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단군왕검에 대한 견해
A. 실증주의
B. 민족주의
2. 신화의 의미 분석
A. 실증주의 사관
B. 민족주의 사관
3. 단군신화를 보는 관점
4. 단군신화의 해석
A. 농경의 비중 중대와 인본주의
B. 사회 분화에 의한 공식적인 형벌 발생
C. 천신족임을 자칭하는 외래계 유래민 집단과 선주민 집단의 융화
D. 양집단 결합의 산물로 대표성을 보장 받게된 지배자 출현
E. 신성한 종교적 기능과 세속적인 정치적 기능을 한몸에 아우르는 지배자에 의한 통치
F. 인간의 출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
G. 한민족의 사회발전과정에 관한 설명
H. 텡그리 사상
<3> 보충자료 - 단군관련 기사
A. 실증주의
B. 민족주의
2. 신화의 의미 분석
A. 실증주의 사관
B. 민족주의 사관
3. 단군신화를 보는 관점
4. 단군신화의 해석
A. 농경의 비중 중대와 인본주의
B. 사회 분화에 의한 공식적인 형벌 발생
C. 천신족임을 자칭하는 외래계 유래민 집단과 선주민 집단의 융화
D. 양집단 결합의 산물로 대표성을 보장 받게된 지배자 출현
E. 신성한 종교적 기능과 세속적인 정치적 기능을 한몸에 아우르는 지배자에 의한 통치
F. 인간의 출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
G. 한민족의 사회발전과정에 관한 설명
H. 텡그리 사상
<3> 보충자료 - 단군관련 기사
본문내용
만 생각하면 단군 할아버지는 날 떠부더 할아버지가 아닐 테니 수긍이 가기도 한다. 친근한 단군상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어린이 단군이 있다면 단군 어머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있다. 할아버지 캐릭터 단군에서부터 부채춤 추는 단군 땀흘리는 여러 모습이 개발되어 있다. S/W 개발업체인 (주)월촌 시스템이 단군 캐릭터를 개발한 것은 어찌보면 외도인 셈인데, 이에대해 강성구 사장은 "캐릭터 산업은 상당한 고부가치 산업이고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돈이 된다면 캐릭터 산업을 계속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단군동상 훼손사건이 잇따르고 있는데.....
서울경제 1999.10.2 - 고광본기자
우리민족 첫 국사세운 역사 속 인물 종교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접근해야 일부 종교선"우상숭배다"반발 개천절인 3일 4,332년 전에 단군께서 홍익인간의뜻을 품고 우리민족 첫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날이다. 그런데 최근 전국적으로 몇몇 초등학교에서 교정에 있던 단궁동상이 훼손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목이 잘리거나 불에 그을리고 칼자국이 생겼다. 단군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보인다. 단군을 제대로 아는 것은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한 할아버지의 자손이라 생각하면 남북간의 동질감을 회복하고 영호남의 지역 감정도 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단군을 섬기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도 일제시대에 일본역사보다 훨씬 긴 우리역사를 말살하기위해 고대사의 자료를 왜곡하면서 단군을 신회 속의 가상 인물로 축소했다. 단군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2,000년 가량의 나라를 유지한 고조선을 세운 실존 인물이다. 역대 조선왕조는 단군에 대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국조를 섬기는 것이 왜 우상 숭배가 될까? 어는민족이나 건국 신화가 있다. 환상적이며 초인적인 이야기인 신화는 조상을 신비롭게 격상시켜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것이다. 신화가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군조선 연구의 대가인 최태영박사는 "단군신화와 단군조선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광개토대왕이나 이순신장군을 신으로 모시면 안되는 것처럼, 단군도 역사적인 사실로 접근해야지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설명한다.
