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1) 여음의 의미
(2) 여음의 발생
2. 본론
(1) 여음의 실제
(2) 여음의 분류
3. 결론
(1) 여음의 의미
(2) 여음의 발생
2. 본론
(1) 여음의 실제
(2) 여음의 분류
3. 결론
본문내용
謠에 있어서의 餘音으로 발전하여 樂曲의 絶調와도 같이 한 감정을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感歎的인 餘音 <아으, 어와, 이비> 등에서 擬聲的인 語辭를 사용하는 助興 및 助律的 餘音 <어강됴리, 다롱디리, 나, 아즐가> 등으로 단순한 것에서 다양하고 변화있는 餘音으로 생성 발달해왔다. 즉 <餘音的 辭說>이 많은 것일수록 古代의 작품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以上 보이는 바와같이 여음은 原始藝術로부터 發端되었고 그러던 것이 詩歌에 따라서 그 내용이 섞임에 따라 노래 題目으로일망정 그 痕迹을 남긴 것도 있고 文獻으로 보면 「徒領歌」 삼국사기에 樂志에 보이는 진흥왕대의 노래
「山神唱歌」 삼국유사 권2, 處容郞歌海寺條 參照, 憲康王대의 노래
로 불리는 <智理多都波都波> 또 崔致遠의 「師子伎」 최고운이 「鄕歌雜詠」五首라 하며 獅子舞를 읊은 것
에서와 같이 단편적으로나마 그 흔적을 보인 것도 있다. 이로 보면 예부터 노래마다 餘音句를 가지고 있었음을 可히 짐작할 수 있다.
2. 본론
(1) 餘音의 實際
1.1 古代歌謠의 餘音
韓國의 古代時代의 歌謠는 지금 그 모습을 보기 어렵고 다만 다음과 같이 外國文獻에 그 이름만이 보이는데
東夷之樂曰樂(毛詩傳?)
東夷之樂曰離(樂元語)
獨有西京大同江二曲(增補文獻備考樂考)
至德歌(靑邸風雅)
以上의 것들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우리 古代의 最初로 記錄되었으리라 믿어지는 「兜率家」가 詞腦歌의 最初인 民謠였으리라는 것은 이미 學界에서 究明된 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도솔가도 十中八九 餘音이 그 主要的 要素를 이루었으리라 推斷하는 바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古代歌謠는 그 歌名만 傳하고 또 兜率家 海歌詞, 引 黃鳥歌 등도 原詞不傳인채 歌名만 보는 형편에서 고대가요 餘音의 實際를 알기란 至難事가 아닐 수 없다.
1.2 新羅歌謠와 鄕歌의 餘音
三國史記에 나타난 기록으로는 高句麗 百濟 音樂보다 악기 종류가 적었으리라 추측된다. 新羅는 가야국 멸망 무렵 伽倻琴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유일한 악기로 신라음악을 대표하게 되었다. 伽倻琴은 6세기 무렵 新羅의 대악(大樂:궁중음악)에 채용되었으며 이것 하나로 편성된 연향악이 주종을 이루었고, 伽倻琴은 일본에서 신라금으로 불렸다.
新羅에 이르러서는 初期에는 역시 完全한 個人抒情歌謠의 出現은 볼 수 없고 麗代에 보이는
위두어렁셩두어렁셩다롱디리(西京別曲) 아으 動動다리(動動)
더러둥셩다리러디러다리러디러다로러디러다로리(雜花店)의 餘音과 같은 것을 지녔던 歌謠로 생각되는 것은
兜率家(三國史記 卷 一 羅紀一條, 儒理王代)
徒頒歌(三國史記 樂志, 眞興王代)
山神唱歌(三國遺事 卷 二, 處容郞條, 憲康王代)
會蘇曲(三國遺事 卷 一, 羅紀一, 儒理尼師今 九年條)
양주동님 국어국문학 18호, 황희영<학국시가 여음고> pp.55~57
도 위 兜率家의 兜率은 <두리,도리>의 借字로 보고 現存 農樂 <두리놀애, 도리놀애>에 해당한다 하였으며 山神唱歌의 <智理多都波都波>도 같이 전통적 사설로 보았다. <會蘇曲>에서의 <會蘇會蘇其音哀雅>도 <회소>는 <아소>의 借字로 전통적 感歎用語라 하였다.
