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목차
<미국과 미국인>
- <강의 전반에 대한 개관>
- 2/1 맥도널 햄버거, 2/2 코카콜라
- 3/1 미국의 지리·자연적 환경, 3/2 미국의 영토 구분과 국가적 특징
- 4/1 미국의 역사는 서부 개척의 역사, 4/2 서부 프런티어로의 영토 팽창
- 5/1 세계의 심장부 뉴욕과 자유의 여신상, 5/2 여신상의 의미와 유럽으로부터의 이민
- 6/1 아메리카 인디언과 신대륙발견, 6/2 북미 대륙 인디언
- 7/1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 1, 7/2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 2
- <강의 전반에 대한 개관>
- 2/1 맥도널 햄버거, 2/2 코카콜라
- 3/1 미국의 지리·자연적 환경, 3/2 미국의 영토 구분과 국가적 특징
- 4/1 미국의 역사는 서부 개척의 역사, 4/2 서부 프런티어로의 영토 팽창
- 5/1 세계의 심장부 뉴욕과 자유의 여신상, 5/2 여신상의 의미와 유럽으로부터의 이민
- 6/1 아메리카 인디언과 신대륙발견, 6/2 북미 대륙 인디언
- 7/1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 1, 7/2 북미 대륙 인디언 수난사 2
본문내용
수우족의 멸망
☞ 미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수우족을 끈질기게 추적했고, 여기에 기인디언의 주식인 들소를 죽여 그들을 고사시키는 작전을 행함.
: 수우족 추장 시팅 불은 추종자 400여 명을 이끌고 캐나다 국경을 넘었지만 결국 도주와 기아에 지쳐 도피 4년 만에 정부군에 투항. 결국 수우족의 반란을 교사한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1890년 비극적인 삶을 마감
: 크레이지 호스는 보호 지역을 거부하고, 잔여 인디언들을 이끌고 기병대를 피해 블랙힐스의 초원을 돌아다녔다. 1877년 9월 크레이지 호스는 기병대의 첩보원 노릇을 하였던 한 인디언의 배신으로 결국 총검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12살에 투시력을 얻어 수많은 전투에도 부상을 입지 않았던 크레이지 호스의 죽음은 허무했다.
러시모어와
크레이지 호스
공존하는 역사의 두 장면
: 미국 사우스다코다 주의 블랙힐스. 이곳에는 두개의 암벽 인물상이 있다. 하나는 러시모어 마운틴에 있는 4명의 미국 대통령의 얼굴 바위, 다른 하나는 인디언 전사 크레이지 호스의 기마 인물상이다. 백인의 영웅과 인디언의 영웅이 새겨진 이 두개의 바위산은 미국사의 대조적인 두 장면을 재생시켜 준다. 문명과 야만, 영광과 좌절, 환호와 증오의 감정이 혼재하는 곳이다.
러시모어의 큰 바위 바위
: 러시모어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4명의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조지 워싱턴(초대), 토마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르 루즈벨트(26대)가 그들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만들고 발전시킨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서부의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여 국토를 2배나 확장시켰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연장을 보존하고, 노예를 해방시켰다. 루즈벨트는 국내에서 혁신주의 개혁을 단행하고, 세계의 무대에 미국을 등장시켰다.
: 4개의 대통령 얼굴상은 크기가 모두 같다. 얼굴이 18m, 코가 6m, 눈이 3m. 멀리서 보아도 웅장하게 다가온다. 14년의 작업 끝에 1941년 완공된 이곳을 미국인들은 민주주의 전당으로 부른다. 미국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기마상
: 큰 바위 얼굴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더 크고 더 웅장한 크레이지 호스의 모습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산 높이의 산 꼭대기 바위를 깨고 부숴 조작해 만든 27m 높이의 거대한 얼굴이다. 암벽에 얼굴을 새기는 데만 50년이 걸렸다. 말을 탄 몸체와 말은 아직도 작업이 진행 중이다.
: 미국 기병대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른 역전의 용사, 백인에 끝까지 저항했던 최후의 전사다운 이미지를 강하게 전해준다. 이곳은 인디언의 잃어버린 역사와 자부심을 극적으로 재생시켜 주는 곳이다.
