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연보쓰기
2. 자서전의 한 단락쓰기
2. 자서전의 한 단락쓰기
본문내용
돌리었고, 몇몇은 수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ㅇㅇ는 나에게 같이 앉자고 말을 했고 나는 그 권유가 너무 반가웠다. 같이 창가에 앉아 어느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같이 입학한 친구들이 있는지 이야기하였고 ㅇㅇ는 같이 입학한 친구들은 다 다른 반에 배정되었다고 속상해하였다. 서로 함께 할 친구가 없던 우리는 앞으로 함께하기로 하였다.
ㅇㅇ는 반에서 키가 3번째로 작았고, 아주 다람쥐처럼 날쌘 아이였다. 밝고 활발하며 입을 크게 벌리며 고개를 뒤로 넘기면서 웃는 호탕한 아이였다. ㅇㅇ와 함께 학교에 다니며 나는 혼란스러운 가정사와는 반대되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ㅇㅇ와 나는 TV에 나오는 여자 그룹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며 놀았고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은 그런 우리 둘을 보고 2인조 여자 그룹이라며 우리의 성을 딴 김시스터즈라고 불렀다. 행복한 학교생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아버지 없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이 좋았고 할아버지가 몰래몰래 주시는 용돈이 좋았다. 두 분은 부모님이 이혼한 나를 안쓰럽고 불쌍히 여기며 온 힘을 다해 돌보아 주셨다. 그 마음이 잘 느껴졌기에 내가 불쌍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가끔은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과 안정을 느끼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집으로 오셨다. 이혼하면서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직장으로 옮기었기 때문에 홀로 다른 지역에 사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간식을 사 오셨다. 처음에는 간식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슬픔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상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많은 짜증과 신경질이 났고 이걸 그대로 표현했다.
아버지는 점점 간식을 조용히 두고 거실에 앉아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게 나는 편하게 느껴졌고 점점 당연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그 순간이 제일 불편하고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의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불편한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와 나는 점점 서먹해져만 갔다. 종종 오던 어머니의 연락도 내가 무시하거나 단 답으로 대답하면서 연락마저 뜸해져 갔다. 나는 그것에 편하다고 느끼면서도 외로워 ㅇㅇ와 학교 친구들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였다.
어느 날 나는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이 억누를 수 없이 밀려와 ㅇㅇ에게 울분을 토하듯 말하였고 ㅇㅇ는 그런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울다가 지쳐 말없이 훌쩍이고 있을 때, ㅇㅇ는 배가 고프다며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아주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날 흘린 눈물은 나의 마음을 개운하게 하였고 시시때때로 혼란스러워 요동치던 마음을 잠재웠다. 어미니. 아버지가 헤어져 생긴 공허한 마음이 친구의 울음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울고 난 후 주말에 온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오셨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물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아버지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며 옆에 앉아 함께 TV를 보았다.
ㅇㅇ는 나에게 같이 앉자고 말을 했고 나는 그 권유가 너무 반가웠다. 같이 창가에 앉아 어느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같이 입학한 친구들이 있는지 이야기하였고 ㅇㅇ는 같이 입학한 친구들은 다 다른 반에 배정되었다고 속상해하였다. 서로 함께 할 친구가 없던 우리는 앞으로 함께하기로 하였다.
ㅇㅇ는 반에서 키가 3번째로 작았고, 아주 다람쥐처럼 날쌘 아이였다. 밝고 활발하며 입을 크게 벌리며 고개를 뒤로 넘기면서 웃는 호탕한 아이였다. ㅇㅇ와 함께 학교에 다니며 나는 혼란스러운 가정사와는 반대되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ㅇㅇ와 나는 TV에 나오는 여자 그룹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며 놀았고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은 그런 우리 둘을 보고 2인조 여자 그룹이라며 우리의 성을 딴 김시스터즈라고 불렀다. 행복한 학교생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아버지 없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이 좋았고 할아버지가 몰래몰래 주시는 용돈이 좋았다. 두 분은 부모님이 이혼한 나를 안쓰럽고 불쌍히 여기며 온 힘을 다해 돌보아 주셨다. 그 마음이 잘 느껴졌기에 내가 불쌍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가끔은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과 안정을 느끼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집으로 오셨다. 이혼하면서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직장으로 옮기었기 때문에 홀로 다른 지역에 사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간식을 사 오셨다. 처음에는 간식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슬픔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상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많은 짜증과 신경질이 났고 이걸 그대로 표현했다.
아버지는 점점 간식을 조용히 두고 거실에 앉아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게 나는 편하게 느껴졌고 점점 당연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그 순간이 제일 불편하고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의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불편한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와 나는 점점 서먹해져만 갔다. 종종 오던 어머니의 연락도 내가 무시하거나 단 답으로 대답하면서 연락마저 뜸해져 갔다. 나는 그것에 편하다고 느끼면서도 외로워 ㅇㅇ와 학교 친구들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였다.
어느 날 나는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이 억누를 수 없이 밀려와 ㅇㅇ에게 울분을 토하듯 말하였고 ㅇㅇ는 그런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울다가 지쳐 말없이 훌쩍이고 있을 때, ㅇㅇ는 배가 고프다며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아주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날 흘린 눈물은 나의 마음을 개운하게 하였고 시시때때로 혼란스러워 요동치던 마음을 잠재웠다. 어미니. 아버지가 헤어져 생긴 공허한 마음이 친구의 울음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울고 난 후 주말에 온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오셨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물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아버지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며 옆에 앉아 함께 TV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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