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이상과 김영랑에 대한 고찰
-생애 또는 시대상황을 통해 분석해 본 그들의 문학-
[인문과학] 이상과 김영랑에 대한 고찰 -생애 또는 시대상황을 통해 분석해 본 그들의 문학-
첫 번째- 이상(李箱)
1. 서론
2. 본론
2.1. 이상의 생애
2.2. 이상 문학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
2.2.1. 이상의 가계
2.2.2. 이상의 어린 시절
2.2.3. 고학의 열등감
2.2.4. 허약체질의 건강 콤플렉스
2.2.5. 성적인 콤플렉스
2.2.6. 금홍과의 관계
2.3. 이상의 거울 의식
2.4. 이상의 시 해석
3. 결론
♧참고문헌
두 번째- 김영랑
1.서론
2.본론
2-1 김영랑의 생애 세계
2-2-1.제1기: '찬란함과 슬픔'의 순수 서정 세계
2-2-2.제2기: 산문의 시대 혹은 민주주의적 저항 세계
2-2-3. 제3기: '희비 교향'의 서정 세계
3.결론
-생애 또는 시대상황을 통해 분석해 본 그들의 문학-
[인문과학] 이상과 김영랑에 대한 고찰 -생애 또는 시대상황을 통해 분석해 본 그들의 문학-
첫 번째- 이상(李箱)
1. 서론
2. 본론
2.1. 이상의 생애
2.2. 이상 문학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
2.2.1. 이상의 가계
2.2.2. 이상의 어린 시절
2.2.3. 고학의 열등감
2.2.4. 허약체질의 건강 콤플렉스
2.2.5. 성적인 콤플렉스
2.2.6. 금홍과의 관계
2.3. 이상의 거울 의식
2.4. 이상의 시 해석
3. 결론
♧참고문헌
두 번째- 김영랑
1.서론
2.본론
2-1 김영랑의 생애 세계
2-2-1.제1기: '찬란함과 슬픔'의 순수 서정 세계
2-2-2.제2기: 산문의 시대 혹은 민주주의적 저항 세계
2-2-3. 제3기: '희비 교향'의 서정 세계
3.결론
본문내용
길진섭, 그 밖의 삼사문학 동인 유 학생이 간호, 아내 변동림 동경에 달려옴. 의사의 진단으로는 이미 폐가 녹 아버린 상태였음. 레몬 향기를 맡으며 4월17일 새벽 4시에 죽음. 길진섭이 데드마스크를 만듦. 아내 변동림이 화장한 유골 가지고 돌아옴. 미아리에 매 장함. 그가 죽기 전날 4월16일 아버지 김연창, 조모가 죽음.
2.2. 이상 문학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
2.2.1. 이상의 가계
이상에게 있어서 그의 가족은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증조부 김학준은 정3품에 해당하는 이른바 당상관을 지냈다. 그렇다면 이상의 가격(家格)은 근세 관존 사상으로 미루어본다면 매우 체통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김학준은 외아들 병복을 낳았다. 김병복은 전형적인 이조 한양성의 중인 타입으로서 서울 사람다운 결벽으로 한학을 이수했으나 그의 아버지 학준의 기상과는 달리 문약했다. 김병복은 연필, 연창을 두었다. 조혼 풍습에 의해서 연필은 김영숙과 결혼, 연창은 이어서 박세창과 결혼하였다. 연창이 이상의 아버지이다. 이상의 백부 김연필은 중인답게 말단 이방이 갖추는 정도의 지식 ‘한학’을 구사했지만 아버지 김연창은 얼굴이 얽고 그다지 품위를 보이지 못하는 개화기의 서민 계층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백부 연필의 알선으로 관아가 늘어선 골목에 있는 활판소에서 일했다. 거기서 손가락 셋을 두 번이나 절지기의 칼에 잘렸다. 그는 그 당시로서는 사회에 나갈 수 없는 불구자가 된 것이다. 이상이 태어날 무렵 그의 아버지는 사직 고을에서 단발령 이후의 개화 조발업으로서 이발관을 차리고 있었다. 사직동 이발소는 그러나 생각대로 번창하지 않았다. 이상의 부모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다. 조부 병복은 이상을 작명술에 의해서 해경이라고 지었다. 그것은 바다와 같은 넓은 곳을 다스리는 대작이 되라는 이름이었다. 조부는 그 당시에는 아버지보다 더 해경을 사랑했다. 조부는 그의 대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손자에 의해서 실감했다. 정작 아버지는 조부의 그늘 밑에서 아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연필 내외 또한 해경에 대한 사랑을 풍발했다.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경의 친부모는 가난했기 때문에 해경은 4살 백부의 집으로 옮겨가 살게 된다.
