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답사를 시작하며
2. 들어가는 말
3. 시대적 배경
3.1 1920년대 시대적 배경
3.2 1930년대 시대적 배경
3.3 1940년대 시대적 배경
3.4 1950년대 시대적 배경
4. 시인의 생애와 작품
4.1.가족사
4.2. 휘문고보와의 인연1.
4.3. 휘문고보와의 인연2.
4.4. 유학 시절의 문학 활동
4.5.졸업논문 『윌리엄 블레이크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
4.6. 일제강점하의 지식인 정지용
4.7.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
4.8. 《문장》지 심사위원화 후진양성
4.9. 종교적 신앙과 성신의 구원
4.10. 《구인회》와 반카프적 입장
4.11. 정지용이 여행한 산
5. 시인의 작품집
6.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
6.1. 1910년대 현대시의 출발
6.2. 1920년대 낭만주의
6.3. 1930년대 모더니즘
6.4. 1940년대: 1930년대 말기와 40년대
6.5. 1950년대 해방과 이후의 현대시
7. 맺는 말
2. 들어가는 말
3. 시대적 배경
3.1 1920년대 시대적 배경
3.2 1930년대 시대적 배경
3.3 1940년대 시대적 배경
3.4 1950년대 시대적 배경
4. 시인의 생애와 작품
4.1.가족사
4.2. 휘문고보와의 인연1.
4.3. 휘문고보와의 인연2.
4.4. 유학 시절의 문학 활동
4.5.졸업논문 『윌리엄 블레이크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
4.6. 일제강점하의 지식인 정지용
4.7.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
4.8. 《문장》지 심사위원화 후진양성
4.9. 종교적 신앙과 성신의 구원
4.10. 《구인회》와 반카프적 입장
4.11. 정지용이 여행한 산
5. 시인의 작품집
6.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
6.1. 1910년대 현대시의 출발
6.2. 1920년대 낭만주의
6.3. 1930년대 모더니즘
6.4. 1940년대: 1930년대 말기와 40년대
6.5. 1950년대 해방과 이후의 현대시
7. 맺는 말
본문내용
(1948. 박문출판사 초판)
이 책은 대게 《문장》,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실린 기행문과 시론 및 수필류의 산문을 싣고 있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8.15 해방 이전에 쓴 산문들이다.
『산문』(1949. 동지사 초판)
『문학독본』에서 싣지 못한 해방 이전의 산문 일부와 경향신문사 주간으로 재직할 당시에 쓴 시론류와 서평 및 휘트먼의 시를 번역한 작품을 중심으로 엮었다.
정지용 시선집 {프랑스어판}
『Nostalgie』 (향수), L’ Harmattan, Paris, 1999 이가림 조르쥬 지겔메이어 공역
정지용 시인 일본 동지사 대학 학위논문(1928년)
6.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
6.1. 1910년대 현대시의 출발
1908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되면서 우리 시단은 전통적인 시가의 바탕위에서 서구적인 신문학을 수용해 가려는 모색의 시기에 접어든다. 김억은 서구 문예이론과 작품들을 번역소개하고, 직접 창작시도 발표한다. 그리고 주요한이 「불놀이」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자유시의 시대를 연다.
6.2. 1920년대 낭만주의
1910년대의 시가 계몽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반하여 1920년대의 시는 주정적이며 감상적이었다. 31운동의 좌절에 따른 방향 상실과 절망을 표현했다. 이런 시기에도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용운과 김소월이다. 한용운은 지조 높은 민족 운동가이자 종교지도자로 이상화와 함께 저항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고, 김소월은 전통적인 정감을 민요적 율조로 구성하여 우리 민족의 <한(恨)>을 노래했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김기진, 박영희, 조명희 등이 KAPF(조선프로레탈리아예술동맹)을 조직하여 30년대 중반까지 본격적인 논쟁의 시대를 연다. 이른바 계급의식 고양과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문학이 그것이다.
6.3. 1930년대 모더니즘
1930년 드디어 우리 시문학사의 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문학》동인이 발족되어 감각적인 언어의 세계를 보여준다. 당시 정지용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휘문고보에 재직하고 있었다. 동인으로는 정지용, 김영랑, 박용철, 번영로, 신석정, 김현구, 이하윤 등이 있었다. 193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구인회》가 조직되면서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정지용, 김기림, 백석, 이상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계문명과 도시생활의 영향 하에서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갖게 하였다.
