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공론의 개념과 형성 및 발전 과정
Ⅲ. 공론의 확대
Ⅳ. 공론의 한계
Ⅴ. 결론
Ⅱ. 공론의 개념과 형성 및 발전 과정
Ⅲ. 공론의 확대
Ⅳ. 공론의 한계
Ⅴ. 결론
본문내용
*조선의 공론정치
<목차>
Ⅰ. 서론
Ⅱ. 공론의 개념과 형성 및 발전 과정
Ⅲ. 공론의 확대
Ⅳ. 공론의 한계
Ⅴ. 결론
Ⅰ. 서론
조선시대는 양반이라 통칭되는 지식인 관료들과 예비 관료 집단인 유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론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공론은 국왕과 언론을 주축으로 하여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소통되었다. 조선시대에 공론이 형성되고 소통되는 장은 공론소재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으며 이러한 공론 소통의 장에서 삼사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언관과 임금, 그리고 재신 사이에 논집시정, 정풍속, 규찰백관, 간쟁, 논박 등의 논증적 대화가 이루어졌다.
당대에 공론 정치의 토대로 작용하였던 공론 영역은 국왕을 점점으로 다양한 논증적 대화가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장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대화의 전형이라 할 언관과 임금 간의 논증적 대화는 공론 영역의 소장과 더불어 발전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당시 공론 영역에서 이루어진 논증적 대화는 당대인이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공유하는 관념인 공감의 체계에 기초하여 관습적인 방식으로 전개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론 영역에서의 논증적 대화는 조정의 중대사를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였던 한자 문화권의 오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공론 영역에서의 논증적 대화는 당대의 사회 · 문화적 맥락 안에서 관습적으로 운용된 논증 장르의 하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Ⅱ. 공론의 개념과 형성 및 발전과정
조선시대는 사대부가 주도하는 정치적 공론 영역을 중심으로 공론 정치가 꽃핀 시대였다. 비록 공론 영역의 소장과 언로의 광개폐색은 시기의 전후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공론 및 공론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여일하였다.
조선시대 공론 정치의 기반이 된 공론의 소통은 언론 삼사라 통칭되는 언관의 논변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언관들은 계, 소, 차자 등 전통적인 상행 논증 장르를 이용하여 임금을 상대로 논변을 펼쳤으며 임금은 이에 대하여 전지, 유시, 비답 등의 하행 장르를 이용하여 언관의 논변에 대하여 논박을 하거나 판정을 하였다. 사안이 중대할 경우 임금은 원로 재신들로 하여금 의론하게 하였고 이러한 수의 과정을 토대로 임금의 최종 판정이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언관을 통한 공론의 소통은 지극히 중시되었다. 언관의 언론 내용은 사관에 의해 일일이 기록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에도 언관의 언론 내용은 새로운 내용일 경우 반드시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조선시대의 언관의 논변은 그 소통의 맥락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조선시대 언관들의 직무는 시정을 논집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임금의 잘잘못을 간하고 백관을 규찰하며 인사의 적부를 논박하는 것이었던 만큼 이러한 활동의 기본 성격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논증적 대화는 서로 표리의 관계를 이루며 변화 · 발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론 및 공론의 소통에 대한 인식은 고려시대로부터 비롯되었다. 『고려사』에는 공론 및 언로에 관한 기사가 산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의 일화와 고려 의종 때 문극겸의 일화가 있다. 김부식의 일화는 임금의 외조부인 이자겸이 김부식의 의론을 ‘천하의 공론’으로 여겨 따르도록 하였다는 것이며, 문극겸의 일화는 의종 때 문극겸이 좌정언으로 직언을 하다가 좌천을 당하였는데 유사가 ‘문극겸은 직신이라 외관에 연이어 좌천시켜 언로의 막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여 결국 중앙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공론에 대한 인식은 추상적인 관념 수준의 것이었다. 공론은 ‘모든 사람들이 옳게 여기는 것’, 즉 실제적인 여론이었다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옳게 여겨야 할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증거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선조 초부터 권신이 배제된 사림 주도의 정치 구조가 정착하면서 공론에 의한 정치가 정립된다. 선조 8년에 이르면 조정의 공론이 나누어져 붕당 정치가 전개되면서 공론 정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공론 정치의 정립은 바로 붕당 정치의 확립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론은 대신이나 왕조차도 따라야 할 것이라는 재전제가 완전히 수용되기에 이른다.
