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본문 내용
2. 주해 및 분석
3. 신약에 대한 적용
4. 삶에 대한 말씀 적용
2. 주해 및 분석
3. 신약에 대한 적용
4. 삶에 대한 말씀 적용
본문내용
목전에 악을 행하여” 야일 사사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하나님을 배신한다. 여호와의 목전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이 보시는 중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남을 알아야 했다.
이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같은 우상들과 이방신인 아람 신들 시돈의 신들 블레셋 사람의 신들까지 섬기는 우상 숭배였다.
16절에 “마음에 근심하다”라고 변역된 히브리어는 ‘티크차르’인데 이 단어는 민21:4;삿16:16;슥11:2 등에서도 나타나는 ‘조급해지다, 참을 수 없게 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 값으로 이방인들의 압제로 고통을 당하지만 그런 모습을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이 불쌍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즉, 죄로 인해 상심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애끓는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11:1절에서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라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나은 자식”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처음이 중요하다. 한 해의 농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소출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에게는 본처의 자식이 중요하다. 여기에 입다는 본처의 소생이 아니라 기생이 나은 자식이다. 그러나, 길르앗이 블레셋과 암몬 족속의 압제 아래서 신음하던 아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입다를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길르앗의 본처에게서 나온 자식들이 2절과 같이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하였다. 이복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배척당하는 수모를 경험해야만 했다.
입다는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서 혼자 돕 땅에 거주하엿다. 그런데, 입다는 그 곳에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잡류들의 두목이 되어 용맹을 떨치고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이 외세의 압제 아래 신음하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슬픈 현실을 해결해 줄 인물을 찾게 되엇고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버렸던 입다를 장관으로 맞이했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인간들이었다. 인간관계를 순전히 계산적으로만 생각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11:10에 지난날 수많은 모멸감과 배신감을 준 이복형제들의 청을 외면치 않은 입다의 모습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지난날 수많은 모멸감과 배신감을 맛보아야만 했던 입다는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형제들의 청을 외면치 않앗다. 입다는 비록 형제들은 자신을 대적했지만 자기는 그들을 대적할 수가 없엇던 것이다. 더욱이 입다는 이모든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11:12-28에 입다는 암몬을 설득하려고 한다.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게게 잇어서 먼 친척관계에 있던 암몬 족속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지 않고 먼저 그글과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
이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같은 우상들과 이방신인 아람 신들 시돈의 신들 블레셋 사람의 신들까지 섬기는 우상 숭배였다.
16절에 “마음에 근심하다”라고 변역된 히브리어는 ‘티크차르’인데 이 단어는 민21:4;삿16:16;슥11:2 등에서도 나타나는 ‘조급해지다, 참을 수 없게 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 값으로 이방인들의 압제로 고통을 당하지만 그런 모습을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이 불쌍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즉, 죄로 인해 상심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애끓는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11:1절에서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라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나은 자식”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처음이 중요하다. 한 해의 농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소출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에게는 본처의 자식이 중요하다. 여기에 입다는 본처의 소생이 아니라 기생이 나은 자식이다. 그러나, 길르앗이 블레셋과 암몬 족속의 압제 아래서 신음하던 아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입다를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길르앗의 본처에게서 나온 자식들이 2절과 같이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하였다. 이복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배척당하는 수모를 경험해야만 했다.
입다는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서 혼자 돕 땅에 거주하엿다. 그런데, 입다는 그 곳에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잡류들의 두목이 되어 용맹을 떨치고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이 외세의 압제 아래 신음하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슬픈 현실을 해결해 줄 인물을 찾게 되엇고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버렸던 입다를 장관으로 맞이했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인간들이었다. 인간관계를 순전히 계산적으로만 생각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11:10에 지난날 수많은 모멸감과 배신감을 준 이복형제들의 청을 외면치 않은 입다의 모습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지난날 수많은 모멸감과 배신감을 맛보아야만 했던 입다는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형제들의 청을 외면치 않앗다. 입다는 비록 형제들은 자신을 대적했지만 자기는 그들을 대적할 수가 없엇던 것이다. 더욱이 입다는 이모든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11:12-28에 입다는 암몬을 설득하려고 한다.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게게 잇어서 먼 친척관계에 있던 암몬 족속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지 않고 먼저 그글과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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