6.4. 1940년대: 1930년대 말기와 4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발발로 오장환, 서정주, 유치환, 김달진, 함형수 등이 《시인부락》을 만들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정지용이 《문장》지를 통해 배출한 청록파 시인들(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퇴색한 도시와 위험한 문명에 대한 반발로 자연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추구하였다. 한편 미족의 광복을 ㅜ이해 시를 쓰고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이육사와 윤동주이다. 이 외에도 이용악, 김광섭, 박남수, 노천명, 모윤숙 등의 시인들이 등장해 작품 활동을 벌이지만,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친일시를 제외하고는 작품을 발표조차 할 수 없었다. 암흑기로 접어든 것이다.
6.5. 1950년대 해방과 이후의 현대시
해방과 함께 그동안 침묵했던 시인들은 다시 목청을 가다듬는다. 생명파와 청록파, 좌익 진영의 시인들, 전위 시인들이 저마다의 세계를 노래하거나 부르짖는다. 그러나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소용돌이가 들이닥치면서 시단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난다. 김춘수, 김수영, 박인환, 신동엽, 구상, 조병화, 박용래, 김종삼 등 한국전쟁을 전하여 새로운 시인들이 등장해 저마다 특색 있는 목소리로 한국 시단을 이끈다. 어려운 시대에서 빛나는 시정신으로 작품을 쓰고, 시대를 앞서간 시인들이 있어 오늘의 한국시가 이만큼 풍성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7. 맺는 말
내가 정지용 시인에 대해서, 그의 작품에 대해서 공부하고 ‘향수’를 노래 부르던 시절에 정지용 시인이 30여 년간 우리가 배우던 교과서나 그의 작품이 읽히기를 금기시 되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것이 마침내 우리에게 다시 읽혀지고 배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이번 문학관 방문으로 왜 그랬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시인은 북한 인민군에 의해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고 한다. 이후 납북되어 그해 9월 25일에 사망했다고 기록이 있지만 그의 정확한 행적을 알 수가 없고 남한에서는 한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터라 그가 납북한 배신자라고 하여 그의 작품이 금기시 되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그도 그럴 듯이 시인의 셋째 아들인 정구인 씨가 2001년에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에 와서 형과 여동생을 만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내가 방문했던 이무영 작가가 그렇듯이 정지용 시인도 한때는 친일파였다는 소문도 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작가들이 본의 아니게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지용 시인 같은 경우 일본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친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충분히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인이 납북을 자신하여 하였는지 친일파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과 박남수, 이한직, 김종한고 같은 유능한 시인들을 발굴하고 양성한 1930년대의 한국시단에 한 획을 그을 만큼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지용제, 지용회, 지용 신인문학상, 지용 문학상 전국 지용 백일장 등의 정지용 기념사업이 매년 계속 되고 있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이미 배웠지만 1910년부터 1950년대까지의 문학에 대해서 복습하는 기회와 낯익은 작가들의 이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토록 떠나있던 고향에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소감은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아련한 추억으로 나를 맞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은 대게 《문장》,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실린 기행문과 시론 및 수필류의 산문을 싣고 있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8.15 해방 이전에 쓴 산문들이다.
『산문』(1949. 동지사 초판)
『문학독본』에서 싣지 못한 해방 이전의 산문 일부와 경향신문사 주간으로 재직할 당시에 쓴 시론류와 서평 및 휘트먼의 시를 번역한 작품을 중심으로 엮었다.
정지용 시선집 {프랑스어판}
『Nostalgie』 (향수), L’ Harmattan, Paris, 1999 이가림 조르쥬 지겔메이어 공역
정지용 시인 일본 동지사 대학 학위논문(1928년)
6.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
6.1. 1910년대 현대시의 출발
1908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되면서 우리 시단은 전통적인 시가의 바탕위에서 서구적인 신문학을 수용해 가려는 모색의 시기에 접어든다. 김억은 서구 문예이론과 작품들을 번역소개하고, 직접 창작시도 발표한다. 그리고 주요한이 「불놀이」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자유시의 시대를 연다.
