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도교의 전개
(2) 우리나라 도교의 맥
(3) 도교가 우리 문학에 끼친 영향
(4) 조선시대 도교의 전개와 단학
(5) 신선을 꿈꾸다 : 남궁선생전
3. 결론
2. 본론
(1) 도교의 전개
(2) 우리나라 도교의 맥
(3) 도교가 우리 문학에 끼친 영향
(4) 조선시대 도교의 전개와 단학
(5) 신선을 꿈꾸다 : 남궁선생전
3. 결론
본문내용
내 등선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궁두는 그 속된 욕심으로 인해서 비록 선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노력을 하게 되면 지선이 되어 800년은 살수 있을 것이라고 장로는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 남궁 선생전에서의 남궁두가 행한 수련법은 실제의 내단 수련법과 일치하는 것들이다. 남궁 선생전에는 이러한 수련법외에도 득선을 하기 위해서 수련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실제적인 수련과정에서 병행되어야 할 것들에 관한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인내심이 강하여야 한다던가 도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던가 득선을 위해서는 덕을 쌓아야 한다던가 한다는 것들이 그것이다. 수련을 쌓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신선이 될 수는 없다. 신선이 되기 위한 요건중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도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궁선생전에서도 권진인은 남궁선생을 보고 “그대에게 도골이 있어 법으로는 마땅히 상승할만하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의 도골은 권진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기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둔하지 않고 탁월한 인내력과 신선과의 인연이 있어야 하며 욕념이 제거된 사람만이 도골을 지니고 수련을 통해서 신선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 준다. 즉 단서구결에서도 나타나듯이 예민하지도 둔하지도 않은 기의 중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득선의 두 번째 요건은 현세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권진인이 남궁두와 이별 할 때 하게 되는 당부속에서 그는 남궁두에게 수심의 요체는 암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상이며 선악에 관한 생각만 하여도 귀신들이 좌우에 벌려 있어 그것을 남두궁에 기록하여 억제하고 응답해 주는 효과가 그림자나 메아리 보다 빠른 것이라 하여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선의 실현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도덕을 중시 여긴다던가 종교적인 제례를 중시 여긴다는 점에서 도교사상이 조선중기 이후 많은 사대부들에게 지대한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성리학의 덕목인 선의 실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도 있는데 신선이란 우리와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존재로 인식했다는 점, 즉 다시 말해서 도교사상을 신선적 사상을 위주로 한 종교로 인식하기 보다는 우리 현실 생활을 폭넓게 수용한 문화체계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종교적 의례로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대목은 남궁두가 태식을 수련 할 때 신태가 이루어질 기미를 보이자 장로가 삼재경을 걸고 칠성검을 좌우에 꽂아 주문을 외우고 마귀를 물리치는 대목 이라던지 남궁두와 헤어질 때 북두칠성에게 기도 할 것을 당부한 내용 이라던지는 주술적인 신앙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득선을 위한 수련과정에서 종교적인 의례가 병행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남궁선생전>은 내단학에 대한 허균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신선이 되고자 했던 남궁두라는 인물을 통해서 내단의 수련방법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다양한 수련법과 또 신선이 되기 위해서 부차적으로 행해야 하는 요건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덕을 중시 여기고 종교적인 제의를 중시 여겼던 점등은 도교사상이 가지는 흡수력과 소화력, 즉 유교나 민간신앙과도 연계되어서 발전해 나갔음을 입증해주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신선이 되는 방법을 나열함으로써 <남궁선생전> 속에는 당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추구 되었던 단학의 수련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단학에 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추구는 신선이 되고자 했던, 즉 신선이 상징하는 자유로움과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탈속적인 이미지를 추구 했던 당대의 사람들의 욕망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결론
지금 까지 도교가 전개되어온 양상과 그것이 우리의 문학속으로 스며 들면서 어떠한 흔적을 남겨는지에 대하여 기존의 논의들과 연구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 보았다. 왕성한 식욕과 소화력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도교가 우리나라로 전래 되면서부터 이는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과 소재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고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선들의 모습이나 영웅들의 신이한 행적들도 모두 도교가 안겨준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교의 업적은 특히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딱딱한 유교윤리가 만들어 내는 경직된 질서 속에서 마치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과도 같이 갇혀있던 있던 사람들의 정신적인 속박을 어느정도 나마 풀어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교적 사유를 문학속에서 표출 시킴으로써 도교는 이전의 단순한 희기취미의 반영이나 단순한 인간의 생사에 대한 욕망 차원에서 벗어나 많은 소설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회적으로나마 표현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도교에서 나타나는 신선 신선은 도가적 이상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그 이상세계는 신선계요 그곳에는 신선이 살고 있 다. 신선은 자유자재로 신통력을 발휘 할 수 있고 도의 이법을 깨닫고 능통하여 마음대로 변 화무쌍하게 할 수 있는 신인이요 지인이다.
의 모습은 인간 삶이 주는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삶을 나타내는 사회에 억압되지 않은 신선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유의 자유를 갈망하던 조선시대 지식인층의 모습을 쉽게 짐작해 낼 수 있다. 특히나 이러한 신선의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신선이 되는 방법에 심취해있던 조선시대 일부 지식인층의 모습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도교가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못하고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내단사상이 주류를 이룬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즉 신선이 되는 방법, 불로 장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추구가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이역시 문학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데 그것의 가장 큰 예를 들자면 허균의 남궁선생전을 들 수가 있다.
