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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청자 인문 사이호
인문청자는 후한(後漢)에 발생되었다. 맑고 밝은 청자유는 잘 녹아 이전의 원시청자나 회유(灰釉)도기와 전혀 다른 것으로 청자 제작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균형이 잘 잡힌 형태나 전면에 정교하게 찍힌 인화문은 인문경질도기(印文硬質陶器)나 흑갈유도기(黑褐釉陶器)와 상통된다.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상우(上虞), 영파(寧波), 영가(永嘉) 등지의 가마터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문청자가 발견되었다
녹유누각
1미터가 넘는 4층 누각으로 위아래를 두층씩 나누어 구웠다. 후한대(後漢)에는 이러한 누각이나 창고, 가축우리와 같은 건축물과 사람, 짐승 등을 도기로 만들어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이 유행하였다. 누각의 각 층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활을 들고 있는 사람, 노비 등의 인물상이 붙어있어 매우 특별하다. 그러나 누각 자체가 어떤 의미를 상징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면에 짙은 녹유(綠釉)를 씌웠는데 흙 속에 오래 뭍혀 있었던 탓에 은빛을 띤다.
청자 신정호
당대(唐代) 이전 월주요(越州窯) 청자 가운데에는 짐승을 본떠 만든 특이한 유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유물도 그 중 하나로 위 부분을 높은 층상으로 만들어 누각이나 사람, 짐승 등을 붙였다. 신정호(神亭壺)라고 불리는 이 항아리는 무덤에 부장하는 명기(明器)로 후한(後漢)에 유행하던 오련관(五連罐)을 기원으로 한다. 신정호는 절강성(浙江省)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삼국시대부터 서진(西晋)에 해당된 묘에서만 출토되므로 성행시기나 지역이 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층부에 부착된 작은 귀부(龜趺)위 비면에는「會稽出始寧用此喪葬宜子孫作吏高遷衆無極」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흑유백반문 호
흑유도기는 후한(後漢)시대 이래 다양하게 발전하였는데 중당(中唐)에서 만당(晩唐)시기에 는 이 항아리와 같이 흑유에 실투성(失透性)의 청백유(靑白釉)를 덧바른 장식이 등장하였다. 서로 다른 유약을 교차시키는 기법은 당삼채(唐三彩)와도 상통되고 있어 당대(唐代)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푸른기를 머금은 유색은 송대 균요(鈞窯) 자기를 연상케 하여 흥미롭다. 근년의 조사에 따르면 섬서성 요주요(陝西省 耀州窯), 하남성 교현 황도요(河南省 郊縣 黃道窯), 우현 여산단점요(禹縣 魯山段店窯) 등지에서 유사한 파편이 발견된 바 있다.
청자 천계호
천계호(天鷄壺)란 용(龍)모양의 손잡이와 닭머리를 본떠 만든 주구, 그리고 귀가 달린 반구호(盤口壺)를 말하는데 동진(東晉)에서 초당(初唐)시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주구는 짧고 장식적이며 실용성이 적어 생활용기라기보다는 명기(明器)로 추정된다. 가냘픈 목이나 역동적인 용모양의 손잡이, 닭머리 모양의 주구나 당당한 동체 등의 대담한 조형감각이 산서성 태원 북위 신상묘(山西省 太原 北魏 辛祥墓 520年)등의 북조시대 묘에서 출토된 예와 유사하여 이 유물의 연대도 6세기 전반 경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천계를 만든 가마터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소 백색을 띤 바탕흙에 빙열이 있는 얇은 유리질 유약을 씌웠는데 몸체 상부에는 한번 더 유약을 발라 중간부분에서 유색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일본 이데미츠미술관(出光美術館)이나 MOA 미술관의 천계호와 더불어 유명한 유물이다.
인문청자는 후한(後漢)에 발생되었다. 맑고 밝은 청자유는 잘 녹아 이전의 원시청자나 회유(灰釉)도기와 전혀 다른 것으로 청자 제작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균형이 잘 잡힌 형태나 전면에 정교하게 찍힌 인화문은 인문경질도기(印文硬質陶器)나 흑갈유도기(黑褐釉陶器)와 상통된다.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상우(上虞), 영파(寧波), 영가(永嘉) 등지의 가마터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문청자가 발견되었다
녹유누각
1미터가 넘는 4층 누각으로 위아래를 두층씩 나누어 구웠다. 후한대(後漢)에는 이러한 누각이나 창고, 가축우리와 같은 건축물과 사람, 짐승 등을 도기로 만들어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이 유행하였다. 누각의 각 층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활을 들고 있는 사람, 노비 등의 인물상이 붙어있어 매우 특별하다. 그러나 누각 자체가 어떤 의미를 상징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면에 짙은 녹유(綠釉)를 씌웠는데 흙 속에 오래 뭍혀 있었던 탓에 은빛을 띤다.
청자 신정호
당대(唐代) 이전 월주요(越州窯) 청자 가운데에는 짐승을 본떠 만든 특이한 유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유물도 그 중 하나로 위 부분을 높은 층상으로 만들어 누각이나 사람, 짐승 등을 붙였다. 신정호(神亭壺)라고 불리는 이 항아리는 무덤에 부장하는 명기(明器)로 후한(後漢)에 유행하던 오련관(五連罐)을 기원으로 한다. 신정호는 절강성(浙江省)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삼국시대부터 서진(西晋)에 해당된 묘에서만 출토되므로 성행시기나 지역이 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층부에 부착된 작은 귀부(龜趺)위 비면에는「會稽出始寧用此喪葬宜子孫作吏高遷衆無極」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흑유백반문 호
흑유도기는 후한(後漢)시대 이래 다양하게 발전하였는데 중당(中唐)에서 만당(晩唐)시기에 는 이 항아리와 같이 흑유에 실투성(失透性)의 청백유(靑白釉)를 덧바른 장식이 등장하였다. 서로 다른 유약을 교차시키는 기법은 당삼채(唐三彩)와도 상통되고 있어 당대(唐代)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푸른기를 머금은 유색은 송대 균요(鈞窯) 자기를 연상케 하여 흥미롭다. 근년의 조사에 따르면 섬서성 요주요(陝西省 耀州窯), 하남성 교현 황도요(河南省 郊縣 黃道窯), 우현 여산단점요(禹縣 魯山段店窯) 등지에서 유사한 파편이 발견된 바 있다.
청자 천계호
천계호(天鷄壺)란 용(龍)모양의 손잡이와 닭머리를 본떠 만든 주구, 그리고 귀가 달린 반구호(盤口壺)를 말하는데 동진(東晉)에서 초당(初唐)시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주구는 짧고 장식적이며 실용성이 적어 생활용기라기보다는 명기(明器)로 추정된다. 가냘픈 목이나 역동적인 용모양의 손잡이, 닭머리 모양의 주구나 당당한 동체 등의 대담한 조형감각이 산서성 태원 북위 신상묘(山西省 太原 北魏 辛祥墓 520年)등의 북조시대 묘에서 출토된 예와 유사하여 이 유물의 연대도 6세기 전반 경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천계를 만든 가마터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소 백색을 띤 바탕흙에 빙열이 있는 얇은 유리질 유약을 씌웠는데 몸체 상부에는 한번 더 유약을 발라 중간부분에서 유색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일본 이데미츠미술관(出光美術館)이나 MOA 미술관의 천계호와 더불어 유명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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