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인 관계설정 자체가 자기 기만의 표현이다. 아스트로필이 보여주는 자기 기만의 근저에는 페트라르키즘 자체의 모순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은 문학관습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종교와 정치라는 세 개의 강력한 문화적 언술들이 충돌하는 심각한 궁정적 게임인 것이다.
존스와 스탤리부라스도 아스트로펠의 언어에 나타난 찬양의 어투와 능란한 처신은 새로운 궁정인이 군주와의 관계에서 행사했던 어투나 처신과 대단히 유사하며, 이러한 특징은 시인과 후원자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따라서 헨리 8세 시대에 와이어트에게서 조심스럽게 나타나기도 했던 ‘게임’의 성격을 띈 페트라르카적인 사랑은 엘리자베스 시대 후반기로 이행하면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궁정문화의 구조적 특성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Jones & Stallybrass, 53-69).
시드니의 소네트에서 궁정의 정치구조 못지 않게 사랑의 역학관계를 전위시키는 것은 그의 뿌리 깊은 신교주의(Protestantism)이다. 신필드는 16세기 영문학과 신교주의의 관계를 연구한 저서에서 “문학의 상상적 흥분과 더불어 신교적 교리의 압력을 느끼고 있었던 개신교 인문주의자는 통렬하고도 지속적인 전위의 위기국면에 처해 있었다”고 시드니에게 가한 신교주의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Sinfield, 23). 시드니 소네트 전편을 통하여 신교적 이념은 아스트로펠의 넘쳐흐르는 생명력과 자아 탐닉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고 그것들에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5번 소네트에서 12행까지는 시종일관 주인공이 성적 사랑에 탐닉하는 태도를 거부하며 13행에서는 “사실, 지상에서 우리는 단지 순례자일 뿐”(true, that on earth we are but pilgrims made)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마지막 행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스텔라를 사랑하는 것도 사실인 것을”(True; and yet true that I must Stella love)이라고 하여 71번 소네트처럼 앞의 내용 전체를 와해시키면서 그 의미를 전위시키로 있다(Sinfield, 57).
시드니의 소테트를 전위시키는 요인으로서 귀족계급의 궁정문화와 신교주의 이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여성들은 이러한 지배계급의 관점과 정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반응했던 것일까? 『별을 사랑하는 자와 별』은 시종일관 아스토로펠의 관점에서, 즉 남성들이 확립해 논 이념구조 내에서 발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6세기 페트라르카류의 소네트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찬양의 대상인 스텔라의 특성들은 그때그때 시인의 의식에 의해서 조작되거나 시인의 의식에 충돌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들로서 긴밀한 내적 관련성이 없는 특성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단순히 시인-연인의 욕망이 만들어 낸 차가운 구조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남성이 중요한 모든 역할을 담당하도록 마련된 무대에서 일종의 조상(彫像)처럼 저 멀리 격리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스텔라의 발언은 아스트로펠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하는 경우로 국한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여인을 우상화하면서도 현실의 압력과 인간적인 매력을 떨쳐버릴 수 없는 시드니의 연작 소네트에서 비록 스텔라가 직접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지만 그가 마련해 놓은 시적 상황에 대해서 그녀가 발언할 수 있다면 어떤 류의 발언이 가능한 것일까? 그녀의 침묵은 그녀의 성격 탓인가, 아니면 아스트로펠의 압력 때문인가? 아니면 여성들의 참여가 허용되지도 않았고 그들이 통제할 수도 없는 ‘문화적 맹목’(cultural blindness), 그래서 그들을 단순히 응시와 분석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제도적 압력 때문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드니의 연작 소네트가 다양한 독자층에게 다양한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것을 별개의 독립된 소네트들의 모음으로 보든 아니면 병치와 변주로 긴밀하게 연결된 통일된 작품으로 보든 그의 소네트 도처에는 사랑이 ‘내던져져 있음’(thrownness)을 느끼게 하는 절박한 현대적 감정이 맥박치고 있다. 『별을 사랑하는 자와 별』의 이런 특성이야말로 50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그것이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과도 ‘상호택스트성’(inter-textuality)을 구축할 수 있는 이유이다(Waller, 142-43).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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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es, Ann Rosalind & Stallybrass, Peter. 'The Politics of Astrophil and Stella'. Studies in English Literature 1500-1900. vol. 24 (1984), pp. 53-69.
Kalstone, David. Sidney's Poetry: Contexts and Interpretation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5.
Lever, J. W. The Elizabethan Love Sonnet.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6.
Lewis, C. S. English Literature of the Sixteenth Century Excluding Drama.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MacCoy, Richard C. Sir Philip Sidney: Rebellion in Arcadia.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1979.
Ringler, William A. Jr., ed. The Poems of Sir Philip Sidne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Sinfield, Alan. Literature in Protestant England 1560-1660. London: Croom Helm, 1983.
