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오래된 물건과 나’, ‘글쓰기’, ’자연과 나’, ‘인간 관계’, ‘일상의 의미’ 중에서 1-2개의 주제를 선택하여, 해당 주제가 수필집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찾아,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감상문을 작성 - <이태준, 무서록(범우사, 2003)>
1. ‘글쓰기’에 대한 <무서록>의 표현 감상
1)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체질에 맞는 글을 쓴다는 것)
2) 一分語(일분어 - 글쓰기에 있어서의 절제력)
3) 冊(책 - 올곧은 글쓰기를 통해 쓰여 지는 좋은 작품이자 아름다운 책)
2. ‘자연과 나’에 대한 <무서록>의 표현 감상
1) 自然과 文獻(자연과 문헌 - 참된 문학정신은 무엇인가?)
2) 山(산 - 나를 가끔 외롭게 하고 슬프게도 하고 힘들게 하는 산)
3) 芭蕉(파초 - 쓸쓸함, 외로움에 대한 예찬)
Ⅲ. 결 론
[참고 자료]
Ⅱ. ‘오래된 물건과 나’, ‘글쓰기’, ’자연과 나’, ‘인간 관계’, ‘일상의 의미’ 중에서 1-2개의 주제를 선택하여, 해당 주제가 수필집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찾아,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감상문을 작성 - <이태준, 무서록(범우사, 2003)>
1. ‘글쓰기’에 대한 <무서록>의 표현 감상
1)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체질에 맞는 글을 쓴다는 것)
2) 一分語(일분어 - 글쓰기에 있어서의 절제력)
3) 冊(책 - 올곧은 글쓰기를 통해 쓰여 지는 좋은 작품이자 아름다운 책)
2. ‘자연과 나’에 대한 <무서록>의 표현 감상
1) 自然과 文獻(자연과 문헌 - 참된 문학정신은 무엇인가?)
2) 山(산 - 나를 가끔 외롭게 하고 슬프게도 하고 힘들게 하는 산)
3) 芭蕉(파초 - 쓸쓸함, 외로움에 대한 예찬)
Ⅲ.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芭蕉(파초 - 쓸쓸함, 외로움에 대한 예찬)
이태준은 꽃을 아주 좋아했다.
특별히, ‘파초’를 좋아해서 어린 파초를 사와서 집에서 키우다 보니 2년 만에 성북동에서 제일 큰 파초가 되었다고 했었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담은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珠簾)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무서록, 범우사, 2003, p.27)
화초 가게 주인이 하루 두 번이나 찾아와서 5원 줄테니 팔라고 했으나 그냥 돌려보냈다고 한다.
죽는 것도 자연의 섭리니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보겠다고 했다. 잘 부려먹던 소가 늙으면 팔아 버리고 도살이 되어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그러한 습관으로 나를 찾아 온 것은 잘못이라고 오히려 타일렀다.
이렇듯 그는 밤, 고독, 쓸쓸함, 외로움을 좋아했었고 화초, 산, 강, 물 등의 자연을 예찬했다.
그러므로 그는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러신 분이 1946년에 월북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누구는 그를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라 일컬었다).
그는 월북후에 김일성 찬양 글을 쓰라고 지시를 받았으나 오히려 반박문을 써서 결국, 숙청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광산 노동자의 신분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의 수필 ‘화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서 아마 천성적으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분이었다고 생각되기 한다.
“자연은 신이다. 이름 없는 한 포기 작은 잡초에 이르기까지도 신의 창조가 아닌 것이 없다. 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만 한 그런 졸작, 그러한 미완품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이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며 불구가 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창조하거나 개작하는 재주는 없을 것이다.”
서울을 떠나 강원산골로 숨어버린 월북 작가의 고통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고인이 된 최갑선씨의 ’삼팔선의 봄’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내 고향, 그 동포 웃는 얼굴이 보고 싶구나..”
내가 보기에 ‘무서록’은 자연을 통찰하고서 삶을 품격 있게 살면서 상상하는 능력이 놀랍다. 이태준은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또한 9세에 어머니를 잃는다. 그리하여 어린 누이동생을 데리고 고향 친척 집에 의탁해서 살았다. 그리고 1918년에 봉명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원산에서 힘든 의식주 생활을 보내는 고아로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의 혼돈시대, 그리고 남북대치시대를 거쳐서 북한에서의 숙청과 가족과의 이별 및 사별, 그리고 해금으로서 이어지는 비운의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그의 ‘무서록’은 작품으로서의 품위를 지니고 있고 고결한 문학성의 무게감이 매우 높다. 고아 정신을 토해낸 문장도 없으며, 배고파 웅크리는 모습도 없다.
