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양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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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산 정약용의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양상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2. 연구의 방법
3. 연구문제

Ⅱ 다산 정약용의 정치사상 및 지적풍모
1. 정치사상
1.1 위기의식과 진단
1.2 질서와 상상: 개혁의 방법과 논리
1.3 처방: 국가개혁 구상의 실제
2. 지적풍모와 정치적 세계관
2.1 다산의 지적기원과 정치적 배경
2.2 다산의 정치적 삶
2.3 정치적 몰락기의 다산의 내면세계

Ⅲ 다산 정약용의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양상
1. 토지개혁안에 나타난 민본의식
1.1 여전제와 정전제
1.2 균등의 원칙
1.3 농자득전(農者得田)의 원칙
1.4 국유의 원칙
2. 추대의 논리에 나타난 민권의식
2.1 민본의식과 민권의식
2.2 맹자의 민권의식
2.3 정약용의 민권의식

Ⅳ 다산 정약용의 사상이 근대정치에 미친 영향
1. 민주주의 정치
1.1‘아래로부터’의 민권
1.2 강력한 개혁 군주
2. 보수적 신분사상
2.1 보수적인 노비 관
2.2 서얼 등용론
2.3 보수적 양반 비판
3. 한국적 근대정치 청사진 모색

Ⅴ 결론 및 제언
1. 결론
2.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아니라, 그 세계의 내부에서 세계와 호흡하며 함께 요동치고 있었던 ‘생활인’이었다. 우리는 그의 정치적 패배와는 무관하게 그의 정치적 신중성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제 그의 후반기의 내면세계를 통해 우리는 그로부터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3 정치적 몰락기의 다산의 내면세계
다산의 정치적 몰락은 정조의 죽음을 계기로 한 정치판도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계급적으로 중소지주의 기원을 갖고, 역관, 소상공계층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던 남인 내 성호학파계열의 개혁세력의 입지가 정조의 죽음으로 인해 급격히 축소되고 이에 따라 이들의 ‘천주교’라는 정치적 급소를 적들이 치명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신유박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청나라신부 주문모가 ‘저들이 노리는 것은 남인의 목숨이지 우리 천주교도가 아니다’라는 근거하에 자진출두 하는 모습속 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정약용 일파의 몰락은 조선정치의 특성상 국왕이 차지하는 비중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음에도 왕의 신변보호를 게을리 한데다 정약용은 이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한편의 紀事에 적어놓고 있다.
‘그 소문이란 이런거였다. 당시의 정승이 역적인 의원 심인을 추천하여 임금의 병환을 돌보는 척하다 독약을 올려 바치게 하여 정조대왕이 돌아가셨는데’ 실제로 의원 심인은 순조 즉위전 정조에게 약물을 잘못 올렸다 하여 처형되었다. 紀古今島張氏女子事,다산산문선 p270 참조
,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인내의 분열을 방지하지 못하고 서학의 수용문제를 비정치적이고 수세적으로 다룸으로써, 노론이라는 ‘거대한 현실 자체인 적’을 극복할 수 있었던 조선정치의 유일한 기회(적어도 제도정치 내에서는)를 놓쳐버린데 기인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다산은 1801년 2월 사소하게 ‘발각된 편지’로 인한 사간원의 원계(院啓,상소)로 이가환, 이승훈, 홍낙민 등과 함께 옥에 잡혀들어가 장기에 유배되고 그의 셋째형 정약종이 사형당 하게 된다.
또 이 해 10월에는 황사영이 채포됨에 따라 그의 둘째형 정약전과 함께 다시 전라도로 유배되고 약전은 흑산도로 가게 되고 다산은 강진에 이르게 된다. 형제가 먼 유배길에 올라 나주에 이르러 한 사람은 서쪽길로 가고 한 사람은 남쪽길로 향하며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18년간의 유배생활은 다산에게 견기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당장 숙식의 불편과 갖가지 병치레로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이었으며 1802년에 그의 넷째 아들이 요절하는 등 슬픔과 외로움이, 눈앞에 펼쳐진 바닷가의 썰물과 밀물처럼, 조석으로 넘쳤다 빠져나가는 시절이었다.
이 좌절의 시기에 다산이 자신의 학문을 체계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인보의 말처럼, 다산은 유배의 18년 동안 ‘천신만고의 괴로움 속에서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의 묘지명에는 시(詩),서(書),예(禮),악(樂),역(易),춘추(春秋) 및 四書에 관한 이치의 연구가 모두 230권, 시문집으로 편찬된 것이 70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 옥사, 국방, 지리, 의약, 어문 등에 관한 것이 무려 200여권이나 된다고 적혀있다. 여기서는 이 방대하고도 치열한 저술활동의 배경이자 동력이 되었던
이 시기 다산의 내면세계를 들추어 봄으로써 어쩌면 지금까지에서 얼핏 드러났을지 모를 그에게 놓인 긴장의 연원을 추적해보도록 하자.
1) 여유(與猶)의 세계관과 폐족(廢族)의 자의식
전혀 예상치 못한 왕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에게 닥친 운명의 전환은 다산으로 하여금 그간의 세계관을 세롭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그러나 이 세계관은 당시의 정치적 패배에서 온 다산의 좌절감과 이상의 상실로 인한 깊은 체념속 에서 오는 것이기에 약간은 굴절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성급하게 정치이상주의와 정치현실주의간의 ‘불일치의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 세계관은 정조가 죽던 1800년 다산이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면서 그의 당호를 ‘여유(與猶)’라고 지으면서 극적 표현을 얻는다.
여유당이라는 당호에서 與와 猶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동물을 가리키는데 與는 겨울의 냇물을 건널 때처럼 의심이 많은 동물이름이며 猶는 사방을 두려워하는 겁이 많은 동물이름이다. 다산의 여유당기에 따르면 자신이 어려서부터 공부에 몰두하여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서른이 넘어 지난일에 대한 후회가 들어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서 무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고 한다. ‘용기만 있지 지모는 없으며 善만 좋아하지 가릴 줄 모르며,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기만 하고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패배를 그대로 시인하는 대목이다. 다산은 이를 처음에는 ‘아. 이 또한 운명이로다’ 하였다가 바로 다음에 ‘내 어찌 감히 운명’이라고 하겠는가? 이는 ‘나의 본성 때문이다’하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리고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로서 당호를 망설이고 주저한다는 뜻의 ‘여유’라고 하는 것이다. 사암선생연보 p281
이것은 단적으로 정말 매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모든 것을 그만둔다는, 그러면 ‘무슨 일이 있겠는가 하는 약간은 체념 섞인 세계관이다. 그러나 이 세계관에서 그가 자신의 몰락이나 패배를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 않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 또한 인간사회나 정치에서 인간의 뜻과는 무관하게 삶의 조건들에 영향을 끼치는 ‘운명’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갈등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의해서 판단되고 책임 지워지는 인간의 정치적 삶에서 운명 혹은 ‘우연적인 요소’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거의 피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인간 삶의 의미는 이 ‘우연성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회 구조’에 의해 짜 맞추어져 있다면 인간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란 전무할 것이고(이때 인간의 의미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또 모든 것이 ‘우주의 우연’이라면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거나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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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25
  • 저작시기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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