1.2.1 鄕歌의 餘音
鄕歌의 餘音은 二十五首中 感歎的 餘音이 들어있는 詩歌가 十八首 「怨歌」(後句亡이라하여 여음이 들어이는 구절이 전하지 않으나 있었던 사실은 증명됨)까지 합하면 十九首로 全作品의 76%가 된다. 이것은 형태별로 보면 十句體에만 여음이 사용됐고 四句體에는 전혀 사용치 않고 있다. 特記할 것은 代表的이라 할 수 있는 <阿耶(아으)>類의 여음이 들어있는 位置는 列外없이 第九節이라는 것으로 이는 古時調에서 感歎的 餘音-엇더타, 두어라 아마도 등이 대부분 終章起句에 있다는 사실과 공통되는 특징으로 상호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선청어문 7집, 정동화 <여음고> p.395
그러나 전남대 논문집, 8집, 박준규<한국고시가의여음고찰> p. 45
鄕歌 十句體도 後二句가 전체적으로 여음만의 表示가 아니라 第九句의 初頭語辭만 餘音(감탄사)으로 되었 있다.
그리고 十句體歌는 이를 前八句 後二句로 나누는 바 第九句의 첫머리에다 三國遺事 所載歌에선 後句(安民歌, 怨歌)라 했고 均如歌에서는 後句(隨喜功德歌) 落句(請佛往生歌, 懺悔業障歌) 後言(請轉法輪歌) 隔句(稱讚如來歌)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單純한 句名을 이른 것이 아니고 歌唱에 있어서 어떠한 語言을 의미한 것임에 틀림없다.
1.3 百濟歌謠의 餘音
백제음악에 관한 자료는 매우 적고, 고유악기로 전래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대체로 사용악기와 그 편성 그리고 외국사신을 위한 연향악으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서 그 쓰임새까지도 고구려음악과 같았던 듯하다.
餘音이 들어 있는 百濟歌謠의 歌名은 文獻에서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智異山歌(高麗史, 卷 71, 樂志 1) 백제여인의 貞節抒情歌로서 後世에 傳하는 수많은 婦女守節을 노래한 民謠등을 연상케 함.
無等山歌(高麗史, 卷 71, 樂志 2) 上古의 도솔가와 羅代의 東京曲과 같은 類의 民俗歡康의 민요.
井邑詞(高麗史, 卷 71, 樂志 2, 樂章歌詞, 樂學軌範 所載) 井邑詞는 본디 백제의 현존 유일의 시가이나 高麗俗謠들과 함께 고려시대 내내 구전되다가 꼭같은 문헌(악학궤범)에서 동시적으로 정착된 시가이기에 편의상 고려속요와 같이 고찰하였다.
阿弄曲(投壹雅歌譜) 참고로 이를 옮겨보면 月阿高高的上來些 遠遠的照着時阿
漁磯漁堪釣唾 阿弄多弄日日尼
달아노피곰도드샤머리곰비취곰시라
어긔어감조리아롱다롱일일니
1.4 高麗歌謠(高麗俗謠 景幾體歌)의 餘音
고려가요는 그 모습이 完熟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늦게나마 우리 文字로 記錄되어 있어 참모습에 가까운 것이 傳한다는 점에서 더욱 文學的 意義는 크다하겠다. 麗謠는 흔히 일반적 대중의 노래인 俗謠와 귀족계급(漢學者)의 景幾體歌(別曲體)로 나누는데 여기서도 이를 편의상 구분하여 實例를 例示하려고 한다.
