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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본문내용
관은 18억 5천불 상품 및 은행차관 3억5천만불 수출입은행차관 18억 불로 양국안의 절충을 본 것이다.
세지마의 활약과 김대중 문제의 해결로 나까소네의 한국방문 길이 열렸으면 1981년 8월부터 시작된 한일차관협상은 1983년 1월12일 최종적인 해결을 보았다.
● 전두환 -나까소네 회담과 차관협상의 종결
나까소네 수상은 1945년 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일본의 첫 지도자였으며, 한국정부로부터 내각수반이 아닌 국가원수의 대접을 받았다. 나까소네는 차관이슈를 해결했을뿐만아니라 공식 비공식 석상에서 한국말을 인용해가면서 밀접한 한일 간의 정치와 경제를 강조하였고 한국민에게 새로운 일본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었다.
공동성명에서 서로 요구하는 문구의 차이로 난항을 격기는 했지만 나까소네의 방한으로 2년 여에 걸친 차관협상은 일본 정부가 초기에 15불에서 18억 5천분로 엔차관을 증대시키면서 그 종결을 보개되었다.. 전두환과 나까소네 공동성명과 차관협상의 결과는 전두호나 정부가 안보협력을 철회하고 과거에 고집했던 기본원칙을 지우고 그 댓가로 일본은 실질적인 차관의 액수를 증가시킨 진정한 의미의 타협의 소산이였다
● 전두환 대통령-나카소네 수상간 공동성명(1983년 1월 12일)
1.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국 총리대신각하는 영부인과 함께 대한민국정부의 초청으로 1983년 1월 11일부터 1월 12일까지 양일간 대한민국ㅇ르 공식 방문하였다. 나카소네 총리대신각하의 방한에는 아베신따로 외무대신, 다께시다 노보루 대장대신, 후지나미 다까오 관방부장관, 야스이 깽 일한의원연맹회장 외 수명의 국회의원 및 기타 일본국정부의 고위관리 들이 수행하였다.
2. 대통령과 총리대신은 매우 중요하고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국제정세와 양국관계 및 기타 공동 관심사에 관하여 솔직한 의견교환과 건설적인 토의를 가졌다.
3.대통령과 총리대신은 한일양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이념을 추구하는 연방으로서 상호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민을 위하여 이익이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양국의 지도자는 금범 총리대신의 방한이 일본국 총리대신에 의한 실질적으로 첫 번째의 공식방한이라는 점에서 1965년 양국간의 국교정상화에 이어, 양국간의 우호협력을 더욱 증진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4.대통령과 총리대신은 최근의 국제정세에 관하여 격의 없는 의견교환을 행하고, 특히 한반도에 있어서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면서,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번영을 위하여 금후에도 상호협력해 나갈 것을 확인하였다.
총리대신은 전대통령이 제창한 남북간당국 최고책임자회담 개최 제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등의 대화노력을 지지하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현하의 준엄한 정세하에서 한국의 방위노력이 그러한 대화노력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5.나카소네 총리대신은 한국이 제5공화국의 출범이후 전대통령의 영도 하에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에서 꾸준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음에 경의를 표하였다.
총리대신은 일본이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그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임과, 특히 아시아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나갈 것임을 표명하였다.
대통령은 총리대신의 그와 같은 입장을 높이 평가하고, 금후 일본의 국제적인 역할에 기대를 표명하였다.
양국의 지도자는 태평양 지역내 제국간 점증하는 상호의존관계와 이 지역의 급속한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유의하고 이들 제국간의 협력관계를 증진시킬 필요성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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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마의 활약과 김대중 문제의 해결로 나까소네의 한국방문 길이 열렸으면 1981년 8월부터 시작된 한일차관협상은 1983년 1월12일 최종적인 해결을 보았다.
● 전두환 -나까소네 회담과 차관협상의 종결
나까소네 수상은 1945년 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일본의 첫 지도자였으며, 한국정부로부터 내각수반이 아닌 국가원수의 대접을 받았다. 나까소네는 차관이슈를 해결했을뿐만아니라 공식 비공식 석상에서 한국말을 인용해가면서 밀접한 한일 간의 정치와 경제를 강조하였고 한국민에게 새로운 일본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었다.
공동성명에서 서로 요구하는 문구의 차이로 난항을 격기는 했지만 나까소네의 방한으로 2년 여에 걸친 차관협상은 일본 정부가 초기에 15불에서 18억 5천분로 엔차관을 증대시키면서 그 종결을 보개되었다.. 전두환과 나까소네 공동성명과 차관협상의 결과는 전두호나 정부가 안보협력을 철회하고 과거에 고집했던 기본원칙을 지우고 그 댓가로 일본은 실질적인 차관의 액수를 증가시킨 진정한 의미의 타협의 소산이였다
● 전두환 대통령-나카소네 수상간 공동성명(1983년 1월 12일)
1.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국 총리대신각하는 영부인과 함께 대한민국정부의 초청으로 1983년 1월 11일부터 1월 12일까지 양일간 대한민국ㅇ르 공식 방문하였다. 나카소네 총리대신각하의 방한에는 아베신따로 외무대신, 다께시다 노보루 대장대신, 후지나미 다까오 관방부장관, 야스이 깽 일한의원연맹회장 외 수명의 국회의원 및 기타 일본국정부의 고위관리 들이 수행하였다.
2. 대통령과 총리대신은 매우 중요하고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국제정세와 양국관계 및 기타 공동 관심사에 관하여 솔직한 의견교환과 건설적인 토의를 가졌다.
3.대통령과 총리대신은 한일양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이념을 추구하는 연방으로서 상호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민을 위하여 이익이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양국의 지도자는 금범 총리대신의 방한이 일본국 총리대신에 의한 실질적으로 첫 번째의 공식방한이라는 점에서 1965년 양국간의 국교정상화에 이어, 양국간의 우호협력을 더욱 증진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4.대통령과 총리대신은 최근의 국제정세에 관하여 격의 없는 의견교환을 행하고, 특히 한반도에 있어서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면서,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번영을 위하여 금후에도 상호협력해 나갈 것을 확인하였다.
총리대신은 전대통령이 제창한 남북간당국 최고책임자회담 개최 제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등의 대화노력을 지지하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현하의 준엄한 정세하에서 한국의 방위노력이 그러한 대화노력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5.나카소네 총리대신은 한국이 제5공화국의 출범이후 전대통령의 영도 하에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에서 꾸준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음에 경의를 표하였다.
총리대신은 일본이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그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임과, 특히 아시아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나갈 것임을 표명하였다.
대통령은 총리대신의 그와 같은 입장을 높이 평가하고, 금후 일본의 국제적인 역할에 기대를 표명하였다.
양국의 지도자는 태평양 지역내 제국간 점증하는 상호의존관계와 이 지역의 급속한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유의하고 이들 제국간의 협력관계를 증진시킬 필요성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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