중앙일보 기사 1999.10.3
일제(日帝) "단군 존재 인정" 총독부시절 문헌 발견
일제시대 일본이 단군의 존재를 인정한 자료와 함께 단군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한 문헌 3권이 발견됐다. 서지학자 이종학(李種學, 독도박물관장) 씨는 2일 단군 존재를 인정한 이왕직(李王職)의 문서 일부(9쪽)와 단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은 조선총독부 중추원(中樞院) 발행 조선사료(朝鮮史料) 3권을 공개했다. 이왕직이란 일제시대에 조선왕족의 재산 등을 관리하던 기관. 이 기관에서 1938년 발행한 제목, 필자 미상의 문서 중 종묘(宗廟)의 기원 부분에 "단군은 정사(正史)에 전하지 않아 설이 분분하지만 단군에 대한 기록을 사실로 본다"며 "특히 사마천의 기록과 삼국유사, 동사 고기 등 많은 역사서를 참고해 볼 때 단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조선사료 중 '단군조선(檀君朝鮮)' '단군건국설(檀君建國說)' '기자조선(箕子朝鮮)' 편은 단군의 출생과 이동, 그리고 신화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삼국유사, 동국통감, 동사강목 등 다양한 역사책을 바탕으로 총정리 해놓고 있어 일제의 단군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李관장은 "한반도 강점 후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던 일제가 발행한 문서에 단군의 존재가 인정돼 있는 것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기사 1999.12.6
단군 관련 史書 日왕실도서관에 가득"
일제시대 관련 책자 분류작업 박창화씨, 해방후 최기철 서울대 명예교수에 증언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군조선'의 실체를 알릴 자료가 어딘가에 쌓여 있다면 우리 상고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상고사에 관한 국내의 기록은 수많은 전란(戰亂)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고 삼국유사 등 일부 서책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에 관한 책들을 몽땅 약탈해 태워버렸다는 설까지 있다. 해방 후 출간된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나 '제헌국회사' 등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명령에 의해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말까지 1년2개월 동안 고사서 51종20여만권을 약탈 했으며, '단군조선'에 관한 서적 대부분이 이때 소실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일명 황실도서관)에 '단군조선'과 관련된 책들이 쌓여 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료에 목말라 하는 상고사 연구자들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주장을 한 사람은 1962년에 사망한 박창화(朴昌和) 씨, 1933년부터 12년간 쇼료부에서 우리 상고사 관련 사서를 분류하는 일을 담당했던 朴 씨는 해방 후 이 사실을 최기철(崔基哲) 서울대 명예교수(담수생물학연구소장)에게 털어놨으며, 최근 崔 교수가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1900년초 한성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충북 영동(永同)소학교와 배제고보 등에서 역사를 가르친 朴씨는 한국상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쇼료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한다. 崔교수는 "내가 청주사범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1945년에 朴씨를 역사교사로 채용했으며, 그 후 쇼료부에 단군조선 관련 서적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으나 나와 전공이 무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당시 朴씨가 쇼료부에서 읽었던 단군조선 관련 서적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쇼료부 소장본들은 목록으로 정리된 것들만 접근이 가능해 朴씨의 말이 사실이라도 확인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새로운 한, 일 교류의 시대를 맞아 일본측이 쇼료부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면 몰라도.
단군동상 훼손사건이 잇따르고 있는데.....
서울경제 1999.10.2 - 고광본기자
우리민족 첫 국사세운 역사 속 인물 종교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접근해야 일부 종교선"우상숭배다"반발 개천절인 3일 4,332년 전에 단군께서 홍익인간의뜻을 품고 우리민족 첫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날이다. 그런데 최근 전국적으로 몇몇 초등학교에서 교정에 있던 단궁동상이 훼손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목이 잘리거나 불에 그을리고 칼자국이 생겼다. 단군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보인다. 단군을 제대로 아는 것은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한 할아버지의 자손이라 생각하면 남북간의 동질감을 회복하고 영호남의 지역 감정도 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단군을 섬기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도 일제시대에 일본역사보다 훨씬 긴 우리역사를 말살하기위해 고대사의 자료를 왜곡하면서 단군을 신회 속의 가상 인물로 축소했다. 단군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2,000년 가량의 나라를 유지한 고조선을 세운 실존 인물이다. 역대 조선왕조는 단군에 대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국조를 섬기는 것이 왜 우상 숭배가 될까? 어는민족이나 건국 신화가 있다. 환상적이며 초인적인 이야기인 신화는 조상을 신비롭게 격상시켜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것이다. 신화가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군조선 연구의 대가인 최태영박사는 "단군신화와 단군조선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광개토대왕이나 이순신장군을 신으로 모시면 안되는 것처럼, 단군도 역사적인 사실로 접근해야지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설명한다.