2.2.2. 이상의 어린 시절
백부 백모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백모 영숙이 데리고 들어온 전부(煎夫)의 소생인 문경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백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양자 정도로 생각하면 도량이 넓은 셈이었다. 따라서 아우 연창이 아들을 낳자마자 그 아들을 자기 자신이 낳은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다. 그는 어린 해경을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하에서 이어지는 일상생활은 백모의 의도가 중심이 된다. 백모의 편에는 데리고 온 문경이 있다. 이런 실정에서 어린 해경은 백모를 통해서 건강하고 안정된 사랑과 교육을 받지 못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 부닥친다. 그래서 해경은 백부의 엄격함과 인자함의 이원적인 부성애를 받고 백모에 의해서 증오와 소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해경의 감수성은 경이적으로 빨리 숙달되고 있었다. 해경은 4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닭이나 사람의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사람의 얼굴 가운데서도 눈을 더 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상은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집 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끼적끼적 낙서를 하거나 하다가 그런 일에도 지쳐버리면 아주 부동자세로 벽에 기대어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한동안을 멈추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라도 건드려야 하고 잠 밖에서는 언제나 움직여야 하는 어린아이의 기능을 제지당하는 비극이 그의 정상기에 개재하고 있었다. 해경의 5,6세는 이미 성숙한 소년이었으며 그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없는 타자에게 일종의 인격적 금기를 주게 된다. 그동안 연필의 체념이 드러나는 사랑과 그 대립물로서의 백모의 여러 불화를 통해서 그가 받은 유년의 정서적 상흔은 점점 자랐다. 이상은 이상 이전의 이러한 가족적 불화와 갈등에 의해서 이미 지워 질 수 없는 비극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에게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것은 그가 개화기의 낡은 중등 교육에서 배운 황홀한 스위트 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주기적으로 백모의 분노와 사설 그리고 손짓을 받아야 했다. 해경은 백부의 애정 과다증과 백모에 대한 깊은 소외의식을 동시에 받아들인 불건강성이 확립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안 될 자리에 벌써 와 있었던 것이다.
2.2.3. 고학의 열등감
이상에게는 쾌감을 자발적으로 누릴 만한 경제생활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의 경제적 파탄은 거의 그의 삶에 대한 부제로 따라다녔다. 따라서 그는 학교 앞에서 현미빵을 팔면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 다녀야 했다. 누런 빵을 친구들에게 팔면서 맛보는 굴욕감과 열등의식이 그의 성격 기층에 짙은 색의 수치를 깔아놓았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을 출세주의로 대결하는 많은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해경의 재능과 우울한 신경질은 그것을 예술로 지향시키면서 커다란 자존심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가난한 일상생활을 증오하였다. 그의 글 도처에서 그가 가혹한 일상 혐오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사리 발견한다. 이런 혐오의 의지는 문학 자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문학 이후의 여러 가지 재래적 진술의 일상성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문학적 표현 기능이 가지는 일상적인 것까지도 거부할 때, 다시 말하면 일상이 어떤 형태로든지 그 자신에게 틈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무한한 자기 방어의 열(列)지속을 시도한 것 같다. 이런 일상성 안에 들어 있는 자기 부정 없는 정상에 대한 이상과 비상만이 그가 가까스로 그 자신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암밀의 폐소였던 것이다. 또한 그가 띄어쓰기를 거절한 것은 그의 다른 글이 띄어쓰기로 표현된 일상성과는 달리 말의 일상적인 의미를 띄어쓰기를 없앰으로 완전히 착란시켜 버리려는 목적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의 열등성은 이상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서 그의 짧은 일생을 지배한다.
2.2.4. 허약체질의 건강 콤플렉스
이상의 얼굴은 하
2.2. 이상 문학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
2.2.1. 이상의 가계
이상에게 있어서 그의 가족은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증조부 김학준은 정3품에 해당하는 이른바 당상관을 지냈다. 그렇다면 이상의 가격(家格)은 근세 관존 사상으로 미루어본다면 매우 체통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김학준은 외아들 병복을 낳았다. 김병복은 전형적인 이조 한양성의 중인 타입으로서 서울 사람다운 결벽으로 한학을 이수했으나 그의 아버지 학준의 기상과는 달리 문약했다. 김병복은 연필, 연창을 두었다. 조혼 풍습에 의해서 연필은 김영숙과 결혼, 연창은 이어서 박세창과 결혼하였다. 연창이 이상의 아버지이다. 이상의 백부 김연필은 중인답게 말단 이방이 갖추는 정도의 지식 ‘한학’을 구사했지만 아버지 김연창은 얼굴이 얽고 그다지 품위를 보이지 못하는 개화기의 서민 계층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백부 연필의 알선으로 관아가 늘어선 골목에 있는 활판소에서 일했다. 거기서 손가락 셋을 두 번이나 절지기의 칼에 잘렸다. 그는 그 당시로서는 사회에 나갈 수 없는 불구자가 된 것이다. 이상이 태어날 무렵 그의 아버지는 사직 고을에서 단발령 이후의 개화 조발업으로서 이발관을 차리고 있었다. 사직동 이발소는 그러나 생각대로 번창하지 않았다. 이상의 부모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다. 조부 병복은 이상을 작명술에 의해서 해경이라고 지었다. 그것은 바다와 같은 넓은 곳을 다스리는 대작이 되라는 이름이었다. 조부는 그 당시에는 아버지보다 더 해경을 사랑했다. 조부는 그의 대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손자에 의해서 실감했다. 정작 아버지는 조부의 그늘 밑에서 아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연필 내외 또한 해경에 대한 사랑을 풍발했다.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경의 친부모는 가난했기 때문에 해경은 4살 백부의 집으로 옮겨가 살게 된다.