: 백인 기병대에 쫓겨 블래힐스를 떠돌던 크레이지 호스에게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백인 모피상인 물었다. “지금 자네가 살 땅이 이 나라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자 크레이지 호스는 왼팔을 뻗어 지평선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나의 땅은 내가 죽어 묻힐 곳이다.” 라고. 이 말에는 아메리카가 본래 우리의 땅이라는 원주민의 자존심, 백인에 대한 처절한 저항 정신이 담겨있다. 이것은 백인들과의 굴종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명예로운 삶을 지키겠다는 크레이지 호스의 자부심의 표출이었다.
인디언 동화정책과 현재의 실상
기독교로의 개종
: 미국 정부는 이들을 미국 사회에 동화시키는 작업을 폈다. 먼저 정부 보조금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였는데 청교도의 시각에서 보면 인디언들은 우상을 섬기는 미개한 족속이었다.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은 선교나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디언의 정기를 말살하고 인디언의 고유의 토속적인 문화를 고사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었다.
의무교육제 실시 (1891년에는 인디언에게도 의무 교육제가 실시)
: 인디언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적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도시 곳곳에 기숙학교를 지어, 아이들이 보호구역 안에 사는 부모를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도록 했다. 영어만을 써야했고, 미국식 복장과 풍습을 배우도록 하였다.
: 기숙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 인디언의 후예가 아니었다. 철저한 백인으로 교육된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의 벽 앞에 낙담한 인디언 후예들은 결국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시민권 부여(1924년 의회)
: 합중국내에서 모든 인디언은 미국의 국민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켜 인디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인디언들은 조상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긴 지 200여년 만에 겨우 얻은 시민권이었다. 노예로 미국 땅에 끌려온 흑인들도 노예에서 해방되고 투표권을 받은 것은 남북전쟁 직후였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해가 1922년이었다. 미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인디언들이 가장 늦게 시민권과 투표권이 주어진 셈이다.
인디언 사회의 현실적 상황
: 한 때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광야를 달리던 그 많던 인디언 부족들이 대부분 멸종되어 지금은 약 200만 명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절반이 인디언 보호구역에 모여살고 있다.
: 현재는 오클라호마 주에 가장 많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고,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의 서남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먹을 것도 농사를 지을 땅도 거의 없는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보호구역에서 인디언들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 인디언 보호구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난과 실업 문제이다. 미국에서 비교적 규모가 크다는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인디언 보호구역의 경우, 약 200여 가구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백인 마을이라며 학교와 도서관, 소방서, 경찰서 등 관공서와 식료품 가게들이 들어서야 하는데, 단 한곳도 그런 것이 없다. 그 만큼 소비 능력이 없다는 소리다.
: 인디언들은 가난과 실의에 빠져, 자신들이 태어난 땅에서 버림받고 쫓겨나 인고의 세월을 살아 온 데 대한 울분과 회한이 담겨져 있다.
☞ 미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수우족을 끈질기게 추적했고, 여기에 기인디언의 주식인 들소를 죽여 그들을 고사시키는 작전을 행함.
: 수우족 추장 시팅 불은 추종자 400여 명을 이끌고 캐나다 국경을 넘었지만 결국 도주와 기아에 지쳐 도피 4년 만에 정부군에 투항. 결국 수우족의 반란을 교사한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1890년 비극적인 삶을 마감
: 크레이지 호스는 보호 지역을 거부하고, 잔여 인디언들을 이끌고 기병대를 피해 블랙힐스의 초원을 돌아다녔다. 1877년 9월 크레이지 호스는 기병대의 첩보원 노릇을 하였던 한 인디언의 배신으로 결국 총검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12살에 투시력을 얻어 수많은 전투에도 부상을 입지 않았던 크레이지 호스의 죽음은 허무했다.
러시모어와
크레이지 호스
공존하는 역사의 두 장면
: 미국 사우스다코다 주의 블랙힐스. 이곳에는 두개의 암벽 인물상이 있다. 하나는 러시모어 마운틴에 있는 4명의 미국 대통령의 얼굴 바위, 다른 하나는 인디언 전사 크레이지 호스의 기마 인물상이다. 백인의 영웅과 인디언의 영웅이 새겨진 이 두개의 바위산은 미국사의 대조적인 두 장면을 재생시켜 준다. 문명과 야만, 영광과 좌절, 환호와 증오의 감정이 혼재하는 곳이다.
