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국가주의 교육사상
2.신인문주의와 계발주의 교육사상
3. 페스탈로찌
4. 헤르바르트
5. 프뢰뵐
2.신인문주의와 계발주의 교육사상
3. 페스탈로찌
4. 헤르바르트
5. 프뢰뵐
본문내용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이지적이고, 합리적이고, 공리적인 물질문명에 기울어졌던 계몽사상이 너무나 인간을 기계시하는데 대한 반동으로서, 정의를 존중하고 인간성의 원만한 발달을 숭상하며 역사와 민족에 중점을 두는 인도적인 사상이 문예적인 면이나, 철학적인 면에 로맨티시즘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교육상에 나타나서 신인문주의의 교육운동으로 발전하여 간 것이다. 그러나 15세기의 인문주의와 19세기의 신인문주의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 : 인문주의와 신인문주의는 다 같이 고전을 존중하였으나 신인문주의는 인문주의와 같이 이것을 직역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이른바 키케로주의가 아니고 고전을 수단으로 하여 고대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 하고져 하였다.
둘째 : 인문주의가 주로 로마의 고전을 중시한데 반하여 신인문주의는 그리이스의 고전을 더 중시함으로써 그리이스의 문학, 미술 등을 통하여 인간성을 존중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신인문주의가 기술한 17세기의 인문적 실학주의와 동일한 계보에 속한다고 하겠으나 다만 신인문주의가 앞세기의 계몽사상의 반동으로 탄생한 사조라는 면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달리한다.
셋째 : 인문주의은 언어본위로서 고대인과 같이 고대어를 사용하기를 이상으로 하였으나 신인문주의는 고대어뿐만 아니라 고대의 도덕, 예술 특히 미술에도 흥미를 가져, 그것으로써 인격의 내용적 충실을 꾀하여 최대한 그들 생활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였다.
신인문주의적인 경향은 자연주의자 루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그것을 독일 민족의 사상 운동으로 전개한 것은 독일 게팅겐 대학의 수사학 교수였던 게스너(J.M.Gesner, 1691-1761)였다. 그러나 신인문주의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면 ,칸트(I.Kant, 1724-1804)와 헤겔의 철학사상, 피히테와 슐라이어막허 등의 국가주의 사상도 포함된다. 철학자 칸트는 계몽주의의 완성자로 평가 되지만, 순수이성에 대하여 실천이성의 우위를 주장함으로써 주지주의를 극복하고 계몽주의적 공리주의 윤리설을 극복하는 직각론적 윤리설을 주장한 점에서 신인문주의자라 할 수 있다.
&계발주의&
신인문주의 사조의 여러갈래 중에서도 독일 교육제도의 발전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국가주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국가주의 교육사상을 고찰하기에 앞서, 교육을 “개인적 발달의 과정” 으로, 교육의 목적을 ‘인간성의 완성’으로 규정함으로써 새 시대를 이끌어갈 교육의 지도 이념을 제시한 계발주의(Developmentalism) 사상을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계발주의란 개개 아동의 자연적 본성을 계발해 내는 것을 교육의 본질로 보는 개인주의적 관점으로서, 계몽사상의 개인주의와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발주의자들은 교육을 단순한 내면으로부터의 성장이나 후천적인 학습으로 보지 않고, 인간 내면과 외부 환경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심리적 원칙들을 발견하기 위한 관찰과 연구를 강조했다.
개인과 사회를 대비시켜 생각할 때 계발주의는 교육의 무게중심을 개인의 발달에 두었다. 이는 무게중심을 사회에 두고 교육의 본질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민의 양성’에 두는 집단주의적 관점과 대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발주의는 교육방법론 측면에서 국가주의 교육사상과 같은 집단주의적 관점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교육사사에 영향을 줌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새로운 근대교육의 지도이념이 된 사상이다.
