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는 말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의 움직임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의 회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던 신학의 일반적 개요와 평가
『베짜는 하느님』에 나타난 한국교회의 포스트모더니즘 신학 논쟁
3장 후회하시는 하느님 / 신론과 예정론 그리고 신정론에 대한 고찰
6장 묻혀있는 예수: 상생相生의 신학
예수 운동 속의 상생 주지主旨
상생공동체로서의 한국교회의 과제
상생의 영성
한반도가 기다리는 제3교회
나가는 글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의 움직임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의 회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던 신학의 일반적 개요와 평가
『베짜는 하느님』에 나타난 한국교회의 포스트모더니즘 신학 논쟁
3장 후회하시는 하느님 / 신론과 예정론 그리고 신정론에 대한 고찰
6장 묻혀있는 예수: 상생相生의 신학
예수 운동 속의 상생 주지主旨
상생공동체로서의 한국교회의 과제
상생의 영성
한반도가 기다리는 제3교회
나가는 글
본문내용
부터 받았음을 자각하는 인간이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이에 관해 한스 큉의 문구를 예로 든다.
카리스마의 재발견은 특히 바울 교회론의 재발견이다. 카리스마는 일차적으로 예외적이 아니라 일상적이며 형태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며, 특정인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혀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교회의 중심적인 현상이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라고 하는 특수한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라고 하는 넓은 무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은 구체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시어 특별한 사명을 맡기신다. 또한 성령이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속된 삶, 일상의 틀에 얽매인 삶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한반도가 기다리는 제3교회
교회라고 하는 기독교신앙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열매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며 그 맡겨진 사명은 죄를 용서해줌으로서 인산 세계의 모든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가 부활의공동체, 성령의 공동체 이기보다 인간들의 단체, 이익집단에 불과했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 그래서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와는 다른 제3의 교회를 제안한다.
이 제3의 교회는 어떤 성직자의 지배와 위계도 구성하지 않는 비교권적 교회요, 초교파적인 교회를 지칭한다. 그는 이 생각을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에게서 가져오는데 구체적으로 이 제3의 교회란 설교와 성례전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근본적 친교가 중심이 되는 교회다. 제3의 교회가 되면 교회의 선교는 교회의 팽창이 아니라 지배와 분열을 극복하고 성령의 능력이 구체화되며 확산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신앙생활 핵심이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리는데 있다면 굳이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교회 중심적 사고를 하면서 사실은 교권주의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그러나 홍정수교수는 교회의 본질적 특성이 친교에 있음을 주장한다. 이 코이노니아는 세상의 교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들의 어우러짐이며 이것이 세상과 교회의 다른점인 것이다.
나가는 글
당시 한국교회의 포스트모던신학 논쟁을 종합하면 “세상을 개혁하되 타他를 정복함으로서가 아니라 포용하고 넘어섬으로서 하는 상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보수와 진보적 시각차라고 여겨서는 안되며, 한국의 신학과 교회가 진지하게 이미 포스트모던이란 새로운 사유방식에 적응하기를 포기하고 이데올로기적 접근방식을 취함으로서 불러온 갈등양상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너무도 쉽게 끝나버렸고 한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그 갈등을 숙련되고 진지하게 처리하지 못한 결과로서 오히려 둘 다 죽고 마는 팀 킬의 국면을 오늘날 맞고 있다.
