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음식ㆍ음식의세계 공통]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음식문화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각각 음식의 기능적 측면을 기준으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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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의음식ㆍ음식의세계 공통]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음식문화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각각 음식의 기능적 측면을 기준으로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음식문화란

2. 한국전통음식의 특징

3. 한국전쟁 이전까지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심청전‘ 공양미 삼백 석
  (2) ‘춘향전‘ 금동아리의 비싼 술
 2) 한국전쟁 이전까지 음식 문화적 특징

4. 한국전쟁 이후 1970년까지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 김기림 시인의 ‘학풍’에 나타난 ‘불고기‘
 2) 한국전쟁 이후 1970년까지 음식 문화적 특징

5. 70년대 이후 90년대 말엽까지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 한국의 맛(1988)
 2) 70년대 이후 90년대 말엽까지 음식 문화적 특징

6. 2000년대 이후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칼과 황홀(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2) 혀(조경란)
 2) 2000년대 이후 음식 문화적 특징

7. 각각 음식의 기능적 측면을 기준으로 비교
 1) 한국전쟁 이전까지 음식의 기능적 측면
  (1) 경제적 기능
  (2) 사회적 기능
  (3) 심리적 기능
 2) 한국전쟁 이후 1970년까지 음식의 기능적 측면
  (1) 경제적 기능
  (2) 사회적 기능
  (3) 심리적 기능
 3) 70년대 이후 90년대 말엽까지 음식의 기능적 측면
  (1) 경제적 기능
  (2) 사회적 기능
  (3) 심리적 기능
 4) 2000년대 이후 음식의 기능적 측면
  (1) 경제적 기능
  (2) 사회적 기능
  (3) 심리적 기능