이상으로 조선시대에 공론 영역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아
<목차>
Ⅰ. 서론
Ⅱ. 공론의 개념과 형성 및 발전 과정
Ⅲ. 공론의 확대
Ⅳ. 공론의 한계
Ⅴ. 결론
Ⅰ. 서론
조선시대는 양반이라 통칭되는 지식인 관료들과 예비 관료 집단인 유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론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공론은 국왕과 언론을 주축으로 하여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소통되었다. 조선시대에 공론이 형성되고 소통되는 장은 공론소재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으며 이러한 공론 소통의 장에서 삼사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언관과 임금, 그리고 재신 사이에 논집시정, 정풍속, 규찰백관, 간쟁, 논박 등의 논증적 대화가 이루어졌다.
당대에 공론 정치의 토대로 작용하였던 공론 영역은 국왕을 점점으로 다양한 논증적 대화가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장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대화의 전형이라 할 언관과 임금 간의 논증적 대화는 공론 영역의 소장과 더불어 발전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당시 공론 영역에서 이루어진 논증적 대화는 당대인이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공유하는 관념인 공감의 체계에 기초하여 관습적인 방식으로 전개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론 영역에서의 논증적 대화는 조정의 중대사를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였던 한자 문화권의 오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공론 영역에서의 논증적 대화는 당대의 사회 · 문화적 맥락 안에서 관습적으로 운용된 논증 장르의 하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Ⅱ. 공론의 개념과 형성 및 발전과정
조선시대는 사대부가 주도하는 정치적 공론 영역을 중심으로 공론 정치가 꽃핀 시대였다. 비록 공론 영역의 소장과 언로의 광개폐색은 시기의 전후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공론 및 공론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여일하였다.
조선시대 공론 정치의 기반이 된 공론의 소통은 언론 삼사라 통칭되는 언관의 논변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언관들은 계, 소, 차자 등 전통적인 상행 논증 장르를 이용하여 임금을 상대로 논변을 펼쳤으며 임금은 이에 대하여 전지, 유시, 비답 등의 하행 장르를 이용하여 언관의 논변에 대하여 논박을 하거나 판정을 하였다. 사안이 중대할 경우 임금은 원로 재신들로 하여금 의론하게 하였고 이러한 수의 과정을 토대로 임금의 최종 판정이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언관을 통한 공론의 소통은 지극히 중시되었다. 언관의 언론 내용은 사관에 의해 일일이 기록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에도 언관의 언론 내용은 새로운 내용일 경우 반드시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조선시대의 언관의 논변은 그 소통의 맥락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조선시대 언관들의 직무는 시정을 논집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임금의 잘잘못을 간하고 백관을 규찰하며 인사의 적부를 논박하는 것이었던 만큼 이러한 활동의 기본 성격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논증적 대화는 서로 표리의 관계를 이루며 변화 · 발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론 및 공론의 소통에 대한 인식은 고려시대로부터 비롯되었다. 『고려사』에는 공론 및 언로에 관한 기사가 산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의 일화와 고려 의종 때 문극겸의 일화가 있다. 김부식의 일화는 임금의 외조부인 이자겸이 김부식의 의론을 ‘천하의 공론’으로 여겨 따르도록 하였다는 것이며, 문극겸의 일화는 의종 때 문극겸이 좌정언으로 직언을 하다가 좌천을 당하였는데 유사가 ‘문극겸은 직신이라 외관에 연이어 좌천시켜 언로의 막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여 결국 중앙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공론에 대한 인식은 추상적인 관념 수준의 것이었다. 공론은 ‘모든 사람들이 옳게 여기는 것’, 즉 실제적인 여론이었다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옳게 여겨야 할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증거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선조 초부터 권신이 배제된 사림 주도의 정치 구조가 정착하면서 공론에 의한 정치가 정립된다. 선조 8년에 이르면 조정의 공론이 나누어져 붕당 정치가 전개되면서 공론 정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공론 정치의 정립은 바로 붕당 정치의 확립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론은 대신이나 왕조차도 따라야 할 것이라는 재전제가 완전히 수용되기에 이른다.
이상으로 조선시대에 공론 영역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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