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책 속 이야기들
chapter 1 엘리야의 기름 부음
chapter 2 예언 사역
chapter 3 외치는 자의 소리
chapter 4 주의 길을 준비하라
chapter 5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
chapter 6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chapter 7 진짜 회개와 가짜 회개
chapter 8 자기의 복음
chapter 9 우상 숭배를 피하라
chapter 10 좋은 뿌리에 좋은 열매가 열린다
Ⅲ. 마치며..
Ⅱ. 책 속 이야기들
chapter 1 엘리야의 기름 부음
chapter 2 예언 사역
chapter 3 외치는 자의 소리
chapter 4 주의 길을 준비하라
chapter 5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
chapter 6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chapter 7 진짜 회개와 가짜 회개
chapter 8 자기의 복음
chapter 9 우상 숭배를 피하라
chapter 10 좋은 뿌리에 좋은 열매가 열린다
Ⅲ. 마치며..
본문내용
면서 심령이 강해졌다. 왜 공수부대 대원들은 더 강한 훈련을 받는가? 그들이 투입되는 전투 장소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면서 은근히 헌금을 강요한 사람도 아니다. 자기를 불러 달라고 간청한 적도 없다. 세례요한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에 의해 충족되었다. 그 빈들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배웠다. 어쩐 재력가나 재단이 그를 돌봐준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은 아무런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다. 오늘 날 너무나도 많은 목회자가 교인들이 자신의 설교를 싫어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오늘날 목회자를 조종하는 것은 당회이지 성령님이 아니다.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강단에 선 현대의 많은 목회자는 당회에 의해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다.
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두려워할 수 없다. 하나를 두려워하면 다른 하나는 두려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 많은 설교와 가르침 속에 감동이나 생명이 없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시111:10, 잠29:25). 목회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는 하나님의 지혜로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그가 전하는 말씀이나 행함에 자유와 생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올무가 된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듣는 법을 광야에서 배웠다. 세례요한은 주님에게서 직접 기름부으심을 받았다. 그것은 거룩한 분으로부터 온 기름부음이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욕이었다. 그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했다. 그의 설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마11:7~10). 오늘날 미국 신자들은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설교나 가르침을 듣고 있다.
하나님을 제한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제한한다. 하나님을 자신이 만든 상자에 가두어버린다. 하나님은 바람같은 분이시다. 교인들의 귀를 간지럽히는 이상의 말씀을 전할 설교자들이 필요하다. 교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말을 전하는 그런 설교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의 설교자는 교인수에 벌벌 떨 필요가 없다.
요한은 설교할 자리를 가리면서 설교하지 않았다.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운명에 처한 사람이었다. 요한이 하나님을 갈망할수록, 그는 직접적인 목회 사역에서 멀어졌다. 하나님은 요한을 신학교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내몰았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기회를 잡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고, 자리를 얻으려고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에 넣어 주시는 말씀을 선포하도록 친히 문을 열어주실 것을 알았다.
오늘날 현대 목회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전문화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필요를 충족해 주시는 분임을 신뢰하면서, 자기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보조적 수단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날 많은 부흥사와 선교 단체는 목회자들에게 그들의 사역을 팔기 위해 여러 홍보물을 보낸다. 그들의 공급처는 하나님이 아니고 교회다.
하나님 사랑은 주는 사랑이다. 오늘날 모든 종교 사역의 핵심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반드시, ‘사역’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사역을 일으키시는 목적도 바로 이것이다. 이들 경건한 자들은 교회 지도자와 남은 자들에게로 가서 회개하라는 경고의 나팔을 크게 울릴 것이다(눅1:17).
Chapter 3. 외치는 자의 소리
열매가 소명을 확증해 준다(막1:1~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세례요한은 구약 시대에 속한 인물이므로 현재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례요한’이라는 제목으로 구약의 마흔번째 책을 쓰게 하셨을 것이다. 세례요한의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의 시작 부분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메시지였다. 셰례요한의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부분적인 회개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오늘날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단한 기도 한 마디를 하고 교회에 등록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로인해 가짜로 회개하는 신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담대히 선포했다(행3:19). 진짜로 죄 사함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동시에 돌이켜야 한다. 진정한 회개 없이는 돌이킴도 없을 것이다.
명함이 아닌 열매로 안다.
