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남명 조식(南冥 曺植) 생애와 사상 & 남명 조식의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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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남명 조식(南冥 曺植) 생애와 사상 & 남명 조식의 제자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남명 조식의 생애
 (2) 남명 조식의 사상
2. 남명 조식의 제자들
 (1) 곽재우
 (2) 정인홍
 (3) 김면
 (4) 이대기

본문내용

으로 합천군수가 되고, 또 무계에서도 승전하여 의병대장의 호를 받았다. 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충청 ·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진주하여 선산에 있는 적을 공격할 준비를 마친 뒤, 갑자기 병사하였다. 병조판서가 추증되고, 고령의 도암사에 배향되었으며, 1607년 이조판서가 가증되었다. 저서에 《송암실기》가 있다.
(4) 이대기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임중, 호는 설학이다. 경상도 초계에서 태어났으며, 최영경과 조식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조식이 장인인 이희안과 절친하여 특별히 이끌어 주었으므로 성리학에만 전념하고 과거 공부는 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고향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창의장 정인홍 휘하에서 곽재우 등과 함께 낙동강의 오른쪽 지역을 지킨 공으로 장원서별제에 임명되었다. 이어 의흥현감·형조정랑·영덕현령 등을 거쳐 광해군 때 청풍군수·사도시정 등을 거쳐 함양군수가 되었다. 이때 대북파의 횡포를 비판하다가 삭탈관직된 김천찰방 문경호의 신원을 요구하는 통문을 도내에 돌린 죄로 백령도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풀려나서 간성군수에 임명되었나 나아가지 않았다. 합천의 청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에《백령지》《허와기》《설학소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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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0
  • 저작시기2014.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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