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작가소개)
2. 목차별 내용 요약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3) 무게 없는 경제
(4) 지적 재산의 독점
(5) 서비스 세상
(6) 인간관계의 상품화
(7) 삶으로서의 접속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10) 탈근대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3. 전체 내용 요약
4. 감상
2. 목차별 내용 요약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3) 무게 없는 경제
(4) 지적 재산의 독점
(5) 서비스 세상
(6) 인간관계의 상품화
(7) 삶으로서의 접속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10) 탈근대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3. 전체 내용 요약
4. 감상
본문내용
것이다. 맥도널드는 자신의 영업술과 상표를 하나로 묶어 지역 사업가에게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가져가는 체인 사업을 통해 엄청난 이윤을 창출한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와 벤츠는 자동차 임대 사업으로 발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조직을 아웃 소싱하여 회사 밖의 브레인을 이용하고 장비도 리스해서 필요한 기간 동안만 사용한 후 반납한다. 아예 사무실을 없애고 호텔을 빌려 사무실 또는 회의실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소유의 종말』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이를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징표라고 말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던 소유 중심의 산업 자본주의는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의 '접속'을 중시하는 하이퍼 자본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네트워크 경제의 특징은 상품 교환 빈도의 현저한 감소이다. 놀라운 기술의 혁신과 그에 따른 신제품 생산 주기의 단축은 규모의 경제를 속도의 경제로 바꾸어 놓았고, 이에 따라 소유라는 발상을 낡은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구닥다리가 될 기술이나 제품을 구태여 소유할 기업이나 개인이 어디 있겠는가. 잦은 업그레이드로 제품의 수명이 단축되자 소비자들은 제품을 소유하는 대신 일정 기간 빌려 쓰고 새것으로 바꿔 쓰기를 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장비와 부동산 등 실물 자산과 많은 직원을 소유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되었다. 이제 상품이나 서비스에 단기간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즉 접속권을 얻는 것이 구입해서 장기간 소유하는 것보다 점점 더 매력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임대와 접속이 중시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된 형태일 뿐이다. 더 이상 팔아먹을 물건이 없어지자, 접속권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판매하는 형태로 진화한 하이퍼 자본주의인 것이다. 리프킨은 하이퍼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생명 과학 산업 부분에서 지적한다. 예를 들어 몬산토를 비롯한 여러 생명 과학 기업의 경우를 보자. 이들 기업들은 현존하는 종자에 대해서 남김없이 특허를
내고 농부에게는 한 해 농사를 지을 권한만을 빌려준다. 그 다음 해에 수확을 해서 얻은 새 종자의 소유권은 생명 과학 기업에게 있고 농부가 함부로 이듬해 농사에 파종할 경우 막대한 벌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런 식이라면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새끼가 태어날 때마다 로열티를 물어야 할 지도 모른다. 법적으로는 특허 동물의 공급자가 동일한 유전형을 가진 모든 후손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 유전자와 세포의 특허가 일반화되고 있는 지금의 추세에서, 유전자군(群)을 특허라는 형태로 독점한 소수의 생명과학 기업은 자신들이 소유한 유전자 정보에 대해 어마어마한 사용료를 부과함으로써 보건 서비스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함으로써 문명의 토대이자 상업 영역을 밑받침하는 문화 영역을 붕괴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점이라고 진단한다.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생물학적 다양성을 없애고 천연 자원을 고갈시켰듯이, 문화 자원을 발굴해 상품화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판매하는 체제는 문화 다양성을 퇴화시키고 문화 자원을 고갈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행 추적 회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트렌돌로지, 브레인 리저브, 쿨 워크스 등의 유행 추적 회사는 광고나 상품에 써먹을 수 있는 흥미로운 문화 자원을 물색하여 이를 나이키, 코카콜라, 디즈니, 샤넬 등의 대기업에 거액을 받고 넘긴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이들에 의해 세계 각지의 모든 삶의 형태가 발굴되고 상업적으로 가공되어 상품화된다. 그리고 일단 상품화된 문화는 상업 문화로 획일화, 동질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며, 이는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이다. 이에 따라 리프킨은 시민 교육과 시민 운동의 정치 세력화를 통해 상업 영역의 침범에 대해 문화 영역을 보호 · 육성하는 것이 21세기 최대의 과제라고 결론짓고 있다.
저자가 인정하듯이 문화 체험과 개인적 변신을 찾아 소유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이들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아직도 초라한 살림살이 속에서 더 많은 재산을 갈망하고 있는 상황에서,『소유의 종말』에 예견된 하이퍼 자본주의란 다소 과장된 때 이른 논의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초기 자본주의적 화폐 경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탈과 착취를 당해야 했던 식민지 농민들과 하층 프롤레타리아를 떠올려 본다면,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는 없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식민지화에 의해 이식된 경제 체계는 다른 문명에 의해 객관화된 유산, 즉 축적된 경험, 보수 부여와 상품화의 기술, 회계와 계산 및 조직의 방법들인데, 이것들은 '우주'의 필연성을 갖는다. 그 우주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규칙을 필사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하이퍼 자본주의의 네트워크 경제는 또 하나의 '우주'를 이미 형성하고 우리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적응하기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허 농작물의 씨앗을 무단으로 파종했다고 해서 어마어마한 벌금 고지서를 손에 들고 망연자실해 할 농민의 모습이 과연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수 있을까.
