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보혁을 넘는 역사 방법론의 윤리 - 장로교 분열사에 영향을 준 인물 중심으로 [역사방법론]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신학적 보혁을 넘는 역사 방법론의 윤리 - 장로교 분열사에 영향을 준 인물 중심으로 [역사방법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1. 박형룡과 한상동 : 고신 측의 분열

2. 박형룡과 김재준 : 예장과 기장의 분열

3. 박형룡과 한경직 : 합동과 통합의 분열

 3.1. 박형룡의 신학 노선

 3.2. 한경직의 신학 노선

 3.3. 합동 통합 분열의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들

나가며...

참고 문헌

본문내용

에서 탈퇴해서 한국 장로교의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1959년 11월 승동교회에서 이른바 ‘합동 총회’를 결성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WCC의 노선을 지지하는 총대들은 결국 1960년 2월 17일 서울 새문안 교회에서 법통 제44회 ‘(통합)총회’를 따로 소집하게 되었다. 이들은 WCC가 “자유신학 단체도 아니요 용공단체 및 단일교회 운동 단체도 아니라”고 천명하였다. 민경배, 『한국 기독교회사』(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p.581.
하지만 민경배의 기술에서 우리는 심각한 역사 왜곡을 야기할 수 있는 서술을 발견하게 된다. 합동과 통합 분열 이전 마지막 총회였던 1959년 9월 24일 대전 중앙교회에서 열린 제44회 총회는 WCC 가입문제가 아닌 경기노회 총대권 문제로 총회가 파행을 거듭했고, 동년 11월 24일까지 경기노회에서 총대를 다시 제출하기로 하고, 그 때까지 총회를 정회하자는 안건을 총회장은 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에큐메니칼 측은 총회의 정회 선언을 무시하고, 그 날 밤으로 상경하여 연동교회에서 자기들끼리 제44회 총회를 곧바로 속회한다. 그럼으로써 합동과 통합의 비극적 교단분열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데도 민경배는 에큐메니칼 측의 분열 행동, 즉 함께 참석했던 장로교 총회를 단 하루 만에 무시하고, 행동으로 교회 분열을 먼저 강행한 연동 측의 전혀 비에큐메니칼한 분열상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통합 측에 위치한 교회사가로서 대단히 왜곡된 역사 서술의 시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반해서 분열 당일의 기록을 합동 측의 박용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총회장이 정회를 선포하고 기도하자 회원들이 하나둘씩 산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중 갑자기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지하는 안광국 목사가 총회장 회의석상 “단 위로 뛰어 올라 불신임안을 낭독하고” “가하면 ‘예’하십시오, ‘가결되었습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번개같이 하단했다. 이것은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지하는 자들은.... 새문안 교회에서 속회하기로 한 결정과는 달리 29일 연동교회 총회를 속회했다. 총회장, 부총회장, 서기, 부서기, 회록 원서기, 부서기 1 명도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전필순 목사의 사회로 총회를 속회하고 총회장 이창규를 선출했다. 박형룡, Ibid., pp. 1004-1005.
나가며...
본 글에서는 인물 중심으로 신학적 보혁의 입장에 따른 장로교단 분열사와 함께 그것을 기록하는 교회사가의 시점이 역사 서술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교회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교회사가의 신학적 보혁의 입장과 시점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확연히 영향을 주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박형룡과 한상동의 고신 분열사, 박형룡과 김재준의 기장 분열사, 박형룡과 한경직의 합동, 통합 분열사에서 각각 신학적 입장 차가 드러났고, 이를 기록하는 사가들의 시점에 따른 비판과 옹호의 기록들을 살펴보았는데, 교회사가 각자의 시점과 신학적 입장은 존중될 수 있으나, 교회사가의 시점이 역사를 왜곡하는 단계에까지는 가지 않는 역사서술방법론의 윤리는 신학적 보혁의 입장을 넘어 모두가 지켜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김양선, 『한국 기독교 해방 10년사』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 1956
김요나, 『총신 90년사 : 1901-1991』도서출판 양문, 1991
민경배, 『한국 기독교회사』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2 (1910-1960)』서울 : 생명의 말씀사, 2004
양낙홍, “박형룡의 고려신학교 사임이유에 대한 재고”,『한국 기독교와 역사』제25호
서울: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소, 2006
양낙홍, “1959년 한국 장로교의 분열 과정” 『한국 기독교와 역사』제23호
서울: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소, 2005
장동민, 『박형룡의 신학 연구』서울: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소, 1998
주재용, 『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최성수, “김재준과 박형룡의 논쟁에서 나타난 신학적 배타성과 한국신학의 과제로서 비판 신학”
『기독교 사상』2001년 6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한국기독교장로회역사편찬위원회, 『한국 기독교 100년사』서울: 한국기독교장로회 출판사, 1992
한숭홍, 『한경직의 생애와 사상』서울 :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3
100년사 편찬 위원회, 『총신대학교 100년사』서울: 총신대학교, 2003
  • 가격1,8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1.11
  • 저작시기2019.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691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