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mandala 曼茶羅] 연구 - 문자적 해석(방황하는 불교), 종교적 해석(불교와 사회 의식)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만다라[mandala 曼茶羅] 연구 - 문자적 해석(방황하는 불교), 종교적 해석(불교와 사회 의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방황하는 불교:문학적 해석
 1) 소설의 형식
 2) 지산과 법운의 관계
 3) 승려와 도시

3. 불교와 사회 의식:종교적 해석
 1) 소외와 참여
 2) 미륵 사상의 대두

4. 결론

본문내용

고급천의 승복을 입고, 금테 안경을 끼고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손엔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는데, 우리를 흘낏 바라보더니 주택가로 뚫린 골목길로 사라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어디로든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A사로 가 볼까요? B사로 가든지……”
지산은 고개를 흔들었다.
“마찬가지야, 결국. 그러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구.”
그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여관이라고 쓰인 아크릴 간판들이 죽 잇대어 있었다.
골목길에서 서성거리는 짙은 화장의 여인들…….
(『만다라』p.60. 61)
위는 도시에 나타난 승려들의 옆 모습이다. 산 떠난 중은 물 떠난물고기나 진배없다는 것이 지산의 말이다. 그들은 도시의 무관심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진 남성으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관에 들면 여자가 필요 없는가 물어왔고 보리의 눈에는 그저 불쌍하게 비쳤다. 도시 가운데서도 특히 서울의 황량한 풍경 속에 이들의 모습이 초라하게 드러난다. 많은 사람과 집이 있으나 서로 떨어져 흩어져 있을 뿐 훈훈하게 인간다운 관계를 볼 수 없었다. 여기에서 20세기 도시의 성격을 잠시 규정짓고 넘어가자.
『만다라』가 보여준 서울의 삭막함과 추악함에는 T.S. 엘리엇의 런던, 보들레르의 빠리 등 다른 구라파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엘리엇 시의 주요 소재인 얼굴 없는 군중과 박제 인간처럼 겉도는 정신의 표박은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기현상이며 이를 김성동이 엘리엇과 똑같은 위기 의식으로 포착한 것이다. 문화와 질서의 상징인 중세 도시에 대한 향수와 아울러 후자는 지적 불모와 고전적 인간의 상실을, 전자는 “이전구투”로 표현된 권모술수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참상을 슬퍼한다. 그의 눈에 비친 도시는 욕망의 도가니였다.
지산이 죽은 후 도반을 잃은 법운은 더욱 처참해졌다. 그는 쫓기는 마음으로 노사를 만나보고 마침내 어머니를 만난다. 이 숨가쁜 경로를 추적하면 아래와 같다.
아아 노사 역시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뒷덜미를 잡히고 있는 것일까. 실행이 수반되지 않는 관념외 공허함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번민하고 있는 것일까.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것은 다만 방황하는 중생의 안목이 빚은 오류일 거야. 내 저열한 질투일거야.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노사 역시 나처럼 중생스런 발상으로 번민하고 있는 것이라는 불경스런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니. 그리고 비중생스런 포우즈로 <병 속의 새>이야기를 해주던 때의 노사보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듯 완강한 수직이 고수되던 척추를 숙이고 또 나를 부끄럽게 하고 나를 절망케 하던 그 형형한 광채가 사라진 눈을 자주 깜박이며 탁면의 승려들과 무릎을 맞대고 있는 현대의 노사에게서 EkEMt한 친화감과 더불어 육친적인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니. 왕년의 노사에게 매료되어 그 아름다운 얼굴에 함몰되긴 했지만 인간적인 애정을 교감하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노사에게서 나는 늑골과 늑골이 부딪치는 뻑적지근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나 혼자 불행하고 싶지 않고 나 혼자 중생이고 싶지 않다는 비열한 에고의 발로일까. 사냥할 용맹을 상실한 늙은 사자처럼 초췌해 보이는 노사에게서 나는 차라리 연민이라고 해야 마땅할 진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도달하고 극복해야 할 목표를 상실한 자의 씁쓸함과 맥빠지는 허탈감에 젖어 드는 것이었다. 사력을 다해 선주자를 따라 잡았는데, 그러나 그 선주자가 달릴 것을 포기하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후주자가 맛보게 되는 고독감 같은 것이 순간 나를 엄습하는 것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호텔 방을 나왔다. 내 흔들림의 근원은 규명되지 않았다. 고독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 마침내 나는 두 번째의 결정을 내려다. 그 여자를 만나기로. 그 여자를 만나서 내 외로움의 근원을 규명해 보기로.
(『만다라』p.174)
『만다라』에서 주인공과 노사의 관계는 그와 지산의 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사의 말씀과 거동은 주인공과 독자에게 한국 불교의 전통을 대변한다. 또한 그는 주인공 법운의 변화를 비추어 보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노사에 대한 법운의 반응으로 독자는 소설의 진행을 가늠하게 된다.
처음 그가 노사에게 받은 화두는 호리병 속에든 새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운에게는 그것을 잡아서 어쩌라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싹튼 지 오래이다. 깨달음과 실천 사이의 공백을 메울길이 막연했으며 그 고백에 대한 노사의 무관심이 불만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운은 노사를 계속 만나왔다. 그런데 도시는 이제 노사마저도 일그러뜨렸다. 서울 호텔 방에 머물고 있는 노사의 눈빛은 지난 날과 달랐다. 그는 욕망의 덫에 걸린 승려들의 무리에 끼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품었던 존경이 동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지녔던 고정관념이 붕괴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를 허탈감에서 일으켜 세운 것은 분노나 경멸이 아니라 연민에서 우러나오는 끈끈한 정이었으며, 이는 또한 노사 역시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수긍하는 너그러움과 인간적인 성숙을 뜻한다. 결국 이러한 너그러움과 성숙함에서 법운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으며, 오랫동안 닫혔던 하나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또 하나의 문이 열릴 수 있음을 암시하며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만남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따른다. 방향전환을 위해서는 방황을 일단 종결지어야 했고 방황을 종결지으려면 무엇을 그토록 찾아 헤매였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랬는가 규명해야만 했다. 지산과 법운이 무엇보다 두려워한 것은 고독이었고 첫 번째로 그들에게 고독을 안겨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러므로 고독의 제일 원인인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고독의 정체를 규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고독을 초극하는 첫 과제라고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자면 어머니는 주인공의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었으므로 방황하는 자에게 최종적인 귀착점으로써 한 번은 통과해야 할 관문 같은 어머니를 만난 다음 보리를 불러낸다. 여관까지 따라온 그녀에게 그는 자신이
  • 가격3,0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14.08.30
  • 저작시기2014.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3562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