중앙일보 기사 1999.10.3
일제(日帝) "단군 존재 인정" 총독부시절 문헌 발견
일제시대 일본이 단군의 존재를 인정한 자료와 함께 단군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한 문헌 3권이 발견됐다. 서지학자 이종학(李種學, 독도박물관장) 씨는 2일 단군 존재를 인정한 이왕직(李王職)의 문서 일부(9쪽)와 단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은 조선총독부 중추원(中樞院) 발행 조선사료(朝鮮史料) 3권을 공개했다. 이왕직이란 일제시대에 조선왕족의 재산 등을 관리하던 기관. 이 기관에서 1938년 발행한 제목, 필자 미상의 문서 중 종묘(宗廟)의 기원 부분에 "단군은 정사(正史)에 전하지 않아 설이 분분하지만 단군에 대한 기록을 사실로 본다"며 "특히 사마천의 기록과 삼국유사, 동사 고기 등 많은 역사서를 참고해 볼 때 단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조선사료 중 '단군조선(檀君朝鮮)' '단군건국설(檀君建國說)' '기자조선(箕子朝鮮)' 편은 단군의 출생과 이동, 그리고 신화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삼국유사, 동국통감, 동사강목 등 다양한 역사책을 바탕으로 총정리 해놓고 있어 일제의 단군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李관장은 "한반도 강점 후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던 일제가 발행한 문서에 단군의 존재가 인정돼 있는 것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기사 1999.12.6
단군 관련 史書 日왕실도서관에 가득"
일제시대 관련 책자 분류작업 박창화씨, 해방후 최기철 서울대 명예교수에 증언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군조선'의 실체를 알릴 자료가 어딘가에 쌓여 있다면 우리 상고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상고사에 관한 국내의 기록은 수많은 전란(戰亂)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고 삼국유사 등 일부 서책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에 관한 책들을 몽땅 약탈해 태워버렸다는 설까지 있다. 해방 후 출간된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나 '제헌국회사' 등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명령에 의해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말까지 1년2개월 동안 고사서 51종20여만권을 약탈 했으며, '단군조선'에 관한 서적 대부분이 이때 소실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일명 황실도서관)에 '단군조선'과 관련된 책들이 쌓여 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료에 목말라 하는 상고사 연구자들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주장을 한 사람은 1962년에 사망한 박창화(朴昌和) 씨, 1933년부터 12년간 쇼료부에서 우리 상고사 관련 사서를 분류하는 일을 담당했던 朴 씨는 해방 후 이 사실을 최기철(崔基哲) 서울대 명예교수(담수생물학연구소장)에게 털어놨으며, 최근 崔 교수가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1900년초 한성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충북 영동(永同)소학교와 배제고보 등에서 역사를 가르친 朴씨는 한국상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쇼료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한다. 崔교수는 "내가 청주사범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1945년에 朴씨를 역사교사로 채용했으며, 그 후 쇼료부에 단군조선 관련 서적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으나 나와 전공이 무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당시 朴씨가 쇼료부에서 읽었던 단군조선 관련 서적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쇼료부 소장본들은 목록으로 정리된 것들만 접근이 가능해 朴씨의 말이 사실이라도 확인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새로운 한, 일 교류의 시대를 맞아 일본측이 쇼료부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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