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반환협상 경과와 쟁점 및 평가(외규장각도서반환논의, 외규장각도서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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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규장각 도서반환협상 경과와 쟁점 및 평가(외규장각도서반환논의, 외규장각도서발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 경과와 양측 입장
Ⅲ. 외규장각 도서반환 관련 논의사항 및 쟁점
Ⅳ. 극적 타결
Ⅴ. 맺음말
Ⅵ 외규장각 도서 발견한 박병선 박사 인터뷰

본문내용

반환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정부 관계자는 “프랑스 국내법상 ‘영구’라는 표현을 쓰지 못한다”며 “형식적으로는 5년마다 한 번씩 갱신해야 하는 대여지만 사실상 반환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양국 정상의 결단에 의해 19년에 걸친 협상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외규장각 도서는 14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프랑스 국내법상 문화재의 영구 대여는 금지돼 있고 프랑스가 외국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명시적인 ‘반환’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서로 수용 가능한 타협을 이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국내법상 ‘갱신 가능한 대여’는 허용되는 만큼 양국은 ▶통상 3∼6개월 선인 대여 기간을 5년으로 늘리고 ▶1회성 대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대여 기간을 갱신하는 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사실상 영구 반환을 얻어 냈고, 프랑스도 국내법을 어기지 않고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13일 한국으로 환수되는 외규장각 도서가 정기적으로 프랑스에 반환될 것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신문에 따르면 엘리제궁에 정통한 소식통은 “도서는 프랑스로 정기적으로 되돌아오며, 특히 2015·2016년의 한·프랑스 상호문화교류의 해에는 반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상호문화교류의 해에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전시에 외규장각 도서 일부가 포함된다는 것은 양국 정상의 합의문에 들어 있지만 ‘정기적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의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갖기 때문에 향후 프랑스가 일부 도서에 대한 정기적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Ⅴ. 맺음말
외규장각 도서반환 문제는 최초에 양국정상이 큰 틀에 합의하기 전에 학술적 원칙에 의한 충분한 반환협상이 선행되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즉,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들과 기타 문화재들은 전시 약탈행위에 의한 불법 문화재 반출이므로 아무런 조건 없이 반환 받기 위한 협상이 먼저 시작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간 합의는 ‘1886년 한불수교 이후 첫 번째 프랑스 대통령 방한’이라는 양국간 역사적인 행사 과정에서 너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1993년 한불 양국정상간 ‘교류방식에 의한 영구대여’라는 큰 틀에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협상은 여기에 구속되게 됐다.
한국이 G20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도 천운이었다. 올해 개최국이 한국이고 차기 의장국이 프랑스였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프랑스가 획기적인 결단을 내리게 된 이 우연적인 사건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다시 한번 국력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Ⅵ 외교장각 도서 발견한 박병선 박사 인터뷰
“빼앗긴 우리 문화재 찾으려 50년간 프랑스 도서관 뒤졌어요”
2007-01-08 중앙일보 28면 보도 40판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해 간 문화재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 지 아직도 몰라. 자네가 사학을 공부했으니 그걸 찾아보기 바라네."
1955년 8월 초, 서울대 사학과 교수인 이병도 박사는 프랑스 유학을 떠나기 전 인사차 찾아온 한 여성 사학도에게 이 같은 당부를 했다. 그 여성은 서울대 사범대 졸업생(역사 전공)으로 대학 재학 중 이 박사의 강의를 몇차례 청강한 제자였다.
그는 스승의 바람이자 자신의 꿈이기도 한 그 일을 이루리라 다짐하고 한국을 떠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병인양요 때 약탈 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낸 박병선(78) 박사다. 외규장각은 조선시대 강화에 지은 궁궐 안 서고이며, 의궤는 왕실의 장례.궁궐 신축 등 큰 행사의 절차와 내용 등을 자세히 기록한 책이다.
그는 55년 8월 11일, 김포비행장에서 군용기를 타고 일본 도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에어 프랑스로 갈아 타고 사이공.베이루트 등을 거쳐 출발한 지 닷새 만에 파리 외곽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프랑스에 도착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프랑스 말부터 배워 학사·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을 밟던 67년, 그는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측에서 책을 자주 빌리러 오는 동양 여학생에 주목, 그의 석사 논문에 관심을 가지면서 도서관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일주일에 15시간 일하는 임시직으로 월급도 얼마 안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박 박사는 "도서관에서 일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BNF에서 일하며 직지심체요절(1377년 인쇄된 금속활자본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름)이 금속활자본임을 고증하는 작업을 시작해 72년에 결실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두 개의 박사 학위도 따냈다. 71년 '역사를 통해 본 한국 민속학'으로 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듬해 민속사에 관한 논문으로 두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하고 임시직 신분으로 BNF에서 일을 계속했다. 당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78년,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 도서 192권을 찾아냈다. 스승의 당부와 자신에게 한 약속을 이룬 것이다. 5일 그는 이 공로를 인정 받아 주불 한국대사관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1999년 은관훈장을 받은 데 이어 두번째다.
젊었을 때 세웠던 꿈은 이뤘지만 박사는 요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의 독립운동 관련 외교 문서와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일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매달린 이 일 때문에 지출이 늘어 요즘엔 한 달에 100유로(약 12만원)로 살 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나처럼 병약한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오래동안 살고 있잖아요. 집념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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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5.11.19
  • 저작시기201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87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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