8. 나의 의견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절 때마다 해먹는 음식이 있었으며 춘하추동(春夏秋冬)계절에 따라 나는 새로운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며, 세시음식은 절식(節食)과 시식(時食)으로 나뉘는데 절식은 다달이 끼어있는 명절음식이고, 시식은 계절에 나는 식품으로 만든 음식을 통틀어 말한다. 명절음식으로 정월 초하루에는 떡국,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 추석에는 송편 등을 먹었다. 계절음식은 제철에 새로 나오는 식품으로 봄에는 쑥경단과 진달래 화전을, 여름의 복날에는 육개장과 임자수탕(깻국탕)등을 먹었고, 가을에는 유자화채와 밤단자, 겨울에는 냉면 등으로 계절의 미각을 즐겼다.
3. 한국전쟁 이전까지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심청전‘ 공양미 삼백 석
심학규는 딸의 이름을 청이라 짓고 젖동냥을 하며 길렀다. 홀아버지였지만 심청은 착하게 자랐다. 그녀가 열다섯 살이 되자 걸식하여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고 바느질도 익혔다. 이러한 심청의 소문이 퍼지자 장승상이 양녀로 삼겠다고 하였다. 심청은 자신이 양녀가 되면, 외롭게 살아갈 아버지를 걱정하여 거절하였다. 하루는 몽운사의 주지가 공양미를 얻으러 왔다가 심 봉사를 보고 삼백 석만 부처님께 바치면 눈을 뜨리라고 하였다.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공양미를 받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그러나 빌어먹고 사는 처지에 삼백 석을 구할 길이 없어 근심하게 된다.
(2) ‘춘향전‘ 금동아리의 비싼 술
“금동아리의 비싼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고혈이라.”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학도의 화려한 잔칫상을 풍자하는 대목이다. 만백성의 피눈물이 묻은 금은보화와 산해진미로 사리사욕을 채웠던 탐관오리들. 그들이 즐겼던 호화로운 음식들은 곧 수많은 백성의 굶주림을 대가로 만들어졌다. 의식주의 비중에서 음식의 중요도가 가장 높았던 시절은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기나긴 시간이었다. 음식이 곧 화폐 못지않은 가치를 발휘했고, 보통 사람이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은 1년 중 명절과 제사를 빼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것도 음식이었고, 사람의 살림살이와 됨됨이를 표현하는 것도 음식이었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음식이 곧 삶이자 사람이자 사랑이었던 시절이었다.
2) 한국전쟁 이전까지 음식 문화적 특징
삼국시대는 철기문화의 정착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증가하였고, 그와 동시에 장, 절임, 포와 같은 발효식품의 기술이 정착되어 상비관습으로 이루어졌다. 그외에 구이, 찜, 나물과 같은 음식이 식품생산을 배경으로 보급되어,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에 이르는 과정에서 쌀이 증산되어 밥이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하여 육식이 절제되어 육류조리법이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육류의 음식이 고려후기에는 널리 퍼지는 기회가 되었다. 조선시대는 우리 식생활 문화의 전통이 재정비되고 현재와 비슷한 한국 음식이 완성된 시기로서 중인 계급의 대두로 인한 상하층의 식생활 교류가 일반서민의 식생활 풍습에 큰 자극을 주었다.
또한 조선시대 말기에는 일본과 남방으로부터 토마토호박완두옥수수감자고추고구마 등이 들어와 한국요리의 맛을 다양하게 하였으며, 특히 고추의 유입은 채소와 젓갈을 결합시켜 김치를 만들고 한국의 다른 요리의 매운 맛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4. 한국전쟁 이후 1970년까지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 김기림 시인의 ‘학풍’에 나타난 ‘불고기‘
김기림 시인이 1947년에 잡지 학풍(2권 5호)에 발표한 \'새말의 이모저모 \'란 글 중에 \'불고기\'의 놀라운 전파력에 대하여 말하면서 “\'불고기\'라는 말이 한번 평양에서 올라오자 얼마나 삽시간에 널리 퍼지고 말았는가”라고 광복 이후에 서울에서 \'불고기\'가 널리 퍼진 사실에 대해 증언하였다고 밝혔다. 비슷한 내용을 전하는 「서울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8·15해방과 6·25에 이어 근대화와 개발의 바람이 세차게 불기시작하면서 서울은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말의 전시장을 이뤘다. 바깥 인구가 늘어난 만큼 서울토박이들의 비율은 줄어들고 서울에 전해오는 생활양식도 그만큼 무게가 줄어들게 됐다. 자연히 서울 토박이들이 쓰던 서울말도 맥을 못 추었다. 우선 생일잔치에 선물로 꼭 가져갔던 순 서울말 암치는 어느새 사라지고 민어로 불린다. 또 비웃은 청어로, 너비아니는 불고기로, 무자위(물을 높은 곳으로 자아올리는 기계)는 분수나 호수로 바뀌었다.”라고 하였다.
2) 한국전쟁 이후 1970년까지 음식 문화적 특징
1945년 해방직후 우리나라 식량수급 상황은 매우 열악해 서울에서도 굶는 사람이 속출하는 참혹한 상황이었고 시민들이 쌀을 달라고 외쳐댈 정도였다. “굶어죽어도 예서 - 쌀을 주시오,어린 것 업고 쌀자루 들고 아우성”이라는 기사를 보면, “수천명의 남녀노소가 젓떼기까지 업고 손마다 쌀자루를 들고 시청 시장실로 밀려드러가 쌀을 달라고 아우성을 첫다.”라고 하여 당시의 식량 부족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식생활의 가장 기본인 쌀마저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육류 수급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사회안정을 위해 물가를 정부에서 통제하는 상황이었다. 1946년 8월 2일 현재 물가시세 중 육류는 “소고기 1근 70원, 돼지고기 1근 70원”으로 쇠고기, 돼지고기의 가격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5. 70년대 이후 90년대 말엽까지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1)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 - 한국의 맛(1988)
한국 전통의 맛이 오래오래 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저자의 세 번째 책으로 조리 방법으로 음식을 분류하여 실었다. 또한 음식의 이름은 가능한 한 예스러운 우리 고유어를 찾아 썼다. 이 책에서 쓴 재료와 그 분량은 대개 5인 가족을 기준으로 쓰였다.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부터 1987년의 『한국의 맛』까지 총 26권의 조리서에서 명칭의 변화를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시의전서』에서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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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15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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