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중요성
Ⅲ.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요인
1. 정치권 내부의 갈등
2. 경제적 요인
Ⅳ.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전개과정
1. 5.8계획
2. 4.19계획
3. 5.12계획
4. 5.16계획
5. 5.16혁명 과정
Ⅴ.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공약
Ⅵ.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재건국민운동
Ⅶ. 결론
참고문헌
Ⅱ.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중요성
Ⅲ.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요인
1. 정치권 내부의 갈등
2. 경제적 요인
Ⅳ.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전개과정
1. 5.8계획
2. 4.19계획
3. 5.12계획
4. 5.16계획
5. 5.16혁명 과정
Ⅴ.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공약
Ⅵ. 5 16군사정변(5 16군사혁명, 5 16쿠데타)의 재건국민운동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세력에게도 재건국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62년 8월 시점은 김종필 중심의 급진세력이 민정이양을 대비해 치밀하게 준비해 왔던 ‘사전조직’이 지방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던 때였다. 1962년 7월, 재건국민운동 운영부장 심이섭은 도지부차장을 맡고 있던 군부출신들이 ‘사전조직’에 참여하려 하자, 김종필과 최고회의의 힘을 빌어 이들의 정치참여를 막았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태에서 비공식적으로 움직였던 ‘사전조직’이 조직 틀을 완전히 잡기 전에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한 군부출신을 흡수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재건국민운동 도지부차장들이 정당활동을 위해 일방적으로 이탈할 때 사전정치활동과 재건국민운동의 정치도구화라는 사회적 비판을 모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쿠데타 세력내의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더불어 실제 민정이양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직도 1년여의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군사정권의 가장 큰 대민기구인 재건국민운동 조직의 와해를 원치 않았다. ‘읍면동리 재건위원회, 재건청년회와 재건부녀회는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정치중립화 조항(29조)은 농민들의 정치활동을 막는 가장 정치적 문안이었기 때문이다.
Ⅶ. 결론
박정희는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진 존재이다. 군인으로서 박정희는 양심적이고 청렴한 군인이었다. 그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인간이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이지만, 그는 상식적으로 말하는 친일인사는 아니었으며, 당시의 우수하고 야심찬 젊은이라면 나름대로 선택할만한 길을 갔다고 볼 수 있다. 권력장악 과정에서의 탈법적인 행동을 저질렀으나 그의 18년의 치적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부분도 상당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지도자, 국가의 영웅으로 거국적인 칭송받을 만한 인물은 결코 되지 못한다. 그와 동시대의 인물 중에서도 그는 민족을 위하여 결코 후세에 존경받을만한 투쟁과 헌신의 이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우선적으로는 자신의 야망의 실현과 출세를 위해 노력했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권력을 장악하고 대통령으로 수행한 모든 이력은 민족적, 국가적 지도자가 사실상 거세된 정치적 공간 위에서 진행된 것들이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집념과 노력이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콤플렉스, 그리고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한 수동적이고 방어적 동기에 지배되고 있었으며, 미국의 지지를 얻고 북한을 이겨야 한다는 철저한 냉전 논리에 편승한 것이었다. 그런데 냉전에 편승한 지도자가 냉전이 사라진 지금 어떠한 정신적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는가?
그의 업적으로 주로 거론될 수 있는 경제성장이라는 것도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는 경제는 성공했으나 정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실패는 그의 경제적 성공을 의문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단기적 성공의 대가로 많은 짐을 이후의 정치가와 국민들에게 남겨놓았다. 그가 남겨놓은 이 부패, 지역주의, 탈법, 도덕적 혼미의 비용은 그의 경제적 성공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정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공적인 대의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가장 심하게 탄압하였다. 이 한가지 점만 주목하더라도 그는 국민적 지도자로서는 물론 민족적 지도자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으로 평가받기는 어렵다.
