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기
2.
시조 개관
3.
시조 작품 분석
3.1.
「어부단가」를 통해 보는 강호가도
3.2.
다른 강호시조의 자연 인식 양상
4.
문화 컨텐츠 - 자연을 벗 삼아 떠나는 시조기행
4.1.
바람도 쉬어가는 농암종택에서
4.2.
시조야 놀자
4.3.
외국인을 위한 시조학교(Sijo School)
5.
나가기
◆ 참고문헌 및 자료
들어가기
2.
시조 개관
3.
시조 작품 분석
3.1.
「어부단가」를 통해 보는 강호가도
3.2.
다른 강호시조의 자연 인식 양상
4.
문화 컨텐츠 - 자연을 벗 삼아 떠나는 시조기행
4.1.
바람도 쉬어가는 농암종택에서
4.2.
시조야 놀자
4.3.
외국인을 위한 시조학교(Sijo School)
5.
나가기
◆ 참고문헌 및 자료
본문내용
로운 자연과 자아의 합일 지향 - ‘자연 > 사회’
3 ~ 4연에서는 드디어 오늘날과 다른 사대부적 자연인식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자연의 관념이 사회적 관념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자연과 자아의 합일을 구가하는 강호시가 특유의 정서가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3연에 묘사된 자연 그대로의 질박한 생활이 자연화된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4연에 묘사된 자연 속에서의 한가로운 노림이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을 뜻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이름 그대로 자연과 자아가 합일된 절정의 현장 표현이며, 그러한 합일의 경지에서 맛보는 자아의 정서적 즐거움의 표출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두 가지 시선이다. 이는 곧 사대부적 자연인식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먼저, 자연과의 합일을 갈망하는 시인의 시선은 자연의 감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정신성’에 놓여 있다. ‘일반 청의미’(3연 종장), ‘무심코 다정니’(4연 중장)가 모두 자연의 정신적 속성을 드러내는 관념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시인이 맛보는 자연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 자연 합일의 정서적 감격은 모두 ‘정신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에게 얻은 것이다.
또한 시인이 예찬하는 자연의 정신성에는 자연적 가치 이상의 짙은 사회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일반 청의미’는 ‘때 묻지 않은 청청한 의미로 가득 찬 자연’, ‘무심코 다정하니’는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의 의미이다. 이는 사실 시인이 갈망하는 사회적 가치를 자연에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가 결여한 가치를 자연이 구현하고 있다고 ‘여기므로’ 시인은 그 조화로운 자연과의 합일을 갈망하고, 그러한 합일의 경지에서 맛보는 자아의 정신적 충족감을 노래하는 것이다.
⑶ 조화로운 사회 실현의 갈망 - ‘자연 < 사회’
5연에서는 사회적 관념이 다시 시의 전면에 부상한다. 진정한 자아의 즐거움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사회에까지 확장될 때, 자연과 사회가 모두 조화로움으로 가득 찬 세계로 완성될 때에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수기치인의 사대부적 이상이 결국은 시인의 시선을 다시 사회로 돌리게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관념을 드러내는 ‘北闕’(초장)과 ‘濟世賢’(종장)은 곧 자연의 조화로움을 사회에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시인의 갈망이 투사된 시어들이다. 조화로운 사회 구현의 정점에 임금이 놓여 있는 왕도정치의 이상이 ‘북궐’로 대표되는 연군지정으로 나타나고, 조화로운 사회 실천의 선봉에 자리한 차세대 사대부들에게 거는 기대감이 ‘제세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3.2. 다른 강호시조의 자연인식 양상
조선 중기에 창작된 강호시조 작품들은 앞서 살펴본 「어부단가」의 자연인식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 : 사회’, ‘자연 > 사회’, ‘자연 < 사회’의 인식 틀은 거의 모든 강호시조 작품의 기본적 인식틀을 이루고 있다. 물론 작품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어, 이 세 요소 가운데 시인의 관심이 어느 쪽에 더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상당한 편폭을 드러낸다.
⑴ 자연 : 사회 - 부정적 현실과의 팽팽한 대립적 갈등 속에서 자연을 노래하는 경우로, 17세기에 창작된 申欽의 ‘放翁詩餘’, 李弘有의 ‘山民六歌’등이 여기 해당한다.
