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마오쩌둥의 실질적인 권력
3. 덩샤오핑의 실질적인 권력
4. 장쩌민의 실질적인 권력
5. 과거 중국지도자가 가졌던 실질적인 권력
6. 과거 중국지도자의 권력과 후진타오의 권력 비교
7. 사례를 통한 후진타오의 권력 분석
8. 결론
2. 마오쩌둥의 실질적인 권력
3. 덩샤오핑의 실질적인 권력
4. 장쩌민의 실질적인 권력
5. 과거 중국지도자가 가졌던 실질적인 권력
6. 과거 중국지도자의 권력과 후진타오의 권력 비교
7. 사례를 통한 후진타오의 권력 분석
8. 결론
본문내용
로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넘겨주었다. 이는 후진타오가 원로 세력들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한 정치개혁의 일원으로서 해석이 가능하다. 즉 이는 정황상 후진타오시대에 원로세력들의 정치개입이 심하였는지 나타내는 대목 중 하나다.
7. 사례를 통한 후진타오의 권력 분석
후진타오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약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는 후진타오는 2006년 5월 후진타오가 황해에 북해 함대를 시찰하던 도중 두 척의 군함에서 후진타오가 있던 구축함을 향해 사격을 가한 적이 있었다. 체포된 함정관계자의 자백에 따르면 발포 명령은 장쩌민의 세력 해군 사령관 장딩파가 부하를 시켜 일으킨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상하이방 인물 중 베이징시 당서기 류치는 베이징일보에 “총서기는 중앙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비서장이자, 당내 회의를 연락하는 소집인에 불과하다.” 라고 언급했으며, 국방부장 량광례는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을 중요 지도사상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8. 결론
결론적으로 후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었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은 ‘아니오’ 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내용과 같이 과거의 중국의 지도자와는 다르게 후진타오의 개인적 성향 이 미친 영향이 후진타오의 권력에 영향을 주었다. 후진타오의 개인적 성향은 ‘저자세’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없었고, 장쩌민처럼 권력을 장악하는 힘도 부족했다. 또한 시대적 상황으로도 중국의 정치 제도화가 됨으로서 당내 지도자의 권력은 상대적으로 혁명 간부 세대보다 약했고, 특히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후진타오시대에 장쩌민 세력이 더 많이 포진되어있었기 때문에 후진타오는 권력을 행사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가 2006년에는 장쩌민의 세력 해군 사령관 장딩파에게 암살위기 까지 겪는다. 후진타오는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리커창을 지목했지만 장쩌민세력의 영향으로 시진핑이 중국의 차기 지도자가 되었다. 이도 역시 과거의 중국의 지도자들 과는 다르게 집단지도체제의 영향과 후진타오 지도자의 권력보다 장쩌민의 세력이 강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도 시진핑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이는 원로세력들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한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이 또한 후진타오시대에 원로세력들의 정치개입이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결론적으로 후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7. 사례를 통한 후진타오의 권력 분석
후진타오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약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는 후진타오는 2006년 5월 후진타오가 황해에 북해 함대를 시찰하던 도중 두 척의 군함에서 후진타오가 있던 구축함을 향해 사격을 가한 적이 있었다. 체포된 함정관계자의 자백에 따르면 발포 명령은 장쩌민의 세력 해군 사령관 장딩파가 부하를 시켜 일으킨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상하이방 인물 중 베이징시 당서기 류치는 베이징일보에 “총서기는 중앙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비서장이자, 당내 회의를 연락하는 소집인에 불과하다.” 라고 언급했으며, 국방부장 량광례는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을 중요 지도사상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8. 결론
결론적으로 후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었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은 ‘아니오’ 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내용과 같이 과거의 중국의 지도자와는 다르게 후진타오의 개인적 성향 이 미친 영향이 후진타오의 권력에 영향을 주었다. 후진타오의 개인적 성향은 ‘저자세’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없었고, 장쩌민처럼 권력을 장악하는 힘도 부족했다. 또한 시대적 상황으로도 중국의 정치 제도화가 됨으로서 당내 지도자의 권력은 상대적으로 혁명 간부 세대보다 약했고, 특히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후진타오시대에 장쩌민 세력이 더 많이 포진되어있었기 때문에 후진타오는 권력을 행사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가 2006년에는 장쩌민의 세력 해군 사령관 장딩파에게 암살위기 까지 겪는다. 후진타오는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리커창을 지목했지만 장쩌민세력의 영향으로 시진핑이 중국의 차기 지도자가 되었다. 이도 역시 과거의 중국의 지도자들 과는 다르게 집단지도체제의 영향과 후진타오 지도자의 권력보다 장쩌민의 세력이 강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도 시진핑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이는 원로세력들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한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이 또한 후진타오시대에 원로세력들의 정치개입이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결론적으로 후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지도자의 권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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