김대중 정권의 박정희 기념관 지원 사업은 정치적 동기에 추동되었기 때문에, 문제점투성이일 뿐더러 당대와 후세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현 정권은 역사를 독점하려는 과욕을 버려야 하며, 국고를 지원하기 이전에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거쳐야 하며 역사가와 상식인의 평가를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지녀야할 진정한 미래지향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박정희 시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는지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두어야 한다.
참고문헌
1. 김종호, 5·16의 배경과 정치사적 의의, 금오공과대학교 선주문화연구소, 2010
2. 노영기, 5·16쿠데타 주체세력 분석, 한국역사연구회, 2001
3. 박호근, 5·16 군사정부의 교육정책과 결정유형, 한국교육정치학회, 2005
4. 송복, 5·16 50주년 역사적 평가속으로 들어간다, 조선뉴스프레스, 2011
5. 이성춘, 한국군의 정치개입에 관한 연구 : 5·16과 12·12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04
6. 황병주, 4·19와 5·16을 전후한 시기 주요 정치세력들의 동향과 이념적 지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Ⅶ. 결론
박정희는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진 존재이다. 군인으로서 박정희는 양심적이고 청렴한 군인이었다. 그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인간이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이지만, 그는 상식적으로 말하는 친일인사는 아니었으며, 당시의 우수하고 야심찬 젊은이라면 나름대로 선택할만한 길을 갔다고 볼 수 있다. 권력장악 과정에서의 탈법적인 행동을 저질렀으나 그의 18년의 치적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부분도 상당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지도자, 국가의 영웅으로 거국적인 칭송받을 만한 인물은 결코 되지 못한다. 그와 동시대의 인물 중에서도 그는 민족을 위하여 결코 후세에 존경받을만한 투쟁과 헌신의 이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우선적으로는 자신의 야망의 실현과 출세를 위해 노력했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권력을 장악하고 대통령으로 수행한 모든 이력은 민족적, 국가적 지도자가 사실상 거세된 정치적 공간 위에서 진행된 것들이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집념과 노력이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콤플렉스, 그리고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한 수동적이고 방어적 동기에 지배되고 있었으며, 미국의 지지를 얻고 북한을 이겨야 한다는 철저한 냉전 논리에 편승한 것이었다. 그런데 냉전에 편승한 지도자가 냉전이 사라진 지금 어떠한 정신적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는가?
그의 업적으로 주로 거론될 수 있는 경제성장이라는 것도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는 경제는 성공했으나 정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실패는 그의 경제적 성공을 의문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단기적 성공의 대가로 많은 짐을 이후의 정치가와 국민들에게 남겨놓았다. 그가 남겨놓은 이 부패, 지역주의, 탈법, 도덕적 혼미의 비용은 그의 경제적 성공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정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공적인 대의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가장 심하게 탄압하였다. 이 한가지 점만 주목하더라도 그는 국민적 지도자로서는 물론 민족적 지도자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으로 평가받기는 어렵다.
김대중 정권의 박정희 기념관 지원 사업은 정치적 동기에 추동되었기 때문에, 문제점투성이일 뿐더러 당대와 후세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현 정권은 역사를 독점하려는 과욕을 버려야 하며, 국고를 지원하기 이전에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거쳐야 하며 역사가와 상식인의 평가를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지녀야할 진정한 미래지향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박정희 시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는지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두어야 한다.
참고문헌
1. 김종호, 5·16의 배경과 정치사적 의의, 금오공과대학교 선주문화연구소, 2010
2. 노영기, 5·16쿠데타 주체세력 분석, 한국역사연구회, 2001
3. 박호근, 5·16 군사정부의 교육정책과 결정유형, 한국교육정치학회, 2005
4. 송복, 5·16 50주년 역사적 평가속으로 들어간다, 조선뉴스프레스, 2011
5. 이성춘, 한국군의 정치개입에 관한 연구 : 5·16과 12·12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04
6. 황병주, 4·19와 5·16을 전후한 시기 주요 정치세력들의 동향과 이념적 지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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