⑵ 자연 > 사회 - 조화로운 자연과 합일하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어 노래하는 경우로, 16세기 송순의 ‘면앙정단가’,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17세기 趙在性의 ‘呼兒曲’, 金光煜의 ‘栗里遺曲’, 金得硏의 ‘산중잡곡’ 등이 여기 해당한다.
⑶ ‘자연 : 사회’ + ‘자연 > 사회’ - 부정적 현실의식과 자연합일의 즐거움을 함께 드러내는 경우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대표적 예이다.
⑷ ‘자연 > 사회’ + ‘자연 < 사회’ - 자연합일의 즐거움과 조화로운 사회의 갈망을 함께 드러내는 경우로, 16세기 이황의 ‘도산십이곡’ 언지편, 權好文의 ‘閑居十八曲’과 17세기 張經世의 ‘江湖戀君歌’, 羅緯素의 ‘江湖九歌’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런 강호시조를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한적(閑寂)의 노래’, ‘은일(隱逸)의 노래’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강호시조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피상적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인으로서의 치열한 현실적 고뇌가 이 시대 사대부들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관심, 강호시조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대 강호시조의 정신세계는 또한 오늘날 생태시의 문제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4. 문화 컨텐츠 - 자연을 벗 삼아 떠나는 시조기행
강호가도는 사대부들의 문학관·세계관과 맞아 떨어지면서 주로 영남 문인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농암 이현보는 그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이현보에 이르러 정립된 강호가도는 퇴계에 의해 노래에 도학적 이념과 교화까지 포함하면서 이어졌고 결국 권호문과 같은 퇴계 문하로 계승되어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안동시 도산면 분강촌에 위치한 농암 종택에는 이러한 강호가도의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 농암 종택은 낙동각 상류 청량산 자락,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잡고 있다. ‘가송리’는 그 이름처럼 ‘佳松-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로 산촌과 강촌의 정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이다. 신비의 명산 청량산과 더불어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낙동강 1400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마을 앞에는 강과 단애, 그리고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매우 조화롭게 어울려 있어, 이른바 ‘도산9곡’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한마디로 안동문화의 절정의 한 장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호가도’를 테마로 한 시조기행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그곳으로 떠나보자.
4.1 바람도 쉬어가는 농암종택에서
농암(聾巖)은 이현보의 자호(自號)다. 농암 이현보 선생은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32세에 문과 급제해, 36세에 사관으로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직언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얻었고, 38세에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바위 농암에 올라 다시 노래 한수를
3 ~ 4연에서는 드디어 오늘날과 다른 사대부적 자연인식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자연의 관념이 사회적 관념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자연과 자아의 합일을 구가하는 강호시가 특유의 정서가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3연에 묘사된 자연 그대로의 질박한 생활이 자연화된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4연에 묘사된 자연 속에서의 한가로운 노림이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을 뜻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이름 그대로 자연과 자아가 합일된 절정의 현장 표현이며, 그러한 합일의 경지에서 맛보는 자아의 정서적 즐거움의 표출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두 가지 시선이다. 이는 곧 사대부적 자연인식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먼저, 자연과의 합일을 갈망하는 시인의 시선은 자연의 감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정신성’에 놓여 있다. ‘일반 청의미’(3연 종장), ‘무심코 다정니’(4연 중장)가 모두 자연의 정신적 속성을 드러내는 관념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시인이 맛보는 자연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 자연 합일의 정서적 감격은 모두 ‘정신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에게 얻은 것이다.
또한 시인이 예찬하는 자연의 정신성에는 자연적 가치 이상의 짙은 사회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일반 청의미’는 ‘때 묻지 않은 청청한 의미로 가득 찬 자연’, ‘무심코 다정하니’는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의 의미이다. 이는 사실 시인이 갈망하는 사회적 가치를 자연에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가 결여한 가치를 자연이 구현하고 있다고 ‘여기므로’ 시인은 그 조화로운 자연과의 합일을 갈망하고, 그러한 합일의 경지에서 맛보는 자아의 정신적 충족감을 노래하는 것이다.