Text는 분명 상황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상황을 극복하고 초월하며 미래를 불러오는 힘이 있다. 그 힘이 meta-myth적이며, 배타적이고 전근대적이라 해도 포스트모더니즘은 결국 이 절대주의의 토양에서 양분을 받아 왔다. 따라서 절대주의가 강화되어야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반동으로서 힘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상생을 위한 것에 에너지를 주어야 하며, 또 다른 학문적 사조를 이식하고 접목하는 차원에 놓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모던 논쟁이 한국교회의 기득권(?)에 도전을 주는 것이라기 보다, 한국교회의 신학적 목회적 안일함에 경고를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재차의 포스트모던 논쟁은 언젠가는 우리가 치러야할 값비싼 수업료로서 가치가 있게 될 것이고, 전통신학과 포스트모던 신학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교회가 지구적 책임감과 하나님나라 확장이라는 공통과제를 대하는데 서로 연대함으로서, 굳이 민족적 상생전통을 애써 들먹이거나 예수의 삶을 일종의 운동이라고 억지 해석하는 것을 극복하는 성숙한 성서해석과, 다양한 성서해석의 풍부함을 가진다면, 한국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묻지마 나몰라 성장주의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극단적 상대주의는 또 하나의 절대화를 구축하며 극단적 절대주의 역시 다양한 유사 상대주의를 불러올 것이다.
특히 본 발제문에서 개략적으로 다루었으나 홍정수 전 감신대교수로부터 촉발된 한국교회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또 하나의 의미와 의의는, 우리가 절대냐 상대냐 하는 것의 기준을 여전히 어느만치 두느냐에 고민하고 있을 때 양자의 통합이나 균형이 아니라 우리 민족주의에서 발생된 제3의 길, 곧 상생相生의 길(신학)을 제시함으로서 포스트-모더니티를 서구의 신학 안에 포장하고 세련되게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영성과 정서에 맞는 일종의 토착화를 모색하고자 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베를 짜는 하나님의 뿌리인 성서속의 문화 앞의 책, 20.
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라고 홍정수교수는 말한다.
참고도서
홍정수,『베짜는 하느님』(2002)
David R. Griffin, 강성도 역,『포스트모던 하나님 포스트모던 기독교』(2002)
John A. T. Robinson, 현영학 역,『신에게 솔직히』(2007)
Lesslie Newbigin, 김기현 역,『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2005)
Ronal Wright, 김해식 역,『진보의 신화』(2004)
Stanley J. Grenz, 김운용 역,『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2010)
J. Richard Middleton/Brian Walsh, 김기현/신광은 역, 『포스트 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2007)
David F. Ford, 류장열 외 3인 역, 『현대신학과 신학자들』(2005)
kevin J. Vanhoozer, 『Postmodern theology』(2003)
J. Richard Middleton, 성기문 역, 『해방의 형상The Liberating Image』(2009)
Paul Licoeu, 양명수 역, 『해석의 갈등』(2001)
Sallie Mcfague, 『Metaphorical Theology』(1982)
김형효,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2008)
카리스마의 재발견은 특히 바울 교회론의 재발견이다. 카리스마는 일차적으로 예외적이 아니라 일상적이며 형태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며, 특정인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혀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교회의 중심적인 현상이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라고 하는 특수한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라고 하는 넓은 무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은 구체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시어 특별한 사명을 맡기신다. 또한 성령이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속된 삶, 일상의 틀에 얽매인 삶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한반도가 기다리는 제3교회
교회라고 하는 기독교신앙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열매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며 그 맡겨진 사명은 죄를 용서해줌으로서 인산 세계의 모든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가 부활의공동체, 성령의 공동체 이기보다 인간들의 단체, 이익집단에 불과했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 그래서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와는 다른 제3의 교회를 제안한다.
이 제3의 교회는 어떤 성직자의 지배와 위계도 구성하지 않는 비교권적 교회요, 초교파적인 교회를 지칭한다. 그는 이 생각을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에게서 가져오는데 구체적으로 이 제3의 교회란 설교와 성례전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근본적 친교가 중심이 되는 교회다. 제3의 교회가 되면 교회의 선교는 교회의 팽창이 아니라 지배와 분열을 극복하고 성령의 능력이 구체화되며 확산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신앙생활 핵심이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리는데 있다면 굳이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교회 중심적 사고를 하면서 사실은 교권주의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그러나 홍정수교수는 교회의 본질적 특성이 친교에 있음을 주장한다. 이 코이노니아는 세상의 교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들의 어우러짐이며 이것이 세상과 교회의 다른점인 것이다.
