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문제제기
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Q/A
3. 마르크스 파리꼬뮌독재론의 전개와 파리꼬뮌
4.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좌절된 이유
5. 『평등론』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Q/A
3. 마르크스 파리꼬뮌독재론의 전개와 파리꼬뮌
4.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좌절된 이유
5. 『평등론』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본문내용
위기가 고양되는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계급 의식의 호소력은 결정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는 이처럼 프롤레탈리아 계급의 민족의식을 동원함으로써 노동자와 자본가의 내부적 계급전쟁을 중지시키고 이른바 ‘성중평화(Burgfrieden)’를 체결하도록 종용하였다.
그러나 이 요인들은 하나같이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해 부차적, 비본질적 요소로 경시당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간헐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혁명을 저해하고 있음을 묵과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변화에 부응하는 이론의 새로운 점검에는 등한하였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적으로’ 정초된 자신들의 공산주의적 이상과 현존 부르주아 사회 사이에 내재하는 간극을 절대적이고 화해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따라서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자본주의가 조속히 제거당하지 안된다는 급박한 희망과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비본질적’ 요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동요시켰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의 숙명적 딜레마가 있다.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충분한 발전을 전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수한 발전은 거꾸로 사회주의 혁명의 저해 요인들을 생성시킨다. 바로 이 순환모순에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은 좌초하고 있는 것이다.
5. 『평등론』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요약)
(1) 레닌주의와 1당독재
레닌의 전위당은 자생적인 노동자의 투쟁들조차도 당의 체계와 통일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억압해야 한다고 본다. 당 내부의 모든 견해의 차이까지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이데올로기의 통일성을 극단적인 중앙집중적 조직체계를 통해서라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레닌이 중앙적 요소의 비대화로 인한 문제를 알고 예비책을 제시했지만(민주적 중앙집중제 원칙) 민주적 요소는 중앙집중적 요소를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적절한 통제수단을 보유하지 못했다.
(2) 레닌의 원칙에 기초한 소련공산당의 발전과정
레닌의 공산당에는 이념과 행동의 일사불란한 통일을 촉구하던 중앙집중적 요소가 끈임없이 관철되었다. 하지만, 광범위한 인민의 민주적 선도성이 철저히 차단당하였다. 모든 당조직과 당 구성원이 항상 중앙을 지향했고, 이를 통해 행동의 지침을 부여받았던 것이다(향일성).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억압자를 억누르기 위해 피억압자의 전위를 지배계급으로 조직해내는 일"은 결국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전위'를 지배계급으로 올려놓는 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앞서의 관찰에서 보았듯,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을 의미했던 반면, 결과적으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권을 위임받은 '전위', 즉 소수에 의한 정치권력의 행사를 의미했던 것이다.
원래 레닌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국가의 사멸을 촉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과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레닌 그 스스로가 소수자 독재나 당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순히 피동적 통치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민주적 1당 독재체제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를 제공했던 것이다.
(3) 국가사회주의의 몰락
볼셰비끼 혁명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부르주아적 자유조차 없는 짜르 전제정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제국주의국가들과 세계대전의 위험, 그리고 내전으로 황폐해진 러시아에서 결국 당에 의한 국가통제력의 독점과 초중앙집권적 명령경제체제의 수립이 촉진되었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전위로서의 당, 즉 혁명적 이념의 최고 구현체이고 최고의 프롤레타리아 조직형태로서의 당에 대한 레닌의 관념은 인민과 국가의 극심한 괴리를 초래했다. 혁명적 이념의 순수성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전위적으로 통일시켜나가기 위해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을 배제한 중앙집중적 조직체계를 견지해야만 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가 확립되었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적 주체세력이 되어야 할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동적 통치대상으로 전락해버리는 모순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당과 노동자, 국가와 인민 간의 괴리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의 국가는 마르크스나 레닌에게는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한 과도기적 수단이었으나, 바꾸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소규모 특권적 소수에 의한 인민대중의 지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일단 수립이 되면 인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즉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전체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이해관계가 아닌 특권계급의 이해관계 수호에만 집착할 기구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4) 결론
우리는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인민의 정치적 소외가 결과적으로 어떠한 폐해를 초래하는가 하는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주의와 직결된 갈등과 혼란이 문제의 핵심으로 존재한다. "어떠한 민주주의가 어떠한 현실에 적합한 것인가?" 란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는 것이다.