⑶ 조화로운 사회 실현의 갈망 - ‘자연 < 사회’
5연에서는 사회적 관념이 다시 시의 전면에 부상한다. 진정한 자아의 즐거움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사회에까지 확장될 때, 자연과 사회가 모두 조화로움으로 가득 찬 세계로 완성될 때에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수기치인의 사대부적 이상이 결국은 시인의 시선을 다시 사회로 돌리게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관념을 드러내는 ‘北闕’(초장)과 ‘濟世賢’(종장)은 곧 자연의 조화로움을 사회에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시인의 갈망이 투사된 시어들이다. 조화로운 사회 구현의 정점에 임금이 놓여 있는 왕도정치의 이상이 ‘북궐’로 대표되는 연군지정으로 나타나고, 조화로운 사회 실천의 선봉에 자리한 차세대 사대부들에게 거는 기대감이 ‘제세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3.2. 다른 강호시조의 자연인식 양상
조선 중기에 창작된 강호시조 작품들은 앞서 살펴본 「어부단가」의 자연인식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 : 사회’, ‘자연 > 사회’, ‘자연 < 사회’의 인식 틀은 거의 모든 강호시조 작품의 기본적 인식틀을 이루고 있다. 물론 작품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어, 이 세 요소 가운데 시인의 관심이 어느 쪽에 더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상당한 편폭을 드러낸다.
⑴ 자연 : 사회 - 부정적 현실과의 팽팽한 대립적 갈등 속에서 자연을 노래하는 경우로, 17세기에 창작된 申欽의 ‘放翁詩餘’, 李弘有의 ‘山民六歌’등이 여기 해당한다.
⑵ 자연 > 사회 - 조화로운 자연과 합일하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어 노래하는 경우로, 16세기 송순의 ‘면앙정단가’,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17세기 趙在性의 ‘呼兒曲’, 金光煜의 ‘栗里遺曲’, 金得硏의 ‘산중잡곡’ 등이 여기 해당한다.
⑶ ‘자연 : 사회’ + ‘자연 > 사회’ - 부정적 현실의식과 자연합일의 즐거움을 함께 드러내는 경우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대표적 예이다.
⑷ ‘자연 > 사회’ + ‘자연 < 사회’ - 자연합일의 즐거움과 조화로운 사회의 갈망을 함께 드러내는 경우로, 16세기 이황의 ‘도산십이곡’ 언지편, 權好文의 ‘閑居十八曲’과 17세기 張經世의 ‘江湖戀君歌’, 羅緯素의 ‘江湖九歌’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런 강호시조를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한적(閑寂)의 노래’, ‘은일(隱逸)의 노래’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강호시조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피상적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인으로서의 치열한 현실적 고뇌가 이 시대 사대부들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관심, 강호시조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대 강호시조의 정신세계는 또한 오늘날 생태시의 문제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4. 문화 컨텐츠 - 자연을 벗 삼아 떠나는 시조기행
강호가도는 사대부들의 문학관·세계관과 맞아 떨어지면서 주로 영남 문인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농암 이현보는 그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이현보에 이르러 정립된 강호가도는 퇴계에 의해 노래에 도학적 이념과 교화까지 포함하면서 이어졌고 결국 권호문과 같은 퇴계 문하로 계승되어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안동시 도산면 분강촌에 위치한 농암 종택에는 이러한 강호가도의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 농암 종택은 낙동각 상류 청량산 자락,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잡고 있다. ‘가송리’는 그 이름처럼 ‘佳松-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로 산촌과 강촌의 정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이다. 신비의 명산 청량산과 더불어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낙동강 1400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마을 앞에는 강과 단애, 그리고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매우 조화롭게 어울려 있어, 이른바 ‘도산9곡’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한마디로 안동문화의 절정의 한 장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호가도’를 테마로 한 시조기행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그곳으로 떠나보자.
4.1 바람도 쉬어가는 농암종택에서
농암(聾巖)은 이현보의 자호(自號)다. 농암 이현보 선생은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32세에 문과 급제해, 36세에 사관으로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직언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얻었고, 38세에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바위 농암에 올라 다시 노래 한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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