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서양집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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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항 이후 서양집의 등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항이후 서양 집의 등장

2) 식민지 시대 공공건물

3) 식민지 시대 새로운 집
(1) 토막
(2) 문화주택
(3) 영단주택
(4) 도시형 한옥

4) 해방이후 집
(1) 해방촌

5) 박정희 개발시대와 집
(1) 벌집
(2) 달동네
(3) 청계천 판자촌
(4) 아파트

6) 강남, 타워펠리스와 서민의 집

본문내용


(4)아파트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촉발된 도시의 주택문제는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합 화와 고층화를 유도하게 되었다. 택지의 부족과 대량 건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거의 집단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화와 더불어 시멘트, 철근, 유리 등의 근대적 건축재료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철근 콘크리트구조와 같은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주거를 고층화 시킬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아파트 형식의 도입은 이미 일제 말기에 조선주택영단의 사업에서 이루어 졌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혜화동에 건설된 목조 아파트는 이 땅에 시도된 최초의 아파트 형식이라고 볼수 있다. 해방이후에는 1964년 마포 아파트의 건설이 아파트 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저층 단독주택에 길들여진 당시 사람들에게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은 크게 환영받을 수 없었다. 고층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마당을 사용 할 수 없다는 불편함, 게다가 설비의 미숙함으로 선뜻 들어 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주택 구입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에게는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파트는 무주택 서민들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식되었다.
그 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의 아파트 단지개발이 촉진되고 이들은 신흥 시가지로 계획된 도시 외곽 에 많은 땅을 사들여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에 이르렀고, 한정된 토지에 더 많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고층 아파트 단지를 양산 하였다.
아파트에 대한 교환가치의 증대와 더불어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거 공간 및 설비의 고급화, 단지 공동시설의 체계화 등을 통하여 사용가치도 증대되었다. 가스의 사용, 입식 부엌가구, 수세식 좌변기, 욕조, 공공용 거실, 개임용 침실이 도입되어 생활감각을 만족시켜주었다. 그 외에 단위 주택의 편리성인 주차장, 놀이터, 소공원, 상업 시설 등 주거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근린 생활 시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6) 강남, 타워팰리스와 서민의 집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이다. 서울의 급격한 인구팽창으로 강북이 포화상태에 다다르자 강남권을 개발하였다. 특히 대단위 주거단지 개념의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강북과는 달리 강남은 준비된 도시계획으로 건설되었다. 잘 정리된 도로와 편의시설은 좋은 업무환경과 주거환경을 갖춘 곳으로 발전했다.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며 많은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이 강남의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땅에 납작 엎드린 판자촌 또한 현재까지 존재한다. 한국의 초고속 성장은 많은 것을 주지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한 비인간적인 불균형 성장인 것이다.
타워 팰리스
도곡동 일대를 단숨에 신흥부촌으로 올려놓은 타워팰리스는 '지역주민의 반발과 외환위기'라는 암초 가운데서 탄생했다. 입주민들의 선별부터 강남지역의 부유층을 기준으로 두었고 이후 입주자들 역시 자연스레 그들의 수준에 맞춰졌다. 거주공간은 철저하게 외부공간과 분리 되고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공간이 되었다.
실내골프연습장, 스포츠센터, 사우나, 수영장, 연회장 등이 초고층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외 4개동 1∼2층의 상가에는 1%의 최 상류층 고객만을 위한 업종이 들어선다. 레스토랑, 중국집, 도자기점, 화랑, 비디오숍, 세탁소, 와인숍, 떡집, 아이스크림 전문점, 도너츠 전문점, 부동산 중개업소 등이다. 타워 팰리스의 문제점은 전용면적이 적고 높은 관리비, 인근지역의 조망권 침해, 교통 혼잡이 있다.
구룡마을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570번지 일대를 일컫는 구룡마을, 그러나 이 마을은 행정 지도 어디에도 표시돼 있지 않다. 주민 대부분이 사유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별 주소도 없다. 이른바 유령 마을이다. 강남의 부를 상징하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직선으로 불과 1.3㎞ 거리인 이 마을에는 동사무소나 치안센터, 소방서 같은 기본적인 행정기관은 물론 흔하디흔한 학원이나 오락실 하나 없다.
구룡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7월,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부가 대대적인 빈민가 철거작업을 벌이면서였다. 88올림픽이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란 사실은 이곳에서도 분명해졌다. 하루아침에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지으면서 시작된 마을은 1988년 규모가 급격히 커져 현재 17만여평에 2천여 가구가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판자촌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서너평인 쪽집에 사는 주민들의 삶은 ‘열악함’ 그 자체다. 비닐 지붕과 너덜너덜한 문짝이 지탱하고 있는 집들은 걷어차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하다. 날이 따뜻해지면 더욱 심해질 악취와 색 바랜 옷들이 널린 빨래줄, 동네를 배회하는 비쩍 마른 강아지는 1960년대 판자촌 바로 그 광경이다. 공동화장실도 그때 그대로, 화장실 문을 열면 나무 발판 두 개 위에 나무 뚜껑이 놓여 있다. 주민의 80% 이상은 아직도 이런 공동화장실을 쓴다. 1960년대에서 진화된 것이 있다면 LP가스통이 들어와 연탄불을 벗어났다는 점과 전화선이 들어왔다는 것 정도. 학생이나 젊은 사람이 있는 가정에서는 인터넷을 끌어오기도 했다.
불법으로 남의 땅에서 살다보니 마을 주민들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자신이 살고 있는 개포동으로 올리지 못하고 인근 교회나 일하는 음식점, 친척집 등으로 위장전입을 해놓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이곳을 강남구 개포1동의 일부로 인정받아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등재하려고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기각되고 말았다.
빈부의 차는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나무로 벽을 대고 비닐로 지붕을 씌운 판잣집의 규모부터가 다양하다. 최하 서너평짜리 쪽집에서 이런 집들을 두세채 튼 7, 8평짜리 집에서 20평이 넘는 ‘맨션’도 있다고 한다. 현재 2,000여채의 판잣집 가운데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1,000가구 정도다. 절반 정도는 비어 있는 셈이다. 비어 있는 집도 마을에서 인정하는 ‘주인’은 다 있다. 판잣집 입구마다 마을자치회에서 만든 주민 명표가 붙어있어 주소도, 건축물 대장도 없지만 ‘주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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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1
  • 저작시기2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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