이미 세계 유수의 미디어 기업들은 21세기의 거의 모든 상업 영역을 차지할 통신 회로와 문화 자원의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수 · 합병을 통해 온갖 종류의 통신, 문화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지위에 올라설 채비를 마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이미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삶의 형태를 변화시켜 가고 있다. 정부의 개입조차 무력해지는 이런 상황에서, 접속에서 배제된 이들은 고립되고 소외된 채 점점 더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위험성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소유의 종말』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이를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징표라고 말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던 소유 중심의 산업 자본주의는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의 '접속'을 중시하는 하이퍼 자본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네트워크 경제의 특징은 상품 교환 빈도의 현저한 감소이다. 놀라운 기술의 혁신과 그에 따른 신제품 생산 주기의 단축은 규모의 경제를 속도의 경제로 바꾸어 놓았고, 이에 따라 소유라는 발상을 낡은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구닥다리가 될 기술이나 제품을 구태여 소유할 기업이나 개인이 어디 있겠는가. 잦은 업그레이드로 제품의 수명이 단축되자 소비자들은 제품을 소유하는 대신 일정 기간 빌려 쓰고 새것으로 바꿔 쓰기를 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장비와 부동산 등 실물 자산과 많은 직원을 소유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되었다. 이제 상품이나 서비스에 단기간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즉 접속권을 얻는 것이 구입해서 장기간 소유하는 것보다 점점 더 매력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임대와 접속이 중시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된 형태일 뿐이다. 더 이상 팔아먹을 물건이 없어지자, 접속권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판매하는 형태로 진화한 하이퍼 자본주의인 것이다. 리프킨은 하이퍼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생명 과학 산업 부분에서 지적한다. 예를 들어 몬산토를 비롯한 여러 생명 과학 기업의 경우를 보자. 이들 기업들은 현존하는 종자에 대해서 남김없이 특허를
내고 농부에게는 한 해 농사를 지을 권한만을 빌려준다. 그 다음 해에 수확을 해서 얻은 새 종자의 소유권은 생명 과학 기업에게 있고 농부가 함부로 이듬해 농사에 파종할 경우 막대한 벌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런 식이라면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새끼가 태어날 때마다 로열티를 물어야 할 지도 모른다. 법적으로는 특허 동물의 공급자가 동일한 유전형을 가진 모든 후손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 유전자와 세포의 특허가 일반화되고 있는 지금의 추세에서, 유전자군(群)을 특허라는 형태로 독점한 소수의 생명과학 기업은 자신들이 소유한 유전자 정보에 대해 어마어마한 사용료를 부과함으로써 보건 서비스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함으로써 문명의 토대이자 상업 영역을 밑받침하는 문화 영역을 붕괴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점이라고 진단한다.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생물학적 다양성을 없애고 천연 자원을 고갈시켰듯이, 문화 자원을 발굴해 상품화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판매하는 체제는 문화 다양성을 퇴화시키고 문화 자원을 고갈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행 추적 회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트렌돌로지, 브레인 리저브, 쿨 워크스 등의 유행 추적 회사는 광고나 상품에 써먹을 수 있는 흥미로운 문화 자원을 물색하여 이를 나이키, 코카콜라, 디즈니, 샤넬 등의 대기업에 거액을 받고 넘긴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이들에 의해 세계 각지의 모든 삶의 형태가 발굴되고 상업적으로 가공되어 상품화된다. 그리고 일단 상품화된 문화는 상업 문화로 획일화, 동질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며, 이는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이다. 이에 따라 리프킨은 시민 교육과 시민 운동의 정치 세력화를 통해 상업 영역의 침범에 대해 문화 영역을 보호 · 육성하는 것이 21세기 최대의 과제라고 결론짓고 있다.
저자가 인정하듯이 문화 체험과 개인적 변신을 찾아 소유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이들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아직도 초라한 살림살이 속에서 더 많은 재산을 갈망하고 있는 상황에서,『소유의 종말』에 예견된 하이퍼 자본주의란 다소 과장된 때 이른 논의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초기 자본주의적 화폐 경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탈과 착취를 당해야 했던 식민지 농민들과 하층 프롤레타리아를 떠올려 본다면,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는 없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식민지화에 의해 이식된 경제 체계는 다른 문명에 의해 객관화된 유산, 즉 축적된 경험, 보수 부여와 상품화의 기술, 회계와 계산 및 조직의 방법들인데, 이것들은 '우주'의 필연성을 갖는다. 그 우주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규칙을 필사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하이퍼 자본주의의 네트워크 경제는 또 하나의 '우주'를 이미 형성하고 우리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적응하기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허 농작물의 씨앗을 무단으로 파종했다고 해서 어마어마한 벌금 고지서를 손에 들고 망연자실해 할 농민의 모습이 과연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수 있을까.
이미 세계 유수의 미디어 기업들은 21세기의 거의 모든 상업 영역을 차지할 통신 회로와 문화 자원의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수 · 합병을 통해 온갖 종류의 통신, 문화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지위에 올라설 채비를 마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이미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삶의 형태를 변화시켜 가고 있다. 정부의 개입조차 무력해지는 이런 상황에서, 접속에서 배제된 이들은 고립되고 소외된 채 점점 더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위험성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닐까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