2.2.2. 이상의 어린 시절
백부 백모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백모 영숙이 데리고 들어온 전부(煎夫)의 소생인 문경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백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양자 정도로 생각하면 도량이 넓은 셈이었다. 따라서 아우 연창이 아들을 낳자마자 그 아들을 자기 자신이 낳은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다. 그는 어린 해경을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하에서 이어지는 일상생활은 백모의 의도가 중심이 된다. 백모의 편에는 데리고 온 문경이 있다. 이런 실정에서 어린 해경은 백모를 통해서 건강하고 안정된 사랑과 교육을 받지 못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 부닥친다. 그래서 해경은 백부의 엄격함과 인자함의 이원적인 부성애를 받고 백모에 의해서 증오와 소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해경의 감수성은 경이적으로 빨리 숙달되고 있었다. 해경은 4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닭이나 사람의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사람의 얼굴 가운데서도 눈을 더 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상은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집 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끼적끼적 낙서를 하거나 하다가 그런 일에도 지쳐버리면 아주 부동자세로 벽에 기대어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한동안을 멈추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라도 건드려야 하고 잠 밖에서는 언제나 움직여야 하는 어린아이의 기능을 제지당하는 비극이 그의 정상기에 개재하고 있었다. 해경의 5,6세는 이미 성숙한 소년이었으며 그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없는 타자에게 일종의 인격적 금기를 주게 된다. 그동안 연필의 체념이 드러나는 사랑과 그 대립물로서의 백모의 여러 불화를 통해서 그가 받은 유년의 정서적 상흔은 점점 자랐다. 이상은 이상 이전의 이러한 가족적 불화와 갈등에 의해서 이미 지워 질 수 없는 비극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에게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것은 그가 개화기의 낡은 중등 교육에서 배운 황홀한 스위트 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주기적으로 백모의 분노와 사설 그리고 손짓을 받아야 했다. 해경은 백부의 애정 과다증과 백모에 대한 깊은 소외의식을 동시에 받아들인 불건강성이 확립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안 될 자리에 벌써 와 있었던 것이다.
2.2.3. 고학의 열등감
이상에게는 쾌감을 자발적으로 누릴 만한 경제생활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의 경제적 파탄은 거의 그의 삶에 대한 부제로 따라다녔다. 따라서 그는 학교 앞에서 현미빵을 팔면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 다녀야 했다. 누런 빵을 친구들에게 팔면서 맛보는 굴욕감과 열등의식이 그의 성격 기층에 짙은 색의 수치를 깔아놓았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을 출세주의로 대결하는 많은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해경의 재능과 우울한 신경질은 그것을 예술로 지향시키면서 커다란 자존심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가난한 일상생활을 증오하였다. 그의 글 도처에서 그가 가혹한 일상 혐오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사리 발견한다. 이런 혐오의 의지는 문학 자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문학 이후의 여러 가지 재래적 진술의 일상성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문학적 표현 기능이 가지는 일상적인 것까지도 거부할 때, 다시 말하면 일상이 어떤 형태로든지 그 자신에게 틈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무한한 자기 방어의 열(列)지속을 시도한 것 같다. 이런 일상성 안에 들어 있는 자기 부정 없는 정상에 대한 이상과 비상만이 그가 가까스로 그 자신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암밀의 폐소였던 것이다. 또한 그가 띄어쓰기를 거절한 것은 그의 다른 글이 띄어쓰기로 표현된 일상성과는 달리 말의 일상적인 의미를 띄어쓰기를 없앰으로 완전히 착란시켜 버리려는 목적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의 열등성은 이상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서 그의 짧은 일생을 지배한다.
2.2.4. 허약체질의 건강 콤플렉스
이상의 얼굴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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