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서론
2. 명성황후 민씨의 등장과 대원군과의 갈등
3. 민씨 즉위 후의 세계정세
4. 을미사변의 배경
5. 을미사변의 결정적 원인 ‘인아거일’
6. 을미사변의 준비과정
7. 일본의 명성황후의 시해 준비의 치밀성
8. 을미사변의 진행과정
9. 대원군 행차에서의 의문점
10. 명성황후 시해 당시의 상황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
11. 을미사변 이후에 나타난 변화.
12. 결론
참고문헌
2. 명성황후 민씨의 등장과 대원군과의 갈등
3. 민씨 즉위 후의 세계정세
4. 을미사변의 배경
5. 을미사변의 결정적 원인 ‘인아거일’
6. 을미사변의 준비과정
7. 일본의 명성황후의 시해 준비의 치밀성
8. 을미사변의 진행과정
9. 대원군 행차에서의 의문점
10. 명성황후 시해 당시의 상황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
11. 을미사변 이후에 나타난 변화.
12.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으로 인해서 조선을 둘러싼 대외적인 국제 정세는 러시아와 일본, 영국 3국의 3각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요약해본 대내외적인 변화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공통점은 위에서 본 변화들이 을미사변을 계기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과 대내외적인 변화 속에 항상 러시아와 일본 등의 제국주의 세력의 국가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2. 결론
지금까지 위에서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배경, 경과, 그리고, 그 후에 나타난 대내외적인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것을 간단히 요약해서 정리해보면 일본이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획득하게 되면서 러시아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후에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인정된 일본의 랴오둥반도 영유에 대해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반대로 인해 삼국간섭이 일어났고 일본은 요동 반도를 청에 반환시킨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국제적 위신은 추락하고 조선 정부는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친러적인 경향으로 변해갔다. 그러자 일본은 자신들의 세력을 만회하고 조선에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을미사변은 조선에 파견 된 예비역육군준장인 미우라와 일본 공사관 스기무라를 통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을미사변을 일으킨 진범, 즉, 이들을 뒤에는 일본정부의 고관들이 있었다. 일본은 일본군 수비대 병력을 행동대로 삼아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에 난입하여 왕비를 살해하고, 시체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 뒷산에 묻었다. 하지만, 최근에 역사가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 중에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기 전에 일본군에 의해 능욕을 당하고 그들의 칼에 의해 가슴이 두 번 난도질되어 죽었다는 것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죽은 명성황후는 시체마저 기름에 적셔 불태워졌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에 국내외적인 변화를 살펴보면 을미사변을 계기로 김홍집 내각에 의해 일본에 유리하게 조선의 내정이 운영되다가 아관파천을 계기로 러시아의 세력이 조선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자, 이것을 간과 할 수 없었던 고종황제가 환궁하여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왕을 황제라 칭하여 중외에 독립제국임을 선포하여 러시아와 다른 여러 외세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등의 대내적인 일련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대외적인 국제정세에 변화를 보면 무엇보다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양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깊어졌다는 것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의 등장으로 인해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3국의 3각 관계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을미사변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아직도 식민지적 잔재가 불식되지 못하고 있다. 명성황후라는 말도 요즘 드라마와 뮤지컬 덕분으로 귀에 익은 것이고, 그전에는 민비가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민비가 주는 인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본, 청나라, 러시아를 끌어들인 줏대 없는 외교, 시아버지 대원군과 처절하게 권력투쟁을 벌인 여인, 궁중에 무당을 불러놓고 주야로 굿판을 벌이면서 재정을 낭비한 여인, 민씨 척족을 권력 주변에 모아놓고 세도정치를 꾸민 여인, 아마 이런 것들이 민비를 둘러싼 고정 관념이었다. 황후를 비하하는 우리의 관념 속에는 황실과 대립 관계에 있었던 친일개화파에 대한 숭앙 또한 담겨있었다. 해방 후 우리의 삶이 일제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친일개화파가 선각자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오늘의 일본으로 하여금 다시금 방자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면서 침략을 정당화하는 원인의 하나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 사건은 역사를 보는 우리의 관점이 더욱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제시 해주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사건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속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다. 일본에 의한 황후의 죽음은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이 2천만 국민의 가슴을 울렸고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대한제국이라는 모습으로 노력이 나타났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한국인의 가슴속에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1910년 이전의 시기를 ‘구한 말’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국가는 빼고 그 시기만을 기억하겠다는 뜻 속에서 대한제국이 갖는 의미를 부정하는 모습들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근대화를 중점으로 근현대사를 연구 하고 해석하는 노력 중에 과연 자주독립의 노력을 보였던 대한제국의 의미는 매우 중요시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에서 자주독립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낸 대한제국의 계기가 을미사변 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사건이 결국 우리나라의 위기를 국가 발전과 민족 자존심의 회복의 도약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사건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가 이제까지 너무 무관심했다는 점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을미사변은 분명 부끄러운 역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역사에 대해 무관심해왔다. 세계열강들의 틈에서 우리 민족은 자주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도, 우리 민족의 국모도 지켜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더 이상 우리 후손들이 이런 슬픈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참고문헌