계발주의 교육내용으로는 활동중심의 교육과정이 요청, 적용되었고, 교과는 독거. 습자(글씨쓰기). 지리. 역사. 어학. 문학. 유희. 음악. 작업. 미술 등으로 분화 되었으며, 교육방법으로는 아동과 흥미, 창작에 중점을 두었다. 계발주의자들의 교육목적 및 내용 방법은 그 강조점에 따가 약간씩 다르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아동을 성인의 축소판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아동은 충실히 도야되어야 할 인격적인 존재로 보았다.
둘째, 아동의 심리에 바탕을 둔 교육을 역설하며, 도야대상인 아동의 본성과 심의를 연구하며 그에 적합한 교육을 강조하였다.
셋째, 자연주의 원리의 발전으로 인하여 코메니우스와 루소의 교육사상의 계승, 발전으로 이어 졌다.
넷째, 노력할 때에 흥미. 진보가 있고, 흥미가 있을 때 노력은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고 하여 흥미와 노력을 아울러 강조하였다.
계발주의 사상가로는 칸트, 페스탈로치, 프뢰벨 등이 있다.
페스탈로치 (J. H pestalozzi, 1746~1827)
(1)생애
-1726년 취리히에서 태어남.
-감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성적 성격의 소유자.
-5살 때 아버지를 여임.
-취리히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루소의 영향을 많이 받음.
-1768년 취리히 근처의 뮐링겐이라는 곳에 농장을 사서 노이호프라고 이름 짓고 전원생활 시작.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에서 이름을 따와 아들의 이름을 자크라고 짓고 루소의 생각에 따라 교육하면서 성장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는 교육실험을 함.
→농촌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빈민교육에 대한 뜻을 굳힘
-1774년 20명 가량의 빈민 아동들을 모아서 ‘일하면서 배우는 빈민아동 학교’ 만듦 → 농사일과 옷감 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쳐 장차 직업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
-1780년 파산으로 빈민학교 문을 닫음.
-그후 18년동안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지 시작.
[숨은 이의 저녁때]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입법과 영아 살해]등 저술.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빈민아동 학교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교육에 대한 생각을 소설
로 씀.
⇒‘최선의 교육이 반드시 이상적인 가정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평범한 농부의
가정도 인간적인 유대와 일거리가 있는 한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학교
교육도 가정에서의 교육과 다르지 않다’
-1798년 스위스 혁명정부가 수립→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신념으로 부모를 일은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슈탄츠의 고아원장직에 자원
⇒교육원리 실험→
첫째 : 인문주의와 신인문주의는 다 같이 고전을 존중하였으나 신인문주의는 인문주의와 같이 이것을 직역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이른바 키케로주의가 아니고 고전을 수단으로 하여 고대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 하고져 하였다.
둘째 : 인문주의가 주로 로마의 고전을 중시한데 반하여 신인문주의는 그리이스의 고전을 더 중시함으로써 그리이스의 문학, 미술 등을 통하여 인간성을 존중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신인문주의가 기술한 17세기의 인문적 실학주의와 동일한 계보에 속한다고 하겠으나 다만 신인문주의가 앞세기의 계몽사상의 반동으로 탄생한 사조라는 면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달리한다.
셋째 : 인문주의은 언어본위로서 고대인과 같이 고대어를 사용하기를 이상으로 하였으나 신인문주의는 고대어뿐만 아니라 고대의 도덕, 예술 특히 미술에도 흥미를 가져, 그것으로써 인격의 내용적 충실을 꾀하여 최대한 그들 생활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였다.
신인문주의적인 경향은 자연주의자 루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그것을 독일 민족의 사상 운동으로 전개한 것은 독일 게팅겐 대학의 수사학 교수였던 게스너(J.M.Gesner, 1691-1761)였다. 그러나 신인문주의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면 ,칸트(I.Kant, 1724-1804)와 헤겔의 철학사상, 피히테와 슐라이어막허 등의 국가주의 사상도 포함된다. 철학자 칸트는 계몽주의의 완성자로 평가 되지만, 순수이성에 대하여 실천이성의 우위를 주장함으로써 주지주의를 극복하고 계몽주의적 공리주의 윤리설을 극복하는 직각론적 윤리설을 주장한 점에서 신인문주의자라 할 수 있다.