곧, 사회주의의 붕괴는 '프롤레타리아트 없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몰락을 의미하고,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없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파산을 뜻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공산당선언》,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저 / 이진우 역, 첵세상문고, 200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Lenin, Vladimir Ilyich / 앎과함편집부 역, 앎과함, 1989
《마르크스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 박현봉,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1989
《맑스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주의의 역사적 위상과 과제 설정의 변화》, 윤석구, 서울대 사회학과, 1990
《마르크스주의와 폭력 : 전쟁 및 혁명을 중심으로》,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정민, 서강대 사회학과, 1989
그러나 이 요인들은 하나같이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해 부차적, 비본질적 요소로 경시당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간헐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혁명을 저해하고 있음을 묵과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변화에 부응하는 이론의 새로운 점검에는 등한하였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적으로’ 정초된 자신들의 공산주의적 이상과 현존 부르주아 사회 사이에 내재하는 간극을 절대적이고 화해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따라서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자본주의가 조속히 제거당하지 안된다는 급박한 희망과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비본질적’ 요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동요시켰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의 숙명적 딜레마가 있다.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충분한 발전을 전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수한 발전은 거꾸로 사회주의 혁명의 저해 요인들을 생성시킨다. 바로 이 순환모순에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은 좌초하고 있는 것이다.
5. 『평등론』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요약)
(1) 레닌주의와 1당독재
레닌의 전위당은 자생적인 노동자의 투쟁들조차도 당의 체계와 통일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억압해야 한다고 본다. 당 내부의 모든 견해의 차이까지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이데올로기의 통일성을 극단적인 중앙집중적 조직체계를 통해서라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레닌이 중앙적 요소의 비대화로 인한 문제를 알고 예비책을 제시했지만(민주적 중앙집중제 원칙) 민주적 요소는 중앙집중적 요소를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적절한 통제수단을 보유하지 못했다.
(2) 레닌의 원칙에 기초한 소련공산당의 발전과정
레닌의 공산당에는 이념과 행동의 일사불란한 통일을 촉구하던 중앙집중적 요소가 끈임없이 관철되었다. 하지만, 광범위한 인민의 민주적 선도성이 철저히 차단당하였다. 모든 당조직과 당 구성원이 항상 중앙을 지향했고, 이를 통해 행동의 지침을 부여받았던 것이다(향일성).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억압자를 억누르기 위해 피억압자의 전위를 지배계급으로 조직해내는 일"은 결국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전위'를 지배계급으로 올려놓는 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앞서의 관찰에서 보았듯,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을 의미했던 반면, 결과적으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권을 위임받은 '전위', 즉 소수에 의한 정치권력의 행사를 의미했던 것이다.
원래 레닌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국가의 사멸을 촉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과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레닌 그 스스로가 소수자 독재나 당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순히 피동적 통치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민주적 1당 독재체제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를 제공했던 것이다.
(3) 국가사회주의의 몰락
볼셰비끼 혁명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부르주아적 자유조차 없는 짜르 전제정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제국주의국가들과 세계대전의 위험, 그리고 내전으로 황폐해진 러시아에서 결국 당에 의한 국가통제력의 독점과 초중앙집권적 명령경제체제의 수립이 촉진되었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전위로서의 당, 즉 혁명적 이념의 최고 구현체이고 최고의 프롤레타리아 조직형태로서의 당에 대한 레닌의 관념은 인민과 국가의 극심한 괴리를 초래했다. 혁명적 이념의 순수성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전위적으로 통일시켜나가기 위해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을 배제한 중앙집중적 조직체계를 견지해야만 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가 확립되었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적 주체세력이 되어야 할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동적 통치대상으로 전락해버리는 모순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당과 노동자, 국가와 인민 간의 괴리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의 국가는 마르크스나 레닌에게는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한 과도기적 수단이었으나, 바꾸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소규모 특권적 소수에 의한 인민대중의 지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일단 수립이 되면 인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즉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전체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이해관계가 아닌 특권계급의 이해관계 수호에만 집착할 기구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4) 결론
우리는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인민의 정치적 소외가 결과적으로 어떠한 폐해를 초래하는가 하는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주의와 직결된 갈등과 혼란이 문제의 핵심으로 존재한다. "어떠한 민주주의가 어떠한 현실에 적합한 것인가?" 란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는 것이다.
곧, 사회주의의 붕괴는 '프롤레타리아트 없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몰락을 의미하고,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없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파산을 뜻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공산당선언》,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저 / 이진우 역, 첵세상문고, 200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Lenin, Vladimir Ilyich / 앎과함편집부 역, 앎과함, 1989
《마르크스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 박현봉,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1989
《맑스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주의의 역사적 위상과 과제 설정의 변화》, 윤석구, 서울대 사회학과, 1990
《마르크스주의와 폭력 : 전쟁 및 혁명을 중심으로》,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정민, 서강대 사회학과,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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