명성황후-최후의 새벽 쓰노다 후사코 저 김은숙 편 1999 조선일보사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선전포고 없는 일본의 대러 개전 최문형 저 2001 지식산업사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한영우 저 2001 효형출판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이덕주 저 2001 에디터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아관파천 기의 국제관계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편 1998 동림사
새롭게 읽는 명성황후 이야기 유홍종 1999 현대문학
명성황후 시해사건 웨베르 보고서 이영숙 2001 한국전통문화복원사업회명성황후추모사업회
이렇게 요약해본 대내외적인 변화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공통점은 위에서 본 변화들이 을미사변을 계기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과 대내외적인 변화 속에 항상 러시아와 일본 등의 제국주의 세력의 국가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2. 결론
지금까지 위에서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배경, 경과, 그리고, 그 후에 나타난 대내외적인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것을 간단히 요약해서 정리해보면 일본이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획득하게 되면서 러시아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후에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인정된 일본의 랴오둥반도 영유에 대해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반대로 인해 삼국간섭이 일어났고 일본은 요동 반도를 청에 반환시킨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국제적 위신은 추락하고 조선 정부는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친러적인 경향으로 변해갔다. 그러자 일본은 자신들의 세력을 만회하고 조선에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을미사변은 조선에 파견 된 예비역육군준장인 미우라와 일본 공사관 스기무라를 통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을미사변을 일으킨 진범, 즉, 이들을 뒤에는 일본정부의 고관들이 있었다. 일본은 일본군 수비대 병력을 행동대로 삼아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에 난입하여 왕비를 살해하고, 시체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 뒷산에 묻었다. 하지만, 최근에 역사가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 중에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기 전에 일본군에 의해 능욕을 당하고 그들의 칼에 의해 가슴이 두 번 난도질되어 죽었다는 것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죽은 명성황후는 시체마저 기름에 적셔 불태워졌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에 국내외적인 변화를 살펴보면 을미사변을 계기로 김홍집 내각에 의해 일본에 유리하게 조선의 내정이 운영되다가 아관파천을 계기로 러시아의 세력이 조선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자, 이것을 간과 할 수 없었던 고종황제가 환궁하여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왕을 황제라 칭하여 중외에 독립제국임을 선포하여 러시아와 다른 여러 외세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등의 대내적인 일련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대외적인 국제정세에 변화를 보면 무엇보다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양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깊어졌다는 것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의 등장으로 인해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3국의 3각 관계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을미사변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아직도 식민지적 잔재가 불식되지 못하고 있다. 명성황후라는 말도 요즘 드라마와 뮤지컬 덕분으로 귀에 익은 것이고, 그전에는 민비가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민비가 주는 인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본, 청나라, 러시아를 끌어들인 줏대 없는 외교, 시아버지 대원군과 처절하게 권력투쟁을 벌인 여인, 궁중에 무당을 불러놓고 주야로 굿판을 벌이면서 재정을 낭비한 여인, 민씨 척족을 권력 주변에 모아놓고 세도정치를 꾸민 여인, 아마 이런 것들이 민비를 둘러싼 고정 관념이었다. 황후를 비하하는 우리의 관념 속에는 황실과 대립 관계에 있었던 친일개화파에 대한 숭앙 또한 담겨있었다. 해방 후 우리의 삶이 일제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친일개화파가 선각자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오늘의 일본으로 하여금 다시금 방자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면서 침략을 정당화하는 원인의 하나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 사건은 역사를 보는 우리의 관점이 더욱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제시 해주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사건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속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다. 일본에 의한 황후의 죽음은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이 2천만 국민의 가슴을 울렸고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대한제국이라는 모습으로 노력이 나타났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한국인의 가슴속에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1910년 이전의 시기를 ‘구한 말’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국가는 빼고 그 시기만을 기억하겠다는 뜻 속에서 대한제국이 갖는 의미를 부정하는 모습들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근대화를 중점으로 근현대사를 연구 하고 해석하는 노력 중에 과연 자주독립의 노력을 보였던 대한제국의 의미는 매우 중요시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에서 자주독립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낸 대한제국의 계기가 을미사변 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사건이 결국 우리나라의 위기를 국가 발전과 민족 자존심의 회복의 도약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사건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가 이제까지 너무 무관심했다는 점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을미사변은 분명 부끄러운 역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역사에 대해 무관심해왔다. 세계열강들의 틈에서 우리 민족은 자주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도, 우리 민족의 국모도 지켜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더 이상 우리 후손들이 이런 슬픈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참고문헌
명성황후-최후의 새벽 쓰노다 후사코 저 김은숙 편 1999 조선일보사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선전포고 없는 일본의 대러 개전 최문형 저 2001 지식산업사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한영우 저 2001 효형출판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이덕주 저 2001 에디터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아관파천 기의 국제관계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편 1998 동림사
새롭게 읽는 명성황후 이야기 유홍종 1999 현대문학
명성황후 시해사건 웨베르 보고서 이영숙 2001 한국전통문화복원사업회명성황후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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