&계발주의&
신인문주의 사조의 여러갈래 중에서도 독일 교육제도의 발전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국가주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국가주의 교육사상을 고찰하기에 앞서, 교육을 “개인적 발달의 과정” 으로, 교육의 목적을 ‘인간성의 완성’으로 규정함으로써 새 시대를 이끌어갈 교육의 지도 이념을 제시한 계발주의(Developmentalism) 사상을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계발주의란 개개 아동의 자연적 본성을 계발해 내는 것을 교육의 본질로 보는 개인주의적 관점으로서, 계몽사상의 개인주의와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발주의자들은 교육을 단순한 내면으로부터의 성장이나 후천적인 학습으로 보지 않고, 인간 내면과 외부 환경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심리적 원칙들을 발견하기 위한 관찰과 연구를 강조했다.
개인과 사회를 대비시켜 생각할 때 계발주의는 교육의 무게중심을 개인의 발달에 두었다. 이는 무게중심을 사회에 두고 교육의 본질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민의 양성’에 두는 집단주의적 관점과 대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발주의는 교육방법론 측면에서 국가주의 교육사상과 같은 집단주의적 관점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교육사사에 영향을 줌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새로운 근대교육의 지도이념이 된 사상이다.
계발주의 교육내용으로는 활동중심의 교육과정이 요청, 적용되었고, 교과는 독거. 습자(글씨쓰기). 지리. 역사. 어학. 문학. 유희. 음악. 작업. 미술 등으로 분화 되었으며, 교육방법으로는 아동과 흥미, 창작에 중점을 두었다. 계발주의자들의 교육목적 및 내용 방법은 그 강조점에 따가 약간씩 다르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아동을 성인의 축소판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아동은 충실히 도야되어야 할 인격적인 존재로 보았다.
둘째, 아동의 심리에 바탕을 둔 교육을 역설하며, 도야대상인 아동의 본성과 심의를 연구하며 그에 적합한 교육을 강조하였다.
셋째, 자연주의 원리의 발전으로 인하여 코메니우스와 루소의 교육사상의 계승, 발전으로 이어 졌다.
넷째, 노력할 때에 흥미. 진보가 있고, 흥미가 있을 때 노력은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고 하여 흥미와 노력을 아울러 강조하였다.
계발주의 사상가로는 칸트, 페스탈로치, 프뢰벨 등이 있다.
페스탈로치 (J. H pestalozzi, 1746~1827)
(1)생애
-1726년 취리히에서 태어남.
-감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성적 성격의 소유자.
-5살 때 아버지를 여임.
-취리히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루소의 영향을 많이 받음.
-1768년 취리히 근처의 뮐링겐이라는 곳에 농장을 사서 노이호프라고 이름 짓고 전원생활 시작.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에서 이름을 따와 아들의 이름을 자크라고 짓고 루소의 생각에 따라 교육하면서 성장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는 교육실험을 함.
→농촌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빈민교육에 대한 뜻을 굳힘
-1774년 20명 가량의 빈민 아동들을 모아서 ‘일하면서 배우는 빈민아동 학교’ 만듦 → 농사일과 옷감 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쳐 장차 직업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
-1780년 파산으로 빈민학교 문을 닫음.
-그후 18년동안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지 시작.
[숨은 이의 저녁때]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입법과 영아 살해]등 저술.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빈민아동 학교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교육에 대한 생각을 소설
로 씀.
⇒‘최선의 교육이 반드시 이상적인 가정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평범한 농부의
가정도 인간적인 유대와 일거리가 있는 한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학교
교육도 가정에서의 교육과 다르지 않다’
-1798년 스위스 혁명정부가 수립→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신념으로 부모를 일은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슈탄츠의 고아원장직에 자원
⇒교육원리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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