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고, 또한 저런들의 삶 또한 현실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치인(治人)의 도를 다하는 것이니 긍적적일 수 있다는 것이 퇴계의 태도라 할 수 있다. 다만 천석고황의 강호적 삶을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승화시켜내지 못하고, 그것이 현실을 도피함으로써 현실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태도는 소위 ‘완세불공’으로 치부하여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대응방식으로 여겼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퇴계의 태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한 개혁에는 별다른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특히 ‘사붕와해기’로 당시를 규정하고 우려했던 많은 사림들의 의견의 창구 역할을 도외시한 채 천석고황의 삶을 즐겼던 그의 반응은 한때 사림의 대부로까지 추앙받았던 그의 역할 방기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2)<도산십이곡>에 나타난 자연관풍류관
강호한정의 시조를 보면 퇴계는 철리(哲理)만을 궁구하는 일반 도학자와는 달리 도를 체득 실천하는데 힘쓰는 한편 자연을 벗하고 사랑하는 생활로 일관하였다. 퇴계는 자연을 완상하는 경지를 넘어서 자연에 몰입하는 상태에까지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연에 몰입한 그의 일상생활은 바로 강호한정의 시조들로 표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대부들이 그들의 문학에서 나타내듯이, 퇴계도 자연을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켜 주고 미적 쾌감을 주는 대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맞닥뜨리면 지팡이를 끌고 나가 홀로 시를 읊조렸으며, 강을 굽어 볼 수 있는 곳에 서재를 만들고 책속에 파묻혀 있다가 좋은 때가 되면 조각배를 강물에 띄우고서 홀로 오르내리며 흥이 사라져야만 돌아왔을 것이다. 바로 퇴계가 자연에 의해 흥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멋스럽게 지냈던 생활의 일면이다. 다음 시는 사시(四時)에 흥을 일으키며 살아가는 퇴계의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춘풍에 花滿山고 추야애 月滿臺라
四時佳興ㅣ 사롬과 가지라
며 魚躍鳶飛 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초장은 도산의 사계절 경치를 읊은 것이며, 중장은 도산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흥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고 한 것은 분명히 흥의 차원에서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곧 도산의 경치는 대자연의 법칙인 理의 작용에 의한 자연 본래의 모습이다. 여기서 퇴계의 도산은거의 생활은 세속적 모습에서 벗어나 理를 바탕으로 한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생활로 파악된다. 여기서 퇴계 자신의 도산은거를 통하여 느끼는 흥은 도덕적 선의 회복에서 비롯된 흥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퇴계는 ‘서정으로서의 흥’을 일으킴과 동시에 자연의 활발한 조화와 流行에서 흥을 일으켜 마침내 종장에서는 ‘며 魚躍鳶飛 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라고 감탄하여 天理의 정연함에 대한 이념적 감흥을 노래하고 있다. 김광순, 퇴계문학에 나타난 자연관과 인간관
이 외에 다음의 두 수도 같은 맥락에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幽蘭이 在谷니 자연이 듣디됴해
白雪이 在山니 자연이 보디됴해
이듕에 彼美一人를 더욱 닛디
다만 이러한 퇴계의 태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한 개혁에는 별다른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특히 ‘사붕와해기’로 당시를 규정하고 우려했던 많은 사림들의 의견의 창구 역할을 도외시한 채 천석고황의 삶을 즐겼던 그의 반응은 한때 사림의 대부로까지 추앙받았던 그의 역할 방기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2)<도산십이곡>에 나타난 자연관풍류관
강호한정의 시조를 보면 퇴계는 철리(哲理)만을 궁구하는 일반 도학자와는 달리 도를 체득 실천하는데 힘쓰는 한편 자연을 벗하고 사랑하는 생활로 일관하였다. 퇴계는 자연을 완상하는 경지를 넘어서 자연에 몰입하는 상태에까지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연에 몰입한 그의 일상생활은 바로 강호한정의 시조들로 표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대부들이 그들의 문학에서 나타내듯이, 퇴계도 자연을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켜 주고 미적 쾌감을 주는 대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맞닥뜨리면 지팡이를 끌고 나가 홀로 시를 읊조렸으며, 강을 굽어 볼 수 있는 곳에 서재를 만들고 책속에 파묻혀 있다가 좋은 때가 되면 조각배를 강물에 띄우고서 홀로 오르내리며 흥이 사라져야만 돌아왔을 것이다. 바로 퇴계가 자연에 의해 흥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멋스럽게 지냈던 생활의 일면이다. 다음 시는 사시(四時)에 흥을 일으키며 살아가는 퇴계의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춘풍에 花滿山고 추야애 月滿臺라
四時佳興ㅣ 사롬과 가지라
며 魚躍鳶飛 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초장은 도산의 사계절 경치를 읊은 것이며, 중장은 도산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흥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고 한 것은 분명히 흥의 차원에서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곧 도산의 경치는 대자연의 법칙인 理의 작용에 의한 자연 본래의 모습이다. 여기서 퇴계의 도산은거의 생활은 세속적 모습에서 벗어나 理를 바탕으로 한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생활로 파악된다. 여기서 퇴계 자신의 도산은거를 통하여 느끼는 흥은 도덕적 선의 회복에서 비롯된 흥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퇴계는 ‘서정으로서의 흥’을 일으킴과 동시에 자연의 활발한 조화와 流行에서 흥을 일으켜 마침내 종장에서는 ‘며 魚躍鳶飛 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라고 감탄하여 天理의 정연함에 대한 이념적 감흥을 노래하고 있다. 김광순, 퇴계문학에 나타난 자연관과 인간관
이 외에 다음의 두 수도 같은 맥락에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幽蘭이 在谷니 자연이 듣디됴해
白雪이 在山니 자연이 보디됴해
이듕에 彼美一人를 더욱 닛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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