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집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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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집의 특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 집의 특징
(1) 신분제도와 가사규제
(2) 음양오행설
(3) 풍수지리설
(4) 숭유억불정책

2. 계층별 집의 특징
(1) 서민 주택
① 재료적 분류
- 지붕의 재료
- 벽의 재료
② 지역적 분류

(2) 중류 주택

(3) 상류 주택
① 양반집 구조의 특징
② 양반 주거 문화의 특징-내외법
③ 대청

3. 부엌(가사노동공간)

4. 화장실(생리위생공간)

5. 조선시대 정원-소쇄원

본문내용

2004, 한국공간연구회, p.112~114
한국의 전통가옥에서의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고 저장하기도 하며, 난방을 하는 공간을 말한다. 난방은 어김없이 온돌로 하였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가옥이라고 하더라도 부엌은 안방과 붙여서 짓고 취사와 난방을 겸하도록 했다. 이러한 구조는 안방에 거주하는 안주인이 부엌으로 출입이 용이하도록 한 것임에 틀림없다.
부엌은 주로 동쪽이나 동남쪽에 위치하는데 대문과 안방의 배치관계에 따라서 부엌의 향이 정해졌다. 흙바닥에 부뚜막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솥이 대,중,소로 설치되어 기본적인 밥과 국이 주가 되었다. 부엌 옆에는 찬간을 두어 그릇을 보관하며 음식을 장만하였다. 난방을 하지 않는 여름에는 부엌 밖에 화덕을 놓고 사용하였으며 부엌문 안쪽에 저장물통인 물수덕을 놓고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배수는 안마당에 설치된 하수구를 이용하였다. 식품의 저장을 위해 채광과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장독대를 두었고, 광 곳간 고방 찬간 등이 설치되었으며, 호남지방에는 젓갈을 담아서 보관하는 젓곳간이라는 특수공간도 있었다. 가족의 식사는 장유유서 및 내외사상에 따라 가장 연장자인 어른이 먼저 식사를 하였고 남녀가 따로 하였으며, 시아버지는 사랑채에서 독상을 받았다. 이렇게 한 가정에서 따로따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작고 가벼운 좌식 식탁인 소반이 발달 하였다.
취사작업은 부엌을 중심으로 한 취사공간에서 이루어지지만 바느질과 빨래 등의 여성의 가사노동은 안채의 부엌 주변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일반 서민은 안방과 건넌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빨래는 우물가나 시냇물에서 이루어진다.
4. 화장실(생리위생공간) 아르케,『한국의 전통민가』, 1999, 주남철, p.68~70
생리위생공간은 배설행위와 수세와 목욕을 행하는 공간이다.
배설행위를 위해서는 측간을 만드는데 가난한 서민들은 한간의 측간을 남녀 공동으로 이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남자들만이 사용하는 외측과 여자들만이 이용하는 내측을 행랑채와 안채 주변에 따로 짓는다. 그러나 야간에는 물론 때로 주간에도 안방 옆의 골방이나, 사랑채의 침방에 요강을 비치하고 여기에 소변을 본다. 세수간이나 목욕간은 따로 짓지 않는데, 일반적으로 안사람들은 부엌 앞마당이 세수간이 되고 주인은 사랑채 앞 기단에 세숫대야를 놓고 세수한다. 한편 안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엌이나 광에서, 또 방에서도 큰 그릇에 더운물을 담아 목욕하거나 부엌 뒷마당에 굴뚝을 의지하여 헛간처럼 벽을 둘러치고 목욕을 하였다고 한다. 남자들은 개천에서 목욕을 하였고, 주인의 경우에는 방이나 광과 같은 공간에서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몸을 씻었다.
5. 조선시대 정원의 특징
조선시대에는 담장안의 외부공간만이 정원이 아니라, 담장 밖 자연공간까지 확대하여 정원으로 생각하였다. 사대부가나 별서(=농장 가까이에 별장처럼 따로 지은 집.)는 정원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 자기의 의도에 따라 정원을 꾸미고 가꾸어 왔다. 가장 중요한 점은 “비록 사람이 만들되 마치 하늘이 만든 것처럼 천연스럽게 한다”라고 하였다. 즉, 자연환경의 여건에 상응되게 집을 짓는 것이다.
구성 요소로는 석물(돌을 가공한 것)과 샘터 도랑 석루조(집터 안의 빗물이나 도랑물을 집터 밖으로 흘려 내보내는 곳에 놓는 것) 정자 연못 등이 있다. 정원에는 나무와 화초 또 지피식물(땅의 겉면을 덮고 있는 잡초 같은 것 )들을 심는다.
▷ 담양 소쇄원 대원사,『소쇄원』, 2000, 정재훈, p.10/23~24/27~30/80~92
‘소쇄(瀟灑)’라는 말은 원래 공덕장이 쓴 <북산이문>에 나오는 말로 ‘마음과 기운이 상쾌하고 맑고 깨끗함’을 뜻한다. 소쇄원은 사적 304호로 지정된 자연스러운 조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림(園林)이다. 대체적 모습은 계곡물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이자 비대칭적인 산수원림이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광주호가 시원스럽게 조성되어 있다. 이 광주호가에는 식영정이 있고 식영정에서 마주보이는 500미터 거리에 환벽당이 자리를 하고 있다. 식영정은 현재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에 팔작지붕을 한 간결한 정자 형태의 건물이다. 한 칸은 온돌방이고 한 칸은 마루이다. 환벽당은 식영정 남서편 조대(낚시터)앞 작은 언덕 위에 세운 아담한 기와집으로 양산보의 처남인 김윤제가 나주 목사를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세운 서재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팔작지붕인데 두 칸은 방이고 한 칸은 마루이다.
소쇄원 조영에는 조선의 선비 정신이 담겨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학문적 이상과 현실 정치 사이에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좌절하였다. 그리하여 주자가 1183년 중국 복건성 숭안현 무이산 계곡 무이구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자연에 은둔한 행적을 따라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자연의 경승지를 찾아 초야에 은둔했다.
소쇄원의 건물 가운데 광풍각과 제월당이 있다. 광풍각의 이름은 송의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평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밝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네’라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과 측면이 세 칸,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형 건물이다. 광풍각 건물의 짜임새를 보면, 사방은 개방된 마루이고 중앙의 한 칸이 온돌방이다. 온돌방 사방에 문짝을 달았고, 추위를 대비하여 방을 들였지만 터진 사방으로 시원한 바람과 소쇄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정자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집이다. 제월당은 광풍각의 당호와 같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평한 ‘여광풍제월’에서 따온 것이다. 소쇄원 서쪽 가장 높은 단 위에 건립되어 있다.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에 팔작지붕으로 된 간결한 집이다. 좌측의 한 칸은 간략한 서책을 둘 수 있는 다락을 둔 온돌방이며 두 칸은 마루이다. 마루 두 칸은 전면과 측면이 개방되어 있고 뒷면은 판벽과 판문으로 되어 있다. 선비가 거처하는 최소 규모이자 최대의 공간이다. 이 정원은 자연의 뛰어난 경치를 위주로 하여 인공을 절제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가 돋보이게 만든 것으로, 수목과 화초 및 각종 경물(景物)들도 우리나라 전통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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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4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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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4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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