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 처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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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시가 - 처용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전에는 근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처용의 형용을 이용한 벽사진경의 무속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처용가가 역신을 물리치는 주술적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처용의 화상이 주술적 기능을 행하게 되었음을 -그것도 처용사건 이후에-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민긍기, 「처용가의 생성적 의미에 관한 일고찰」(『고전문학연구』8집, 한국고전문학연구회, 1993)에서도 보이고 있으나, 여기서도 <처용가>를 처용이 역신에게 ‘축원’한 노래로 보아 역시 무속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고려 처용가>와의 관련을 업그하면서도 그 노랫말의 상당부분이 처용의 형용을 그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뿐만 아니라 처용사건 이후 역신을 물리치는데 처용가가 쓰이지 않고 처용의 화상 곧 처용가면이 쓰이고, <고려 처용가>의 노랫말의 중심이 처용의 형용과 그 덕을 찬양하는 것으로 대부분 할당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게 된다. 즉 처용가 자체에는 주술력이 없으며 처용의 형상에 주술력이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주술력을 갖고 있는 <고려 처용가>는 대부분 처용의 이러한 얼굴 모습에서부터 발끝까지의 형용과 그 인격적 덕을 기리는 것으로 되어 있음)
이러한 다섯 가지 의문점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없는 한 우리는 ③의 견해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 또한 ③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 ①의 견해 역시 같은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위의 다섯 번째 의문점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처용의 벽사가면은 처용사건 이후 후대에 처용이 무속에 이끌려 그 화상이 주술력을 갖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련 서사문맥에서 ‘因此 國人帖處容之形 以邪進慶’이라 하여 처용이 무속에 견인된 계기와 시간서술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 유의한다면 처용을 단지 벽사가면의 인격화로 보는 것은 순리가 아닐 것이다. ①의 견해가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헌강왕대 훨씬 이전에 벽사가면으로서 처용가면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고증되어야 할 것이다.
6. 나의 견해
처용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방법을 알아보면서 어떤 연구 태도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일지 생각해 보았다. 요즘은 문학 자체만을 두고 그것만을 감상하는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는 견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전이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이런 방법이 아무리 옳다고 주장하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바뀐 후, 지금의 문학이 정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답은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문학작품(설화를 포함한)의 연구태도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고, 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처용가에 대한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하나의 완결된 결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처용설화의 심층적 연구도 그러한 방법으로써만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그 작품이나 설화가 지니는 복합적이지만 하나의 의미로 통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처용설화의 연구방향도 결국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을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물음에 대한 몇 가지 내 대답을 하려한다.
처용가의 8구 ‘원래 내 것이지마는, 앗아간들 어떠하릿고’의 해석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노래를 달리 볼 수 있을 듯하다. ‘앗아간들 관계하랴/상관있으랴’, ‘앗아가도 관계치 않는다’로 파악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위의 견해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고 배경설화를 보면 체념이라든지, 노기라든지 따위의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역신은 처용에게 감화를 받아 그의 화상만 봐도 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여기에서 처용의 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노함에 무서워 그런 약속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본디 내 것이지마는’의 ‘마는’에는 자신의 소유를 남이 가지는 것에 대해 인정해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원래 내 것이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하는 감정과 동시에 처용의 덕으로 인해 모든 것이 한 데 아우러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 같다.
또, 위의 처용의 정체에 대해 논하는 내용 중, 동해용의 아들이라는 처용의 신분 자체가 애초부터 무당이라거나 용신의 신격이라는 보증을 해 주는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있었다. 결코 그럴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개성 부근의 덕물산에 신격으로 모셔진 최영 장군이 무속 문화권에서 신격으로 이야기되고 주술적인 능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최영 장군이 애초부터 무당이라거나 덕물산의 신격적 존재였다고 이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분명 많은 연구들이 있어 왔고, 완전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현재, 처용가의 연구는, 처용가 뿐 아니라 모든 향가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단지 ‘처용가’라는 노래를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행적들이 우리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분명 해석을 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석이 아닌 그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것들을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최철, 『향가의 문학적 해석』(영신문화사, 1990)
반교어문학회 편, 『신라가요의 기반과 작품의 이해』(보고사, 1988)
김원경, 「處容歌의 變遷과 Shamanism에 關한 硏究」-特히 處容歌의 說話性과 民俗信仰을 中心으로-
최용수, 「<처용가>에 대하여」,『배달말』제19호 (배달말학회, 1994)
김학성, 「<處容歌>와 관련설화의 생성기반과 의미」
최혜실, 「문학에서 해석의 객관성 문제」--<처용가>의 해석을 중심으로
김경수, 「處容歌의 硏究史的 檢討」
「處容說話와 處容歌의 硏究史」
김진영, 「處容의 정체」(『韓國文學史의 爭點』, 集文堂, 1986)
박진태, 「<處容歌>의 祭儀的 構造와 機能」(『古典詩歌의 理念과 表象』, 林下停年記念論叢刊行委員 會,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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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8.11.20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0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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