러시모어의 큰 바위 바위
: 러시모어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4명의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조지 워싱턴(초대), 토마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르 루즈벨트(26대)가 그들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만들고 발전시킨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서부의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여 국토를 2배나 확장시켰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연장을 보존하고, 노예를 해방시켰다. 루즈벨트는 국내에서 혁신주의 개혁을 단행하고, 세계의 무대에 미국을 등장시켰다.
: 4개의 대통령 얼굴상은 크기가 모두 같다. 얼굴이 18m, 코가 6m, 눈이 3m. 멀리서 보아도 웅장하게 다가온다. 14년의 작업 끝에 1941년 완공된 이곳을 미국인들은 민주주의 전당으로 부른다. 미국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기마상
: 큰 바위 얼굴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더 크고 더 웅장한 크레이지 호스의 모습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산 높이의 산 꼭대기 바위를 깨고 부숴 조작해 만든 27m 높이의 거대한 얼굴이다. 암벽에 얼굴을 새기는 데만 50년이 걸렸다. 말을 탄 몸체와 말은 아직도 작업이 진행 중이다.
: 미국 기병대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른 역전의 용사, 백인에 끝까지 저항했던 최후의 전사다운 이미지를 강하게 전해준다. 이곳은 인디언의 잃어버린 역사와 자부심을 극적으로 재생시켜 주는 곳이다.
: 백인 기병대에 쫓겨 블래힐스를 떠돌던 크레이지 호스에게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백인 모피상인 물었다. “지금 자네가 살 땅이 이 나라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자 크레이지 호스는 왼팔을 뻗어 지평선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나의 땅은 내가 죽어 묻힐 곳이다.” 라고. 이 말에는 아메리카가 본래 우리의 땅이라는 원주민의 자존심, 백인에 대한 처절한 저항 정신이 담겨있다. 이것은 백인들과의 굴종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명예로운 삶을 지키겠다는 크레이지 호스의 자부심의 표출이었다.
인디언 동화정책과 현재의 실상
기독교로의 개종
: 미국 정부는 이들을 미국 사회에 동화시키는 작업을 폈다. 먼저 정부 보조금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였는데 청교도의 시각에서 보면 인디언들은 우상을 섬기는 미개한 족속이었다.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은 선교나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디언의 정기를 말살하고 인디언의 고유의 토속적인 문화를 고사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었다.
의무교육제 실시 (1891년에는 인디언에게도 의무 교육제가 실시)
: 인디언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적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도시 곳곳에 기숙학교를 지어, 아이들이 보호구역 안에 사는 부모를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도록 했다. 영어만을 써야했고, 미국식 복장과 풍습을 배우도록 하였다.
: 기숙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 인디언의 후예가 아니었다. 철저한 백인으로 교육된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의 벽 앞에 낙담한 인디언 후예들은 결국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시민권 부여(1924년 의회)
: 합중국내에서 모든 인디언은 미국의 국민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켜 인디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인디언들은 조상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긴 지 200여년 만에 겨우 얻은 시민권이었다. 노예로 미국 땅에 끌려온 흑인들도 노예에서 해방되고 투표권을 받은 것은 남북전쟁 직후였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해가 1922년이었다. 미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인디언들이 가장 늦게 시민권과 투표권이 주어진 셈이다.
인디언 사회의 현실적 상황
: 한 때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광야를 달리던 그 많던 인디언 부족들이 대부분 멸종되어 지금은 약 200만 명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절반이 인디언 보호구역에 모여살고 있다.
: 현재는 오클라호마 주에 가장 많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고,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의 서남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먹을 것도 농사를 지을 땅도 거의 없는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보호구역에서 인디언들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 인디언 보호구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난과 실업 문제이다. 미국에서 비교적 규모가 크다는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인디언 보호구역의 경우, 약 200여 가구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백인 마을이라며 학교와 도서관, 소방서, 경찰서 등 관공서와 식료품 가게들이 들어서야 하는데, 단 한곳도 그런 것이 없다. 그 만큼 소비 능력이 없다는 소리다.
: 인디언들은 가난과 실의에 빠져, 자신들이 태어난 땅에서 버림받고 쫓겨나 인고의 세월을 살아 온 데 대한 울분과 회한이 담겨져 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