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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진화론의 지평: 맬더스, 페일리
Ⅲ. 진화론의 제 양상: 라일, 챔버스, 월러스, 다윈
Ⅳ. 결론
Ⅱ. 진화론의 지평: 맬더스, 페일리
Ⅲ. 진화론의 제 양상: 라일, 챔버스, 월러스, 다윈
Ⅳ. 결론
본문내용
로 대표되는 다윈의 독창적 발견이라기보다는 19세기 영국에 넓게 퍼져있었던 과학사상을 다양한 표본을 통해 객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IV.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진화론은 다윈의 독창적인 발견이라기보다는 19세기 영국의 지배 담론들 중의 하나로 보인다. 따라서 진화론은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은 인간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으며 처음부터 확정되어 불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결국 라일, 챔버즈, 월러스, 그리고 다윈은 진화론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에 상관없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꼴인데 이에 관련해서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유명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진술을 하고 있다.
문학 텍스트이든 철학 책이든 과학 책이든 어느 작품의 내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을 시도하면서 혹은 심리적이고 전기적인 자료의 한계를 정하면서 주체의 절대성과 창조성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기 어렵다. ……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어떤 상황아래, 어떤 형식을 통해 주체와 같은 사항이 담론의 질서 속에 나타날 수 있는가? …… 요약하여 주체는 창조의 역할을 빼앗기고 담론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기능으로 분석된다.
) Michel Foucault. Language, Counter-Memory, Practice: Selected Essays and Interviews, trans. D. Bouchard (New York: Cornell Univ. Press, 1977), pp. 137-38.
결국 같은 시대에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주장을 한다면 푸코식으로 "창조의 역할을 빼앗긴 주체"가 이데올로기의 영향아래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알렌(Graham Allen)의 다음과 같은 지적처럼 저자의 의식이 자신만의 것이 아닌 동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기원은 저자의 단일한 의식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 다른 언어, 다른 말과 다른 텍스트들이다. 우리가 저자의 머리 속을 들여다본다면 생각이나 유일하게 의도된 의미가 아니라 '이미 읽혀진 것,' '이미 쓰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 Graham Allen, Intertextuality (Routledge, 2000), p. 72.
결국 의미체계 내에서 존재하는 사인(signs)으로서의 텍스트는 "특별한 사회적 맥락, 언어의 한정된 발생과 수용의 경우에 적용"
) Allen, Intertextuality, p. 11.
되는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는 개인의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텍스트이며, 개인의 텍스트와 문화적 텍스트는 같은 문화적 재료로 만들어지며 분리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진화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 의해 촉발되거나 다윈 자신의 독창적인 과학적 발견이라기보다는 빅토리아 시대가 공유하고 있던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양상이며 이는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분위기를 과학이라는 담론에 접목시킨 형태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의 기준을 자체의 이익에 부합시키기 위해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재단"
) Paul Hamilton, Historicism (London: Routledge, 1996), p. 4.
으로 이것은 그 시대가 갖는 독특한 정치 경제 문화적 특성을 그 시대의 구성원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 구성원들에게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Abstract/
Evolution: An Aspect of Victorian Ideology
Moon, Sangwha
Although the theory of evolution is credited to Charles Darwin,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the theory of evolution had been spreading in England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Evolutionary opinions in the eighteenth century had questioned the natural theory spread by William Paley who insisted the universe had been created harmoniously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In his Principle of Population, Malthus, however, argued that Nature could not cultivate enough food to feed human beings. The cruel image of Nature opened the road to evolution in nineteenth century England.
Lyell, Chambers, and Wallace were contemporary scientists with Darwin. Lyell in his Geology published almost 30years earlier than Darwin's Origin showed that the forces that created our planet were still in operation. Chambers who published Vestiges anonymously implied that the species were constantly developing through the long history of the earth. And Wallace reached the same conclusion as Darwin, even though they studied separately the idea of evolution. One possible answer to the question as to why the theory of evolution was so widely disseminated during the Victorian Era is the ethos of the nineteenth century England.
IV.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진화론은 다윈의 독창적인 발견이라기보다는 19세기 영국의 지배 담론들 중의 하나로 보인다. 따라서 진화론은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은 인간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으며 처음부터 확정되어 불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결국 라일, 챔버즈, 월러스, 그리고 다윈은 진화론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에 상관없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꼴인데 이에 관련해서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유명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진술을 하고 있다.
문학 텍스트이든 철학 책이든 과학 책이든 어느 작품의 내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을 시도하면서 혹은 심리적이고 전기적인 자료의 한계를 정하면서 주체의 절대성과 창조성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기 어렵다. ……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어떤 상황아래, 어떤 형식을 통해 주체와 같은 사항이 담론의 질서 속에 나타날 수 있는가? …… 요약하여 주체는 창조의 역할을 빼앗기고 담론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기능으로 분석된다.
) Michel Foucault. Language, Counter-Memory, Practice: Selected Essays and Interviews, trans. D. Bouchard (New York: Cornell Univ. Press, 1977), pp. 137-38.
결국 같은 시대에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주장을 한다면 푸코식으로 "창조의 역할을 빼앗긴 주체"가 이데올로기의 영향아래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알렌(Graham Allen)의 다음과 같은 지적처럼 저자의 의식이 자신만의 것이 아닌 동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기원은 저자의 단일한 의식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 다른 언어, 다른 말과 다른 텍스트들이다. 우리가 저자의 머리 속을 들여다본다면 생각이나 유일하게 의도된 의미가 아니라 '이미 읽혀진 것,' '이미 쓰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 Graham Allen, Intertextuality (Routledge, 2000), p. 72.
결국 의미체계 내에서 존재하는 사인(signs)으로서의 텍스트는 "특별한 사회적 맥락, 언어의 한정된 발생과 수용의 경우에 적용"
) Allen, Intertextuality, p. 11.
되는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는 개인의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텍스트이며, 개인의 텍스트와 문화적 텍스트는 같은 문화적 재료로 만들어지며 분리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진화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 의해 촉발되거나 다윈 자신의 독창적인 과학적 발견이라기보다는 빅토리아 시대가 공유하고 있던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양상이며 이는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분위기를 과학이라는 담론에 접목시킨 형태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의 기준을 자체의 이익에 부합시키기 위해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재단"
) Paul Hamilton, Historicism (London: Routledge, 1996), p. 4.
으로 이것은 그 시대가 갖는 독특한 정치 경제 문화적 특성을 그 시대의 구성원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 구성원들에게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Abstract/
Evolution: An Aspect of Victorian Ideology
Moon, Sangwha
Although the theory of evolution is credited to Charles Darwin,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the theory of evolution had been spreading in England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Evolutionary opinions in the eighteenth century had questioned the natural theory spread by William Paley who insisted the universe had been created harmoniously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In his Principle of Population, Malthus, however, argued that Nature could not cultivate enough food to feed human beings. The cruel image of Nature opened the road to evolution in nineteenth century England.
Lyell, Chambers, and Wallace were contemporary scientists with Darwin. Lyell in his Geology published almost 30years earlier than Darwin's Origin showed that the forces that created our planet were still in operation. Chambers who published Vestiges anonymously implied that the species were constantly developing through the long history of the earth. And Wallace reached the same conclusion as Darwin, even though they studied separately the idea of evolution. One possible answer to the question as to why the theory of evolution was so widely disseminated during the Victorian Era is the ethos of the nineteenth century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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