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의 모든 것 - 정의, 이해, 기원, 역사, 종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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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탈춤이란

(2) 탈춤의 이해
1. 탈춤의 특징
2. 탈춤의 명칭
3. 탈춤속에 깔린 의식
4. 탈춤의 성격

(3) 탈춤의 기원
1. 천체 기원설
2. 처용가무설
3. 기악설
4. 풍물굿의 잡색놀이설
5. 상대도감설

(4) 탈춤의 공동체적 신명과 변천

(5) 탈춤의 역사

(6) 탈춤의 지역적 분포와 종류

(7) 지역별 탈춤의 유래와 특징

(8) 탈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본문내용

제각기 사자를 꾸며서 놓았고, 각처에서 읍내로 사자가 모여들어 자연히 경연이 붙었는데, 193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경연을 시키고 우승팀을 선정하기에 이르러 여타의 다른 사자팀들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놀음은 그 주목적이 벽사진경에 있으며, 가가호호를 순회하면서 벽사하고 그 댓가로 받은 돈과 곡식은 동리의 공공사업 즉 장학금, 빈민 구제, 경로회 및 사자놀음 비용 등에 충당되어 왔다. 북청사자놀음은 음력 정월 14일 밤 달이 뜬 뒤부터 시작하는데, 이보다 앞서 여러 마을에서 장정들의 편싸움이 있어 왔다고 한다.
(2)특 징
현존하는 민속극에서 사자춤이 들어 있는 것은 봉산탈춤과 통영오관대와 수영야류이아, 이틀 사자춤은 간단하여 보통 두사람이 사자의 앞과 뒤를 맡으며, 앉아서 좌우로 머리를 돌려 이도 잡고 꼬리를 흔들며 몸을 긁기도 하고, 타령이나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통영이나 수영사자는 장단에 맞추어 담보와 싸우는 춤을 보이고 나중에 담보를 앞다리 안으로 끌어들여 잡아먹는 시늉을 한다. 북청사자는 머리 쪽에 한 사람, 뒤채에 한 사람으로 보통 두사람이 추는데, 앞채 사람이 먹이인 토끼를 어르다가 잡아먹는 과정을 흡사하게 연기하기도 하여, 어느 사자춤 사위보다도 교묘하고 또 힘찬 동작이 특징적이다.중국이나 일본의 민속사자춤에서 사자를 불보살로 숭상하는데, 봉산탈춤에서도 사자를 문수보살과 관련시키고, 파계승을 벌하러 내려온 부처님의 사자로 보고 있다. 송석하에 의하면, 현대의 북청사자와 거의 같은 당시의 일본사자는 한국을 경유하여 간것이라 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또, 중국의 민속사자춤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사자놀음은 북방께에 가까운 것이며, 하회탈의 주지탈은 사자탈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탈에 꿩의 털은 꽂는 것은 사자의 갈기와 같은 것으로 중국 남방꼐 사자에서도 그 예가 있는 것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
(1)역사적 유래
현존하는 각 지방의 부락제의 명칭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를 둘로 크게 나누면, 남성 중심으로 행해지는 유교풍의 동제와 온 마을의 남녀노소가 참가하며 무당이 주제하는 도당굿일 것이다. 그러나, 유교식 동제보다 더 원초적인 것으로는 축문도 없이 제주가 조용히 정성을 들인다는 산제가 있다. 이와 같은 산제와 당굿과 동제가 우리나라 부락제의 기본 유형으로 생각되나, 그중에서 현재까지 서낭제탈을 전하는 것으로는 경북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의 동제와 그 별신굿 탈놀이를 들 수 있다.
(2)특 징
하회동의 낙동강 상류에서 강이 S자형으로 굽이도는 [살생과장중 백정의 모습]강기슭에 자리잡은 풍산유씨의 동족부락으로 조선조 선조 때의 명신 유성룡의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에 전하는 향언으로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유씨 배반에" 라는 말이 있어 대체로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 그 후에 안씨가 들어왔고, 나중에 유씨는 조선조 초기부터 집단적으로 정주한 것 같다.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다.
탈춤의 종류나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분류를 하면..
1.탈 춤:봉산탈춤,은율탈춤,강령탈춤
2.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송파산대놀이
3.오광대 :고성오광대,통영오광대,가산오광대
4.野 游 :동래야류,수영야류
5.기타 :북청사자놀음,하회별신굿탈놀이
이렇게 나룰수 있고 제목에서 볼수있듯이 "탈춤"이란 단어가 있는 것은 다른것과 비해 춤의 요소가 主가되고 극적인 요소는 從이 된다
나머지 것은 그와 반대의 개념이고.. (단정 짓기 어려운것도 있긴 하지만)
하지만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
8.탈춤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오천년의 뿌리를 가진 우리 겨레의 문화는 20세기에 들어 와서 큰 시련을 겪었다. 분별없이 들어오는 서구 문물, 일제의 혹독한 민족문화 없애기 정책, 6.25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문화의 뿌리는 상당히 흔들렸다. 연극과 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를 수 없었다.
일제에 의해 우리 민족문화 없애기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1991년 신파극의 상륙과1920년 신극의 이입이 우리 연극에 미친 영향과 ,1926년 석정한의 춤 공연으로 인한 신무용의 도입, 1965년 박외선 으로부터의 현대 무용 반입이 우리 나라의 춤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전통춤과 연극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1960년대 이후 관이 주도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복원 공연이 시작되어 그 나름의 성과를 이룩하였지만, 그것은 벌써 새로워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박제문화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춤이라고 하면 당연히 신무용이나 현대무용을 일컫고, 연극이라고 하면 으레 서구 연극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민속탈춤과 전통극에 대하여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 맥을 이어 보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것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기 시작한 대학에서 의 탈춤 되살리기 운동으로 70년대 후반부터 무용계에서 서서히 일어나게 된 민속춤에의 관심 등으로 이어져 왔다.
새로운 춤과 연극이 전통문화의 단순한 복원과 재현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삶을 담아내려는 진지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것은 우리 문화의 전통성을 이어 나가는 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연극의 장래가 마당극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듯이, 민속춤에 뿌리를 둔 우리 춤의 세계가 우리 나라 춤의 앞날을 결정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탈춤에 대한 기존의 생각(우리탈춤을 억지로 기존의 서구적 예술 갈래로 나누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종합 예술로서의 탈춤을 그 자체의 한 예술분야로 인정해야 하며, 그것이 탈춤의 자양한 기능에 힘입어 앞으로 펼쳐 나갈 우리 춤의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을 확인해 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탈춤에 대한 기존의 생각(우리탈춤을 억지로 기존의 서구적 예술 갈래로 나누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종합예술로서의 탈춤을 그 자체의 한 예술분야로 인정해야하며, 그것이 탈춤의 다양한 기능에 힘입어 앞으로 펼쳐 나갈 우리 춤의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을 확인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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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16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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