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나타난 유교사상 - 효 절개 충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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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설에 나타난 유교사상 - 효 절개 충 중심으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연구배경 및 목적
 2. 연구대상 선정 및 연구 방법

 
Ⅱ. 본론
 1. 연구대상에 대한 개관
 2. 구체적인 연구 자료
  1) 효에 관한 전설
  2) 절개에 관한 전설
  3) 충에 관한 전설
 3. 연구 대상이 주는 의의


Ⅲ. 요약 및 결론


Ⅳ 참고 문헌

본문내용

시름 앓기 시작했다. 서씨는 시부모가 죽으면 같이 죽으리라는 마음을 먹고 병간호를 하고 있었으니 그 정성이 지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서시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는 차례로 세상을 떴다. 마침내 서씨는 9일간의 단식 끝에 목숨을 끊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씨의 효성에 감복하여 그녀를 고이 장사지내고 그 이야기를 관청에 알려 열녀비를 세우게 했다. http://www.andongkwon.pe.kr/andong_02/andong_02.htm
우선 ‘절개’라는 것의 뜻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절개’란 옳은 일을 지키어 뜻을 굽히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나 태도를 뜻한다. 엠파스 국어사전
이런 절개가 요즘에 들어와서는 잘 쓰이지 않으려니와 혹 쓰인다 하여도 그것은 매우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뿐만 아니라 절개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전기문에서나 나오는 사람들만이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옳다고 여기는 것에 있어서는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옳다는 것’을 시대와 연관지어서 생각해 본다면 일편단심, 정절, 열녀와 같은 개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그 당시의 옮음과 지금의 옮음의 대상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것의 중요함의 비중이 많이 축소된 현재의 상황을 돌아보며 전설에 나타난 ‘절개’의 부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충에 관한 전설
김 후직 (金后稷) 의 간묘 (諫墓) : 26대 진평왕이 나라의 일을 소홀히 하고 다만 매일같이 사냥으로 날을 보내므로 김 후직은 여러 가지로 말씀을 드렸으나 도무지 듣지를 않으시고 도리어 윗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관직에서 쫓겨 나왔다. 그리하여 김 후직은 정사를 걱정한 나머지 병을 얻어 죽기에 이르렀다. 그때 그 김 후직은 자손들에게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 나는 신하로서 마땅이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니 죽은 뒤에 장사는 예법에 갖추어서 잘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임금님께서 사냥 다니시는 길가에다 묻도록 하여라. 』 . 임금님이 지난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사냥하러 말을 달리는데 김 후직의 묘 앞에 『임금님께서는 부디 사양을 말아 주십시오.』 라는 말이 거듭 들렸다. 그 후 왕은 후직의 죽을 때 남긴 말이며 살아서도 나라 일을 걱정하던 이야기를 듣게 되자, 『그는 살아서는 충신이었고 죽은 뒤 영혼까지도 충간하는 충신이니 내 어이 그대의 말을 쫓지 않으랴."』 하고 다시는 사냥을 다니시지 않고 나라의 일에 힘을 썼다고 하는데 후일 이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 묘를 신라간신 김 후직 묘라는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http://gyeongjurantal.com.ne.kr/travel/tobagi.htm
용성동의 성황당 : 고려 공민왕(恭慾王)때의 일이었다. 왕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만나서 남하 파천하여 이곳에 이르렀다. 왕은 이때 한 여랑(女郞)을 데리고 왔는데 늘 귀여워하여 가까이에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건적의 복병이 왕을 향해 쏜 화살을 여랑이 왕의 몸을 감싸며 대신 맞고 쓰러지게 되었다. 마침내 여랑은 \"나는 죽어서 홍건적을 물리치고 성을 지키는 신이 되겠다. \"고 유언한 뒤 숨을 거두었다. 그 후 홍건적과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하게 되어 난을 쉽게 평정할 수 있었다. 왕은 다시 환도하게 되었지만 여랑을 잃고 떠나게 되었음을 못내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왕은 여랑의 혼백을 달래기 위하여 당집을 지어 모시도록 하였다. http://bora.dacom.co.kr/~interdna/jayong/title.htm
예전에 임금과 신하간의 쓰였던 ‘충’이라는 개념은 요즘에 와서는 ‘군대’에서 주로 쓰이고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 의미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는 충성’ 이라기보다는 상하관계의 ‘복종과 순종’의 의미로 더 강하게 자리를 굳히고 있다. 위의 전설에서 살펴보듯이, 신하는 임금을 위해 대신 죽기도 하며, 죽어서까지 임금을 보호하는 ‘충’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대에서는 임금을 부모와 같이 여겨 ‘충’의 개념을 ‘효’와 대등하게 보기도 하였다. 따라서 지금처럼 ‘충’과 ‘효’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까지 임금을 모셔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의 이런 차이를 인정한다면 위와 같은 ‘진정한 충’이 가능할 수 있었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3) 전설의 의의
우리는 전설을 왜 읽는가 ?......
앞에서 살펴본 전설에 나타난 유교사상을 통해 우리는 ‘유교’라는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이것은 좀 더 쉽게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막연히 알던 효, 절개, 충의 개념들을 그 당시 사회와 연관지어 좀 더 생생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그 당시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것은 작가를 통해서 표현된다. 지금껏 우리가 단순히 전설이라는 것을 현재의 상황에서만 놓고 판단하여 그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나 이 전설은 어느 문학보다 사람과 가까이 있으며, 그 시대를 깊이 있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Ⅲ. 요약 및 결론
지금은 전설이라는 것이 너무도 소홀히 대접받고 있는 시대이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치중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설의 주체성이 흔들리고 , 우리의 관심 밖에서 전설은 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는 전설에 나타난 ‘효’, ‘절개’, ‘충’을 살펴보며 유교와 당시 사회 분위기를 되짚어 보았다. 이렇듯, ‘전설’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가치관을 반영하며 또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도 그 시대적 가치관을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점을 명심하며 옛날 것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려는 태도를 버려야하겠다. 나아가 그 속에 담겨진 조상들의 삶과 사상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유산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는 더욱 풍성하게 내일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참고문헌
두산 동아 백과 사전
엠파스 국어 사전

키워드

전설,   유교사상,   ,   절개,   ,   문학,   유교
  • 가격1,6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8.11.27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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