나가는 글
당시 한국교회의 포스트모던신학 논쟁을 종합하면 “세상을 개혁하되 타他를 정복함으로서가 아니라 포용하고 넘어섬으로서 하는 상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보수와 진보적 시각차라고 여겨서는 안되며, 한국의 신학과 교회가 진지하게 이미 포스트모던이란 새로운 사유방식에 적응하기를 포기하고 이데올로기적 접근방식을 취함으로서 불러온 갈등양상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너무도 쉽게 끝나버렸고 한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그 갈등을 숙련되고 진지하게 처리하지 못한 결과로서 오히려 둘 다 죽고 마는 팀 킬의 국면을 오늘날 맞고 있다.
Text는 분명 상황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상황을 극복하고 초월하며 미래를 불러오는 힘이 있다. 그 힘이 meta-myth적이며, 배타적이고 전근대적이라 해도 포스트모더니즘은 결국 이 절대주의의 토양에서 양분을 받아 왔다. 따라서 절대주의가 강화되어야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반동으로서 힘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상생을 위한 것에 에너지를 주어야 하며, 또 다른 학문적 사조를 이식하고 접목하는 차원에 놓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모던 논쟁이 한국교회의 기득권(?)에 도전을 주는 것이라기 보다, 한국교회의 신학적 목회적 안일함에 경고를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재차의 포스트모던 논쟁은 언젠가는 우리가 치러야할 값비싼 수업료로서 가치가 있게 될 것이고, 전통신학과 포스트모던 신학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교회가 지구적 책임감과 하나님나라 확장이라는 공통과제를 대하는데 서로 연대함으로서, 굳이 민족적 상생전통을 애써 들먹이거나 예수의 삶을 일종의 운동이라고 억지 해석하는 것을 극복하는 성숙한 성서해석과, 다양한 성서해석의 풍부함을 가진다면, 한국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묻지마 나몰라 성장주의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극단적 상대주의는 또 하나의 절대화를 구축하며 극단적 절대주의 역시 다양한 유사 상대주의를 불러올 것이다.
특히 본 발제문에서 개략적으로 다루었으나 홍정수 전 감신대교수로부터 촉발된 한국교회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또 하나의 의미와 의의는, 우리가 절대냐 상대냐 하는 것의 기준을 여전히 어느만치 두느냐에 고민하고 있을 때 양자의 통합이나 균형이 아니라 우리 민족주의에서 발생된 제3의 길, 곧 상생相生의 길(신학)을 제시함으로서 포스트-모더니티를 서구의 신학 안에 포장하고 세련되게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영성과 정서에 맞는 일종의 토착화를 모색하고자 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베를 짜는 하나님의 뿌리인 성서속의 문화 앞의 책, 20.
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라고 홍정수교수는 말한다.
참고도서
홍정수,『베짜는 하느님』(2002)
David R. Griffin, 강성도 역,『포스트모던 하나님 포스트모던 기독교』(2002)
John A. T. Robinson, 현영학 역,『신에게 솔직히』(2007)
Lesslie Newbigin, 김기현 역,『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2005)
Ronal Wright, 김해식 역,『진보의 신화』(2004)
Stanley J. Grenz, 김운용 역,『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2010)
J. Richard Middleton/Brian Walsh, 김기현/신광은 역, 『포스트 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2007)
David F. Ford, 류장열 외 3인 역, 『현대신학과 신학자들』(2005)
kevin J. Vanhoozer, 『Postmodern theology』(2003)
J. Richard Middleton, 성기문 역, 『해방의 형상The Liberating Image』(2009)
Paul Licoeu, 양명수 역, 『해석의 갈등』(2001)
Sallie Mcfague, 『Metaphorical Theology』(1982)
김형효,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2008)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