6.2. 1920년대 낭만주의
1910년대의 시가 계몽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반하여 1920년대의 시는 주정적이며 감상적이었다. 31운동의 좌절에 따른 방향 상실과 절망을 표현했다. 이런 시기에도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용운과 김소월이다. 한용운은 지조 높은 민족 운동가이자 종교지도자로 이상화와 함께 저항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고, 김소월은 전통적인 정감을 민요적 율조로 구성하여 우리 민족의 <한(恨)>을 노래했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김기진, 박영희, 조명희 등이 KAPF(조선프로레탈리아예술동맹)을 조직하여 30년대 중반까지 본격적인 논쟁의 시대를 연다. 이른바 계급의식 고양과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문학이 그것이다.
6.3. 1930년대 모더니즘
1930년 드디어 우리 시문학사의 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문학》동인이 발족되어 감각적인 언어의 세계를 보여준다. 당시 정지용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휘문고보에 재직하고 있었다. 동인으로는 정지용, 김영랑, 박용철, 번영로, 신석정, 김현구, 이하윤 등이 있었다. 193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구인회》가 조직되면서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정지용, 김기림, 백석, 이상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계문명과 도시생활의 영향 하에서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갖게 하였다.
6.4. 1940년대: 1930년대 말기와 4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발발로 오장환, 서정주, 유치환, 김달진, 함형수 등이 《시인부락》을 만들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정지용이 《문장》지를 통해 배출한 청록파 시인들(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퇴색한 도시와 위험한 문명에 대한 반발로 자연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추구하였다. 한편 미족의 광복을 ㅜ이해 시를 쓰고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이육사와 윤동주이다. 이 외에도 이용악, 김광섭, 박남수, 노천명, 모윤숙 등의 시인들이 등장해 작품 활동을 벌이지만,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친일시를 제외하고는 작품을 발표조차 할 수 없었다. 암흑기로 접어든 것이다.
6.5. 1950년대 해방과 이후의 현대시
해방과 함께 그동안 침묵했던 시인들은 다시 목청을 가다듬는다. 생명파와 청록파, 좌익 진영의 시인들, 전위 시인들이 저마다의 세계를 노래하거나 부르짖는다. 그러나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소용돌이가 들이닥치면서 시단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난다. 김춘수, 김수영, 박인환, 신동엽, 구상, 조병화, 박용래, 김종삼 등 한국전쟁을 전하여 새로운 시인들이 등장해 저마다 특색 있는 목소리로 한국 시단을 이끈다. 어려운 시대에서 빛나는 시정신으로 작품을 쓰고, 시대를 앞서간 시인들이 있어 오늘의 한국시가 이만큼 풍성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7. 맺는 말
내가 정지용 시인에 대해서, 그의 작품에 대해서 공부하고 ‘향수’를 노래 부르던 시절에 정지용 시인이 30여 년간 우리가 배우던 교과서나 그의 작품이 읽히기를 금기시 되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것이 마침내 우리에게 다시 읽혀지고 배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이번 문학관 방문으로 왜 그랬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시인은 북한 인민군에 의해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고 한다. 이후 납북되어 그해 9월 25일에 사망했다고 기록이 있지만 그의 정확한 행적을 알 수가 없고 남한에서는 한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터라 그가 납북한 배신자라고 하여 그의 작품이 금기시 되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그도 그럴 듯이 시인의 셋째 아들인 정구인 씨가 2001년에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에 와서 형과 여동생을 만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내가 방문했던 이무영 작가가 그렇듯이 정지용 시인도 한때는 친일파였다는 소문도 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작가들이 본의 아니게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지용 시인 같은 경우 일본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친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충분히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인이 납북을 자신하여 하였는지 친일파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과 박남수, 이한직, 김종한고 같은 유능한 시인들을 발굴하고 양성한 1930년대의 한국시단에 한 획을 그을 만큼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지용제, 지용회, 지용 신인문학상, 지용 문학상 전국 지용 백일장 등의 정지용 기념사업이 매년 계속 되고 있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이미 배웠지만 1910년부터 1950년대까지의 문학에 대해서 복습하는 기회와 낯익은 작가들의 이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토록 떠나있던 고향에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소감은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아련한 추억으로 나를 맞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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