오히려 흙탕물 같은 세상에 대한 궁한 기색을 가라앉혀주는 글로써 품격과 고운 질감을 잘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서록’은 외로운 삶의 승화에서 건져 낸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8세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씨 등과 친분을 쌓게 된다. 당시의 스승은 가람 이병기 선생이었는데, 난초를 유난히 사랑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서일까 그의 수필에도 ‘난’이 등장한다.
“책이 지루할 때, 붓이 막힐 때, 난 잎을 닦아 주는 것이 제일이다. … 난은 그만치 심경을 가라앉혀 준다.
따라서 양난이양신(養蘭以養神)이라는 말도 있다.” 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무소유의 덕목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생각을 하게 된다. 수필을 읽고 있는 참 재미는 나와는 다른 그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무서록’을 읽으면 상황에 걸 맞는 절묘한 표현에 한 번 감탄을 하고, 서두르지 않고서 차근차근 쉽게 쓴 문체에 친근함이 더해져 두 번 감탄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의 맛’이라는 글도 마음에 남는데, 그 까닭은 그 동안 책을 읽으면서 풀지 못한 숙제를 완전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내용만을 맛볼 줄밖에 모르기 때문에 소설도 표현이라는 점을 특히 주의 하라는 것이다.
표현에 무관심하고서는 그 소설에서 작자가 가장 애쓴 것의 하나를 완전하게 모르고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표현들은 좋았지만, 애매모호한 내용을 보고 나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는데, 소설은 ’표현’ 그 자체를 즐길 수가 있는 분야였지만 나는 그것을 늘 간과했던 것이었다.
문학은 정답을 찾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나름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임을 이 ‘무서록’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Ⅲ. 결 론
이상으로 이태준, 무서록(범우사, 2003)을 읽고, ‘글쓰기’, ‘자연과 나’라는 주제를 선택하여, 해당 주제가 수필집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찾아,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감상문을 작성하였다.
이태준의 ‘무서록’으로 인해 수필은, 아니 짧은 산문은 시와 더불어 사람의 감정과 사물의 의미를 드러내는 형식의 글이란 생각을 새삼 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감정 포착을 하거나, 사물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일반 글과 큰 차이가 없거나 그것이 너무 주관적이어서 설득력이 없다면 좋은 산문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태준이 ‘무서록’에서 당대 현실을 비켜서있는 것은 무서운 생각마저도 들게한다. 그가 일부러 그랬는지 ‘무서록’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자의식이 거의 드러나 있지가 않다.
이태준이 당시에 유행처럼 번져있었던 좌우이념에서 벗어나서 소위 순수문학을 세우려 했던 ’9인회’의 창립멤버였다고는 하지만, 만주기행 편을 제외하고는 ’일상은 있으되 현실은 없는’ 지식인의 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그것이 그가 취한 전략일까, 아니면 그의 글 곳곳에서 살짝 살짝 드러나는 댄디적 충동의 결과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아둔함이 빚은 오독일까?
아
이태준은 꽃을 아주 좋아했다.
특별히, ‘파초’를 좋아해서 어린 파초를 사와서 집에서 키우다 보니 2년 만에 성북동에서 제일 큰 파초가 되었다고 했었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담은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珠簾)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무서록, 범우사, 2003, p.27)
화초 가게 주인이 하루 두 번이나 찾아와서 5원 줄테니 팔라고 했으나 그냥 돌려보냈다고 한다.
죽는 것도 자연의 섭리니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보겠다고 했다. 잘 부려먹던 소가 늙으면 팔아 버리고 도살이 되어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그러한 습관으로 나를 찾아 온 것은 잘못이라고 오히려 타일렀다.
이렇듯 그는 밤, 고독, 쓸쓸함, 외로움을 좋아했었고 화초, 산, 강, 물 등의 자연을 예찬했다.
그러므로 그는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러신 분이 1946년에 월북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누구는 그를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라 일컬었다).
그는 월북후에 김일성 찬양 글을 쓰라고 지시를 받았으나 오히려 반박문을 써서 결국, 숙청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광산 노동자의 신분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의 수필 ‘화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서 아마 천성적으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분이었다고 생각되기 한다.
“자연은 신이다. 이름 없는 한 포기 작은 잡초에 이르기까지도 신의 창조가 아닌 것이 없다. 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만 한 그런 졸작, 그러한 미완품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이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며 불구가 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창조하거나 개작하는 재주는 없을 것이다.”
서울을 떠나 강원산골로 숨어버린 월북 작가의 고통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고인이 된 최갑선씨의 ’삼팔선의 봄’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내 고향, 그 동포 웃는 얼굴이 보고 싶구나..”
