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실록의 편찬과정
2. 조선시대의 사관
3. 사론
4.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5. 수정된 조선왕조실록
Ⅲ. 결론
<참고문헌>
Ⅱ. 본론
1. 실록의 편찬과정
2. 조선시대의 사관
3. 사론
4.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5. 수정된 조선왕조실록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현종실록』에서 자신들에 대한 서술이 비판적인 것이 못마땅하였고 『현종실록』의 개정을 주장하여 개수작업에 착수하여 숙종 8년에 인쇄를 시작하여 다음해 완성하였다. 『현종실록』은 총22권이었으나 『현종개수실록』은 총28권29책으로 분량이 늘어났다. '사신왈(史臣曰)'이나 기타의 인물평도 서인에게 유리하게 서술되어 있다.
『숙종실록보궐정오』는 가장 적게 고쳐진 수정본으로 경종즉위년 『숙종실록』을 편찬 할 때는 노론이 중심이 되었지만 1721년 신임사화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정권을 잡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다시 노론이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1727년 정미환국으로 인해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다시 정권을 잡은 후 영조에게 『숙종실록』의 전면개정을 요청했지만 노론의 반대로 전면개정은 불가능 했고 왜곡된 부분만 바로 잡는 정도로 개정하였다. 개정판처럼 책자로 간행 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실록의 권말에 부록형식으로 수정되었다.
『경종수정실록』은 마지막으로 수정된 실록으로 『경종실록』이 소론의 주도로 편찬이 되면서 소론의 인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의 인물은 부정적으로 평가하자 이에 노론이 불만을 품어 정조2년, 『영조실록』의 편찬과 함께 『경종실록』의 수정을 시작하여 정조5년에 『경종수정실록』이 완성되었다.
물론 수정된 실록이 위의 4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초기 『태조실록』『정종실록』『태종실록』이 총 세 차례에 걸쳐 수정 되었는데 이는 조선건국의 정당성과 연관되어 있어 위의 수정본과는 성격이 다르며 수정이후에도 원본을 보존한 조선후기의 수정실록과는 달리 조선초기의 실록은 3차 수정본만 있을 뿐 원본은 파기되어 전하지 않는다.
Ⅲ. 결론
조선의 사관은 유교사관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엄정하게 기록하고자 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 춘추필법의 역사의식에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해야만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춘추필법의 역사의식은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사필은 굽힐 수 없다는 신념이 내재해 있었기에 사관들은 왕이 정치를 잘못하거나 대신이 비리를 저지르는 등의 자칫하면 신변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직필하였다.
역사를 바로 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역사가 바르게 쓰이지 않는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잘못된 역사적인 사실과 역사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자신의 신변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항상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직필하려는 사관들을 보고나서 당시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본인도 이 들의 역사인식과 현실인식 태도를 보고 더 나은 사회발전을 위해 현실을 바로 보며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바로 말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문헌>
이범직김종연(2002) 한국인의 역사인식, 청년사
이성무(2003)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동방미디어
이성무(2008) 조선왕조실록과 적상산사고, 선명
배현숙(2005) 朝鮮實錄硏究序說, 태일사
『숙종실록보궐정오』는 가장 적게 고쳐진 수정본으로 경종즉위년 『숙종실록』을 편찬 할 때는 노론이 중심이 되었지만 1721년 신임사화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정권을 잡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다시 노론이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1727년 정미환국으로 인해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다시 정권을 잡은 후 영조에게 『숙종실록』의 전면개정을 요청했지만 노론의 반대로 전면개정은 불가능 했고 왜곡된 부분만 바로 잡는 정도로 개정하였다. 개정판처럼 책자로 간행 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실록의 권말에 부록형식으로 수정되었다.
『경종수정실록』은 마지막으로 수정된 실록으로 『경종실록』이 소론의 주도로 편찬이 되면서 소론의 인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의 인물은 부정적으로 평가하자 이에 노론이 불만을 품어 정조2년, 『영조실록』의 편찬과 함께 『경종실록』의 수정을 시작하여 정조5년에 『경종수정실록』이 완성되었다.
물론 수정된 실록이 위의 4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초기 『태조실록』『정종실록』『태종실록』이 총 세 차례에 걸쳐 수정 되었는데 이는 조선건국의 정당성과 연관되어 있어 위의 수정본과는 성격이 다르며 수정이후에도 원본을 보존한 조선후기의 수정실록과는 달리 조선초기의 실록은 3차 수정본만 있을 뿐 원본은 파기되어 전하지 않는다.
Ⅲ. 결론
조선의 사관은 유교사관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엄정하게 기록하고자 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 춘추필법의 역사의식에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해야만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춘추필법의 역사의식은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사필은 굽힐 수 없다는 신념이 내재해 있었기에 사관들은 왕이 정치를 잘못하거나 대신이 비리를 저지르는 등의 자칫하면 신변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직필하였다.
역사를 바로 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역사가 바르게 쓰이지 않는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잘못된 역사적인 사실과 역사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자신의 신변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항상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직필하려는 사관들을 보고나서 당시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본인도 이 들의 역사인식과 현실인식 태도를 보고 더 나은 사회발전을 위해 현실을 바로 보며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바로 말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문헌>
이범직김종연(2002) 한국인의 역사인식, 청년사
이성무(2003)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동방미디어
이성무(2008) 조선왕조실록과 적상산사고, 선명
배현숙(2005) 朝鮮實錄硏究序說, 태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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