허균은 자신부터가 도교에 심취해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실존했던 것으로 알져지는 남궁두를 만나보고 그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남기기도 하였고 그의 이야기를 전의 형태로써 소설로써 형상화 하게 되는데 그것이 남궁선생전이다. 유교적 윤리의 테두리에서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 남궁 선생전에서의 남궁두가 행한 수련법은 실제의 내단 수련법과 일치하는 것들이다. 남궁 선생전에는 이러한 수련법외에도 득선을 하기 위해서 수련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실제적인 수련과정에서 병행되어야 할 것들에 관한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인내심이 강하여야 한다던가 도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던가 득선을 위해서는 덕을 쌓아야 한다던가 한다는 것들이 그것이다. 수련을 쌓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신선이 될 수는 없다. 신선이 되기 위한 요건중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도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궁선생전에서도 권진인은 남궁선생을 보고 “그대에게 도골이 있어 법으로는 마땅히 상승할만하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의 도골은 권진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기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둔하지 않고 탁월한 인내력과 신선과의 인연이 있어야 하며 욕념이 제거된 사람만이 도골을 지니고 수련을 통해서 신선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 준다. 즉 단서구결에서도 나타나듯이 예민하지도 둔하지도 않은 기의 중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득선의 두 번째 요건은 현세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권진인이 남궁두와 이별 할 때 하게 되는 당부속에서 그는 남궁두에게 수심의 요체는 암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상이며 선악에 관한 생각만 하여도 귀신들이 좌우에 벌려 있어 그것을 남두궁에 기록하여 억제하고 응답해 주는 효과가 그림자나 메아리 보다 빠른 것이라 하여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선의 실현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도덕을 중시 여긴다던가 종교적인 제례를 중시 여긴다는 점에서 도교사상이 조선중기 이후 많은 사대부들에게 지대한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성리학의 덕목인 선의 실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도 있는데 신선이란 우리와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존재로 인식했다는 점, 즉 다시 말해서 도교사상을 신선적 사상을 위주로 한 종교로 인식하기 보다는 우리 현실 생활을 폭넓게 수용한 문화체계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종교적 의례로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대목은 남궁두가 태식을 수련 할 때 신태가 이루어질 기미를 보이자 장로가 삼재경을 걸고 칠성검을 좌우에 꽂아 주문을 외우고 마귀를 물리치는 대목 이라던지 남궁두와 헤어질 때 북두칠성에게 기도 할 것을 당부한 내용 이라던지는 주술적인 신앙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득선을 위한 수련과정에서 종교적인 의례가 병행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남궁선생전>은 내단학에 대한 허균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신선이 되고자 했던 남궁두라는 인물을 통해서 내단의 수련방법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다양한 수련법과 또 신선이 되기 위해서 부차적으로 행해야 하는 요건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덕을 중시 여기고 종교적인 제의를 중시 여겼던 점등은 도교사상이 가지는 흡수력과 소화력, 즉 유교나 민간신앙과도 연계되어서 발전해 나갔음을 입증해주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신선이 되는 방법을 나열함으로써 <남궁선생전> 속에는 당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추구 되었던 단학의 수련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단학에 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추구는 신선이 되고자 했던, 즉 신선이 상징하는 자유로움과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탈속적인 이미지를 추구 했던 당대의 사람들의 욕망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결론
지금 까지 도교가 전개되어온 양상과 그것이 우리의 문학속으로 스며 들면서 어떠한 흔적을 남겨는지에 대하여 기존의 논의들과 연구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 보았다. 왕성한 식욕과 소화력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도교가 우리나라로 전래 되면서부터 이는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과 소재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고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선들의 모습이나 영웅들의 신이한 행적들도 모두 도교가 안겨준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교의 업적은 특히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딱딱한 유교윤리가 만들어 내는 경직된 질서 속에서 마치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과도 같이 갇혀있던 있던 사람들의 정신적인 속박을 어느정도 나마 풀어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교적 사유를 문학속에서 표출 시킴으로써 도교는 이전의 단순한 희기취미의 반영이나 단순한 인간의 생사에 대한 욕망 차원에서 벗어나 많은 소설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회적으로나마 표현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도교에서 나타나는 신선 신선은 도가적 이상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그 이상세계는 신선계요 그곳에는 신선이 살고 있 다. 신선은 자유자재로 신통력을 발휘 할 수 있고 도의 이법을 깨닫고 능통하여 마음대로 변 화무쌍하게 할 수 있는 신인이요 지인이다.
의 모습은 인간 삶이 주는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삶을 나타내는 사회에 억압되지 않은 신선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유의 자유를 갈망하던 조선시대 지식인층의 모습을 쉽게 짐작해 낼 수 있다. 특히나 이러한 신선의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신선이 되는 방법에 심취해있던 조선시대 일부 지식인층의 모습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도교가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못하고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내단사상이 주류를 이룬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즉 신선이 되는 방법, 불로 장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추구가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이역시 문학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데 그것의 가장 큰 예를 들자면 허균의 남궁선생전을 들 수가 있다.
허균은 자신부터가 도교에 심취해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실존했던 것으로 알져지는 남궁두를 만나보고 그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남기기도 하였고 그의 이야기를 전의 형태로써 소설로써 형상화 하게 되는데 그것이 남궁선생전이다. 유교적 윤리의 테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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