내가 보기에 ‘무서록’은 자연을 통찰하고서 삶을 품격 있게 살면서 상상하는 능력이 놀랍다. 이태준은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또한 9세에 어머니를 잃는다. 그리하여 어린 누이동생을 데리고 고향 친척 집에 의탁해서 살았다. 그리고 1918년에 봉명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원산에서 힘든 의식주 생활을 보내는 고아로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의 혼돈시대, 그리고 남북대치시대를 거쳐서 북한에서의 숙청과 가족과의 이별 및 사별, 그리고 해금으로서 이어지는 비운의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그의 ‘무서록’은 작품으로서의 품위를 지니고 있고 고결한 문학성의 무게감이 매우 높다. 고아 정신을 토해낸 문장도 없으며, 배고파 웅크리는 모습도 없다.
오히려 흙탕물 같은 세상에 대한 궁한 기색을 가라앉혀주는 글로써 품격과 고운 질감을 잘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서록’은 외로운 삶의 승화에서 건져 낸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8세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씨 등과 친분을 쌓게 된다. 당시의 스승은 가람 이병기 선생이었는데, 난초를 유난히 사랑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서일까 그의 수필에도 ‘난’이 등장한다.
“책이 지루할 때, 붓이 막힐 때, 난 잎을 닦아 주는 것이 제일이다. … 난은 그만치 심경을 가라앉혀 준다.
따라서 양난이양신(養蘭以養神)이라는 말도 있다.” 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무소유의 덕목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생각을 하게 된다. 수필을 읽고 있는 참 재미는 나와는 다른 그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무서록’을 읽으면 상황에 걸 맞는 절묘한 표현에 한 번 감탄을 하고, 서두르지 않고서 차근차근 쉽게 쓴 문체에 친근함이 더해져 두 번 감탄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의 맛’이라는 글도 마음에 남는데, 그 까닭은 그 동안 책을 읽으면서 풀지 못한 숙제를 완전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내용만을 맛볼 줄밖에 모르기 때문에 소설도 표현이라는 점을 특히 주의 하라는 것이다.
표현에 무관심하고서는 그 소설에서 작자가 가장 애쓴 것의 하나를 완전하게 모르고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표현들은 좋았지만, 애매모호한 내용을 보고 나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는데, 소설은 ’표현’ 그 자체를 즐길 수가 있는 분야였지만 나는 그것을 늘 간과했던 것이었다.
문학은 정답을 찾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나름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임을 이 ‘무서록’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Ⅲ. 결 론
이상으로 이태준, 무서록(범우사, 2003)을 읽고, ‘글쓰기’, ‘자연과 나’라는 주제를 선택하여, 해당 주제가 수필집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찾아,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감상문을 작성하였다.
이태준의 ‘무서록’으로 인해 수필은, 아니 짧은 산문은 시와 더불어 사람의 감정과 사물의 의미를 드러내는 형식의 글이란 생각을 새삼 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감정 포착을 하거나, 사물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일반 글과 큰 차이가 없거나 그것이 너무 주관적이어서 설득력이 없다면 좋은 산문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태준이 ‘무서록’에서 당대 현실을 비켜서있는 것은 무서운 생각마저도 들게한다. 그가 일부러 그랬는지 ‘무서록’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자의식이 거의 드러나 있지가 않다.
이태준이 당시에 유행처럼 번져있었던 좌우이념에서 벗어나서 소위 순수문학을 세우려 했던 ’9인회’의 창립멤버였다고는 하지만, 만주기행 편을 제외하고는 ’일상은 있으되 현실은 없는’ 지식인의 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그것이 그가 취한 전략일까, 아니면 그의 글 곳곳에서 살짝 살짝 드러나는 댄디적 충동의 결과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아둔함이 빚은 오독일까?
아
추천자료
(한국문학의 이해) 한국문학과 바다
(한국문학의 이해) 한국문학과 물
(한국문학의 이해) 한국문학과 종교
(한국문학의 이해) 한국문학의 전통
한국문학의 이해, 한문학 연구
[문학교육][문학][상호텍스트][수필][문학지도]문학교육의 본질, 문학교육의 목표, 문학교육...
다문화 사회에서 아동문학의 역할 및 방법에 대하여 정리하고 다문화 이해를 위한 문학활동을...
[서양문학][서양문학 이해][서양문학과 리얼리즘(사실주의)][종교문학][동양문학][파우스트]...
구약 지혜문학의 이해 - 요약 및 서평 (제임스 L. 크렌쇼 저, 강성열 역)
대중매체로서의 신화의 해석(단군신화해석, 신화의이해, 건국신화, 대중매체와문학)
[문학의 이해 공통] 프로이트의 심리주의 비평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자신이 애독, 애청한 소...
수필문학에 대한 개념, 특성, 종류에 대한 정리
[문학교육론] 거울뉴런 이론이 문학독서 교육에 주는 시사점 - 문학독서 과정의 이해와 교수-...
[고전문학 교육론] 협동학습을 통한 고전수필 교육 - 슬견설 양아록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