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시작하며
2. 판타지의 개념 정의와 분석기준
3. 토도로프의 기준에 따른 <프레스티지> 분석
① 사건 층위 - <나>의 테마와 자아동일성의 문제
② 반응 층위 - ‘경이적 괴기’와 과학의 문제
③ 서사담화 층위 - ‘주저함’의 환상성과 시대적 배경의 환상성
4.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 본 테마와 환상성
- 영화속 프레스티지와 데카르트적 분열된 주체
5. 마치며 -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탈근대성
2. 판타지의 개념 정의와 분석기준
3. 토도로프의 기준에 따른 <프레스티지> 분석
① 사건 층위 - <나>의 테마와 자아동일성의 문제
② 반응 층위 - ‘경이적 괴기’와 과학의 문제
③ 서사담화 층위 - ‘주저함’의 환상성과 시대적 배경의 환상성
4.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 본 테마와 환상성
- 영화속 프레스티지와 데카르트적 분열된 주체
5. 마치며 -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탈근대성
본문내용
체가 존재해야만 한다. 따라서 세계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생각하는 주체’의 이면에 ‘의심하는 주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적 주체는 두 개의 주체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6)
데카르트의 분열된 주체(자아, 또는 자신)는 엔지어와 보든의 분열된 주체와도 일치한다. 전면에서서 화려한 성공을 누리는 자아와, 그를 위해 죽음이나 팔롱으로서의 삶을 통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자아. 이 둘은 결국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를 상징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는 이성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합리적인 주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가장 환상적인 일들이 바로 자아의 분열, 즉 데카르트의 분열된 자아 때문에 발생한다. 가장 합리적인 것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에도 적용된다. 과학은 근대인들이 믿는 가장 이성적인 존재다. 그러나 테슬라의 발명품처럼, 과학은 가장 비이성적인 일을 가능하게 한다.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 믿었던 것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성, 그곳에서 환상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5. 마치며 -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탈근대성
지금까지 영화 <프레스티지>를 토도로프의 환상성의 기준에 비춰 분석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프레스티지>는 환상성의 원칙을 충실하게 따른 하나의 환상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토도로프의 정의에서의 판타지는 ‘주저함(hesitation)’을 핵심으로 삼는 장르다. 그러나 주저함은 관객들에게 환상성을 줄 수는 있어도 특정한 메시지를 확정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 관객들은 어떤 해석도 확실하게 하지 못한 채 의미화의 범위에서 부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상영화를 접한 관객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프레스티지>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은 영화 텍스트 내에 집중해 희생의 문제나 경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에서 나아가 과학의 문제나 분열된 자아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너무나 광범위한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감독은 무엇을 의도하려 했을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우리는 감독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아니, 그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진단해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중 하나다. 그것이 영화이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감독이라면, 우리는 감독이 우리의 과거와 미래, 우리 스스로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포스트 모던 사회, 경이과 괴기의 범위를 허물어가는 과학, 그리고 근대의 분열된 자아와 가시화되는 정체성의 문제들.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질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탈근대,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 참조
1) 「대중영화와 현대사회」, 1장 ‘영화장르, 친숙하고도 낯선’-김정선
2) 「환상문학서설」, 츠베탕 토도로프
3) 이는 독자의 반응 뿐 아니라 작중 인물의 반응 또한 포함하지만, 이 글에서는 특히 독자의 반응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4) <너>의 테마는 특히 억압된 것의 귀환에 관련되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견해에 가깝다.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무의식에 관하여」, 지그문트 프로이트. 참고
5) 19세기가 환상성이 등장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는 것은 토도로프의 견해와 일치한다. 토도로프는 환상성을 설명하면서 19세기 고딕소설을 표본으로 삼은 바 있다. 「환상문학서설」, 츠베탕 토도로프. 참고
6)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의 분열된 주체(자아, 또는 자신)는 엔지어와 보든의 분열된 주체와도 일치한다. 전면에서서 화려한 성공을 누리는 자아와, 그를 위해 죽음이나 팔롱으로서의 삶을 통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자아. 이 둘은 결국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를 상징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는 이성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합리적인 주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가장 환상적인 일들이 바로 자아의 분열, 즉 데카르트의 분열된 자아 때문에 발생한다. 가장 합리적인 것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에도 적용된다. 과학은 근대인들이 믿는 가장 이성적인 존재다. 그러나 테슬라의 발명품처럼, 과학은 가장 비이성적인 일을 가능하게 한다.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 믿었던 것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성, 그곳에서 환상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5. 마치며 -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탈근대성
지금까지 영화 <프레스티지>를 토도로프의 환상성의 기준에 비춰 분석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프레스티지>는 환상성의 원칙을 충실하게 따른 하나의 환상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토도로프의 정의에서의 판타지는 ‘주저함(hesitation)’을 핵심으로 삼는 장르다. 그러나 주저함은 관객들에게 환상성을 줄 수는 있어도 특정한 메시지를 확정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 관객들은 어떤 해석도 확실하게 하지 못한 채 의미화의 범위에서 부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상영화를 접한 관객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프레스티지>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은 영화 텍스트 내에 집중해 희생의 문제나 경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에서 나아가 과학의 문제나 분열된 자아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너무나 광범위한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감독은 무엇을 의도하려 했을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우리는 감독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아니, 그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진단해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중 하나다. 그것이 영화이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감독이라면, 우리는 감독이 우리의 과거와 미래, 우리 스스로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포스트 모던 사회, 경이과 괴기의 범위를 허물어가는 과학, 그리고 근대의 분열된 자아와 가시화되는 정체성의 문제들.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질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탈근대,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 참조
1) 「대중영화와 현대사회」, 1장 ‘영화장르, 친숙하고도 낯선’-김정선
2) 「환상문학서설」, 츠베탕 토도로프
3) 이는 독자의 반응 뿐 아니라 작중 인물의 반응 또한 포함하지만, 이 글에서는 특히 독자의 반응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4) <너>의 테마는 특히 억압된 것의 귀환에 관련되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견해에 가깝다.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무의식에 관하여」, 지그문트 프로이트. 참고
5) 19세기가 환상성이 등장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는 것은 토도로프의 견해와 일치한다. 토도로프는 환상성을 설명하면서 19세기 고딕소설을 표본으로 삼은 바 있다. 「환상문학서설」, 츠베탕 토도로프. 참고
6)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 르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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