○. 高麗俗謠의 餘音
고려속요의 형식상 특징은 後斂과 分章에 있다함은 主旨의 사실로 그 형식상의 분류를 해 보면 分章有無에 따라서 다르다.
樂章歌詞 및 樂學軌範 所載 作品에 보이는 餘音을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井邑詞」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動動」 아으 動動다리 아으(어져녹녀논)
「處容歌」 어와(아
以上 보이는 바와같이 여음은 原始藝術로부터 發端되었고 그러던 것이 詩歌에 따라서 그 내용이 섞임에 따라 노래 題目으로일망정 그 痕迹을 남긴 것도 있고 文獻으로 보면 「徒領歌」 삼국사기에 樂志에 보이는 진흥왕대의 노래
「山神唱歌」 삼국유사 권2, 處容郞歌海寺條 參照, 憲康王대의 노래
로 불리는 <智理多都波都波> 또 崔致遠의 「師子伎」 최고운이 「鄕歌雜詠」五首라 하며 獅子舞를 읊은 것
에서와 같이 단편적으로나마 그 흔적을 보인 것도 있다. 이로 보면 예부터 노래마다 餘音句를 가지고 있었음을 可히 짐작할 수 있다.
2. 본론
(1) 餘音의 實際
1.1 古代歌謠의 餘音
韓國의 古代時代의 歌謠는 지금 그 모습을 보기 어렵고 다만 다음과 같이 外國文獻에 그 이름만이 보이는데
東夷之樂曰樂(毛詩傳?)
東夷之樂曰離(樂元語)
獨有西京大同江二曲(增補文獻備考樂考)
至德歌(靑邸風雅)
以上의 것들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우리 古代의 最初로 記錄되었으리라 믿어지는 「兜率家」가 詞腦歌의 最初인 民謠였으리라는 것은 이미 學界에서 究明된 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도솔가도 十中八九 餘音이 그 主要的 要素를 이루었으리라 推斷하는 바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古代歌謠는 그 歌名만 傳하고 또 兜率家 海歌詞, 引 黃鳥歌 등도 原詞不傳인채 歌名만 보는 형편에서 고대가요 餘音의 實際를 알기란 至難事가 아닐 수 없다.
1.2 新羅歌謠와 鄕歌의 餘音
三國史記에 나타난 기록으로는 高句麗 百濟 音樂보다 악기 종류가 적었으리라 추측된다. 新羅는 가야국 멸망 무렵 伽倻琴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유일한 악기로 신라음악을 대표하게 되었다. 伽倻琴은 6세기 무렵 新羅의 대악(大樂:궁중음악)에 채용되었으며 이것 하나로 편성된 연향악이 주종을 이루었고, 伽倻琴은 일본에서 신라금으로 불렸다.
新羅에 이르러서는 初期에는 역시 完全한 個人抒情歌謠의 出現은 볼 수 없고 麗代에 보이는
위두어렁셩두어렁셩다롱디리(西京別曲) 아으 動動다리(動動)
더러둥셩다리러디러다리러디러다로러디러다로리(雜花店)의 餘音과 같은 것을 지녔던 歌謠로 생각되는 것은
兜率家(三國史記 卷 一 羅紀一條, 儒理王代)
徒頒歌(三國史記 樂志, 眞興王代)
山神唱歌(三國遺事 卷 二, 處容郞條, 憲康王代)
會蘇曲(三國遺事 卷 一, 羅紀一, 儒理尼師今 九年條)
양주동님 국어국문학 18호, 황희영<학국시가 여음고> pp.55~57
도 위 兜率家의 兜率은 <두리,도리>의 借字로 보고 現存 農樂 <두리놀애, 도리놀애>에 해당한다 하였으며 山神唱歌의 <智理多都波都波>도 같이 전통적 사설로 보았다. <會蘇曲>에서의 <會蘇會蘇其音哀雅>도 <회소>는 <아소>의 借字로 전통적 感歎用語라 하였다.
