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서평] 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어나지 않는다
“너는 사람도 제대로 섬길줄 모르면서 무슨 귀신 섬길걱정을 하느냐” 죽음에 대해서는 삶도 모르는 주제에 어찌 죽음을 알려고 하느냐“고 하면서 제자의 질문을 막았다. 공자의 이 발언 때문에 후대의 유가들은 죽음 이후의 문제를 거론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제사를 지낼 때 진짜귀신, 즉 조상들의 영혼이 존재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귀신이 있는것처럼 생각하고 제사를 드리라고 충고했다. 그결과 내세와 영혼을 부정하는 가르침은 유교의 대표 교리로 굳건한 자리매김을 한다.
성리학의 생사관은 원기(元氣)가 음양으로 분화되며 생겨나고 여기에 혼백(魂魄) 개념이 첨가되어야 인간은 비로소 도덕성을 갖추게 된다. 이와같은 상태로 평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음의 원리인 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양의 원리인 혼은 하늘로 들어가게 된다. 그저 몸은 땅에서 썩어서 없어지고 혼은 공중에서 흩어져사라질 뿐이다.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예외없이 영생과 불멸을 꿈꾼다. 이들은 간접적인 영생법으로 자신의 영혼은 소멸되어 없어지지만 자신의 분신인 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생하는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종교의례라 할 수 있는 제사를 통해 자신들이 아들의 뇌리 속에 기억됨으로써 자신은 죽지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이론적 생각과 실제적인 실천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영생과 불멸을 원한다는 면에서 유교도들도 역시 예외일수 없었던 것이다.
유교가 견지하는 생사관이 얼마나 현세 중심적인가를 알려면 제사보다 장례절차를 보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사람이 죽으면 지붕에 올라가 복(復)이라 세 번을 외치는데 즉, 고복(皐復)망자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장례식이 시작되면 사잣상이 차려지고 그중 간장이 놓이는데 저승으로가는 길을 늦추려하는 처사라하겠다.
또 죽음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노모가 자연사를 해도 자식은 죄인으로 간주되었다. 상엿소리에도 ”한번아차죽어지니 저승길이 분명하데이 대궐같은 집을 두고 나의 갈길 찾아가네. 이제가면 언제오노 한번 오기 어려워라“저승길이 멀다해도 문전앞이 저승이데이” 이 상여를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중심은 현세이지 저승이 아니다.
묘지에 가면 관을 묻고 망자의 혼을 다시 집으로 모시고 오는 순서로 반혼(返魂)이라하는데 사람이 분명히 죽었는데 그 혼이 이승으로 가겠끔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집으로 모시고 오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들이 어떤 장례의례를 치르던지 지금까지 검토한 것처럼 전통 상례에 깔린 현세 중심적인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무교의 생사관
샤머니즘은 민간신앙인 관계로 수준 높은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무당들 역시 철저하게 현세 중심적인 원리에 입각한 내세관을 각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교의 사령제는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망자가 살아 있을 때 갖게 된 한을 풀어 주어, 그 험한 저승길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주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혼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는 유교와 확실하게 다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구굿에서 죽은부모의 혼령이 무당에게 실려 자식들과 대화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무당들이 사람의 영혼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교는 자신의 고유한 저승관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무당들이 말하는 지옥에 대한 묘사는 자신들이 창출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그것을 차용한 것 들이다. 그만큼 무당들이 내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한국 무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이 현세에서 액을 물리치고 가능한 한 많은 복을 받는 것이다. 무교에서도 역시 저승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모퉁이를 돌면 바로 저승이라고 주장한다.
무교의 저승관은 바리공주 무가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부모님의 약을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떠난길이 멀고 험란하며 저승길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난다. 긴 여정의 수많은 난관은 혼자 해결할 수 없어 관음보살같은 신적인 존제의 도움도 받는다. 저승문에 도착해 수문장 무장신선을 만나 그의 수발을 들고 아이를 여러 명 낳아준 댓가로, 부모를 살릴 영약을 얻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저승자체의 묘사가 없고 모든 이야기는 저숭문 앞까지의 이야기로 끝난다. 무교의 신화를 만들었던 주인공들은 저승 자체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한국인들은 저승을 이승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승은 초월적인 세계가 아니라 문밖을 나서든 길모퉁이를 돌든 바로 이승 곁에 있는 지척의 세계이다 “말똥이 굴러도 이승이 좋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 만도 못하다” 하는 속담이 있는 것은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현세에만 행해 있기 때문이다.
3)아직 확연하게 알수없는 현대 한국인들의 내세관
현대한국인들은 유교 외에도 기독교, 불교등 복수의 신념체계를 갖고 있어 같은 주제에 대해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인들은 두 층의 의식구조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 두층은 조선인들의 심성을 구성해왔던 유교와 무교인데 이 구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한국인은 자신을 불자로 고백하든 아니면 기독교로 고백하든 주위의 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철저하게 유교와 유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세세한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영향은 여전히 가히 절대적이다. 게다가 내세관이나 상장례같은 인간의 죽음과 관계된 관념은 사람들이 견지하는 어떤 가치관보다 보수적이라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들의 죽음관은 조선인들의 죽음관의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의 반 이상이 머릿속에는 내세가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 현세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머릿속의 가치와 실제의 태도나 행동이 다르게 나온 것이다.
머리로 내세를 긍정 하는 것은 교회나 절에서 가르친 것을 별 생각없이 받아들인 결과이지만 실제의 태도에서는 지극히 현세적인 성향이 있는 유교의 영향으로 현생을 강하게 긍정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가격1,4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8.04.18
  • 저작시기201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5302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