세레 요한은 레위 족속에 속한 대 제사장의 후손이었다. 세례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대답했다(요1:21). 목회자들이 상당히 많은 돈을 받고 방송에 출연해서 사역한다. 그들은 ‘사역’이 아니라, ‘오락’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을 ‘사역’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면, 세상과 비슷하게 되어야 한다고 핑계를 댄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설교자의 스타일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개종한 사람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기쁨을 구하였다”에 사용된 헬라어 ‘아레스코’다. 이 단어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감정을 고조시켜서 즐겁게 해줌’ 일반인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허풍치다’ 내지는 ‘사기친다’라는 뜻이다.
세례요한에게 접근했던 사람들은 직함과 지위,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중을 멋들어지게 조종함으로써, 목회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세례요한을 찾아온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요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경계했다. 많은 사람이 광야로 나아가서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있었기
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두려워할 수 없다. 하나를 두려워하면 다른 하나는 두려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 많은 설교와 가르침 속에 감동이나 생명이 없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시111:10, 잠29:25). 목회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는 하나님의 지혜로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그가 전하는 말씀이나 행함에 자유와 생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올무가 된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듣는 법을 광야에서 배웠다. 세례요한은 주님에게서 직접 기름부으심을 받았다. 그것은 거룩한 분으로부터 온 기름부음이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욕이었다. 그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했다. 그의 설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마11:7~10). 오늘날 미국 신자들은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설교나 가르침을 듣고 있다.
하나님을 제한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제한한다. 하나님을 자신이 만든 상자에 가두어버린다. 하나님은 바람같은 분이시다. 교인들의 귀를 간지럽히는 이상의 말씀을 전할 설교자들이 필요하다. 교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말을 전하는 그런 설교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의 설교자는 교인수에 벌벌 떨 필요가 없다.
요한은 설교할 자리를 가리면서 설교하지 않았다.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운명에 처한 사람이었다. 요한이 하나님을 갈망할수록, 그는 직접적인 목회 사역에서 멀어졌다. 하나님은 요한을 신학교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내몰았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기회를 잡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고, 자리를 얻으려고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에 넣어 주시는 말씀을 선포하도록 친히 문을 열어주실 것을 알았다.
오늘날 현대 목회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전문화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필요를 충족해 주시는 분임을 신뢰하면서, 자기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보조적 수단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날 많은 부흥사와 선교 단체는 목회자들에게 그들의 사역을 팔기 위해 여러 홍보물을 보낸다. 그들의 공급처는 하나님이 아니고 교회다.
하나님 사랑은 주는 사랑이다. 오늘날 모든 종교 사역의 핵심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반드시, ‘사역’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사역을 일으키시는 목적도 바로 이것이다. 이들 경건한 자들은 교회 지도자와 남은 자들에게로 가서 회개하라는 경고의 나팔을 크게 울릴 것이다(눅1:17).
Chapter 3. 외치는 자의 소리
열매가 소명을 확증해 준다(막1:1~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세례요한은 구약 시대에 속한 인물이므로 현재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례요한’이라는 제목으로 구약의 마흔번째 책을 쓰게 하셨을 것이다. 세례요한의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의 시작 부분에 동일하게 등장한다.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메시지였다. 셰례요한의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부분적인 회개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오늘날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단한 기도 한 마디를 하고 교회에 등록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로인해 가짜로 회개하는 신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담대히 선포했다(행3:19). 진짜로 죄 사함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동시에 돌이켜야 한다. 진정한 회개 없이는 돌이킴도 없을 것이다.
명함이 아닌 열매로 안다.
세레 요한은 레위 족속에 속한 대 제사장의 후손이었다. 세례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대답했다(요1:21). 목회자들이 상당히 많은 돈을 받고 방송에 출연해서 사역한다. 그들은 ‘사역’이 아니라, ‘오락’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을 ‘사역’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면, 세상과 비슷하게 되어야 한다고 핑계를 댄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설교자의 스타일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개종한 사람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기쁨을 구하였다”에 사용된 헬라어 ‘아레스코’다. 이 단어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감정을 고조시켜서 즐겁게 해줌’ 일반인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허풍치다’ 내지는 ‘사기친다’라는 뜻이다.
세례요한에게 접근했던 사람들은 직함과 지위,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중을 멋들어지게 조종함으로써, 목회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세례요한을 찾아온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요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경계했다. 많은 사람이 광야로 나아가서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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