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도 중요한 것입니다. 주자와 마찬가지로 이퇴계에게도 심성존양은 가까운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심학은 현실경험을 추상개념으로 설명하자는 게 결코 아니고, 우리 안간의 일상생활에서 도를 구현 ― 「凝道」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한 이퇴계의 明敏한 분석은 성학십도의 第六圖에 나옵니다. 이것은 이퇴계가 68세 때 왕에게 선물로 바친 유교교리 도표입니다.
) 「進聖學十圖箚幷圖」, 『文集』권7,『全書』상, pp.195-211;『年譜』하,68- 69세, 「言行錄」 권7,『全書』하, pp.764-765 ; 767-768.
제6도는 上, 中, 下 세 도표로 되어 있는데 주자사상의 핵심인 「心統性情」을 설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 「心統性情圖說」,『全書』상, pp.204-205.
네 字로 된 이 말은 본시 張載(1020∼1077)가 처음 쓴 말인데, 주자가 해석한 바 心性情 세 가지 핵심개념의 관계를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統이란 字는 통솔과 통합 두 가지 뜻이 있는 만큼 心이 움직여 情을 잘 조절하여 性을 조화롭게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퇴계의 이 도표의 독창성은 그 中圖와 下圖에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성학십도에 제시된 모든 사상 가운데서 이 두 가지 도표만은 완전히 그 분의 창작입니다.
) 「第六心統性情圖」,『全書』p.204.
나머지 도표들은 선유들의 교리를 주로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분명한 의도는, 心統性情의 뜻을 소상하게 밝혀 보려는데 있는 듯합니다. 理와 氣, 性과 情, 사단과 칠정 사이의 번잡한 관계를 분명하게 圖示한 그 솜씨는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도표를 이용하여 근세유교의 주제를 자세히 밝혀 놓았습니다. 즉 「心이 조용한 정지상태에 있으면 性이 되고, 외부 영향에 직접 감응할 때는 情이 된다. 밖에 드러나지 않은 性은 心의 體요, 밖에 드러난 정은 心의 用이다」라는 것입니다.
-195-
이퇴계의 이런 분석에는 두 가지 상호연관된 개념이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먼저 말하기를, 體는 用과 서로 가를 수도 없지만, 用과 混一(雜)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程 가 理의 본성이라 하고, 장재가 천지의 본성이라고 한 바 「본연의 성」은 갖가지 특이양식의 氣 한가운데서 그대로 純善합니다. 그러니 본연의 性의 發인 情은 조화롭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존재론 다음에는 실존적 변론이 나옵니다. 즉 본여지성이 기질지성과 밀접히 얽혀 있으므로, 性은 하나로되 이름을 둘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情은 理의 發이 되거나 아니면 氣의 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 氣는 理를 따르고(隨), 후자의 경우 理가 氣를 타고 앉는(乘)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가를 수도 없고 雜(混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四七문제와 직접 관계됩니다. 四端은 理의 發로서 순선합니다. 氣가 끼어들면 본원에서 빗나갈 수가 있지만 말입니다. 반대로 七情은 氣의 發로서, 순선한 것은 아니나, 理의 참여로 妙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약해 말씀드리면, 이퇴계는 心의 中됨을 자기 생각대로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主一身하고, (2) 該萬化하고, (3) 合理氣하고, (4) 統性情하는 것은 心입니다.
) 「主一身, 該萬化, 合理氣, 統性情」,『全書』上, p.204.
心의 은미함이 정말로 드러나는 것은 情이 性에서 발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앞서 心法은 존양의 노력을 하고 그 순간 직후에는 자기성찰의 원숙한 지혜를 계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계속적인 내적 인격함양으로 성현의 學을 완전하게 체현할 수가 있다고 이퇴계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196-
(강 봉 식 譯)
이러한 과제에 대한 이퇴계의 明敏한 분석은 성학십도의 第六圖에 나옵니다. 이것은 이퇴계가 68세 때 왕에게 선물로 바친 유교교리 도표입니다.
) 「進聖學十圖箚幷圖」, 『文集』권7,『全書』상, pp.195-211;『年譜』하,68- 69세, 「言行錄」 권7,『全書』하, pp.764-765 ; 767-768.
제6도는 上, 中, 下 세 도표로 되어 있는데 주자사상의 핵심인 「心統性情」을 설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 「心統性情圖說」,『全書』상, pp.204-205.
네 字로 된 이 말은 본시 張載(1020∼1077)가 처음 쓴 말인데, 주자가 해석한 바 心性情 세 가지 핵심개념의 관계를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統이란 字는 통솔과 통합 두 가지 뜻이 있는 만큼 心이 움직여 情을 잘 조절하여 性을 조화롭게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퇴계의 이 도표의 독창성은 그 中圖와 下圖에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성학십도에 제시된 모든 사상 가운데서 이 두 가지 도표만은 완전히 그 분의 창작입니다.
) 「第六心統性情圖」,『全書』p.204.
나머지 도표들은 선유들의 교리를 주로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분명한 의도는, 心統性情의 뜻을 소상하게 밝혀 보려는데 있는 듯합니다. 理와 氣, 性과 情, 사단과 칠정 사이의 번잡한 관계를 분명하게 圖示한 그 솜씨는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도표를 이용하여 근세유교의 주제를 자세히 밝혀 놓았습니다. 즉 「心이 조용한 정지상태에 있으면 性이 되고, 외부 영향에 직접 감응할 때는 情이 된다. 밖에 드러나지 않은 性은 心의 體요, 밖에 드러난 정은 心의 用이다」라는 것입니다.
-195-
이퇴계의 이런 분석에는 두 가지 상호연관된 개념이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먼저 말하기를, 體는 用과 서로 가를 수도 없지만, 用과 混一(雜)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程 가 理의 본성이라 하고, 장재가 천지의 본성이라고 한 바 「본연의 성」은 갖가지 특이양식의 氣 한가운데서 그대로 純善합니다. 그러니 본연의 性의 發인 情은 조화롭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존재론 다음에는 실존적 변론이 나옵니다. 즉 본여지성이 기질지성과 밀접히 얽혀 있으므로, 性은 하나로되 이름을 둘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情은 理의 發이 되거나 아니면 氣의 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 氣는 理를 따르고(隨), 후자의 경우 理가 氣를 타고 앉는(乘)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가를 수도 없고 雜(混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四七문제와 직접 관계됩니다. 四端은 理의 發로서 순선합니다. 氣가 끼어들면 본원에서 빗나갈 수가 있지만 말입니다. 반대로 七情은 氣의 發로서, 순선한 것은 아니나, 理의 참여로 妙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약해 말씀드리면, 이퇴계는 心의 中됨을 자기 생각대로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主一身하고, (2) 該萬化하고, (3) 合理氣하고, (4) 統性情하는 것은 心입니다.
) 「主一身, 該萬化, 合理氣, 統性情」,『全書』上, p.204.
心의 은미함이 정말로 드러나는 것은 情이 性에서 발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앞서 心法은 존양의 노력을 하고 그 순간 직후에는 자기성찰의 원숙한 지혜를 계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계속적인 내적 인격함양으로 성현의 學을 완전하게 체현할 수가 있다고 이퇴계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196-
(강 봉 식 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