Waller, Gary. English Poetry of the Sixteenth Century. London: Longman, 1993.
존스와 스탤리부라스도 아스트로펠의 언어에 나타난 찬양의 어투와 능란한 처신은 새로운 궁정인이 군주와의 관계에서 행사했던 어투나 처신과 대단히 유사하며, 이러한 특징은 시인과 후원자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따라서 헨리 8세 시대에 와이어트에게서 조심스럽게 나타나기도 했던 ‘게임’의 성격을 띈 페트라르카적인 사랑은 엘리자베스 시대 후반기로 이행하면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궁정문화의 구조적 특성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Jones & Stallybrass, 53-69).
시드니의 소네트에서 궁정의 정치구조 못지 않게 사랑의 역학관계를 전위시키는 것은 그의 뿌리 깊은 신교주의(Protestantism)이다. 신필드는 16세기 영문학과 신교주의의 관계를 연구한 저서에서 “문학의 상상적 흥분과 더불어 신교적 교리의 압력을 느끼고 있었던 개신교 인문주의자는 통렬하고도 지속적인 전위의 위기국면에 처해 있었다”고 시드니에게 가한 신교주의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Sinfield, 23). 시드니 소네트 전편을 통하여 신교적 이념은 아스트로펠의 넘쳐흐르는 생명력과 자아 탐닉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고 그것들에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5번 소네트에서 12행까지는 시종일관 주인공이 성적 사랑에 탐닉하는 태도를 거부하며 13행에서는 “사실, 지상에서 우리는 단지 순례자일 뿐”(true, that on earth we are but pilgrims made)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마지막 행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스텔라를 사랑하는 것도 사실인 것을”(True; and yet true that I must Stella love)이라고 하여 71번 소네트처럼 앞의 내용 전체를 와해시키면서 그 의미를 전위시키로 있다(Sinfield, 57).
시드니의 소테트를 전위시키는 요인으로서 귀족계급의 궁정문화와 신교주의 이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여성들은 이러한 지배계급의 관점과 정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반응했던 것일까? 『별을 사랑하는 자와 별』은 시종일관 아스토로펠의 관점에서, 즉 남성들이 확립해 논 이념구조 내에서 발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6세기 페트라르카류의 소네트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찬양의 대상인 스텔라의 특성들은 그때그때 시인의 의식에 의해서 조작되거나 시인의 의식에 충돌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들로서 긴밀한 내적 관련성이 없는 특성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단순히 시인-연인의 욕망이 만들어 낸 차가운 구조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남성이 중요한 모든 역할을 담당하도록 마련된 무대에서 일종의 조상(彫像)처럼 저 멀리 격리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스텔라의 발언은 아스트로펠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하는 경우로 국한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여인을 우상화하면서도 현실의 압력과 인간적인 매력을 떨쳐버릴 수 없는 시드니의 연작 소네트에서 비록 스텔라가 직접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지만 그가 마련해 놓은 시적 상황에 대해서 그녀가 발언할 수 있다면 어떤 류의 발언이 가능한 것일까? 그녀의 침묵은 그녀의 성격 탓인가, 아니면 아스트로펠의 압력 때문인가? 아니면 여성들의 참여가 허용되지도 않았고 그들이 통제할 수도 없는 ‘문화적 맹목’(cultural blindness), 그래서 그들을 단순히 응시와 분석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제도적 압력 때문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드니의 연작 소네트가 다양한 독자층에게 다양한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것을 별개의 독립된 소네트들의 모음으로 보든 아니면 병치와 변주로 긴밀하게 연결된 통일된 작품으로 보든 그의 소네트 도처에는 사랑이 ‘내던져져 있음’(thrownness)을 느끼게 하는 절박한 현대적 감정이 맥박치고 있다. 『별을 사랑하는 자와 별』의 이런 특성이야말로 50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그것이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과도 ‘상호택스트성’(inter-textuality)을 구축할 수 있는 이유이다(Waller, 142-43).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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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es, Ann Rosalind & Stallybrass, Peter. 'The Politics of Astrophil and Stella'. Studies in English Literature 1500-1900. vol. 24 (1984), pp. 53-69.
Kalstone, David. Sidney's Poetry: Contexts and Interpretation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5.
Lever, J. W. The Elizabethan Love Sonnet.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6.
Lewis, C. S. English Literature of the Sixteenth Century Excluding Drama.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MacCoy, Richard C. Sir Philip Sidney: Rebellion in Arcadia.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1979.
Ringler, William A. Jr., ed. The Poems of Sir Philip Sidne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Sinfield, Alan. Literature in Protestant England 1560-1660. London: Croom Helm, 1983.
Waller, Gary. English Poetry of the Sixteenth Century. London: Longman,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