1.2.1 鄕歌의 餘音
鄕歌의 餘音은 二十五首中 感歎的 餘音이 들어있는 詩歌가 十八首 「怨歌」(後句亡이라하여 여음이 들어이는 구절이 전하지 않으나 있었던 사실은 증명됨)까지 합하면 十九首로 全作品의 76%가 된다. 이것은 형태별로 보면 十句體에만 여음이 사용됐고 四句體에는 전혀 사용치 않고 있다. 特記할 것은 代表的이라 할 수 있는 <阿耶(아으)>類의 여음이 들어있는 位置는 列外없이 第九節이라는 것으로 이는 古時調에서 感歎的 餘音-엇더타, 두어라 아마도 등이 대부분 終章起句에 있다는 사실과 공통되는 특징으로 상호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선청어문 7집, 정동화 <여음고> p.395
그러나 전남대 논문집, 8집, 박준규<한국고시가의여음고찰> p. 45
鄕歌 十句體도 後二句가 전체적으로 여음만의 表示가 아니라 第九句의 初頭語辭만 餘音(감탄사)으로 되었 있다.
그리고 十句體歌는 이를 前八句 後二句로 나누는 바 第九句의 첫머리에다 三國遺事 所載歌에선 後句(安民歌, 怨歌)라 했고 均如歌에서는 後句(隨喜功德歌) 落句(請佛往生歌, 懺悔業障歌) 後言(請轉法輪歌) 隔句(稱讚如來歌)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單純한 句名을 이른 것이 아니고 歌唱에 있어서 어떠한 語言을 의미한 것임에 틀림없다.
1.3 百濟歌謠의 餘音
백제음악에 관한 자료는 매우 적고, 고유악기로 전래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대체로 사용악기와 그 편성 그리고 외국사신을 위한 연향악으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서 그 쓰임새까지도 고구려음악과 같았던 듯하다.
餘音이 들어 있는 百濟歌謠의 歌名은 文獻에서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智異山歌(高麗史, 卷 71, 樂志 1) 백제여인의 貞節抒情歌로서 後世에 傳하는 수많은 婦女守節을 노래한 民謠등을 연상케 함.
無等山歌(高麗史, 卷 71, 樂志 2) 上古의 도솔가와 羅代의 東京曲과 같은 類의 民俗歡康의 민요.
井邑詞(高麗史, 卷 71, 樂志 2, 樂章歌詞, 樂學軌範 所載) 井邑詞는 본디 백제의 현존 유일의 시가이나 高麗俗謠들과 함께 고려시대 내내 구전되다가 꼭같은 문헌(악학궤범)에서 동시적으로 정착된 시가이기에 편의상 고려속요와 같이 고찰하였다.
阿弄曲(投壹雅歌譜) 참고로 이를 옮겨보면 月阿高高的上來些 遠遠的照着時阿
漁磯漁堪釣唾 阿弄多弄日日尼
달아노피곰도드샤머리곰비취곰시라
어긔어감조리아롱다롱일일니
1.4 高麗歌謠(高麗俗謠 景幾體歌)의 餘音
고려가요는 그 모습이 完熟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늦게나마 우리 文字로 記錄되어 있어 참모습에 가까운 것이 傳한다는 점에서 더욱 文學的 意義는 크다하겠다. 麗謠는 흔히 일반적 대중의 노래인 俗謠와 귀족계급(漢學者)의 景幾體歌(別曲體)로 나누는데 여기서도 이를 편의상 구분하여 實例를 例示하려고 한다.
○. 高麗俗謠의 餘音
고려속요의 형식상 특징은 後斂과 分章에 있다함은 主旨의 사실로 그 형식상의 분류를 해 보면 分章有無에 따라서 다르다.
樂章歌詞 및 樂學軌範 所載 作品에 보이는 餘音을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井邑詞」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動動」 아으 動動다리 아으(어져녹녀논)
「處容歌」 어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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