정과 의회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를 세울 수 없었다. 브뤼닝 정부는 제국의회의 관용과 제국대통령의 신임에만 의존하였다.
이러한 변형된 지지형태는 제국 헌법 48조항이 남용되면서부터였다. 이는 의회주의 공화국에서 대통령 중심 공화국으로 바뀌는 위험한 변화를 초래, 제국대통령은 \"또 다른 황제\"가 되었다. 1930년 초 의회는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브뤼닝 수상의 결탁을 인용하여 대통령중심 내각을 가능케 했다.
의회에는 지배적인 절대다수당이 존재하지 않았고 내각은 헌법상 매우 강력한 제국대통령의 지지에 의지했다. 그로 인해 중간파나 온건보수파를 지지하여 오던 선거인들이 대거 파시즘적인 나치스당의 지지파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극단적인 반민주주의적인 경향과 혁명적인 선동을 곁들인 반유대인주의를 결합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1930년 이후 힘을 얻게 되어 1932년 가장 강력한 정파로 성장하였다. 1932년 4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파인 힌덴부르크가 재선되기는 하였지만, 히틀러도 힌덴부르크에 육박한 지지표를 얻게 되고, 또한 의회에서도 나치스와 공산당이 합친 수가 과반수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우파가 나치스를 중심으로 단결한 반면, 좌파의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거기다 경제공황이 심각하여져서 국민의 불만은 날로 높아져 갔다. 군부 ·관리층 ·자본가 ·농산층 및 중산층까지도 나치스 지지로 기울어지게 되어 1933년 1월 힌덴부르크 대통령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기에 이르러 나치스 정권이 성립하게 됨에 따라 바이마르 공화국은 14년 만에 붕괴하였다. 이민호, 1996년, 독일사, 대한교과서, 237~255p
11. 바이마르공화국 정당체제의 연속성
1) 5개 유형의 정당체제
입헌군주제에서 의회민주주의로 전환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당들의 기본구조는 주목할 만큼의 연속성을 보였다. 정치적 변혁으로 인해서 일련의 새로운 창당작업이 있었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그 이전의정치흐름들이 본질적인 변화없이 그대로 존속하였다.
키이저제국에서 독일보수당(die deutschkonservative Partei)과 독일제국당(die deusche Reichsprtei)으로 양분되었던 보수주의세력은 1918년 11월 24일에 독일민족국민당(die Deutschnationale Volkspartei)를 창당하였다.
군주제로의 복귀를 정강정책으로 하던 독일민족국민당에는 기독교사회적 (christlichsozial)세력, 독일국수주의적(deutschvolkisch)세력, 반유대주의적(antisemitistisch)세력 등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했다. 한편 단일한 자유주의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협상이 실패한 후인 1918년 12월 5일에는 자유주의우파중에서 슈트레제만(Stresemann)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독일국민당(die Deutsche Volkspartei)을 세웠다. 독일국민당의 정강정책은 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에 대해 유보적이었다.
자유주의 좌파세력은 기존의 자유주의우파세력의 일부와 함께 1918년 11월20일에 독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정치적 카톨릭주의 세력에게는 새로운 창당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의 카톨릭 중앙당이, 잠시 기독교국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존속하였다. 하지만 카톨릭중앙당은 같은 카톨릭세력에 기반을 두면서 연방주의적 성향을 강조하는 바이레른 국민당(die Bayerische Volkspartei)이 1918년에 창당되고 1920년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일사회민주당( die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으로 집중되어 있던 노동운동세력에게도 정치적 카톨릭주의와 마찬가지로 강한 영속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에서는 사민당은 노동운동세력의 유일한 정치적 대표를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분리되었던 독립사민당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다. 1920년에 독립사민당의 좌파가 그 사이에 창건된 독일공산당에 참여하고 독일 사민당의 우파가 사민당으로 재합류한 이후부터 바이마르공화국이 붕괴되기까지 사민당과 공산당이라는 두개의 노동자정당이 양립하는 구조가 지속되었다.
2) 군소정당
이러한 다섯가지의 주된 흐름을 제외하고도 다수의 군소정당(여기에서는 선거특표율이 4%미만인 정당을 의미함)이 있었던 형편은 카이저제국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12년의 라이히하원 선거결과 전체 397석 중에서 28석을 점하고 있던 소수민족정당들은 베르사이유조약에 따라서 영토가 줄어든 관계로 한두석 정도의 의석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치주의자들 역시 1930년 이후의 도적이전까지는 군소정당에 속하였다. 일시적으로 적지 않은 세력을 보여 주었던 정당으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경제당(die Wirtschaftspartei)을 들 수 있다. 경제당은 1928년과 1930년의 선거에서 각각4.5%와 3.9%의 득표율로 23석을 획득했었다. 군소정당의 득표율은 전체적은 보아 우선은 카이저제국에서(1912년 13.6%)보다 감소하였다가(1919년 1.3%) 1920년부터 다시 증가하여 (5.1%)1930년에는 20.8%로 최고치에 이르렀다. 1932년의 선거에서 기존의 군소정당들에게 행해지던 투표의 상당부분이 나찌당으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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