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비평의식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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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평 - 비평의식의 성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비평의식의 성장


이규보의 비평

보한집

최해의 경우

역옹패설

8.4.1. 문학론 전개방식의 다양화
8.4.2. 이해와 평가방법의 객관화
8.4.3. 성정론의 근거 비판
8.4.4. 창작방법의 재정비
8.4.5. 민족문학론의 등장
8.4.6. 소설에 관한 논란

본문내용

삼자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화이론 자체를 비판하고 우리문화의 독자성을 옹호하면서 중세 보편주의를 넘어서서 근대 민족주의를 지향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균은 정철의 가사를 ‘속구’라 하고, 그 가운데 <사미인곡>과 <장진주>는 맑고 장엄한 기풍을 갖추어서 들을 만하다고 했다. ‘속구’는 ‘속된 노래’또는 ‘속어로 된 노래’이니, 당시의 관념을 잘 나타내주는 용어이다. 그러나 정철의 가사는 구문을 택했기에 성격상 아가 아닌 속에 속하기는 하지만, 가치의 등급을 따지면 한시와 대등한 품격을 지녀 사가 아니고 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김만중은 비교문화론의 관점을 마련해 그런 주장을 더욱 발전시켰다. 불교문화의 광대한 영역이 한문과 유학을 근간으로 하는 중국 문화권에만 들어앉은 사람의 편견을 시정해주는 데 유용하다고 보아 둘 사이의 비교론을 자주 폈다.
홍만종은 국문시가에 관한 논의를 좀더 구체화했다. <순오지>에서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위축된 민족의 기상을 되살려야 한다고 적극 주장하며 주체적 도가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펴는 한편, 속담을 수집해놓기도 하고, 우리말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관심을 보였다. 한문으로 글을 쓰더라도 우리말을 버릴 수 없다고 하고서, 중국의 악부나 가사는 중국말 노래이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본뜰 도리가 없으나 그 대신에 우리 민요가 있으니 거기 근거를 두고 독자적인 시가를 창작하는데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김천택이 <청구영언>에다 자기가 쓴 것을 포함한 몇 가지 서문을 싣고 국문시가의 의의를 주장한 논거는 홍만종의 전례와 바로 이어진다. 김천택의 서문은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한 말을 길게 인용하고서, 한시문은 수집되고 간행되어 있어서 천년이나 지나도록 민멸하지 않는데 영언이라고 한 시조는 그렇지 않으니 한탄스럽다 하며, 입으로만 전해지는 자료를 모으고 다듬어서 널리 전파하겠다고 했다. 우리 경우에는 시는 한시지만 가는 우리말 노래 특히 시조여야 한다는 인식을 나타냈으며 정내교의 서문에서도 그 점을 강조했다.
홍대용의 <대동풍요서>는 자기가 편찬한 시조집의 서문이 아닌가 하는데, <대동풍요>라는 이름의 책은 전하지 않고 서문만 문집에 남았다. 홍대용은 화이론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결정적인 이론을 마련하고 우리 역사의 주체적인 이해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사물은 그 실상에 따라서 인식하고 관념적인 선입견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밝히며, 신분적인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까지 주장했다. <대동풍요서>에서 편 주장은 모든 논거와 연결시켜보면 그동안 제기되어온 민족문학론의 총괄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민족문학이란 민족어의 가치를 발현하는 문학이자 민족이 당면한 현실에 참여하는 문학이라고 한다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국문문학과 한문학이 민족문학을 수립하는 과업을 각기 다른 측면에서 감당하며 서로 보완하는 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국문문학이 두 가지 과업을 온통 맡게 되는 것은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가 끝나야 가능했다.
8.4.6. 소설에 관한 논란
소설에 대한 논의는 소설배격론에서 시작되었으나, 소설배격론도 그 나름대로의 긍정정적인 의미가 있다. 소설이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타락시킨다고 한 주장은 소설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근거를 두었다. 그런 주장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중국소설에서 국내소설로 논의의 중심을 옮긴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소설긍정론은 소설배격론의 주장을 일단 인정하면서도 도의 교화에 도움이 되는 예외적인 작품도 있다고 하는데서 비롯했는데, 그런 논법은 작품에서 훌륭한 행실에 관한 표면적 주제를 내세운 것과 상통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지배이념이 다시 고착되기 전에는 중국소설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호의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시기에 이르러서는 소설배격론이 완강하게 대두했다. 이식은 소설의 폐단을 강경하게 지적하고, 허균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중국역대왕조의 내력을 다룬 소설은 신성한 사실에다 허황된 수작을 보탰으니 구가에서 엄중하게 금하고 태워 없애야 한다고 했다. 그 뒤에는 소설을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의 일반화되었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홍만종은 당시로서는 이단적인 사상을 지니고 새로운 문학관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했으면서도, 소설이 성행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생각했다.
중국소설의 수입을 금지하고, 소설에 감염된 문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방침을 강력하게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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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27
  • 저작시기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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